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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미래×과학] 그들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한국인 첫 F1 엔지니어 인터뷰

    글 김태희 기자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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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2025년, F1 출범 75주년을 맞아 F1을 둘러싼 과학기술의 이모저모를 살펴봅니다.

     

     

    김남호

    김남호 전 BWT ALPINE F1 팀 퍼포먼스 엔지니어가 2013년, 영국 엔스톤에서 열린 로터스 F1 빌드숍에서 레이스카 완성 후 찍은 사진.

     

    시속 350km 질주, 130dB이 넘는 배기음, 전투기를 빼닮은 차체. 세계 3대 스포츠 대회 중 하나로 꼽히는 포뮬러1(F1)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궁극의 속도와 기술 그리고 열정이 결합된 모터스포츠의 정점이라 불린다. 뜨거운 트랙 뒤편에서 더 빠르고 성능 좋은 레이스 카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3월 25일 동아사이언스 사옥에서 김남호 전 F1 BWT ALPINE F1 팀 시니어 퍼포먼스 엔지니어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F1 탄생 59년 만의 첫 한국인 엔지니어

     

    무려 16년 전부터 지금까지, 김남호 전 F1 BWT ALPINE(알핀) F1 팀 시니어 퍼포먼스 엔지니어에게 붙는 별칭이 있다. ‘최초의 한국인 포뮬러 1(F1) 엔지니어’다. 그는 2009년 12월, 당시 르노 F1 팀(현 알핀 F1 팀)에 입사했다. 1950년 5월, 영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F1 그랑프리 대회 이후 59년 만에 한국인 엔지니어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엔지니어가 처음부터 F1 엔지니어를 목표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IT 회사에 입사했어요.” 그가 들려주는 ‘첫 단추’는 F1과는 거리가 먼 시작이었다. 2000년대 초, IT 회사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입사 3년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자동차 동역학 전공 석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영국 유학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면서도 F1은 염두에 뒀던 ‘옵션’ 중 하나였습니다. F1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어요.” 


    2000년대 초 한국에선 F1을 아는 이가 드물었지만 F1 종주국, 영국은 달랐다. 공영방송 BBC가 매주 F1 그랑프리를 중계했다. “영국에서는 F1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어요. 같은 연구실 동료가 F1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고, 그랑프리 대회 날 ‘펍(술집)’을 가면 모두 TV를 보며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이후 김 전 엔지니어가 몸담고 있던 연구실이 F1 팀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도 생겼다. 


    김 전 엔지니어는 박사 논문을 쓰면서 10개의 F1 팀 문을 전부 두드렸다. 어느 팀에서는 ‘서류’ 단계에서 탈락했고 어느 팀에서는 면접까지 봤지만 이후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르노 F1 팀 ‘컨트롤 엔지니어’ 자리에 공고가 났다. “연구 분야와는 맞지 않은 자리였는데 일단 지원해 봤어요. 그런데 제 지원서를 살펴본 팀에서 공고가 나지도 않은 ‘퍼포먼스 엔지니어’로 저를 채용하고 싶다고 했죠.” 퍼포먼스 엔지니어는 그가 희망하던 자리였다. 레이스카가 좋은 성능을 내기 위해 최적화된 ‘셋업 값’을 찾는 역할이다. 


    채용엔 운이 따랐다. 그는 “당시 르노 F1 팀엔 예정된 ‘부서 이동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머니그램 하스 F1 팀을 이끌고 있는 최초의 아시아인 F1 감독, 고마츠 아야오였다. “당시 퍼포먼스 엔지니어였던 고마츠가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로 자리를 옮기고자 했어요. 팀 내부적으로 빈자리에 충원을 계획하고 있던 거였죠.” 2009년 12월, 그렇게 김 전 엔지니어의 르노 F1 팀 입사가 결정됐다. 이후 박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 지은 뒤인 2010년 2월, 그는 F1에 첫 발을 내딛었다.

     

    김태희

    스쿠데리아 페라리 2024년 레이스카 ‘SF-24’를 1:8 크기로 정밀하게 제작한 ‘레고 테크닉 페라리 SF-24 F1 자동차’를 김남호 전 BWT ALPINE F1 팀 퍼포먼스 엔지니어와 살펴봤다.  ‘리어 윙’(원 안)은 레이스카 업데이트의 주요 대상이다.

     

    전 세계 단 2000명의 자동차공학 전문가, F1 엔지니어

     

    ‘F1 엔지니어’란 단어에 사람들은 흔히 F1에서 레이스카의 타이어를 교체하거나 조립하는 전문 인력을 떠올리곤 한다. 이들은 ‘메카닉’이라고 불리는 정비 숙련공이다. F1 엔지니어는 다르다. F1 핵심 엔지니어 자리엔 최소 석박사급 자동차공학 전문가들이 지원한다. 
    F1 엔지니어란 직업은 ‘물리학자’란 표현만큼 광범위하다. 알핀 F1 팀에만 약 200명의 엔지니어가 있다. “레이스카 제작은 크게 엔진과 새시로 나눌 수 있어요.” 엔진은 연료를 연소시켜 에너지를 생성하고 이를 기계적 동력으로 변환하는 장치다. 알핀 F1 팀은 엔진을 자체 제작하는 팀 중 하나다. 김 전 엔지니어는 “엔진은 특화된 전문 분야라 별개 조직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새시는 차량의 프레임과 구조다. F1 팀은 반드시 새시를 직접 만들어야 하며, 공기역학과 경량화를 중점에 두고 설계한다. 이중 공기역학은 F1에서 성적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 분야다. 이 외에도 재료를 연구하는 팀, 부품을 만드는 팀, 차체를 제작하는 팀,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는 팀 등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모인 팀들이 가득하다. 


    김 전 엔지니어는 퍼포먼스 시스템즈 그룹 ‘비히클(vehicle) 퍼포먼스 팀’을 이끌며 최적화된 ‘셋업 값’을 찾았다. 이때 사용되는 것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다. F1에서는 각종 시뮬레이션의 비중이 크다. “규정상 F1에서 드라이버가 레이스카를 트랙에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고작 3~4번 남짓이에요. 차를 만들어 놓고, 그 차를 직접 몰아보면서 차의 성능이 어떤지 알아보는 게 거의 불가능하죠.”
    공기역학, 새시, 서스펜션, 브레이크, 타이어 등 레이스카로부터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뿐만 아니라, 대기 상황 등 대회가 열리는 장소의 환경까지 그가 속한 비히클 퍼포먼스팀으로 전달된다. 그럼 이를 프로그래밍해 드라이버가 어떤 길을, 어느 속도로 달렸을 때 어느 정도로 안정성이 보장되는지, 랩타입은 어느 정도 나올지를 계산할 수 있다. “모든 F1 팀은 시뮬레이션 도구를 직접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최근 인공지능(AI)에 수십 년간 쌓아온 데이터를 학습시켜 유의미한 정보를 얻고자 하지만 아직까진 수학 모델이 중심입니다.” 시뮬레이션으로 얻은 셋업 값은 1년 동안 F1 그랑프리 대회별로 수집된 트랙 사이드(서킷 현장) 데이터와 비교하며 모델의 정합성을 검증한다. 예측값과 실제값이 어느 정도로 일치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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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미국 마이애미 그랑프리, 스쿠데리아 페라리 F1 팀의 피트스탑(중간 정비 정차). 타이어를 교체하는 이들은 메카닉이라 불리는 정비숙련공으로 엔지니어와는 역할이 다르다.


    성수기와 비수기, 엔지니어의 시간은 거꾸로 돈다 

     

    F1도 여느 스포츠처럼 1년을 주기로 돌아간다. 3월 중순에 시즌이 시작되고 12월 초 종료된다(2025년 기준). F1 팬들과 드라이버들에게는 그랑프리 대회가 열리는 이 기간이 ‘핵심’이다. 모두의 이목이 각 경기에서 펼쳐지는 불꽃 튀는 레이스와, 경기가 끝날 때마다 누적해 쌓이는 드라이버 및 컨스트럭터 포인트(점수)에 집중된다. 하지만 F1 엔지니어의 1년은 다르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어찌보면 정 반대다.  현재에 집중하기보다 미래를 대비하고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F1에서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달인 2월을 ‘프리시즌(pre-season)’이라고 부른다. 프리 시즌엔 모든 팀은 그해에 사용될 F1 레이스카를 선보인다. 그리고 개막 2~3주 전에 개최되는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새로 개발한 F1 차량의 성능을 확인하고 문제점을 사전에 발견해 시즌 개최 전까지 해결해야 한다. 김 전 엔지니어는 “프리시즌부터 약 반년 동안은 새로 개발한 레이스카를 ‘업데이트’하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업데이트란 F1 차량에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부분을 그랑프리 대회가 개최되는 서킷의 특성에 맞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최적의 ‘튜닝’도 시즌 전반기 엔지니어의 주요 업무다. 튜닝은 기존 차량의 세팅을 조정하는 일이다. 업데이트처럼 차량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지만 차량에 새로운 부품을 장착하는 업데이트와는 다르다. 튜닝은 ‘현재 조건’에 맞게 차량을 최적화하는 일이다. 튜닝은 주말 혹은 세션마다 이뤄지며, 드라이버의 특성에도 맞추는데 이를 위해 시뮬레이션과 데이터가 활용된다.


    7~8월에는 ‘브레인스토밍 모드’로 전환된다. 업데이트나 최적의 셋업 값을 찾는 업무는 계속되는 동시에 차량 개발에 적용할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지 모으는 시기다. 누구든 상관없이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은 종이에 아이디어를 적어서 제출한다. 이렇게 나온 아이디어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고, 해볼 만하다고 판단되면 개발에 착수한다. 이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존중하기에 가능하다. 김 전 엔지니어는 “F1은 정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곳”이라며 “만약 상명하복 문화였다면 1년 안에 레이스카를 만드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0~11월은 엔지니어에게 가장 바쁜 시기다. 다음 시즌 차량을 만드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팀 내에서는 개발 방향에 관한 치열한 토론도 오간다. 시즌 종료를 앞둔 11월이 되면 당해 차량 업데이트는 모두 중단된다. 모든 가용 인적 자원이 ‘내년’을 정조준하는 시기인 것이다.


    12월에는 차량 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된다. 때문에 각종 수학적 모델링도 대부분 끝난다. 이때부터는 내년에 사용할 차량 성능 분석을 전방위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또 각 서킷에 맞춰서 계획한 각종 업데이트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서 살펴본다. 이 시기 모든 F1 팀은 시뮬레이션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의 싸움에 돌입한다. 더 많이 시뮬레이션 할 수록 이듬해 준비가 더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김 전 엔지니어는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오프 시즌(off-season)’ 동안 엔지니어는 물론 테크니션 등 차량을 설계 및 제작하는 인력은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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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뮬러1(F1) 그랑프리 서킷


    F1 그랑프리는 전세계 24개(2025년 기준) 서킷에서 개최된다. 김남호 전 BWT ALPINE F1 팀 퍼포먼스 엔지니어는 “트랙의 형태, 높낮이, 코너의 특징에 따라 (레이스카의) 업데이트와 튜닝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삼각형 형태의 이탈리아 몬자 서킷. 서킷 대부분이 직선 주로다.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이는 업데이트가 이뤄진다.

     

    F1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심형 트랙인 모나코 서킷. 
    코너가 많고 코너 각도가 커 접지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가장 평균적인 트랙’으로 불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서킷. 
    직선 주로와 코너가 조화롭게 구성돼 있다.  

     

    불꽃 튀는 경기가 아닌, 소속 팀 차량만 바라보던 16년

     

    F1 중계를 보면 몇몇 엔지니어는 모든 그랑프리 대회에 따라다닌다. “그랑프리 현장에 가는 인력을 ‘트랙 사이드 팀’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약 50~60명 정도예요. 그중에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도 있죠.” 김 전 엔지니어도 드물게 그랑프리 현장으로 출동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1년에 두어 번 정도 현장에 갔다고 했다. “차량 관리 분석 도구에서 나오는 수치를 과외하듯 현장 엔지니어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 간혹 있습니다. 새로 만든 부품을 장착한 첫 대회 등이죠.” 


    하지만 엔지니어에게 ‘그랑프리 현장’은 중계에서 보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컨트롤룸이라고 불리는 컨테이너가 저희 자리예요. 중계 화면이랑 온갖 그래프만 그려지는 곳이죠. 그래도 팬들의 환호와 차량의 엔진 소리는 들을 수 있었어요.”


    엔지니어 눈에도 F1은 재밌을까? 기자의 질문에 김 전 엔지니어는 “경기가 시작되면 다른 팀들의 차량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매의 눈’으로 차량 상태와 성능만 살피게 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F1 팀에게 1년에 스무 개가 넘는 그랑프리 대회는 일종의 ‘시험’이다. 특히 작년보다 더 나아진 것으로 만족하는 절대평가가 아닌, 다른 팀의 개선 수준과 비교해야 하는 상대평가다. “엔지니어들은 중계를 보면서 ‘엔진이 문제다’ ‘새시가 문제다’ 이런 얘기만 계속합니다.”


    “엔지니어로서의 습성이 아직도 남았나봐요. 2025년 F1 그랑프리가 개막해, 하이라이트 경기를 봤는데 알핀 F1 차량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16년간의 F1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2025년 초 사직서를 낸 김 전 엔지니어는 F1을 재밌는 모터스포츠로 즐기기엔 아직은 자기 자신이 ‘내부자’에 가깝다며 웃었다. 그에게 F1을 떠난 이유를 묻자 그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F1에 한국인 최초로 첫발을 내딛고 떠난 현재 F1에는 4명의 한국인 엔지니어가 활약하고 있다. 16년 전과 비교한다면 400% 증가한 수치지만 여전히 적은 숫자다. 마지막으로 F1을 꿈꾸는 과학동아 독자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자동차공학에 특화된 영국 유학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유학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F1 외에도 정말 많은 모터스포츠가 있어요. WRC, WEC 등에서 경력을 쌓아 F1에 문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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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2월 21일, 시즌 개막 전 새 레이스카의 성능과 신뢰성을 점검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프리 시즌 테스트’. 르노 F1 소속 엔지니어들이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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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3대 스포츠 중 하나로 꼽히는 포뮬러1(F1)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궁극의 속도와 기술 그리고 열정이 결합된 모터스포츠의 정점이다

     

    용어 설명

     셋업 값 : 차의 성능을 최적화하기 위해 조정하는 각종 설정 값.

     트랙 사이드 엔지니어 : 그랑프리 현장에서 차량을 트랙의 특성에 맞게 조정하고, 대회 중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엔지니어.

     컨스트럭터 : 국제자동차연맹(FIA)에 등록된 F1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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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5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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