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우리가 보는 시계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주 짧은 시간을 과학자들은 정확히 재기 위해 오랜 시간 매달려왔습니다. 그렇게 1억 년 동안 고작 1초밖에 어긋나지 않는 세슘 원자 시계가 탄생했어요. 하지만 과학자들은 멈추지 않고 최대 1만 배 더 정확할 것으로 예상되는 '핵 시계’ 개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핵 시계의 원리는 무엇이고, 왜 이렇게 정확한 시계를 갈구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의 오차가 어느 정돈지 아시나요? 석영이 진동하는 특성을 활용하는 쿼츠 시계는 보통 한 달에 15~20초 정도의 오차가 발생합니다. 넉 달이면 1분이 차이가 나니 주기적으로 시간을 다시 맞춰야 하죠.
그런데 최근 발표된 ‘핵 시계’ 기술은 경악스러운 정확도를 자랑합니다. 2024년 9월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JILA 연구소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토륨 원자핵을 이용한 핵 시계의 핵심 요소를 찾는 데 성공했어요. 이걸 이용하면, 이론적으로 3조 년 동안 1초의 오차가 발생하는 궁극의 핵 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doi: 10.1038/s41586-024-07839-6 연구를 이끈 준 예 볼더 콜로라도대 교수는 보도자료를 통해 “수십억 년 동안 작동해도 1초의 오차도 없는 손목시계를 상상해 보라”며 “아직 거기까지 이르진 못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그 수준의 정밀도에 가까워졌다”고 전했어요.
Chaunkun Zhang/JILA
핵 시계는 자외선 레이저(사진)를 이용해 발생시킨 원자핵의 고유 진동수로 시간을 측정한다. 최근 준 예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교수팀이
핵 시계의 핵심 요소인 에너지 전이 주파수를 찾아냈다.
핵 시계 이전에 원자 시계가 있었다
‘시간’은 고대부터 인류의 관심사였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자연물, 이를테면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간을 균일하게 쪼개는 식으로 시간을 쟀습니다. 하지만 태양의 움직임은 일정하지 않아 언제 어디에서나 동일한 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웠습니다.
20세기 과학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한 주기를 가진 대상을 시간의 기준으로 쓰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슘 원자 시계’입니다. 세슘 원자는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일정한 고유 진동수를 갖기 때문입니다. 세슘 원자 속 전자는 특정 에너지 상태로 있다가 다른 에너지 상태로 전이할 때 전자기파를 방출합니다. 이 전자기파는 일정한 주파수를 띠는데 이것이 고유 진동수입니다.
세슘 원자의 고유 진동수는 91억 9263만 1770Hz입니다. 이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이 값을 1초의 기준으로 삼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세슘 원자를 사용하는 원자 시계의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전자기파로 세슘 원자 속 전자를 자극해 에너지 전이를 일으키고, 이때 나오는 고유 진동수를 측정해 시간을 측정하죠.
하지만 세슘 원자 시계도 310-16 수준의 ‘불확도’를 보입니다. 1억 년 동안 1초 정도 틀릴 것으로 예상되죠. 그 이유는 세슘 원자를 이용해 1초를 규정할 때 주변 온도가 절대 온도 0K이며, 주변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0K를 구현할 수 없으며, 전기장, 자기장 등 수많은 환경 요인이 진동수에 영향을 주죠. 이러한 영향이 모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이론적인 세슘 진동수 값과 미세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시계의 불확도가 됩니다.
과학자들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 조건의 영향을 최대한 0에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불확도는 기술적으로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한계치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시간의 정확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 과학자들이 다음으로 선택한 방법은 세슘보다 안정적이고 더 큰 고유 진동수를 가진 무언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자를 나누는 눈금이 더 세밀하면 길이를 더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것처럼, 고유 진동수가 크면 불확도를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거든요.
특별한 주파수 찾아서 핵 시계 만든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핵 시계’입니다. 핵 시계는 원자핵이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 한 단계 높은 에너지 상태로 전이할 때 방출되거나 흡수되는 주파수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원리예요. 원자핵도 전자처럼 에너지 상태에 따라 전자기파를 방출하거나 흡수하거든요. 하지만 핵은 전자보다 외부 간섭에 덜 민감하고 주파수도 훨씬 큽니다.
볼더 콜로라도대 JILA 연구소와 NIST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핵 시계에 토륨-229의 원자핵을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원자핵의 전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전자기파보다 훨씬 큰 에너지가 필요해요. 엑스선이나 감마선과 같은 고에너지 광원을 이용해야 하죠. 하지만 토륨-229 원자는 비교적 낮은 에너지인 자외선만으로 원자핵 전이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점은 토륨-229 원자핵의 전이를 유도하는 자외선 주파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탐색 범위가 매우 넓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웠습니다. 연구팀은 ‘광주파수 빗’ 기술을 이용해 토륨-229의 에너지 전이 주파수를 밝혀냈죠. 광주파수 빗은 촘촘한 빗살처럼 세밀한 주파수 피크로 구성된 빛의 스펙트럼을 생성해 여러 주파수를 동시에 조사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약 148nm라는 정확한 자외선 주파수를 찾아냈습니다. 이는 토스텐 슘 오스트리아 빈공대 교수팀이 지난 4월에 발표한 주파수보다 100만 배나 더 정확한 값이에요. 이로써 핵 시계를 켤 수 있는 스위치를 발견한 겁니다.
김진화
이원규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자양자센싱그룹 책임연구원은 2025년을 목표로 138억 년 동안 1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광시계인 KRISS-Yb2(사진)를 개발 중이다. 광시계는 원자 시계의 일종으로, 전자기파 대신 가시광선을 이용한다.
핵 시계의 작동 원리
❶ 레이저 1과 공진기를 이용해 토륨-229 원자핵에 특정 주파수를 가지는 자외선 레이저를 조사한다. 원자핵이 한 단계 높은 에너지 상태로 전이된다.
❷ 레이저 2는 토륨-229 원자를 조사해 원자핵의 상태 변화를 확인하는 용도다. 이를 통해 원자핵의 에너지 전이가 일어났는지 확인한다.
❸ 광전자 증배관은 레이저 2를 확인한 뒤 레이저 1에 연결된 피드백 루프를 통해 레이저 1의 주파수를 토륨-229 원자핵의 고유 진동수와 정확히 일치시킨다. 이를 통해 레이저 1의 주파수를 시간 측정의 표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끝없이 정확한 시계 개발하는 이유
물론 핵 시계가 현실에 적용되려면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10월 28일 만난 이원규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자양자센싱그룹 책임연구원은 “에너지 전이 주파수를 찾는 데 10년이 더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다”고 놀라면서도 “핵 시계는 아직 진입 장벽이 높아 현실적으로 붐이 올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핵 시계에는 고도의 기술과 희귀한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외선은 엑스선이나 감마선보다는 에너지가 낮지만, 현재 기술로는 핵 전이에 필요한 수준의 좁은 선폭을 가지는 자외선을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충분한 양의 순수한 토륨-229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요. 토륨-229는 자연 상태로 존재하지 않고 우라늄-233의 붕괴를 통해 매우 적은 양이 생성됩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핵 시계 대신 광시계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광시계는 원자 시계에 속하지만, 마이크로파 대신 가시광선을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광시계에는 세슘보다 고유 진동수가 큰 이터븀과 스트론튬이 사용됩니다. 이 때문에 세슘 원자 시계보다 정확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죠.
2021년 KRISS는 이터븀을 이용해 20억 년 동안 1초 오차를 보이는 광시계인 KRISS-Yb1을 만들었고, 2025년을 목표로 138억 년 동안 1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KRISS-Yb2를 개발 중입니다. 광시계는 이론적으로 최대 300억 년 동안 1초밖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광시계만 해도 이미 우주 나이인 138억 년을 지나는 동안 1초도 어긋나지 않을 텐데 과학자들은 왜 계속 정확한 시계에 매달리는 걸까요?
이 책임연구원은 “원자 시계가 등장하면서 GPS와 같은 응용 분야가 생긴 것처럼 더 정확한 시계가 개발되면 분명히 새로운 응용처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계의 발전은 항해술을 거쳐 GPS를 등장시켰어요. 하지만 GPS는 아직 어느 도로에 있는지까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요. 초정밀 시계가 등장하면 정밀 내비게이션이 가능해져 요즘 상용화되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핵 시계는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질량 85%를 차지한다고 여겨지지만, 관측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일부 암흑물질 입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원자핵에 결합시키는 강한 핵력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입자들이 토륨 원자핵과 상호작용한다면 핵 시계의 미세한 변화로 암흑물질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죠.
이처럼 정밀한 시계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읍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임연구원에게 초정밀 시계 연구가 과연 언제쯤 끝이 날지 물었습니다. “원자시계에서 광시계로 흐름이 바뀌었듯,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언젠가 핵 시계보다 더 좋은 시계가 나오면 시계의 패러다임은 또 바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