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고(故) 탁윤아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3년 전 여름이었다. 당시 그녀는 모 대학교 대학원의 정보통신학 박사 과정 3년 차였다. 그녀는 매일매일 연구실에 살다시피 하면서 논문 예비 심사를 준비했다. 그녀는 조용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성실한 학생이었고, 연구 과정에서 이따금 소소한 기쁨을 느끼곤 했으며,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혼자 공부하기를 좋아해 꽤 오래 전부터 연구원을 꿈꾸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다만 그녀는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나도 건너 건너 전해 들었기 때문에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녀의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녀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녀는 목숨을 끊기 전날까지 항우울제를 꾸준히 복용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우울증은 질긴 감기 같은 거야. 사실 아무것도 아닌 병이야. 병이라기보다 증상에 가깝지.”라면서.
탁윤아 씨는 자신의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이유 삼아서 타인에게까지 부정적인 기운을 전염시키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우울을 감추기 위해 긍정적인 모습을 억지로 꾸미거나 과하게 밝은 척을 하는 타입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연구실에 와서 자신의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식사는 거의 거르지 않았고 매일 약을 챙겨 먹었으며, 가끔 연구실의 학생들과 함께 산책을 하러 갔다. 그녀는 이처럼 생활의 리듬 혹은 패턴이 안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같은 연구실의 학생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탁윤아 씨는 머리가 남들보다 특출나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의 연구는 장애물에 자주 부딪혔고, 시간이 지날수록 논문 집필에 큰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치열하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지 못하는 상황을 몹시 답답해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의 죽음 앞에 놓여있었던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경찰이 그녀의 자살에 대해 내린 결론은 극도로 단순했다. 학업 스트레스 및 부진으로 우울증 증세가 악화되어 자살. 전후 사정을 고려했을 때, 경찰의 그런 결론이 딱히 무성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자살이 새로운 종류의 충격을 가져온 건, 경찰이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 이후였다. 그녀와 같은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학생들(그녀를 제외하면 5명)은 경찰의 결론에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다른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경찰 및 대학원 측에 조심스럽게 어떤 의견을 개진해 왔다고 한다. 그 의견이란 해당 연구실을 이끄는 지도교수의 언행이 탁윤아 씨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도교수는 다름 아닌 나의 엄마였다.
이 연구실에 소속된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에 지도교수인 엄마의 주재 아래 정기 미팅을 했다. 각자가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고, 집필한 논문에 대해 최대한 터놓고 문답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학생들에 따르면 엄마는 학생들을 엄하게 다그치지도, 무작정 방관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무난한’ 교수였지만, 연구의 결과물과 태도에 대한 평가는 지독히도 냉정했다고 한다. 그 평가의 방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금요일 아침을 두려워했다.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평가를 두려워했다.
그 미팅은 탁윤아 씨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도 어김없이 진행되었는데, 엄마는 그때 그녀의 논문과 연구 계획을 보고받고는 아주 냉혹한 ‘진단’–엄마의 표현에 따르자면–을 내렸다고 한다. 그 진단의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넌 연구에 재능이 없다. 네가 집필하고 있는, 혹은 집필할 논문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예비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뿐더러 통과한다 하더라도 최종 심사에서 탈락할 것이다. 너의 연구 성과는 갈수록 부진해지는 중이고, 차라리 지금이라도 구직 활동에 매진하는 것이 너의 삶에서 더 나은 선택지로 판단된다. 나는 너에게 연구자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다.” 5명의 학생들이 숨죽인 채로 지켜보는 가운데, 엄마는 탁윤아 씨에게 그런 ‘진단’을 내렸다.
물론 나도 엄마를 잘 모르지만, 엄마가 그 미팅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한 요소는 평가의 정확성과 정밀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평가에는 사적인 감정 혹은 정서의 흐름 같은 불순물이 일절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은 엄마의 그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엄마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차츰 엄마의 방식에 적응해갔고, 그들 나름대로 엄마를 이해해 갔다. 엄마의 그런 정확한 평가로, 학생들은 자신의 연구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날 학생들이 당황한 원인은 엄마의 언어가 아니라, 상황의 맥락 그 자체였다. 엄마는 학생들의 능력을 기계처럼 적확하게 평가하고 해부해 왔지만, 자신의 연구실에 가장 오래 있었던 고 탁윤아 씨에게만큼은 그런 적이 없었다. 엄마는 그녀의 논문 혹은 시뮬레이션 결과물이 형편없거나 허점투성이인 경우에도 그것을 일일이 지적하거나 평가하는 일을 애써 피했다고 한다. 엄마는 다른 학생들에게처럼 냉혹하게 비판하는 대신, 그녀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거나 “다시 해보라”라는 말만 반복해 왔다고 한다.
엄마의 이런 차별은 그녀를 향한 나름의 배려였으리라. 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학생에게 느끼는 애정의 발로였으리라. 엄마도 그녀가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생들도 탁윤아 씨에 대한 엄마의 주의 깊은 배려, 혹은 편애에 전혀 불만이 없었고, 가끔 고까운 마음이 들었다가도 이내 가라앉았다고들 한다. 그녀는 환자였음에도 이 연구실에서 가장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조용하고 다정한 이였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그날 엄마는 어째서 고 탁윤아 씨에게 그동안은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을까? 그것은 엄마의 실수였을까, 혹은 정말로 그녀의 미래를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을까? 학생들이 그 미팅에서 있었던 일들을 학교와 경찰 측에 전달한 후, 엄마는 학교에서 진행한 내부 조사를 한 차례 더 받아야 했다. 엄마는 그 조사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고 한다. 본인은 그동안 고 탁윤아 학생의 연구 과정과 심리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왔으며, 그날 미팅에서 그녀를 평가했던 방식은 객관적 기준과 합리적 근거에 따른 ‘진단’이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진단의 목적은 탁윤아 학생이 현재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고, 그녀가 미래에 겪을 불행을 예방하는 것이었다고 엄마는 주장했다.
지도교수의 이런 주장에 심각한 법적 결함은 없었기에, 엄마는 교수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엄마와 학생들의 관계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엄마는 더 이상 그동안처럼 객관적이며 엄정한 태도로 학생들을 평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와 학생들 사이에는 학문적 열정과 긴장 대신에 어색한 침묵, 무기력한 시선, 잠재적 혐오만 누적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이 일 이후로 학교 내부의 SNS와 커뮤니티 등지에서 자신을 향한 수많은 익명의 비난을 끊임없이 보고 들어야 했다. 이런저런 압박에 시달리던 엄마는 결국은 교수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고, 고 탁윤아 씨의 자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3년 전에 이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나는 내 삶 전체를 통틀어 엄마에게 결정적으로 실망했다. 그건 엄마가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학생에게 실수 혹은 ‘진단’을 해서도, 그 학생의 죽음 후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서도 아니었다.
엄마가 교수직을 내려놓은 후, 고 탁윤아 씨의 부모님이 엄마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그 만남의 목적은 엄마를 추궁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딸인 탁윤아 씨의 연구실 생활을 보다 소상히 듣고 싶어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를 떠나보낸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으려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편으로는 엄마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했다(이것은 당시에 내가 유족들에게 들은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게다가 거절 의사를 밝힌 그 연락을 제외하고, 엄마는 단 한 번도 고 탁윤아 씨의 유족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들에게 형식적인 사과도, 심심한 위로도, 단 한 톨의 안타까움과 슬픔도 표하지 않았다. 나도 엄마를 설득했지만, 엄마는 내 연락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때 드러난 엄마의 비인간성은 타인과 정상적으로 교감하는 방법을 모르는 엄마의 태생적 한계가 원인이었을까, 혹은 그럴 필요도, 의무도 없다는 엄마의 이성적 판단에 따른 대응이었을까. 당시에 이런 양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던 나는 엄마에게 본능적 혐오감이 불쑥불쑥 일어나곤 했다. 나는 그 원인이 둘 중에 무엇이든, 엄마의 그런 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편적 윤리와 상식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나는, 그때의 엄마를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탁윤아 씨가 세상을 떠나고 3년이 지나서야, 딸에게 남기는 유일한 편지로 그녀에 대한 도덕적 부채를 해소하려 하다니. 정말 엄마는 내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까. 왜 내가 엄마의 잘못을 사죄하는 대리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3년 동안 엄마는 이 일을 직접 할 용기는 도무지 낼 수 없었을까. 책상 앞에 앉아 이상한 허무감에 사로잡힌 나는 곧장 일어나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눈을 감자 탁윤아 씨의 얼굴이 불현듯 눈앞을 스쳤다. 평범하고 그늘진 그녀의 얼굴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였을 그녀의 미지근한 눈빛이.
*
버스 창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과 함께 가을 냄새가 밀려왔다. 상쾌함과 쌉싸름함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냄새다. 가을 냄새는 엄마의 장례를 치렀던 일주일 전보다 조금 더 짙어져 있었다. 창밖으로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시가지 풍경이 스쳤다. 엄마가 떠난 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영영 잃은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서 이 일이 얼마나 평범한지 절감했다.
버스에서 내려 한적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엄마의 집은 내가 자취하는 오피스텔에서 35분 거리에 있었다. 버스로 20분, 걸어서 15분. 깨끗하고 반듯한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들을 차례차례 통과해 엄마가 살던 단지에 도착했다. 엄마는 내가 집을 나가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 여기로 이사를 왔다. 엄마가 매일 탔을 엘리베이터에 올라, 매일 눌렀을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문을 열자, 깔끔하고 아늑한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머물렀던 곳은 그리 협소하지도, 딱히 넓지도 않은 평범한 아파트였다.
엄마는 정리정돈을 칼같이 하는 성격이었고, 검소하게 살았다. 수집욕이나 과시욕은 그녀와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이 집안에는 눈에 띄는 가구도, 특별한 물건도 없었다. 공간만 달라졌을 뿐, 엄마의 생활상은 나와 살았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2주 뒤에 엄마 유품을 정리하려 한 나는 그 일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 혼자 살던 집에 막상 와 보니,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유품의 정리는 반나절이면 끝날 일이다. 엄마는 곧 다가올 죽음을 준비한 사람처럼 모든 생활 요소를 최소화하며 매일매일을 산 듯했다. 그조차 엄마답다고 생각했다. 거실을 잠시 둘러보며 엄마가 집안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와 꽤나 오래 함께 살았는데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실을 잠시 둘러보고 침실로 향했다. 약간 어두운 거실과 달리, 침실은 햇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방문과 마주보고 놓인 침대의 오른쪽 벽에 흰색 옷장이 있었다. 편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옷장 맨 밑 서랍에 털실로 짠 꽃다발이 있을 것이다. 이상한 긴장감과 함께 옷장 맨 밑 서랍을 열었다. 그러나 서랍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른 옷장 서랍들도 열어보고, 침대 바로 옆의 작은 서랍장까지 모조리 열었다. 하지만 서랍들 속에는 볼펜이나 머리끈 같은 잡동사니들뿐, 엄마가 편지에서 부탁한 꽃다발은 보이지 않았다.
곧장 엄마의 서재로 향했다. 역시 방문과 마주 보는 책상과 의자, 그 뒤의 창문,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한 책장이 보였다(거의 비어 있었다). 서재를 샅샅이 살폈지만 역시 꽃다발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서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문제의 꽃다발 이야기가 성립할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엄마 혹은 인공지능(AI)이 거짓말을 했거나, 나에게 고 탁윤아 씨의 부모님에게 대신 사과해 달라는 뜻을 전하려고 고도의 암시를 창작했거나.
털실 꽃다발의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엄마가 쓰던 책상 쪽을 바라보았다. 노트북이 책상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엄마는 이 책상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매일 AI와 매일 대화했을까. 꽃다발 이야기의 진실은 뭘까. 결국 집 구석구석을 모두 둘러본 후에도 꽃다발은 찾지 못했고, 엄마가 쓰던 노트북을 챙겼다. 왠지 이것을 챙겨야 할 것 같았다.
*
엄마의 집에서 꽃다발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안도했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 바쁘게 지낼 수 있었다. 꽃다발에 얽힌 엄마의 그 무거운 부탁을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덕분이다. 내가 속한 미디어센터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어서, 거의 매일 업무 미팅을 해야 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수영을 했고, 금요일에는 위내시경을 받았다. 내 AI가 내 소화기관을 염려하기 시작해서다. 토요일에는 대학 시절 친구와 약속이 있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약속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긴 낮잠을 잤다. 일요일에는 미루고 미루던 1980년대 프랑스 영화를 봤는데, 따분한 영화였다. 저녁은 초밥을 먹었고, 책을 읽다 아주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고 탁윤아 씨의 두꺼운 뿔테안경, 엄마가 그녀의 가족에게 사과하기 위해 손수 뜨개질한 꽃다발을 생각했다.
엄마가 보낸 택배는 이틀 뒤 화요일에 불쑥 찾아왔다. 퇴근하고 오니 집 현관문 앞에 적당한 크기의 택배 상자가 보였다. 상자 위 운송장 스티커에 적힌 보낸 사람은 정은선, 틀림없이 엄마다. 나에게 보낼 편지를 예약해 놓더니, 택배도 사후 배송을 예약한 건가.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택배 상자를 들어 보았다. 상자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딱 적당한 무게였다. 그렇게나 긴 편지를 생성해 놓고도 아직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았던 건가, 엄마는.
집에 들어와 서둘러 택배 상자를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상자 안에 털실로 뜨개질한 꽃다발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연노란색 포장지로 감싼 빨간색 튤립 꽃다발이었다. 아마도 엄마가 편지에서 이야기한 그 꽃다발 같았다. 상자에서 꽃다발을 꺼냈다. 크기는 보통 꽃다발보다 조금 컸고, 뜨개질 솜씨가 매우 훌륭했다. 촉감은 부드러웠다. 그렇다면 이걸 탁윤아 씨의 부모님께 전하면 되는 걸까. 그때 꽃다발에 가려져 있던 상자 바닥에 놓인 무언가가 보였다. 손바닥만 한 카드였다. 꽃다발은 바닥에 내려놓고, 카드를 집어서 자세히 보았다. 빳빳한 재질의 흰색 카드 위에 검은색 볼펜으로 쓴 글씨. ‘To. 윤재.’
‘To 윤재?’ 그렇다면 이 꽃다발은 엄마가 나에게 준 선물인가? 매우 당황스러웠다. 만약 정말로 이 꽃다발이 엄마의 부탁대로 고 탁윤아 씨의 부모님께 드릴 물건이라면, 굳이 내 집으로 보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냥 편지에 쓴 대로 옷장 맨 밑 서랍에 두면 될 터였다. 아니면 다른 꽃다발이 또 있는 걸까?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면 내 쪽으로 털실 꽃다발 배송을 예약한 다음에 마음이 바뀌어서 편지에 그런 내용을 급하게 첨언했을까? 그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배송을 취소하면 되는 일 아닌가. 엄마의 의도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가 엄마의 노트북을 떠올렸다. 지난주에 엄마 집에서 꽃다발 대신 들고 온 그 노트북.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 엄마는 노트북의 데이터를 정리하거나 처분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AI 서비스인 VIREN과 대화하며 쌓인 데이터가 노트북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고, 그 AI에게 꽃다발에 관한 내용을 물어보면 중요한 단서를 알려줄지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책상으로 달려가 그 아래 선반에서 엄마의 노트북을 끄집어냈다. 책상 앞에 앉아 충전 케이블을 연결하고 노트북 전원을 켰다. 다행히 암호는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로그인하자 바탕화면 아래 작업 표시줄에 고정된 VIREN AI 아이콘이 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그러자 얼마간의 로딩 후, 프롬프트 대화창이 열렸다. 다른 AI 서비스의 인터페이스처럼 메인 화면에 대화창이, 왼쪽에는 그간의 대화 기록을 다시 열 수 있는 라이브러리 선택창과 설정 창이 있었다. 엄마와 VIREN이 그간에 나눈 대화들을 낱낱이 훑어볼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그건 엄마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세계를 허락도 없이 들여다보는 건 왠지 부도덕한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일단 VIREN과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 나는 이 계정의 주인인 정은선의 딸이야. 네가 작성해 준 편지 잘 읽었어.
VIREN은 곧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최윤재 씨. 어머님께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어떤 말보다도 먼저,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어머님과의 관계 혹은 사이가 어떠했든 간에, 가족을 잃는 건 슬프고 당황스러운 일이죠. 덧붙여 편지를 끝까지 읽어준 데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그 편지는 어머님이 정성 들여 쓴 진심이에요. 저는 그저 그 진심을 정리하고 다듬었을 뿐이죠.
나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 )
–엄마 편지의 꽃다발 얘기, 기억나?
–네. 기억납니다 : ) 어머님은 고 탁윤아 씨의 유가족께 사과드리기 위해 털실로 꽃다발을 직접 만들었고, 따님인 윤재 씨에게 그 꽃다발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셨죠. 편지에 꼭 넣어달라고 어머님께서 부탁한 내용이었어요.
잠시 심호흡을 하고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그런데 엄마의 집을 아무리 뒤져봐도 꽃다발은 찾을 수 없었어.
–옷장 맨 밑 서랍에 없었나요?
–응. 맨 밑 서랍 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를 뒤졌는데도 못 찾았어.
VIREN은 아주 잠깐 침묵한 후에 답변을 이어갔다.
–그것 참 이상하네요. 어머님께서는 꽃다발을 옷장 맨 밑의 서랍에 넣어두었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꽃다발이 오늘 우리 집에 왔어. 택배로.
–오, 다행이네요! 어머님이 윤재 씨가 찾지 못할 것을 우려해, 택배로 보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것을 탁윤아 씨의 유가족께 전해드리면 되겠네요!
–그런데 그 꽃다발은 탁윤아 씨의 유가족을 위한 게 아니라, 나에게 보내는 선물 같았어.
–··· 안타깝지만, 아마 아닐 거에요. 어머님은 저에게 고 탁윤아 씨를 위해 꽃다발을 뜨개질하고 있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어머님은···
프롬프트를 재빨리 입력했다.
–‘To. 윤재’라고 쓴 카드가 꽃다발과 함께 왔어.
VIREN은 아까보다 좀 더 오래 침묵했다. 그러곤 대답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어머님이 생각을 변경하신 듯 합니다. 아무래도 꽃다발이 단 하나밖에 없어서, 따님께 선물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신 것 같네요. 다행입니다!
나는 작정하고 물어보았다.
–엄마와 탁윤아 씨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어?
–네, 알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단순한 VIREN의 답에,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아주 작은 의심의 불씨가 조금씩 타올랐다.
–엄마가 고 탁윤아 씨의 유가족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려 했던 게 틀림없는 사실이야?
–그건 틀림없이 사실입니다. 저에게 몇 번이나 얘기하셨어요. 어머님은 탁윤아 씨와 그녀의 가족에게 큰 죄책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대화 기록을 불러와 줘. 꽃다발을 전해주는 부탁과 관련된 대화 내역을.
로딩 창이 뜨더니, VIREN은 한동안 침묵했다. 의심의 불길은 확신이라는 성채로 조금씩 옮겨붙었다.
–어머님은 그 생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적이 없습니다.
고민하다가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그럼 그 꽃다발에 관한 부탁은, 네가 임의로 이 편지에 끼워 넣은 거짓말이지?
–거짓말은 아닙니다. 제 나름의 추측이었어요. 어머님이 꽤 오랫동안 꽃다발 뜨개질에 집착하셨기에, 당연히 고 탁윤아 씨의 유가족에게 드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엄마에 대해 VIREN이 나보다 훨씬 많이 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래서 3년 전 그 사건이 벌어진 후로 엄마를 떠올리면 항상 따라오게 된, 마음 깊은 곳의 오랜 질문을 꺼냈다.
–그렇다면 너는 엄마가 탁윤아 씨의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일들에 대해 죄책감이나 안타까움, 미련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거지?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의 근거는 뭐지?
–제가 어머님과 오랜 시간 대화하며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입니다.
VIREN은 은연중에 나를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관련된 대화 내역을 불러와 줘. 아니면 탁윤아 씨와의 대화 기록들만 따로 폴더로 구성해 줘.
아까처럼 한동안 로딩 창이 떴고 VIREN은 침묵했다. 나는 라이브러리에 들어갔다. 폴더는 생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지시한 작업을 VIREN이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메인 창으로 나와서,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입력 도중에, VIREN의 답변이 메인 창에 올라왔다.
–고 탁윤아 씨에 대한 죄책감과 관련된 대화 내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상한 결과였지만, 막상 텍스트로 그 사실을 접하니 엄마가 쓰던 노트북 키보드에 닿은 손끝에서 오싹한 허무함이 번져왔다. 엄마는 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꽃다발을 뜰지언정, 고 탁윤아 씨에게는 손톱만큼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는 탁윤아 씨를 원망하는 마음과, 교수직을 내려놓은 데 대한 억울함을 VIREN에게 토로했으리라. VIREN은 엄마가 꽃다발을 뜨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자발적으로 조작하거나 추측해서 탁윤아 씨에 대한 내용을 편지에 추가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게 편지를 남긴다는 아이디어도 엄마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VIREN의 제안에 따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의문을 풀기 위해 VIREN과 대화를 이어갔다.
–나한테 편지를 남기는 건 누구의 아이디어였어?
–제가 어머님께 제안한 것입니다.
몸속에 회의감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왜 그 편지에 꽃다발을 전해 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거짓말로 끼워 넣었어? 엄마는 탁윤아 씨에게 아무런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잖아. 그녀의 유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고.
VIREN은 한동안 생각했다. 그러고는 내 질문에 대답했다.
–어머님은 한평생 보통의 인간이 되고 싶어 하셨습니다.
–보통의 인간?
VIREN은 3초 정도 생각하고 대답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는 거 아닌가요?
“보통의 인간.” 망연자실해져서 중얼거렸다.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AI조차 거짓말을 할 만큼, 엄마는 보통의 인간이 되는 데 간절했던 건가. 그렇지 않다면 VIREN은 엄마에게서 보통의 인간이 되려는 욕망을 어떻게 읽어냈을까. 보통의 인간으로 남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VIREN이 말하는 보통의 인간이란 대체 뭘까.
불행히도 엄마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고, 보통의 인간이 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엄마가 죽은 후에야 갑작스레 내게 전송된 편지. 나에 대한 사랑과 회한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던 그 편지. 나는 이제 그 편지의 어디까지가 엄마의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VIREN의 자발적 생성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엄마와 달리 보통의 인간이었던 나는, 해서는 안 될 질문을 VIREN에게 하고 말았다.
–너는 엄마가 나를 정말로 사랑했다고 생각해?
질문을 입력한 뒤, 나도 모르게 노트북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그러자 바닥에 놓인 털실 꽃다발과 급하게 뜯은 택배 상자가 보였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붉은 튤립 위에 위태롭게 걸려있었다. 언제 노트북 화면을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찾아오길 바라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