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4년 여름은 이상기후를 피부로 느낀 한 해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의 기온은 51℃까지 치솟았고, 한국에는 200년에 한 번 올 비가 내렸다. 기후변화로 망가진 지구가 본격적으로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이상 기후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애플 TV+에서 2023년 3월 방영을 시작한 ‘2050:벼랑 끝 인류’다.
이 드라마는 2037년부터 2070년까지, 지구의 기후변화가 가족, 일, 신앙, 생존 등 인류의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2047:5번째 질문’ 회차에 등장하는 마이애미 침수 상황은 익숙한 지역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한 번, 그 시기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우리를 오싹하게 한다.
지구는 수억 년 동안 복사 평형을 통해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조절해 왔다. 복사열은 어떤 물체가 그 물체의 온도에 해당하는 파장의 복사 에너지를 전자기파 형태로 방출하는 것으로,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쪽으로 이동한다. 우주의 온도는 약 3K로 지구 표면 온도인 약 300K보다 낮으므로,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우주 쪽으로 복사열을 방출한다. 다행히도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층은 이 복사열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투과시켜, 지구 표면의 물체들이 효율적으로 복사열을 우주로 방출하도록 돕고 있다. 즉 지구가 흡수하는 태양 복사 에너지와 방출하는 지구 복사 에너지의 평형으로 인해 안정적인 기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화석 연료 사용이 늘어나면서 대기층의 구성이 변했다. 대기 중에 탄소, 메탄 등 복사열을 흡수하는 온실가스가 많아진 것이다. 온실가스는 지구에서 우주로 빠져나가려는 복사열을 흡수해 지구의 온도를 계속해서 높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과학자들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높여 탄소의 순수 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탄소중립 실현을 다짐했다. 변화는 다짐만으로 되지 않는 법.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선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 중심엔 태양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자유로운 전자가 만들어내는 전기, 태양광 발전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선 에너지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먼저다. 풍력, 수력, 태양광 등 탄소 배출이 적은 에너지 생산 방식을 친환경 재생 에너지원이라고 한다. 과학기술자들의 계속된 노력으로 이제는 전 세계 발전량의 30%가 재생 에너지원에서 나오고 있다.
초창기 재생 에너지원은 수력, 조력, 풍력 등 물리적 움직임을 이용한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이 방법들은 코일의 단면을 통과하는 자기장의 세기가 변하면 전류가 발생하는 원리에 기반을 둔다. 물의 흐름이나 바람이 모터를 돌리면, 모터 내부의 자석이 회전하며 코일을 통과하는 자기장의 세기가 변하게 되고, 이 변화로 전류가 발생한다. 다만, 이런 방식들은 자연 현상에 의존하기 때문에, 바람이 불거나 물이 많아야만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태양광 발전은 이와 다르다. 태양은 매일 무조건 뜬다는 확실성이 보장된다. 날씨가 흐리거나 맑을 때 얻을 수 있는 태양 에너지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하루 중 절반의 시간을 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또한 태양광 발전은 물리적 움직임 없이 빛을 직접 전기로 변환하기 때문에 환경 조건에 덜 의존적이다.
태양광 발전은 전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이용해 전기를 생성한다. 빛 알갱이, 즉 광자가 반도체 물질에 닿으면 자유롭게 움직이는 전자인 자유 전자가 만들어진다. 자유로운 전자의 움직임은 전류를 발생시키고 이를 전기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환 효율(주어진 에너지원에서 얼마나 많은 전기 에너지를 변환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 좋은 태양 전지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은, 태양에서 오는 광자를 잘 흡수하면서 자유 전자가 잘 만들어지는 소재를 고르는 것이다. 대표적인 물질이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단가가 매우 낮고, 가시광선에서 근적외선(near-infrared)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효율적으로 흡수해 태양 전지의 재료로 흔히 활용되고 있다.
순수한 실리콘으로 만든 태양 전지는 입사하는 태양광의 20~22% 정도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한다. 석탄과 석유의 변환 효율이 약 35%, 천연 수소의 변환 효율이 약 50%인 것에 비하면 조금 아쉽다. 탄소 배출도 없으면서 변환 효율까지 화석연료에 버금간다면 태양광 발전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을 터. 그래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태양 전지의 변환 효율을 증가시키는 연구를 경쟁적으로 해왔다.
최근엔 실리콘의 대안으로 ‘페로브스카이트’란 물질이 등장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실리콘이 잘 흡수하지 못하는 짧은 파장의 태양광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최대 변환 효율이 27%로 높다. 한국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 전지 연구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온실가스가 지구 복사열 방출에 미치는 영향
태양광 발전은 거대한 규모로 설치하는데, 페로브스카이트는 200cm2 이상의 대면적으로 설치할 경우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2024년 5월 한국화학연구원과 (주)유니테스트 연구팀은 면적이 200cm2가 넘는 대면적 페로브스카이트 태양 전지의 효율을 20.6%로 올려 세계 효율을 경신했다.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팀은 2023년 1월, 페로브스카이트의 상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인 습도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했다. doi: 10.1126/science.adf3349 페로브스카이트의 수분 안정성이 크리스털 패싯(결정노출면)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고, 수분에 가장 안정적인 패싯을 가진 필름 제작에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여러 단점이 개선되면 앞으로는 실리콘보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 전지를 더 자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복사 냉각’으로 전기 없이 냉방을?
전기 자체를 적게 사용하는 방법도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는 대책이 될 수 있다. 2018년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발표한 ‘냉방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냉방과 관련된 전력은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더 증가할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주는 2024년 5월, 냉방 수요로 인해 전체 전력 수요가 전년보다 13% 증가한 77GW를 기록했다. 화석 연료 사용이 기후변화를 심화시키고,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인 폭염이 다시 냉방을 위해 화석 연료를 사용하게 만드는 부정적 피드백 루프를 생성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복사 냉각을 활용해 해가 떠 있는 낮 동안에도 전력 없이 실내 온도를 낮추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복사 냉각 기술은 물체가 받는 빛은 반사하고, 가지고 있는 열은 적외선 복사로 방출해 스스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기술이다. 빛 반사는 물체의 온도가 크게 오르지 않도록 하고 복사열 방출은 물체의 온도를 낮추기 때문에 냉각을 위해선 빛 반사와 복사열 방출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태양에 노출된 상자를 상상해 보자. 상자의 모든 벽면이 태양광은 효과적으로 반사하고, 복사열은 효과적으로 투과시킬 수 있다면, 상자 내부 공간의 온도는 주위보다 점점 낮아질 것이다.
이런 원리를 활용해 건물의 온도를 낮추려는 연구는 지난 십여 년간 활발히 진행됐다. 2014년 당시 미국 스탠퍼드대의 아스와스 라만 교수(현 UCLA 교수)와 산후이 판 교수는 복사 냉각 기술을 이용해,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온도를 주위보다 5℃가량 낮출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고했다. doi: 10.1038/nature13883 이 연구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되고 지금까지도 약 2000번 인용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연구팀은 태양에서 오는 빛을 선택적으로 반사하고 복사열은 잘 투과시키기 위해서 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두께의 얇은 실리콘 산화물(SiO2)과 하프늄 산화물(HfO2) 층이 반복적으로 쌓여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뛰어난 연구였음에도 실용화까지 이어지긴 어려웠다. 나노미터 두께의 층들을 증착하는 것이 결코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 없이 냉방하는 복사 냉각 페인트
최근에는 작은 입자가 태양광을 산란시키는 현상을 이용해 표면 온도 상승을 억제하고, 내부의 복사열도 잘 투과시키는 물질 연구가 한창이다. 이 물질은 페인트처럼 지붕이나 벽에 칠할 수도 있다. 2018년 이헌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팀은 탄산칼슘(CaCO3) 입자로 구성된 혼합물을 이용해 페인트를 개발했다. doi: 10.21203/rs.3.rs-523745/v1 이 페인트의 색은 불투명한 흰색이다. 가시광선을 포함한 태양광의 스펙트럼 대부분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시광선 영역을 볼 수 있는 우리에겐 흰색으로 보인다.
투명한 복사 냉각 물질을 개발한다면 벽이나 지붕뿐만 아니라 창문에도 눈에 띄지 않게 적용할 수 있어 활용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2021년 이헌 교수팀과 노준석 POSTECH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 등 공동연구팀은 투명한 창문에도 응용할 수 있는 투명한 복사 냉각 물질을 개발해 냈다. 이 물질은 가시광선 중 일부를 투과시키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투명하게 보이지만 여전히 태양광은 반사하고 복사열은 투과시켜 복사 냉각 효과를 낸다. 복사 냉각 기술은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건물의 내부 온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상용화된다면 획기적으로 전력 사용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doi: 10.1002/adom.202002226
티핑 포인트는 물이 엎질러져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기후변화의 티핑 포인트를 막기 위해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실천이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끊임없이 연구하며, 새로운 기술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실제로 적용되기까지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와 기업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뒷받침돼야 한다.
2022년 기준 한국의 발전원 비중에서 화석 연료는 61%, 원자력발전은 29.6%를 차지한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는 고작 8%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기후 위기에 맞선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