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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이과가 일해봤습니다] 0칼로리 치킨을 만들어봤습니다

포장을 풀지도 않았는데 벌써 방 안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뚜껑을 열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치킨 때문입니다. 후라이드, 양념, 간장…. 어떤 맛을 골라도 치킨은 확실한 행복을 약속합니다. 한 입 베어 물면 튀김이 갈라지고 입안 가득 차오는 촉촉한 살. 기름진 다리도 고소한 가슴살도, 발라먹는 재미가 있는 목도 치느님의 너른 품 안에서 모두 맛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짧고 살은 오래갑니다. 칼로리는 맛의 단위라는 말이 있죠.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치킨은 어마어마하게 열량도 높습니다. 당연합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니, 말도 안 됩니다. 먹었으면 찌는 게 순리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척 치킨을 또 시킬 겁니다. 어쩌겠어요, 맛있는 걸. 


지난 두 달간 ‘아이디어를 줘도 만들지 않는 건 이과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식의 도발에 넘어가 무선 샤워기와 충전식 휴지를 만들어 봤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은 다릅니다. “이과는 힘내서 0칼로리 치킨을 만들어주길.”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다짜고짜 이과를 응원하는 글을 만났죠. 치킨이란 공동의 목표 아래 서로 격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힘 내보겠습니다.

 

1해봤습니다: 배는 채울 수 있습니다. 배는…


0칼로리 치킨을 만들어보겠다고 덥석 도전할 수 있는 이유는 살찔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이미 우리 주변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의 열량은 0kcal(킬로칼로리), 구약감자로 쑨 묵인 곤약은 100g당 9kcal입니다. 설탕 대신 아스파탐, 아세설팜 칼륨 등 인공감미료를 사용해 맛을 낸 탄산음료의 열량도 0kcal에 가깝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체가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탄단지’란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 몸은 소화효소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분해, 소화하며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고 일부는 글리코겐, 지방의 형태로 저장합니다. 인체가 분해할 수 없는 물질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쉽게 살이 찌지 않습니다. 곤약 속 식이섬유나 아스파탐, 아세설팜 칼륨 등이 이런 경우죠. 


특히 독특한 식감을 가진 곤약은 다양한 형태로 가공돼 기존 음식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곤약 젤리, 곤약 국수, 곤약 쌀알이 대표적입니다. 곤약을 얼렸다 녹이면 곤약 고기가 됩니다. 식감이 고기와 비슷해 장조림 등에 고기 대신 넣어 먹죠. 


0칼로리 치킨 만들기, 쉽네요. 곤약 고기로 치킨을 만들어 먹으면 고기와 비슷한 식감에 배가 부르면서 살도 안 찔 겁니다. 그런데 이대로 기사를 끝내기엔 마음 한구석이 영 찝찝합니다. 치킨의 핵심은 씹었을 때 느껴지는 닭고기의 고소하면서 기름진 맛 아니었던가요. 곤약은 맛이 ‘없’습니다. 치킨에 진심인 여러분이 이런 차이를 그냥 넘기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2런 방법이 있습니다: 치킨 광고가 나오면 화면을 핥으세요


지난해 10월, 미야시타 호메이 일본 메이지대 첨단미디어과학과 교수팀이 발표한 제품이 우리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면을 핥아 음식의 맛을 볼 수 있는 TTTV(Taste the TV)란 이름의 제품인데요, 초콜릿, 피자 등 다양한 음식의 맛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품을 테스트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죠.


우리의 미각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다섯 가지 맛을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촉각이나 후각 정보가 어우러져 음식 특유의 맛이 되죠. TTTV에서 맛을 만드는 부분은 상단에 설치된 ‘맛 탱크’입니다. 10개의 맛 탱크에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맛 외에도 매운맛, 알코올 맛 등 다양한 맛을 내는 액체가 각각 들어있습니다. 이 액체를 화면 위에 있는 투명 필름에 분사해 맛을 만드는 겁니다. 


미야시타 교수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맛 센서를 이용해 기존 음식의 맛을 TTTV에서 구현한다”고 했습니다. 맛 센서로 음식의 신맛은 어느 정도인지, 쓴맛은 어느 정도인지 등 비율을 파악한 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맛 탱크에 들어있는 액체를 조합하면 음식의 맛을 흡사하게 구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초콜릿 맛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단맛과 쓴맛을 조합합니다. 단맛을 더 많이 분사하면 밀크 초콜릿, 쓴맛을 더 많이 분사하면 다크 초콜릿으로 느껴지는 식이죠. TTTV의 가격은 10만 엔(약 104만 원). 치킨 광고를 보다가 홀린 듯 화면을 핥으면 광고 속 치킨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도 먼 미래는 아닐 것 같네요. 화면을 핥는 게 우아하지 못하다면 투명 필름 대신 곤약 치킨 위에 치킨 맛을 분사하는 방법도 좋겠죠! 

글 : 김소연 기자

과학동아 2022년 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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