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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공학의 결정적 순간: 세상을 바꿀 질문들 | 신약 개발

편집자 주
과학동아는 한국공학한림원의 회원들을 인터뷰해 세상을 바꾼 공학의 질문들을 살펴봅니다.
한국공학한림원은 기술 발전에 공을 세운 공학기술인을 발굴해 우대하고, 학술 연구와 지원사업을 통해 창조적인 공학기술 개발과 발전에 기여하는 공학 싱크탱크입니다.

 

▲Shutterstock
 

 

이 기사는 해동과학문화재단의 후원으로 한국공학한림원이 기획·지원해 제작됐습니다. 

 

“신약 개발 10배 가속” AI가 질병치료 판도 바꿀까?

 

‘인공지능(AI)을 과학기술 전반에 융합해 국가적 난제를 해결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K-문샷의 목표다. 정부는 2035년까지 인체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검증 과정을 단축해 신약 개발을 10배 가속하고자 한다. 정말 2035년까지 신약 개발 기간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을까. 신약개발 전문가 두 명의 질문으로 살폈다.

 

▲SK바이오팜
SK바이오팜이 미국에서 판매 중인 성인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 약의 핵심 화학 물질, 즉 성분은 세노바메이트다. SK바이오팜은 1990년대 후반 세노바메이트 연구를 시작해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신약 개발에 20여 년이 걸린 것이다. 

 

 ‘앞으로 나는 평생 어떤 연구를 하게 될까?’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95년, 묵인희 서울대 의대 치매융합센터장이 시냅스 형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자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고령화 시대가 곧 오게 되는 만큼, 노인성 질환이 중요해지겠다고 판단했죠.” 9월 28일, 서울대에서 만난 묵 센터장이 말했다. 당시 인류는 알츠하이머병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에 묵 교수는 약 20년 동안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밝히고, 혈액 내 아밀로이드베타(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와 같은 병리적 변화를 통해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방법 개발에 집중했다.

 

그러다 2018년, 묵 교수와 알츠하이머병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생겼다. “기존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증상이 나타난 이후 진단을 받았어요. 그런데 2018년 미국국립노화연구소(NIA)가 증상이 없더라도, 뇌 안에 아밀로이드베타 등 질병 관련 병리가 있는 이들까지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하는 것으로 기준을 바꿨어요.” 이를 보며 묵 교수에게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만들었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큰 효과가 없던 이유가, 병이 너무 오래 진행된 환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일 수 있겠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은 임상증상이 나타나기 15~20년 전부터 아밀로이드베타가 축적되는 등 병리적 변화가 서서히 시작된다. 즉 기억력 저하가 나타났을 때는 이미 신경세포가 상당히 손상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통해 아밀로이드베타가 어디에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알츠하이머병 초기 단백질이나 유전자 같은 생체지표를 통해 신약 개발 설계 전략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가능성을 본 묵 교수는 이후 치료제 연구로 눈을 돌렸다.

 

한편, 또다른 신약 개발 연구자인 황선관 SK바이오팜 연구위원은 이 분야에 투신한 계기를 다르게 회상했다. “논문을 쓰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신약 개발에서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발견)’란 말을 자주 써요.” 10월 6일 SK바이오팜 경기 판교 사무실에서 만난 황 연구위원이 말했다. 세렌디피티란 우연한 발견을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가치 있는 성과를 얻는 것을 뜻한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세균을 배양하던 접시에서 우연히 푸른곰팡이가 자란 것과, 그 주변에는 세균이 자라지 않은 것을 보고 이를 연구해 항생물질,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뜻밖의 발견은 연구실에서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으로 기록된다. 우연한 발견을 실제 치료제로 발전시키는 일에 매력을 느낀 황 연구위원은 산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황 연구위원은 석사 학위를 받은 2002년, 당시 SK 대덕연구소(2011년 물적분할 후 SK바이오팜 설립)에 입사했다. 연구소는 ‘세노바메이트’라는 신약 물질의 비임상시험을 하고 있었다. 세노바메이트는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의 핵심 물질이다.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세노바메이트 연구는 1990년대 후반에 시작했어요. 즉 연구 시작부터 신약 승인을 받는 데까지 20년이 걸렸던 거죠.” 하나의 신약이 시중에 판매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Alphafold
인공지능(AI) 알파폴드로 예측한 단백질 3차원 구조. 질병은 대부분 특정 단백질이 오작동하며 발생한다. 신약 개발은 이 문제 단백질에 결합하는 물질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알파폴드는 몇 분 만에 단백질 구조를 99% 정확도로 예측한다.

 

신약 개발 주요 단계, AI가 어디서 가속할까?
AI로 단백질 구조를 파악
AI가 신약의 후보물질 도출
AI가 임상시험 설계를 정교화
▲AI 생성 이미지 (ChatGPT)
 

 

“AI의 등장, 신약 개발의 판도를 바꿀까”

신약 개발 연구자들을 설레게 하는 질문

 

이렇게 길고 힘든 신약 개발 과정에 인공지능(AI)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신이 주신 축복 같아요.” 묵 센터장은 신약 개발과 결합한 AI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기자가 만난 두 연구자 모두 AI가 신약 개발에 미칠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라 예상했다. 신약 개발 각 단계마다 AI의 역할이 다양하다.

 

우선 묵 센터장은 기전 연구를 오래 했던 만큼, AI가 질병을 치료할 표적 단백질 구조를 알아내고, 또 해당 단백질에 작용할 후보물질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약으로 조절할 대상의 모습을 알아내고, 여기에 작용할 물질을 구상하는 과정이 모두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알파폴드 같은 구조 예측 모델이단백질 구조 파악에 과거 수년이 걸렸던 시간을 수 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어요.” 묵 센터장이 말했다.

 

“신약 개발 초기 단계 중 유효물질(표적에 작용하는 초기 후보물질) 발굴 과정의 경우 10배에 가까운 가속이 나타났어요.” 황 연구위원은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이미 큰 변화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특히 같은 계열 약 중에 최고 성능을 목표로 하는 ‘베스트 인 클래스’ 개발에서는 약 1년 걸리던 탐색을 때에 따라 한 달 이내에 끝내기도 한다. 과거에는 확보한 화합물을 하나씩 시험하며 효과를 찾아야 했지만 이제는 컴퓨터에서 훨씬 많은 분자 구조를 검토한 뒤, 가능성이 높은 물질부터 합성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약에서 다른 치료 가능성을 찾는 ‘약물 재창출’도 빨라질 수 있다. 심혈관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중간에 용도가 바뀌어 발기부전 치료제로 대성공을 거둔 ‘비아그라’가 약물 재창출의 예다. 이미 알려진 약들을 뇌 질환의 여러 표적과 비교해, 이전에는 미처 살피지 못한 작용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묵 센터장은 사람이 일일이 검토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조합을 AI로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미 알려진 약들을 뇌 질환의 여러 표적과 비교해, 이전에는 미처 살피지 못한 작용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탈락한 약을 다시 살펴볼 수도 있다. “과거 알츠하이머병 임상시험에서 탈락한 물질은 병이 너무 진행된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했기 때문에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묵 센터장은 이런 물질을 AI로 다시 검토하고 오가노이드에서 반응을 확인하면, 재도전할 만한 후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윤중
묵인희 서울대 의대 치매융합센터장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연구를 하고 있다.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어떻게 연결해야 할까”

신약 개발 연구자의 가장 어려운 질문

 

표적과 기전을 확인해 약이 될 만한 후보 물질을 찾는 게 신약 개발의 전반부라면, 이 물질이 실제로 생물의 몸속에서 부작용 없이 약효를 보이는지 파악하는 것이 신약 개발의 후반부다. 후반부의 핵심은 비임상시험과 임상시험이다. 신약 개발에서 가장 오래 걸리고 힘든 단계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바이오산업협회(BIO) 등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신약 개발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임상 1상에 진입한 후보물질이 최종 품목허가를 받을 확률은 7.9%에 불과했다. 두 연구자는 어떻게 이 단계를 극복했을까.

 

묵 센터장은 사람의 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를 이용하면 동물과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한계를 일부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가노이드란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실제 인간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모사한 장기유사체다. “오가노이드로 사람의 유전자에 따라 달라지는 반응과, 동물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의 반응을 미리 살펴볼 수 있었어요.” 묵 센터장은 오가노이드의 역할이 단순히 동물과 사람 간의 간격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마다 다른 약의 효과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실험 도구였다고 설명했다. 묵 교수는 2021년 조광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와 함께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맞춤형 치료효능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doi: 10.1038/s41467-020-20440-5 공동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단백질 그리고 이들 간의 관계를 네트워크로 구현하고, 뇌 오가노이드로 모델의 성능을 검증했다. 네트워크 모델은 유전적 조건에 따라 어떤 분자 경로가 달라지는지를 분석해, 그에 맞는 치료 표적과 약물 조합을 제안했다. 환자의 생물학적 특성에 맞는 약물 탐색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 황 연구위원이 개발에 참여한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동물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세노바메이트는 특정 표적을 정하고 거기에 맞는 약을 설계하는 방식이 아닌, 뇌전증의 증상인 발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는 방식으로 개발됐어요.”

 

연구팀은 기존 화합물의 구조를 변형해 새로운 후보물질을 만들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작을 유도한 여러 동물모델에서 효과를 비교했다. 예를 들어 전기 자극으로 발작을 일으키거나, 반복적인 자극으로 발작에 취약한 상태를 만드는 식이다. 황 연구위원에 따르면 연구팀은 이처럼 사람의 발작과 약물 반응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동물모델 7~8가지를 활용했다. 하나의 모델에서만 약효를 확인하는 대신, 다양한 모델에서 폭넓은 발작 억제 효과를 나타내는 후보물질을 선별한 것이다.

 

▲남윤중
황선관 SK바이오팜 연구위원이 세포의 전기적 신호를 측정하는 생체 전기생리학 전용 현미경 시스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약 개발의 핵심 과정인 약물 효능 검증에 필수적인 장비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황 연구위원은 최근 신약 개발 분야의 발전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신약 개발은 이제 AI란 강력한 도구와 함께 우연한 발견을 필연적 발견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 8월, 실험 장비와 로봇 그리고 AI가 하나로 연계돼 24시간 멈추지 않는 차세대 연구 플랫폼, 자율실험실(SDL·Self-Driving Lab) 생태계 구축에 시동을 걸기도 했다.

 

다만 특정 단계에서의 AI 성과를 신약 개발 전체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특정 작업을 10배 빨리 수행하는 것과, 약 하나를 개발하는 시간을 10분의 1로 줄이는 것은 달라요. 또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여러 조직이 영향을 주고받는 인체에서 약효와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지까지 곧바로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황 연구위원은 신약 개발 전체 과정을 펼쳐놓고, 어느 단계에서 얼마나 시간을 줄일 수 있는지 또 단계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어떤 연구가 필요한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시험 단계에서 두 연구자가 서로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도 특징이다. 인체는 복잡하고 또 사람마다 각기 다른 만큼 하나의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임상시험도 AI가 도울 수 있을까? 1상부터 3상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약효와 부작용 등을 살피는 임상시험의 경우 신약 개발에서 가장 큰 비용과 시간이 드는 단계다. 이 질문에 두 전문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의 생체지표와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면, 누가 질병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지, 누구의 진행 속도가 빠른지 예측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적합한 환자군을 구성할 수 있죠. 이는 사람에게 약을 투여하고 관찰하는 시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험 설계를 정교하게 해 실패할 가능성을 낮추는 방식이 될 겁니다.”

 

신약 개발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을 향한다. 아픈 사람을 낫게 만들고, 아프지 않게 만들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바람이 담겨있다. AI가 좌절과 실패를 없앨 수 있을까? 황 연구위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사람에게서 찾았다. “AI가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류가 쌓은 지식 덕분이었어요. 앞으로도 연구자들이 각자에게 단단히 쌓여 있는 기본 지식을 통해 어떤 좋은 질문을 AI에게 던지는지가 중요할 겁니다.” 

 

▲Shutterstock
2026년, 연구 전 주기를 AI와 로봇이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자율실험실(SDL·Self-Driving Lab)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SDL 산학연협의체가 출범했다. SDL은 사람이 반복해 수행하던 실험을 로봇이 대신하고, AI가 다음 실험을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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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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