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탐사 경로를 따라 항해하던 권영인 박사님이 오랜만에 소식을 보내 왔어요. 푸에르토리코에서 배가 고장 나 한 달 넘게 발이 묶여 있던 권영인 박사님은 결국 배를 포기하고 자동차를 이용해 탐사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앞으로는 답사기 형식으로 탐사한 내용을 보내 주신다고 하니 기대해 주세요~.
다윈을 찾아 떠나는 도심여행2009년 4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리우데자네이루라는 이름은 포르투갈 어로 ‘1월의 강’이라는 뜻이다. 가장 처음 이 곳에 온 포르투갈인들이 1월에 도착해서 붙인 이름이다. 포르투갈어에서는 ‘R’을 ‘ㅎ’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브라질 사람들은 ‘히우데자네이루’라고 말한다.
다윈은 1832년 4월 4일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뒤, 이 곳에 세 달 동안 머물며 많은 기록을 남겼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도심은 다윈이 방문하기 전부터 있었던 도시다. 다윈은 “도시가 계획적으로 지어져 길이 반듯하고 광장이 넓으며 집의 발코니는 잘 꾸며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오가는 모습이 영국의 에든버러를 닮았다”라고 기록했다.
옛 도심의 반대편에는 프라이아그랑데라는 마을이 있다. 다윈은 이 마을을 지나면서 마을 뒤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기록에는 “프라이아그랑데 뒤의 언덕을 지나갈 때 보이는 풍경은 숭고하며 그림 같다”라고 되어 있다. 지금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다윈이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자주 찾아간 식물원이 올해로 200주년을 맞았다.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기도 하니, 다윈과 식물원이 탄생한 해가 같다.
이 식물원에서 다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다윈이 항해기에서 언급한 빵나무, 망고나무, 후추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다. 다윈의 숙소도 이 곳에서 멀지 않았다고 한다. 다윈이 산책할 때 따라갔다는 물길은 산에서 솟아 나는 물을 시내로 끌어들이는 시설이었다.
혹시 다윈의 흔적을 더 찾을 수 있을까 싶어 퀴타다보아비스타 국립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역사박물관이지만 현관에는 커다란 운석이 있고 2층에는 공룡화석이 있어서 마치 자연사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다윈이 방문했을 때는 박물관이 아니라 성크리스토프 왕궁이었고, 1889년까지 왕실의 저택으로 쓰였다. 다윈은 이 왕궁이 “멀리서 보기만 해도 외관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다윈과 관련된 전시물을 볼 수는 없었다. 이런 곳에 다윈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니 참 아쉬운 일이다. 앞으로 찾아갈 곳에서는 꼭 다윈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