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500여 명의 인텔 ISEF2013 최종 참가자들은 세계 약 70여 개 나라에서 수백 개의 관련 대회를 통해 선발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은 12개 팀, 27명이었다. 매년 각국 대표를 선발하기 위한 과학경진대회에 참가하는 청소년의 수는 700만 명에 달한다.
사소한 호기심이 그녀들을 비행기에 태웠다
“아시아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인류의 주먹도끼가 서양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보다 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고고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 의문을 품었어요. 그래서 당시 각 지역에 살았던 인류의 생활 패턴과 각 도끼로 두들기거나 때린 물질의 파괴 패턴을 분석해 서로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 주먹도끼 모양도 달랐다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지난 5월 14일(현지 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인텔 ISEF2013 개막식에 참석한 대회 참가자들.
경기도 동두천 보영여중 3학년 윤하영 양은 자신의 연구 내용을 묻는 외국인에게 차근차근히 영어로 대답했다. 지난 5월 16일 피닉스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된 일반인 공개 전시에서였다. ‘석재의 물리적 파괴 특성에 따른 주먹도끼의 효율적 타제형태 연구’라는 이름의 이 연구는 인텔 ISEF2013에서 특별상과 부문별 4등상을 수상했다.
연구팀은 윤 양과 함께 보영여고 1학년에 재학중인 최미림, 차오름 양이었다. 이들은 왜 인류의 유물을 연구하게 됐을까. “동두천에서 가까운 전곡선사박물관 체험을 하러 갔어요. 거기에 전시된 주먹도끼와 설명을 보고 왜 아시아 지역의 주먹도끼가 서양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박물관에서 본 유물에 대한 설명을 무심코 넘기지 않는 호기심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진주제일여고 3학년인 김아현·하우현·최진주 양으로 구성된 팀은 자신들이 생활 속에서 부딪힌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겨울이면 교실에 난방장치를 가동하지만 발이 시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뜨거운 공기를 교실 바닥으로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보텍스 링(Vortex Ring)’이라는 소용돌이 고리를 떠올렸다. 담배를 피울 때 내뿜는 도넛 모양의 연기도 일종의 보텍스 링이다.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덜 받아 에너지 손실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모양이 유지된다.
이들은 보텍스 링을 인공적으로 만들면 따뜻한 공기를 찬 바닥까지 내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소리의 파동을 이용해 보텍스 링을 만드는 장치를 고안했다. 이 장치를 천장에 설치했더니 실제로 교실 바닥 온도가 4℃나 올랐다. 이들은 부문별 4등상을 수상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김아현 양은 “과학이 우리를 편리하게 해줄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에서 출발한 우리 연구를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무척 벅찼다”고 말했다.
초보자도 쉽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컴퓨터사이언스 부문 경진에 참가한 서울 선덕고 2학년 김현준 군도 특별상을 수상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어떻게 알기 쉽게 만들 수 있을까가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학교별 과학동아리의 힘도 컸다.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 현상을 어떻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한 부산고 3학년 김도현·장명환·김재윤 군은 학교 물리동아리에서 만났다. ‘이중코일을 활용한 전기공진과 2차 코일 주위의 전자기파에 대한 탐구’로 특별상을 수상한 이들은 동아리에서 연구하다 이번 대회까지 오게 됐다. 한국산 나비의 계통 분류를 분석한 주수경(3학년)·방수민(2학년) 동두천고 학생들도 ‘버터스타’라는 과학동아리에서 의기투합해 부문별 4등상을 수상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우리는 모두 승자… “여러분도 도전해 보세요”
27명의 한국 참가단은 일주일에 걸쳐 진행되는 모든 일정을 소화한 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피닉스에 도착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물을 직접 설치했다. 13일 개막행사에 참여한 뒤 14일에는 하루 종일 심사위원들 앞에서 영어로 자신들의 연구를 직접 발표했다. 15일에는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자신의 연구를 전시했으며 15일 저녁과 16일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한데 어우러져 전 세계 참가자들과 수상자를 축하했다.
최종 시상식이 끝난 뒤 일부 참가 학생들은 힘들었던 과정과 수상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겹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은 무엇보다 값진 ‘과학을 향한 꿈과 도전’을 얻었다.
“무엇보다 넓은 시야를 얻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입시에 도움이 되는 수상 실적과 이른바 ‘스펙’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텔 ISEF에 참여하면서 입시에 영향받지 않는 목표를 스스로 찾았습니다.”
한국디지털미디어고 3학년 한바환 군의 말이다. 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웹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코드를 제작해 경연에 참가했다. 인디 게임 개발자가 목표인 한 군은 이번 대회 참가를 계기로 자신만의 꿈을 실현시켜 나갈 계획이다.
철을 이용해 재활용이 가능한 촉매용 나노복합체를 연구한 대구과학고 3학년 배재성·김기배 군도 “다른 나라 학생들의 연구를 보며 생각하지도 못했던 창의성에 감탄했다”며 “지금 실력에 만족하지 않고 과학자가 되는 꿈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김현준 군은 “과학에 대한 같은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하는 전 세계의 친구들을 만나 보니 꿈에 대한 열정이 더욱 강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나라 학생들의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적인 연구에 감탄한 이들도 많았다. ‘잠자리 수채(애벌레) 입의 구조와 움직임에 관한 탐구’를 주제로 참가한 홍성여중 2학년 이소희 양은 “닭이 좋아하는 색깔을 연구한 외국 친구들을 보고 사소한 것도 모두 과학 연구 주제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제한적인 연구비 때문에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지 못한 아쉬움도 전했다. “외국 학생이 진행한 박테리아의 패턴에 대한 연구를 보고 연구비가 좀 더 지원됐으면 우리가 저런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동두천고 3학년 주수경 양은 좀 더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생겼다고 전했다.
비록 수상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지만 이들의 경험과 한마디는 이들만의 것이 아닌 독자 모두의 것이 아닐까. 값진 경험으로 꿈을 키워나가겠다는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도 함께 도전해 보세요.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