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제가 가장 어렵게 느꼈던 단어는 바로 ‘진로 선택’이었습니다. 저에겐 이 말이 마치 인생의 길은 정해져 있고, 그것을 올바르게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해진 길을 따라가지 않아도,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나만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삶이 단지 한 폭의 캔버스가 아니라, 다채로운 경험이 모인 모자이크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만족할 때까지 모두 시도해보곤 했습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음악 콩쿨에 나가 대상을 받을 때까지 참가하기도 했죠. 타자 게임의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컴퓨터만 붙잡고 있던 때도 기억나요. 조그만한 제가 TV 속 체조선수처럼 뜀틀을 해보겠다고 체육관을 펄쩍펄쩍 뛰어다니기도 했죠.
특히 우주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동아’에서 우주 관련 기사부터 쏙쏙 골라서 보곤 했습니다. 이렇게 기사를 읽다보니 우주 탐사도 해보고 싶어져서 방과후활동은 우주소년단에 가입했고요. 우주소년단 담당 선생님이 과학동아를 읽어보라고 주시면, 집에서 먼저 읽은 제가 재미난 페이지들부터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함께 읽었습니다. 집순이인 제가 멀리 캠프까지 다녀올 정도로 그 분야를 좋아했어요.
우주에서 시작한 과학에 관한 관심은 해가 지날 때마다 넓어졌어요. 언젠가부터 세계를 바꾸고 있는 기기들의 원리를 알고 싶어져서 기계공학부에 진학했습니다.

나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며 받는 자극

기기와 소재의 관점을 모아 하나의 프로젝트로
CAD(컴퓨터 지원 설계) 프로그램으로 기기 개발을 시뮬레이션하는 일과, 직접 실험을 통해 다양한 장비로 소재의 물성을 분석하는 일은 접근법부터 완전히 달랐습니다. 화학공학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실험과 연구를 거듭해 새로운 지식을 익히며 자신감을 점점 키웠습니다. 비전공자의 관점에서 새로 배운 내용을 정리해 팀원들에게 전달하는 기술 세미나도 즐거웠고요. 제가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도 이런 경험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현재는 프로그램 매니저로서 토너 소재 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글로벌 팀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이전엔 개발자로서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면, 지금은 전체 프로젝트를 기획, 조율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습니다. 같은 주제를 다뤄도 맡은 업무에 따라 핵심이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기기 개발과 소재 개발을 모두 경험한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다양한 관점의 의미와 필요성을 경험한 덕분에,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업무에서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폭넓게 이해하고 조율해, 좀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었죠. 이렇게 현재의 업무와 과거의 경험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문제 해결 능력이 확장됐고, 이것이 다시 새로운 경험으로 쌓이며 전체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시야가 더 넓어졌습니다.

더 넓은 경험을 더 많은 동료와 나누는 기쁨
최근 몇 년간 제 가장 큰 변화는 글로벌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한 겁니다. 집순이여서 여행을 즐기지 않지만 해외 출장에서 새로운 문화와 현지 외국인들의 일상을 접하며 감동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엔지니어협회(SWE톁ociety of Women Engineers)에 가입했고, 여기서 전 세계의 스템(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의 약자) 분야 동료들을 만나 더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저는 SWE의 글로벌 앰버서더로서 세계 각국의 여성 엔지니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기술 교류를 하며 보다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인도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현직 여성 엔지니어들이 커리어 개발의 노하우나 의사소통의 기술, 네트워킹의 강점 등 즐겁게 일하며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나눠주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아시아의 산업 환경과 연구 추세를 현장에서 접하며 글로벌 기술 시장의 현황과 혁신적인 연구 사례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었죠.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는 글로벌 팀의 강점을 실무에서 구현하고 많은 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의 전문가들과 온오프라인으로 협력하고 여러 이야기도 나누면서 글로벌 커뮤니티란 단순한 네트워크 확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글로벌 커뮤니티를 통해 기술과 인재가 어떻게 연결되고 시너지를 발휘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죠.
또한 저는 2024년부터 한국의 WITECK에서 한국 공학기술 분야의 여성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생애주기에 맞춰 커리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STEM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제안과 지원 프로그램 마련에도 힘쓰면서, 멘토링과 네트워킹 활동으로 후배 여성 엔지니어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제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다보면, 언젠가 제 아이가 성장했을 땐 저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리라 기대합니다. 이것이 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 더 많은 이에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나만의 과학동아 활용법
Q.과학동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나요?
저는 2024년에 딸과 함께 재밌게 읽었던 소셜미디어로 인한 도파민 중독 기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가 어느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제가 어린시절에 본 잡지를 같이 읽게 되니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Q.과학동아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사람들이 관심있는 과학 및 기술의 트렌드를 살펴보기도 하고, 뉴스에서 봤던 사회적 문제를 기술적으로 풀어나가는 내용에서 새로운 관점이나 정보를 얻습니다.
Q.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순간에는 인사이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선택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드는 조각이 될 테니까요.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려 노력하는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