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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하나의 숲, 세 갈래의 삶 | 영장류

 

 

 

코주부원숭이(Nasalis larvatus)

크기 수컷: 66~76.2cm

암컷: 53.3~62cm

서식지 보르네오섬의 해안 지역 일대

특징 수컷 성체의 코가 약 10cm로 입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로 크다.

성체 암컷의 코도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큰 편이다. 사진의 어린 코주부원숭이는 아직 코가 발달하지 않았다.

 

 

어릴 때 동물원에서 처음 원숭이를 만났을 때는 모두 비슷해 보였다. 꼬리가 길거나 짧고 몸집이 조금 다를 뿐, 모두 나무 위에서 비슷하게 사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태학자가 돼 보르네오 숲에서 만난 영장류들은 같은 숲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편집자 주
동남아시아의 보르네오섬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의 세 나라가 자리한 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자 열대우림과 생물다양성의 보고입니다. 한국 대표 생태학자인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보르네오섬 곳곳을 탐사하며 보고 들은 생존과 진화의 경이를 전해 드립니다.

 

▲GIB

 

영장류의 섬, 보르네오의 밤


보르네오는 전 세계에서 영장류 다양성이 가장 높은 섬 중 하나다. 오랑우탄, 코주부원숭이, 안경원숭이, 긴꼬리원숭이, 은빛랑구르 등 10여 종의 영장류가 같은 숲에서 산다. 먹이도 비슷하고 생활 공간도 겹치는 듯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택한 시공간은 전혀 다르다.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번 보르네오 탐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세 종도 그랬다. 각각 밤, 강, 숲의 지붕인 수관(canopy)을 고른 안경원숭이, 코주부원숭이, 그리고 오랑우탄이었다


2024년 말레이시아 사라왁주의 주도 쿠칭에서 열린 세계양서파충류대회에 참가한 연구자들은 밤이면 헤드랜턴을 챙겨 인근 국립공원의 야간 탐사(프로깅)에 몰렸다. 하지만 대부분은 예약을 못해서 현장에서 빈자리를 기다리거나, 지도에 이름도 없는 숲으로 갔다. 이 프로깅은 정해진 코스, 해설이 없는 대신에 더 고요하고 깊은 어둠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밤의 생명을 만나는 시간이다.


나와 이원재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허경만 동아사이언스 사원도 쿠칭 남서쪽으로 11km 거리의 작은 숲으로 향했다. 마치 동네 뒷산처럼 생활권과 가까웠지만 숲속에는 촘촘히 얽힌 수목, 생각보다 많은 물을 머금고 어둠 속을 낮게 흐르는 작은 시내가 있었다. 군데군데 경사가 제법 가팔라 숨이 찼다. 그렇게 한참 프로깅에 몰두할 때였다.


밤을 보고 듣는 안경원숭이


어둠 속, 눈높이쯤의 나무 줄기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두 개의 둥근 눈과 마주쳤다. 숨죽이고 조명을 줄이자 작은 몸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안경원숭이였다. 이곳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한 번쯤 그려보는 존재지만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다. 야생에서 안경원숭이를 마주하는 일은 단순한 우연 이상이다. 


대부분의 영장류가 과일과 잎을 먹지만 안경원숭이는 곤충, 거미, 심지어 작은 도마뱀과 새까지 사냥하는, 영장류 중 거의 유일하며 완전한 육식성 포식자다. 안경원숭이는 어두운 밤에 어떻게 사냥을 할까? 빛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밤에 시각으로 생활하려면, 망막의 세포가 빛의 입자를 가능한 한 많이 포착해야 한다. 그래서 안경원숭이의 눈은 몸집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크다.


완전한 암흑에서는 어떤 동물도 시각에 의존할 수 없다. 하지만 달빛, 별빛이 비치는 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희미한 빛만 있어도 흑백의 윤곽을 형성해 곤충의 움직임을 읽고, 나무 줄기들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서 순식간에 도약할 수 있다. 정확한 거리를 계산하고 긴 뒷다리로 뛰어올라 옆의 나무로 번개처럼 이동해, 먹잇감을 포획하는 것이다. 이날 밤 우리가 본 빛나는 눈은 달빛과 별빛만으로도 곤충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진화한, 밤 사냥꾼의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소리다. 안경원숭이는 인간의 귀는 들을 수 없는 초음파로 소통한다. 인간이 느끼는 숲은 낮에 새들의 노래가 가득하고 밤은 침묵할 뿐인데, 안경원숭이의 귀는 밤의 숲에서 쉴 새 없이 오가는 초음파를 듣는다. 대부분의 영장류가 잠들면 안경원숭이의 하루가 시작된다. 경쟁자가 거의 없는 밤이라는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보르네오오랑우탄(Pongo pygmaeus arnoldii)

크기 수컷: 1.2~1.7m

암컷: 1~1.2m

서식지 보르네오섬 저지대의 열대우림과 섬 산악 지역의 산지우림

특징 나무들의 가지와 잎이 모여서 이뤄진 우림의 윗부분인 수관층 일대에 살며, 최대 1.5m에 이르는 팔로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어미 오랑우탄이 어린 새끼가 숲에서 사는 법을 익히도록 양육하는 기간이 7~8년으로 포유류 중에서 가장 길다.

 

 

강과 나무를 오가는 코주부원숭이


며칠 뒤, 우리는 바코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해안 절벽, 맹그로브, 갯벌,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 있는 이 공원은 연결되는 도로가 전혀 없고, 입구는 보트를 타고 바다로만 접근할 수 있다. 작은 롱보트는 거친 파도를 넘으며 질주했다. 온몸이 순식간에 바닷물에 젖었다. 선착장이 없어서 직접 해변으로 상륙했다. 탐험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코주부원숭이를 보기 위해 서둘러서 조간대 맹그로브 숲으로 갔다. 바코 국립공원의 여러 서식지를 한참 둘러봤지만 이 원숭이는 보이지 않았다. 포기한 채 돌아오는 보트에서 가이드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해안의 나무를 가리켰다. 그곳에 코주부원숭이 가족이 앉아 있었다.


성체 수컷의 거대한 코부터 눈에 들어왔다. 실제 모습은 사진을 압도했다. 얼굴 절반을 차지한 코, 불룩한 배, 회색과 붉은 갈색의 몸은 어떤 영장류와도 달랐다. 이 코는 웃기는 장식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수컷의 코가 클수록 몸집이 크고, 소리의 울림은 크고 낮으며, 거느리는 암컷이 많다. 코는 성선택이 만들어낸 시각, 청각의 복합 신호다. 


그러나 수컷의 코보다 더 놀라운 것은 코주부원숭이의 생활 공간이다. 대부분의 원숭이가 깊은 숲속에서 사는 반면, 코주부원숭이는 수변의 맹그로브 숲을 떠나지 않는다. 맹그로브는 열대·아열대의 해안이나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들로, 이 숲은 태풍, 침식 작용으로부터 해안을 보호해 주고 생물다양성이 높아서 보존 가치가 큰 생태계다. 코주부원숭이는 영장류 중 가장 수영을 잘해서, 악어나 구름표범 같은 포식자를 피하거나 강변의 어린 잎을 먹기 위해 자유롭게 물을 건널 수 있다. 숲 안쪽에서 다른 원숭이들과 경쟁하는 대신, 강과 만나는 숲의 경계라는 새로운 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장이권의 탐험 노트: 생태적 지위
생태적 지위(niche)는 흔히 ‘생물이 차지하는 자리’라고 번역하지만, 단순히 사는 장소를 뜻하지는 않는다. 어디에서 살고, 언제 활동하며, 무엇을 먹고, 누구와 경쟁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아우른 ‘삶의 방식’이 생태적 지위다. 여러 비슷한 종이 같은 공간에 살아도 각각 다른 생태적 지위를 가지면 경쟁을 줄이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숲의 지붕, 오랑우탄의 집


오랑우탄은 쿠칭에서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세멩고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만났다. 이곳은 밀렵과 불법 거래에서 구조된 오랑우탄들이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적응하는 재활 숲이다. 이들은 보호구역과 주변 숲을 자유롭게 오가며 스스로 먹이를 찾고 둥지를 짓는다. 관리인들은 하루 두 번만 먹이를 조금 보충해 줄 뿐이다. 따라서 세멩고에서 반드시 오랑우탄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리인들이 먹이를 공급하는 플랫폼에 바나나와 코코넛을 놓고 오랑우탄을 불렀지만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멀리 나무 끝의 수관(가지와 잎이 모여 이뤄진 나무의 윗부분)이 천천히 흔들렸다. 숲이 먼저 오랑우탄을 알려준 셈이다.


암컷은 긴 팔로 가지 여러 개를 동시에 잡으며 천천히 이동했다. 느려 보여도 큰 몸을 안전하게 옮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루가 끝나면 나무 위에 둥지를 새로 지어서 잠을 잔다. 땅은 거의 딛지 않는다. 이 오랑우탄은 숲의 가장 높은 영역을 자신의 세계로 만든 유인원이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오랑우탄의 의미도 ‘숲의 사람’이다.


우리가 만난 숲의 사람은 다정한 어미와 두 새끼였다. 먹이 플랫폼에 먼저 온 큰 새끼는 바나나 몇 개를 재빨리 집어 나무 위로 돌아갔다. 엄마는 코코넛 하나를 집어서 밧줄을 타고 멀지 않은 가지에 올랐다. 잠시 자세를 잡고 코코넛을 나무줄기에 힘껏 내리쳤다. ‘쩍!’ 단 한 번이었다. 두꺼운 껍질이 갈라지며 하얀 과육이 드러났다. 얼마나 세게 내려치고 어느 방향으로 충격을 줘야 하는지 이미 잘 아는 듯했다. 어미가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들고서 큰 새끼에게 코코넛을 나눠주거나, 어린 새끼를 품에 안고 먹이는 모습은 인간과 너무 비슷했다. 오랑우탄의 양육 기간은 7~8년으로 포유류 중 가장 길다. 이 시기에 어미는 새끼에게 먹이 찾는 법과 둥지 짓는 법, 숲에서 사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숲에는 또 다른 오랑우탄의 얼굴도 있다. 장기간의 양육은 번식할 수 있는 암컷의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수컷들의 경쟁은 매우 치열해졌다. 알파 수컷의 거대한 몸집, 얼굴 양옆으로 발달해 더 크고 위압적으로 보이게 하는 볼살(flange) , 낯은 저주파 소리로 1분 이상 숲 전체에 울려 퍼지는 롱콜은 이런 심한 경쟁 아래서 성선택이 작용한 결과다. 이 경쟁은 때로 치명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가장 헌신적인 모성과 가장 치열한 번식 경쟁이 한 종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말레이안경원숭이(Cephalopachus bancanus)

길이 121~154mm

서식지 보르네오섬 일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특징 야행성의 육식성 동물이며 초음파로 소통한다.

보르네오섬의 산림 개간과 남벌 등으로 서식지가 급감하면서, 국제생물적색목록에 취약(VU)종으로 등재됐다.

 

 

숲을 넓게 쓰는 선택과 분화의 전략


안경원숭이는 밤을 선택했다.
코주부원숭이는 강을 선택했다.
오랑우탄은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의 수관을 선택했다.


세 영장류가 사는 숲은 같지만, 활동 시간, 이용 공간, 먹이는 모두 다르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생태적 지위(niche)의 분화라고 한다. 여러 종이 시간, 공간, 먹이를 각자 다르게 이용해서 경쟁을 줄이고 함께 살아가는 전략이다. 지난 회에서는 영양이 부족한 숲이 생물들 사이의 특별한 연결, 즉 공진화를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그 숲이 또 다른 생태적 해답을 보여줬다. 생물은 연결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을 택해서도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르네오의 숲은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생명들이 이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까닭에 특별하다. 단지 생물이 가장 많은 숲이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안경원숭이의 밤, 코주부원숭이의 강, 오랑우탄의 하늘은 거대한 열대우림이 품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질서다. 

 

 

저자 소개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진화적인 관점에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소리를 이용해 의사소통하는 곤충, 개구리, 새 등의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일반 시민들과 연구자가 협업하는 시민과학에도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동참해 오고 있다. 저서로 ‘지금 자연은’ ‘하마는 왜 꼬리를 휘저으며 똥을 눌까’ 등이 있다. jangy@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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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과학동아 정보

  •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 사진

    이원재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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