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노벨상처럼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이 없을까? 있다.
매년 독창적인 연구를 하고 장래 발전 가능성이 큰 한국 과학자를 발굴하는 상, ‘한성과학상’이다. 2026년 6월 30일, 제9회 한성과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분야 수상자들을 만나 그들이 규명한 연구 내용과 앞으로의 연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들어봤다.
한성과학상
독창적인 연구를 하고 장래 발전 가능성이 큰 젊은 과학자들을 매년 발굴해 포상한다.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의 세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며, 수상자는 상패와 함께 상금 1억 원을 받게 된다.

무늬에서 새로운 물성을 찾다
-물리학-
노트에 있는 줄처럼 선을 규칙적인 간격으로 그린다고 상상해 보자. 똑같은 선들을 투명 필름 위에 그린 뒤, 노트 위에 얹고 살짝 기울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 선들이 엇갈리며 규칙적인 무늬가 생길 것이다. 이를 ‘무아레 무늬’라고 한다. 바로 유효빈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다. 무아레 무늬가 재료공학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알아보려면 선에 원자를 대입해 보면 된다. 물질을 이루는 원자도 어긋나게 겹쳐지면 무아레 무늬를 띨 수 있다.
유 교수는 물질의 특성을 ‘원자’ 수준에서 밝히는 연구를 한다. “원자가 어떻게 배열되냐에 따라 물질의 특성이 달라집니다.” 유 교수는 기존 물질을 비틀어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로 했다. 그가 선택한 물질은 그래핀이다.
연필로 글을 쓸 때 묻어나오는 흑연을 한 겹 떼면 나오는 층이 그래핀이다. 탄소 원자가 평면 위에 육각형 구조로 결합돼 있다. 그래핀 두 겹을 겹치고 한 층만 비틀면 무아레 무늬가 생긴다. 유 교수팀은 무아레 무늬를 이루는 원자들 중 위아래로 겹친 원자들이 안정해지기 위해 재배열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기존에도 이러한 현상을 예측한 연구는 있었지만, 투과전자현미경을 통해 무아레 구조의 재배열 현상을 목격한 건 유 교수팀이 처음이었다.
2025년, 유 교수팀은 두 겹의 그래핀 위에 그래핀을 한 층 더 놓고 비틀어 봤다. 그 결과 또 다른 무늬가 생겼다. 유 교수는 이를 ‘이중 무아레 무늬’라고 불렀다. 이중 무아레에서도 원자들이 재배열되면서 그래핀을 비튼 각도에 따라 육각별이나 이중삼각형 등의 무늬가 만들어졌다. 유 교수팀이 새롭게 발견한 배열은 물질의 초전도성 등 양자 현상을 제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전에도 비틀린 그래핀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삼중층의 재배열로 초전도성이나 자성처럼 서로 다른 특성을 띠는 영역이 새로운 무늬를 이루며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나의 물질 안에 서로 다른 양자 상태를 원하는 형태로 배열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doi: 10.1038/s41586-025-08932-0
유 교수의 관심은 이러한 원자 배열의 ‘변화’를 밝히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중 무아레 구조에 전기 자극을 준 뒤 투과전자현미경으로 변화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 접근법은 텅스텐 다이셀레나이드(WSe2) 등 메모리 소자에도 활용할 수 있다. “메모리에 정보가 기록될 때 나타나는 원자 배열 변화를 파악하면 정보 저장을 방해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메모리의 성능과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과당의 위험 예측할 단서 찾다
-생명과학-
과당은 현대인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섭취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당류다. 과일이나 꿀에 들어있지만, 설탕이나 액상과당의 형태로 음료수나 사탕 등 단맛이 강한 가공식품 등에도 포함된다. 과도한 과당 섭취는 몸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까.
장철순 미국 UC 어바인 의대 생화학과 교수는 과당을 포함해 사람이 먹은 음식이 대사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음식이 몸에 들어온 뒤 기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해 연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설탕을 많이 먹었을 때나 술을 마셨을 때간과 소장, 그리고 대장 등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그가 과당 연구에 특히 주목하게 된 계기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진행하면서 받은 지도교수의 추천이었다. 당시 과당이 간에 안 좋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과당은 과도하게 섭취되면 간이 대부분 흡수해 지방으로 합성한다는 문제가 있죠.”
2018년 장 교수는 소장에서 과당을 모두 분해하지 못할 경우, 과당이 간으로 넘어가면서 지방으로 쌓이고 지방간이 생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냈다. 빠르게, 또는 과도하게 많이 섭취한 과당이 간에 무리가 되는 이유는 소장이 분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방간의 원인을 단순히 과도한 과당 섭취로만 보긴 어려웠다. 같은 양의 과당을 먹고도 지방간에 더 잘 걸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2025년, 장 교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유전적으로 품종이 다른 쥐 300종에 과당을 먹이고 혈액을 채취해 소장의 분해 능력과 지방간에 잘 걸리는지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지방간이 덜 생기는 쥐는 소장이 과당을 더 잘 분해해서 간의 부담을 줄였다. 그리고 소장이 과당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글리세르산이 혈액에서 더 많이 나왔다. 장 교수는 이 실험을 토대로 ‘글리세르산’을 지방간이 덜 생기는 체질을 파악하는 척도로 삼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doi: 10.1016/j.cmet.2025.03.017 과당을 먹고 글리세르산이 더 많이 나오면 소장이 과당을 더 잘 분해하고 지방간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뜻이다. 장 교수는 “병원에서 활용된다면 지방간을 더 잘 진단하고, 식이를 미리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으로 더 집중하고 싶은 연구는 장내미생물과 암입니다. 장내미생물 분야에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대사 물질이 많아 연구가 필요해요. 또 갈수록 가공식품에 노출된 젊은 암 환자가 늘고 있는 만큼, 암 조기 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를 꼭 찾아내고 싶습니다.”

물이 지닌 두 얼굴을 촬영하다
-화학-
“두 달 만에 다시 연락 받네요, 기자님!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6년 한성과학상 화학상을 받은 김경환 POSTECH 화학과 교수가 화면 너머로 답했다. 김 교수팀의 연구는 2달 전인 6월호 과학동아에 ‘얼음은 왜 뜰까? 물, 4℃에서 가장 무거운 이유 밝혀지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바 있다. 액체 물에는 두 가지 상태가 있다. 물 분자 사이 거리가 가까운 고밀도 상태와 물 분자 사이 거리가 먼 저밀도 상태. 기사는 1992년에 제기된 이 ‘액체-액체 임계점(LLCP)’ 가설을 김 교수가 이끈 연구팀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사용한 실험을 통해 34년 만에 밝혀냈다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입자나 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는 ‘가속기’로 분자 구조 변화를 측정하는 연구를 한다. 특히 2016년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포항에 준공된 뒤로는 해당 기기를 주로 활용한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빛의 속도로 가속된 전자가 자기장을 통과할 때 방출하는 X선으로 시료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촬영하는 기기다.
다양한 실험으로 가속기 성능을 검증하던 김 교수는 단순히 정밀한 측정을 하는 연구를 넘어 물리화학 분야의 난제를 푸는 데 가속기를 활용하고 싶어졌다. 그때 김 교수가 주목한 분자가 ‘물’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물은 이미 많이 연구된 대상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물이 지닌 특이한 성질이 많은 데 비해 규명되지 않은 원인이 많았어요.” 대표적인 예가 LLCP 가설이었다. 이 이론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실험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 김 교수는 여기에 개입해 4세대 방사광 가속기로 증거를 찾아봤다.
첫 과제는 극한 과냉각 상태의 물을 포착하는 일이었다. 물은 0℃부터 얼고 더 낮은 온도에서는 더 빠르게 얼기 때문에 그동안 포착하기 어려웠다. 김 교수팀은 낮은 온도에서 레이저로 얼음을 녹인 뒤 물이 다시 얼기 직전에 빠르게 가속기로 촬영을 시도했다. 그 결과 2020년 영하 70℃에서 물이 고밀도와 저밀도, 두 상태로 존재함을 확인했고, 지난 3월에는 물이 두 상태로 존재하다가 상 구분이 사라지는 임계점까지 포착했다. doi: 10.1126/science.aec0018
앞으로 김 교수의 목표는 물의 특이한 성질과 물이 생명체와 자연계에서 맡은 중요한 역할, 둘 사이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다. “물이 하필 다른 물질보다 특이한 성질이 많이 보이는데, 동시에 자연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우연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남들보다 ‘빨리’ 하는 연구가 아닌, 남들이 ‘할 수 없는’ 연구를 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