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혹시‘아일린 콜린스’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나요? 우리나라 시간으로 8월 9일 오후 9시 11분에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는데요, 디스커버리호의 선장이 바로 아일린 콜린스랍니다. 최초의 여성 선장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아일린 콜린스. 그녀의 지휘로 다녀온 15일간의 우주여행을 통해 우주 개발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다섯 대의 우주왕복선
미국항공우주국이 개발한 우주왕복선은 모두 다섯대. 지금까지 114회를 번갈아 왕복하며 각각의 임무를 수행했다.
❶컬럼비아호
최초의 우주왕복선. 1981년 4월 12일 첫 비행에서 54시간 20분 동안 지구궤도를 36번 돌았다.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며 우주개발의 선두로 나섰지만 2003년 2월 귀환도중 폭발했다.
❷챌린저호
컬럼비아호를 이은 두 번째 우주왕복선으로 1983년 4월4일 첫 비행을 했다. 인공위성 수리, 우주복 시험 등 여러 가지 임무를 완수했으나 1986년 1월 28일 발사 도중폭발하고 말았다.
❸디스커버리호
1984년 8월 30일 첫 비행을 한 우주왕복선으로 허블우주망원경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이번 비행은 31번째로 우주왕복선을 이용한 우주개발에 희망을 안겨 주었다.
❹아틀란티스호
1985년 10월 3일 첫 비행. 우주왕복선으로는 51번 째의 임무를 수행했다. 갈릴레오 위성을 발사했으며 미르와 도킹하여 임무 수행을 했다.
❺엔데버호
다섯 대의 우주왕복선 중 막내. 1992년 5월 7일 첫 번째 비행에서 지구를 141번이나 돌면서 임무를 수행했다. 지구궤도를 돌면서 지구 표면의 상세 지도 작성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픔을간직한우주왕복선의운명
1926년 12월 30일. 미국의 고더드 박사가 세계 최초로 로켓을 발사한 이후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수많은 로켓을 만들고 우주로 발사했습니다. 하지만 로켓은 다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우주 수송 시스템인‘우주왕복선’입니다.
우주왕복선은 1972년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10년뒤인 1981년 4월 12일에 그 결실을 맺게 됩니다. 최초의 우주왕복선은‘컬럼비아호’로 길이 56.1m, 폭23.8m의 두툼한 몸집의 비행기 모습이었지요. 그 후로 챌린저, 디스커버리, 아틀란티스, 엔데버라는 이름의 우주왕복선을 만들어서 우주왕복선은 모두 다섯 대가 되었답니다.
우주왕복선은 우주개발의 장본인으로 허블우주망원경이 오래도록 활동할 수 있게 만들었고, 국제우주정거장을 만들 수 있게 했답니다. 하지만 이런 우주왕복선도 아픔이 있었어요. 1986년에 발사했던 챌린저호는 발사 직후 공중 폭발했으며, 2003년 2월에는 지구로 귀환하던 컬럼비아호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지요. 그 후로 우주왕복선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그런 걱정 때문에 디스커버리호의 어깨는 굉장히 무거웠답니다.
두 어깨에 우주개발의 꿈이
컬럼비아호의 귀환 도중 폭발사고는 후유증이 대단했습니다. 특히 이번 임무를 맡은 아일린 콜린스선장에게 말이죠. 그녀는 폭발 사고가 난 컬럼비아호에 직접 탑승한 경험이 있고, 또 컬럼비아호 폭발로 목숨을 잃은 동료들과 가족같이 지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번 디스커버리호의 임무는 단순히 국제우주정거장에 장비를 건네주고, 우주실험을 하는 것만이 아니었어요. 지난 사고로 인해 앞으로의 우주왕복선을 이용한 우주개발 계획을 계속 진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과도 같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일린 콜린스 선장은 ‘엄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상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긴장과 함께 발사!
이번 디스커버리호의 임무는 발사 전부터 긴장 속에서 진행되었어요. 7월 13일 발사 예정이었으나 외부 연료탱크 센서에 문제가 생겨 결국 발사를 연기
해야 했지요. 드디어 우주로 떠나는 날. 아일린 콜린스 선장은 6명의 우주인과 함께 디스커버리호에 몸을 실었답니다.
디스커버리호의 연료탱크가 순조롭게 분리되고 원하는 궤도에 올라서자 미국항공우주국 본부에서는 환호성이 터졌어요. 2년이 넘는 동안 중단되었던 우주왕복선 계획에 다시 불을 붙이는 듯 막혔던 숨통이 열리는 순간이었죠. 하지만 발사에서도 위험은 있었어요. 발사 도중에 단열 타일이 떨어져 나갔답니다. 컬럼비아호 폭발 원인이 바로 이 단열 타일이 떨어져 기체에 손상을 준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꿈을 이룬 7인의 우주인
이번 디스커버리호의 임무를 수행한 우주인은 아일린 콜린스 선장을 비롯해서 모두 일곱 명이었어요. 조종사인 제임스 켈리는 공군 대령으로 2001년에 국제우주정거장을 다녀간 경험이 있지요. 22년간 미국항공우주국에 근무한 엔지니어 찰스 캐머더와 앤드루 토머스는 53세로 탑승한 우주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반면 우주유영을 멋지게 성공한 일본의 노구치 소이치는 1996년에 우주비행사 선발시험에 합격한 신참 우주인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노구치 소이치의 우주식량인데요, 일본의 한 라면 회사에서는 ‘스페이스 램’이라는 이름의 우주라면을 개발해 주었답니다. 노구치 소이치와 함께 우주유영을 한 우주인인 스티븐 로빈슨은 30년 경력의 엔지니어이고 웬디 로렌스가 작전 매니저로 함께 탑승했답니다.
여기는 국제 우주 정거장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국제우주정거장에 근무하고 있던 러시아의 세르게이 크라카레프는 아일린 콜린스 선장을 비롯한 6명의 디스커버리호 승무원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발사 이틀 뒤인 7월 28일이었어요. 우주왕복선이 우주정거장에 도킹을 한 것은 2년 8개월만의 일로 폭발한 컬럼비아호 다음이었죠.
도킹한 디스커버리호의 우주인들은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느라 분주했답니다. 먼저 국제우주정거장에 보급품을 전달했고, 국제우주정거장 위치추적 시스템 안테나를 설치했어요. 국제우주정거장이 방향을 유지하게 도와 주는 자이로스코프도 교환했지요.
무엇보다도 이번 임무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우주인이 직접 우주유영을 하면서 단열 보호 시스템인 단열재를 수리하는 것입니다. 우주선 수리전문 엔지니어인 스티븐 로빈슨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의 노구치 소이치는 우주선 수리를 위해서 우주선 밖으로 나갔답니다. 물론 이런 장면들 역시 카메라로 찍어 지구로 전송되었죠. 공상과학영화나 만화에서는 이런 장면을 흔히 보았지만 이렇게 우주유영을 하면서 직접 우주선을 수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답니다.
아름다운 귀환
국제우주정거장에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끈 아일린 콜린스 선장의 마지막 역할은 지구에 남겨둔 두 아이를 무사히 만나러 가는 것이었어요. 2년 반전 컬럼비아호의 폭발이 귀환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긴장 할 수밖에 없었죠.
디스커버리호는 원래 케네디우주센터로 귀환하려는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하늘도 시험을 하는지 쉽게 문을 열어 주지는 않았죠. 결국 다섯 차례의 시도 끝에 계획을 변경하여 에드워즈공군기지에 내려앉게 되었어요. 그 때가 우리나라 시간으로 8월 9일 오후 9시 11분이었답니다.
앞으로 5년 뒤면 디스커버리호도 그 임무를 마치게 되요. 만들어진지 21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거든요. 이번 디스커버리호의 임무는 우주개발의 역사에 중요한 장면으로 남을거예요. 아일린 콜린스의 용기와 함께 말이죠.
우주선장 아일린 콜린스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승무원이자 선장인 아일린 콜린스. 사람들은 컬럼비아호 폭발사고 이후 첫 우주왕복선을 이끌 선장으로 단연 아일린 콜린스를 지목했어요. 그녀가 최초로 선장을 맡았던 1999년 비행에서 전기결함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맞이했어도 침착하게 극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1979년 공군비행사가 되었던 아일린 콜린스 선장은 스탠퍼드대학교와 웹스터대학교에서 우주시스템관리 석사학위를 받고 1989년 공군시험비행학교에서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웠지요. 공교롭게도 이번 디스커버리호가 착륙한 에드워즈공군기지는 아일린 콜린스 선장이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라 아마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거예요.
이번 우주여행을 계기로 870시간의 우주비행 기록을 갖게 된 아일린 콜린스. 그녀가 만들어 낸 이번 15일간의 아름다운 우주여행은 우주개발의 역사는 물론 사랑하는 두 아이의 가슴 속에 깊은 감동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