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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돈이 되는 원소, 희토류] 의학과 과학의 예술적 케미 몸속의 질병 추적자, 가돌리늄Gd

    편집자 주
    지금 희토류는 과학과 경제, 지정학을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하지만 많은 오해도 받고 있죠. 희토류는 정말 희귀할까요?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장홍제 교수가 희토류의 흥미진진한 화학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재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를 갖는 건 내가 살아 있는 까닭입니다. 포근한 봄, 하얀 눈송이, 아름다운 단풍과 영화, 음악, 책 같은 소소한 행복은 물론이고 환경 보호, 세계 평화처럼 거창한 주제까지도, 내가 살아 있지 않다면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인간의 긴 역사에서 병마를 극복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약학 및 그 관련 분야가 항상 중요했던 이유입니다.
     

     


    이제 현대 의학은 증상의 제거, 완화를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도전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체 영역에서 미세하고 조밀한 치료가 이뤄지고 있지요. 피부라는 질기고 두터운 장벽을 넘어서 몸속의 작은 변화를 포착하고, 주변 조직의 손상 없이 암세포만 지우는 수술이 가장 결정적인 사례입니다. 이번에도 희토류가 지각 깊은 곳에서 나와, 너무도 어려운 이 일을 가능케 했습니다. 바로 가돌리늄(Gd)입니다.


    편집자 주

    몸을 열지 않고 속을 들여다보는 MRI

     

    몸의 이상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진찰이 정밀해야 합니다. 전문 지식 없이는, 갑자기 배가 아플 때 단순 복통과 심각한 급성 질환을 구분할 수 없지요. 몸속 더 깊은 뼈나 혈액, 주요 장기의 문제를 찾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날카로운 메스로 배를 열면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런 과정 자체가 매우 아프고 위험하지요.


    이제 우리는 중증 질환을 진단받을 때, 안전하고 무섭지 않은 기기를 먼저 만납니다. 병원이나 여러 영상에서 사람이 누운 채로 큰 원통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 거대한 기기가 자기공명영상(MRI)입니다. MRI의 핵심 원리만 간단히 살펴보면 몸에 강한 자기장을 걸어서, 몸속의 수소(H) 원자들이 일으키는 반응을 영상화하는 것입니다. 수소는 인체의 70%를 구성하는 물(H2O)의 핵심이고 몸을 구성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모두에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네오디뮴 자석처럼, 수소 원자핵도 스핀(spin)이란 방향성이 있습니다. 평소에 수소 원자핵들의 스핀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수소는 자기장의 영향을 받으므로 MRI 기기의 강한 자기장에 들어가면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몸속 수소 원자핵들의 방향이 나침반 바늘처럼 일제히 정렬합니다. 이어서 수소 원자핵은, 팽이가 멈추기 직전에 마치 넘어질 듯 기울어진 채로 도는 것과 같은 세차운동을 하지요. 


    이렇게 MRI의 자기장에 반응한 수소 원자핵들의 스핀 변화 속도는, 각 원자핵들 주변의 몸속 조직의 환경에 따라서 서로 다릅니다. MRI는 이렇게 신체 부위마다 다른 스핀들의 변화 속도를 포착해서, 몸속의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합니다.


    아쉬운 점은 수소가 몸속 전체에 있어서, 장기와 혈관의 경계 같은 부분은 정확한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투입하는 특수 약물이 바로 조영제입니다. ‘그림자를 만드는 약’이라는 그 이름처럼, 조영제는 몸속의 명암 차이를 선명하게 해서 MRI 영상을 알아보기 쉽게 도와줍니다. 이 조영제의 핵심 성분이 희토류 원소 중 하나인 가돌리늄(Gd)입니다. 희토류 역사의 시작점이 된 광석, 가돌리나이트에서 발견한 희토류이지요.

     

    ▲GIB, Shutterstock, Henry Schein
    자기공명영상(MRI(❶))는 몸속 수소 원자핵들에 자기장을 걸어서 각 부위에 따른 그 수소 원자핵의 반응 차이를 포착해, 3차원 인체 영상을 구현한다. 가돌리늄 화합물이 주성분인 조영제(❸)는 질병이 의심되는 부위의 수소 원자핵 신호를 증폭시켜서 세밀하고 정확한 MRI 영상을 구현하는 특수 약물이다. 가돌리늄은 독성이 강해서 가돌리늄 킬레이트 분자 구조(❷)로 가공해야 한다. 킬레이트 분자에 감싸인 중앙의 노란색 원자가 가돌리늄이다.


    가돌리늄과 MRI의 완벽한 질병 진단

     

    MRI가 만드는 강한 자기장에 반응한 몸속에서 선명한 영상을 얻으려면, 외부 자기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홀전자(Unpaired electron)의 보유량이 관건입니다. 홀전자는 지난 원고에서 설명했듯이 원자의 오비탈에서 쌍을 이루지 않고 혼자 있는 전자입니다. 두 개의 전자가 한 쌍을 이뤄 서로의 스핀을 상쇄하면 자성이 사라지지요. 따라서 짝이 없는 홀전자가 많을수록 원자의 자기적 모멘트는 강해집니다.


    희토류 원소들의 f-오비탈은 총 7개의 에너지 방을 가집니다. 양자역학의 규칙에 따라 각각의 방에 하나씩 들어간 홀전자 7개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할 때, 이론상으로 원자가 자기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지요. 즉 MRI가 이 원자로 가장 선명한 영상을 포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 원자번호 64번인 가돌리늄이 그 주인공입니다.


    조영제로 인체에 주입된 가돌리늄은 혈관을 타고 흐르다 종양, 염증처럼 혈류가 모이는 곳에 집중돼, 홀전자 7개의 압도적인 자성으로 이 부위에 있는 수소 원자핵들의 신호를 증폭시킵니다. 이때 가돌리늄의 강한 자성은, 혈류가 집중된 부위 주변의 수소 원자들이 에너지를 방출하고 다시 제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 즉 이완 시간을 줄입니다. 


    MRI는 일정한 간격으로 수소 원자의 신호를 측정합니다. 가돌리늄이 집중된 부위의 이완 시간이 짧아진 수소 원자핵들은, 다음 측정 시점에 신호를 보낼 준비를 빨리 마쳐서 강한 신호를 보냅니다. 반면 다른 부위는 원자들이 이완 중이어서 신호가 약하죠. 따라서 가돌리늄 조영제가 도달한 부위는 MRI 영상에서 불을 밝히듯 환해, 다른 부위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질병이 의심되는 세밀한 부위의 수소 원자들을 가돌리늄이 포착함으로써, MRI가 미세한 병변까지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가돌리늄 자체가 건강에 유익한 원소라고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가돌리늄은 독성이 강한 편입니다. 가돌리늄 이온의 크기가 인체에 필수적인 칼슘(Ca) 이온과 비슷하기 때문에, 체내에 그대로 유입되면 칼슘이 작용해야 할 중요 부위에 가돌리늄이 끼어들어 신경계를 마비시키거나 대사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 문제도 화학적 처리로 해결합니다. 날카로운 칼을 신문지로 감싸듯, 조영제로 체내에 투입하는 가돌리늄도 킬레이트라는 유기 분자로 꼼꼼히 둘러싸는 처리를 합니다. 칼슘이 들어갈 부위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가돌리늄의 효용은 강력한 자기적 성질입니다. 자기력은 벽 너머까지 작용하므로, 가돌리늄의 독성을 차단하기 위해 킬레이트 우리에 넣는 식으로 처리해도 다른 효용은 모두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체내에서 사용이 끝난 가돌리늄은 안전하게 체외 배출되도록 처리합니다. MRI의 가돌리늄은 질병 진단을 혁신한 희토류이자,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로 화학과 의학이 함께 설계한 예술적인 작품입니다.

     

    ▲filousoph.sent.com(W)
    의료용 중적외선 에너지를 생성하는 원료로 쓰이는 홀뮴은, 가열하거나 습기와 접촉하면 쉽게 산화된다. 이 산화홀뮴은 자연광에선 노란색으로 보이지만, 자외선이나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는 다홍색으로 보이는 성질(이색성)이 있다.

     

    오직 빛으로 만든 메스, 홀뮴과 터븀

     

    검사실의 진단을 거쳐 수술실로 자리를 옮기면, 또 다른 희토류가 빛의 형태로 기다립니다. 기존의 수술은 날카로운 메스로 환자의 인체를 절개한 반면, 첨단 의학은 최소한의 상처만 남기고 회복을 돕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이 중심에 희토류 원소인 홀뮴(Ho) 레이저가 있습니다.


    홀뮴 레이저, 정확히는 Ho:YAG 레이저는 홀뮴과 또 다른 희토류인 이트륨이 섞인 결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중적외선 파장을 생성합니다. 약 2100nm(나노미터·10억분의 1m) 파장인 이 빛이 의학적으로 특별한 이유는, 생체 조직의 주성분인 물에 매우 잘 흡수돼서입니다. 이 레이저가 인체에 닿는 순간, 그 에너지는 조직 표면의 물 분자로 순식간에 흡수됩니다. 그러므로 레이저가 아주 얇은 조직층만 기화시키고, 그 주변은 열 손상을 거의 받지 않지요. 덕분에 홀뮴 레이저는 체내에 돌처럼 뭉친 결석을 미세한 가루로 부수는 수술이나, 매우 좁은 환부도 주변의 신경 손상 없이 도려내는 정밀 수술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최근에 의료 영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또 다른 희토류는 소위 만능 칼인 ‘스위스 아미나이프’에 비유되는 터븀(Tb)입니다. 암세포 위치를 파악하고 그 주위에 방사선을 방출해서 제거하는, 항암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진단과 치료의 합성어) 연구의 핵심이 터븀입니다. 암세포에만 결합하는 유도 미사일에 터븀을 실어 보내서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는 개념입니다. 이 표적 치료 기법은 희토류와 함께 도약 중입니다.

     

    산화와 노화에서 자유로운 세륨

     

    희토류는 진단과 수술처럼 생사가 갈리는 긴박한 상황은 물론, 우리 체내의 세포 수준에서 지속되는 생존 투쟁의 과정에도 직접 개입해서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희토류 중 흔하고 싼 편인 세륨(Ce)이, 이 나노의학의 최전선에 선 신약 원료입니다. 세륨은 3+과 4+의 두 가지 산화 상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화학 반응의 핵심이 전자 이동, 그에 따른 산화이므로 산화 가능성이 자유로운 세륨은 인체 내의 효소와 흡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세륨의 이 능력은 치명적인 활성 산소를 무해한 물과 산소로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패혈증도 혈관으로 유입된 세균 등이 증식하면서 과잉 발생한 활성 산소가 장기를 파괴하고 쇼크를 일으켜 사망하는 질병입니다. 동물에게 물리거나 오염된 도구에 손이 베이는 등의 사고로 사망에 이르는 원인은 대부분 이 패혈증이지요. 자외선, 담배 연기 등 유해 물질이 체내에 유입되면 활성 산소를 만들어서 암, 피부 노화 등의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몸속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하는 활성 산소의 위험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약물은 한 번 복용하고 체내에서 반응, 소모되는 것과 달리, 세륨으로 만든 나노 의약품은 스스로 산화 상태를 변환하며 활성 산소를 반복 제거하는 반영구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희토류의 이런 나노 효소 기능은 뇌졸중, 알츠하이머처럼 인체의 산화 스트레스가 큰 원인인 난치성 신경 질환 치료의 돌파구로서도 기대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없이 암세포를 진단, 치료할 방법을 찾고, 깊은 몸속에서 환부만 정밀히 수술하는 의사와 과학자의 손에서, 17개의 희토류 원소가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이테르비섬의 조용한 숲속에서 처음 발견된 검은 돌은, 이제 인류의 가장 큰 고통까지 어루만지는 치유의 원천이 됐습니다. 

     

     

    필자 소개
     장홍제 
    광운대 화학과 교수. KAIST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드코어 화학 유튜브 채널인 ‘화학하악’을 운영하고 있으며 ‘화학 연대기’ ‘나노화학’ ‘들뜨는 밤엔 화학을 마신다’ 등의 책을 썼다. hjang@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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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장홍제 광운대 화학과 교수
    • 만화

      송진욱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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