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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름의 문턱을 알리는 6월의 과일, 앵두가 탐스럽게 익었어요. 여름에 수확하는 곡식인 밀과 옥수수, 예쁜 색을 뽐내는 복숭아와 청포도도 눈에 띄네요. 풍요로운 여름 농작물이 가득한 모습에 마음까지 넉넉해져요. 그런데 이 그림, 자세히 보니 아주 특이해요. 붉은 복숭아는 볼, 호박은 코, 옥수수는 귀, 포도와 산딸기 넝쿨은 머리카락…. 바로 사람 얼굴이에요!


무엇을 그린 그림일까요~?

첫 번째 페이지의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 ‘사계절’ 시리즈 가운데 세 번째 그림인 <;여름>;이에요. 채소와 과일 등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그린 그림을 정물화라고 하는데, 이 그림은 정물화 같기도 하고 사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같기도 해요. 친구들은 *어떤 모습이 먼저 눈에 띄나요?
오른쪽 그림은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겨울>;이에요. 회갈색으로 조금 침울하게 그려진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요?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은 빽빽하게 자란 아비 덩굴로, 얼굴은 오래돼 뒤틀린 나무줄기로 이뤄져 있어요. 그리고 몸은 거적을 입은 고목나무 그루터기로, 입은 버섯으로 되어 있지요. 전체적으로 꽃과 열매가 없어서 삭막한 겨울의 느낌이 나요.
하지만 목과 가슴이 이어진 부분에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과일인 레몬과 오렌지가 그려져 있어서 그림에 밝은 느낌을 주고 있어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볼 때, 사물 하나하나보다는 익숙한 전체의 모습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어요. 눈이 본 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모양부터 떠올리는 거죠. 아르침볼도의 그림에서 오이나 호박, 앵두 등 채소보다는 익숙한 형태인 얼굴을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모양’이라는 뜻에서 ‘게슈탈트쉬프트’라고 부르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게슈탈트 심리학’이라고 부른답니다.
 
❶ 아르침볼도, 사계절 중 <;여름>;, 1563년, 캔버스에 유채, 67 × 51㎝,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❷ 아르침볼도, 사계절 중 <;겨울>;, 1563년, 캔버스에 유채, 67 × 51㎝,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앗! 그림이 이상하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착시’를 이용한 거예요. 착시에는 환경형 착시와 원근형 착시, 기하학적 오류에 의한 착시, 잔상에 의한 착시 등이 있어요. 맨 왼쪽 그림은 환경형 착시로, 원래 그려져 있지 않은 흰색 삼각형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여요.
왼쪽 그림은 네덜란드의 화가인 모리츠 에셔의 그림으로, 기하학적 오류에 속해요. 폭포의 높이가 이상하지요? 실제로 저런 구조는 존재 할 수 없답니다.
 
변화하는 자연을 그림 속에~!

아르침볼도가 그린 그림 가운데 두 번째 그림은 <;봄>;이에요. 볼에 발그레하게 홍조를 띤 젊은왕자가 활짝 핀 꽃과 풀, 나무로 그려져 있어요. 젊은 왕자의 모자에는 백합이 꽂혀 있고, 가슴은 딸기 잎을 비롯한 풀잎으로, 그리고 부푼 소매는 식용 채소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 꽃과 풀, 나무는 가까이에서 보면 표면의 주름이 보일 정도로 자세한 정물화예요. 하지만 멀리에서 보면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은 젊은 왕자의 초상화가 확실하게 드러난답니다.
사계절 시리즈의 마지막 그림인 <;가을>;에는 포도와 포도 잎으로 만든 큰 관을 쓴 아저씨가 그려져 있어요. 이 아저씨의 옷은 참나무 포도주통이고, 입은 가시가 가득 달린 밤송이에요. <;봄>;과 <;가을>;은 이렇게 얼굴 구석구석이 온갖 과일과 채소로 뒤덮여, 봄의 신선함과 가을의 풍성함을 잘 드러내고 있어요.
이처럼 ‘사계절’은 생명을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열매와 잎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어요. 또 젊은이와 아저씨, 할아버지 등 나이에 따른 사람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지요. 특히 우리의 고정관념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를 깨고 <;겨울>;을 첫 번째 그림으로 그려서 겨울 뒤에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어요. 이것은 겨울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약속하기 때문이랍니다.
 
❶ 아르침볼도, 사계절 중 <;봄>;, 1573년, 캔버스에 유채, 76 × 64㎝,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❷ 아르침볼도, 사계절 중 <;가을>;, 1573년, 캔버스에 유채, 76 × 64㎝,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정물화 속에 이런 뜻이!
채소와 과일을 그린 아르침볼도의 그림이 있긴 했지만, 정물이 그림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였어요.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무역이 활발해서 경제가 크게 성장했어요.
그래서 부자가 된 시민들이 미술품을 사기 시작했는데, 이런 시민들은 신화처럼 어려운 그림보다는 거실이나 부엌에 부담 없이 걸 수 있는 풍경화나 정물화를 더 좋아했어요. 그래서 정물화가 크게 유행하게 되었지요.
이 무렵의 네덜란드 정물화는 사람이 가진 다섯 개의 감각과 네 개의 원소를 표현하곤 했어요.
아래 두 점의 그림을 통해 이런 주제를 확인해 볼까요?


*과일 바구니에 곤충과 조개가 있는 이유?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이 세상이 물, 불, 흙, 공기의 네 원소로 구성돼 있다고 믿었어요. 이 원소들은 각각 차가움이나 뜨거움 등 물질의 성질을 지니고 있고, 서로 결합하면 새로운 물질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발타자르 판 데어 아스트가 <;과일 바구니>;를 그릴 당시에는 생물도 네 원소 중 하나에 속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화가들도 그림 속에 이런 원소를 표현했지요. 이 그림도 마찬가지로, 나비와 나방은 불, 과일과 도마뱀은 흙, 조개는 물, 파리는 공기를 나타낸답니다.

*이 그림에는 여름 과일인 포도와 가을 과일인 모과 등, 서로 같은 계절에 열릴 수 없는 과일이 한 바구니에 담겨 있어요. 아르치볼도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서로 돌고 돈다는 것을 표현했답니다.


평범한 물건이 아니야~!

루뱅 보갱의 <;오감각>;이라는 작품이에요. 사람이 갖고 있는 다섯 개의 감각을 그림으로 표현했지요. 팔각형의 거울은 시각을, 악기인 만돌린과 악보는 청각을, 카네이션은 후각을, 빵과 포도주는 미각을, 그리고 체스판과 카드는 촉각을 의미해요. 특히 이 물건 가운데 만돌린과 거울이 크게 그려져 있어요. 체스판과 카드는 속임수를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에, 속임수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도덕적인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 숨어 있답니다.
 

❶ 발타자르 판 데어 아스트, 과일바구니, 1632년경, 목판에 유채, 14× 20㎝, 독일 베를린 달렘 미술관

 
❷ 루뱅 보갱, 오감각, 1630년, 캔버스에 유채, 55 × 73㎝,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오늘날에는 물질을 구성하는 것이 분자이고, 분자는 다시 원자가 결합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또 계절이 돌고 도는 이유도 밝혀졌지요. 하지만 지금처럼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던 수백 년 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물과 자연을 이해했어요. 그래도 세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해 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시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답니다.

2010년 11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공하린 과학저술가
  • 진행

    윤신영 기자
  • 사진

    공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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