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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가 약간 넘은 시간, 9살 소녀 채원이는 학교에 가기 위해 대문을 나섭니다. 그런데 자꾸 힐끔힐끔 뒤를 쳐다보며 누군가에게‘따라오지 마!’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다시 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채원이. 하지만 그 발걸음은 몇 발짝도 떼기 전에 멈춰집니다.
“따라오지 말래두∼!”
하지만 소리칠 때만 잠시 멈출 뿐, 채원이가 걷기 시작하자 미행자는 다시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 미행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채원이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같은 반 남자 친구라구요? 이렇게 생각한 친구가 있었다면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네요. 그 미행자는 채원이를 정말 끔찍이 좋아한답니다. 하지만 같은 반 남자 친구는 아니에요. 아침마다 채원이를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니는 주인공은 바로 청둥오리 ‘오리짱’이랍니다.

오리짱, 채원이 집에 오다


‘오리짱’은 올해 5월에 태어나 이제 갓 알을 낳기 시작한 청둥오리 잡종 암컷입니다. 채원이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지요. 그런데 채원이가 사는 곳은 도시 중에서도 제일 크고 복잡하다는 서울. 어떻게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도 아닌 청둥오리가 채원이 집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사실 오리짱은 야생에서 태어난 게 아니고 농원에서 태어났대요.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솜털이 보송보송한 채로 동물 시장으로 보내졌답니다. 또래의 다른 새끼 오리들과 함께 광주리 속에 담겨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을 무렵누군가의 손이 오리짱을 들어 올렸어요. 그 손은 바로 채원이 할머니의 손이었답니다. 평소 동물을 너무 좋아해 집에서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하던 손녀를 위해 할머니께서 오리를 사 주기로 하신 거죠. 그날 저녁 채원이의 집에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반가운 웃음소리가 가득했답니다.
 

채원이는 우리 엄마

“강아지는 목욕도 시켜 줘야 하고 챙겨 줄 게 많어, 오리는 밥만 주면 지가 알아서 큰다니깐∼!”
할머니께서 강아지 대신 오리를 사온 이유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었어요. 오리는 키우면서 신경 쓸 점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하지만 채원이는 달랐답니다. 오리짱이 오는 순간부터 엄마처럼 돌보기 시작했어요. 잠을 잘 때도 같이 자고 먹이도 직접 줬어요. 매일매일 산책도 같이 나갔지요.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빼면 한 순간도 오리짱과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물과의 만남을 가진 채원이에게 오리짱은 애완동물 이상의 존재로 느껴졌으니까요. 오리짱도 채원이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할머니를 비롯한 다른 가족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채원이만 따랐지요.이런 채원이의 보살핌 덕분에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 속에서도 오리짱은 무럭무럭 잘 자라났습니다. 다행이 채원이의 집에는 작은 마당이 있어서 운동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채원이의 여름 방학이 끝나자 문제가 생겼어요.

질투의 화신 오리짱

채원이는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자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오리짱이 아침마다 채원이의 학교까지 따라 가는 거예요. 여름 방학 전에는 오리짱이 바깥 세상을 무서워하는 새끼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었어요. 하지만 여름을 보내고 난 오리짱은 훌쩍 커버려서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나가곤 했답니다.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오리짱. 아침마다 채원이가 자기를 놔두고 학교에 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었어요. 뒤뚱뒤뚱 거리면서 채원이를 따라나서기 시작했어요.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채원이의 걸음으로 20분 정도. 게다가 학교에는 오리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채원이는 오리짱이 따라오지 못하게 했지만 꾸지람을 해도 소용이 없었답니다. 대문을 잠가 버리고 학교에 가면 하루종일 꽥꽥거리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하지요. 결국 채원이의 학교 가는 길엔 오리짱, 그리고 할머니까지 따라나서게 되었답니다. 학교까지 따라간 오리짱을 다시 할머니께서 집까지 데리고 와야 했기 때문이죠..
이런 아침을 반복하길 여러 번, 또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할머니께서 힘든 것도 문제였지만, 오리짱의 발에 상처가 생기고 말았어요. 원래 오리의 발은 물갈퀴가 달려 있어서 헤엄치기에는 적당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걷기에는 적당하지 않답니다. 그런 발을 가진 오리짱이 왕복 40분이나 되는 거리를 무리해서 걷다 보니 발바닥이 까지고 만 것이지요.
결국 오리짱은 발바닥이 나을 때까지 바깥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자 오리짱은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온 채원이에게 누군가 접근만해도 가만히 놔두질 않았어요. 친척 아저씨가 놀러오면서 데리고 온 강아지에게, 또 놀러온 채원이의 친구에게도, 급기야 채원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에게까지 분노의 부리를 들이밀었어요. 아무도 말릴 수 없는‘질투의 화신’이 되어버린 오리짱, 성격이 온순하고 태평해서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그는 결국 집안의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립니다.

샛별! 따라오지 마

채원이가 학교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오리짱은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대문 앞에서 채원이를 기다립니다. 채원이가 잘 때까지 오로지 채원이 뒤만 졸졸 쫓아다니고 무거운 몸을 채원이 무릎에 맡기고 잠도 잡니다. 질투의 화신으로 변신한 오리짱 때문에 귀찮을 법도 하지만, 그래도 채원이는 오리짱이 싫지 않습니다. 집에 와서는 친구 집에도 제대로 못 놀러 갈 정도인데 말이에요.
둘의 모습을 보다 못한 할머니께선 결국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셨어요. 그건 바로 새끼 오리 한 마리를 데리고 오는 것! 시장에 가셔서‘샛별이’라고 이름을 지어 준 흰색 집오리를 사 오자 오리짱의 태도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어요. 자기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샛별이를 살갑게 대해 줬어요. 그리고 자기는 혼자 배운‘오리로서 살아가는 법’을 샛별이에게 전수도 해 주고요. 그러자 채원이와 오리짱의 사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서로를 끔찍이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오리짱은 샛별이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채원이도 친구의 집에도 놀러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채원이의 할머니께서 웃으면서 한 마디 하십니다.
“원래 오리는 오리답게 살아야 하는 거야. 그나저나 오리짱이 귀찮게 생겼어. 이제 샛별이가 오리짱만 졸졸 쫓아다닌다니깐∼, 홀홀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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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1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김경우 기자
  • 사진

    서정화 생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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