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커피 잔을 들고 그대로 커피 저어 마시기! 식은 죽 먹기 같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궁금한 분들은 직접 도전해보세요!) 그런데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이를 가능케 할 세 번째 엄지손가락을 개발했습니다. 대체 왜 이런 발명품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운동 증강 기술’에 주목해주세요!
모든 생명체는 살아가는 환경에 적응해 진화해 왔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인간에게 꼬리나 날개가 없는 이유도, 이런 신체 부위가 생존과 번식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손가락, 발가락 개수도 진화의 산물입니다. 지구에서 최초로 손가락을 가진 생명체는 약 4억 년 전 데본기에 땅에서 기어다니던 물고기였는데, 이들은 6~8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뼈와 관절이 점점 진화하고 정교해지면서 대부분의 생물들은 손가락 갯수가 5개 이하로 줄어 들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손가락 갯수가 5개 이하로 진화한 이유가 기능적 효율성과 안전성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인간도 영장류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지금의 손가락(발가락)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굳이 하나 더 갖는 것은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사람의 기존 신체 기능을 강화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운동 증강 기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의수나 의족, 외골격 로봇 등을 살펴보다가 세 번째 엄지손가락을 마주하면 ‘풋’ 하고 웃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세 번째 엄지
세 번째 엄지손가락 기술은 다니엘 클로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MRC 인지 및 뇌과학부 연구원이 2017년에 개발했습니다. 클로드 연구원은 세 번째 엄지를 오른손 새끼손가락 아래, 손날에 부착해 사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다음에 다시 엄지가 있는 거죠. 연결된 띠를 손바닥과 손등에 빙 둘러 세 번째 엄지를 단단하게 고정합니다.
세 번째 엄지손가락을 부착하면 한 손에 쥘 수 있는 오렌지의 개수가 늘어납니다. 손이 큰 성인 남성의 경우 오렌지를 세 개까지 쥘 수 있는데, 엄지가 하나 더 있으면 오렌지를 네 개까지 쥐는 게 가능하죠. 손가락이 하나 더 늘어났으니 기타를 더 빠르게 치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뭐 어쨌거나 기존 신체 기능이 강화됐으니, 운동 증강 기술은 맞습니다.
왜 다섯 개의 손가락 중에 엄지일까요? 클로드 연구원을 지도하고 있는 타마르 마킨 케임브리지대 MRC 인지 및 뇌과학부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엄지는 네 개 손가락 모두와 상호작용할 수 있고, 무언가를 잡고 조작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 설명했습니다.
왼손에도 엄지를 하나 더해서 2+2는 안되냐고요? 현재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세 번째 엄지를 움직이는 것이 양발 엄지발가락이기 때문입니다. 발가락에 부착된 센서가 발가락의 움직임을 감지해 이 신호를 세 번째 엄지로 전달하는 겁니다. 오른발 엄지발가락은 엄지손가락의 움켜쥐는 힘을 제어합니다. 발가락을 세게 누르면 움켜쥐는 힘도 커집니다. 왼발 엄지발가락은 손가락의 방향을 제어합니다. 왼발 엄지 발가락을 세게 누르면 손가락이 움직이는 방향의 각도가 커져 더 많이 움직입니다. 양 발가락이 다른 동작을 수행하기 때문에 손가락을 움직이며 움켜쥐는, 두 개의 동작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런 이유로 세 번째 엄지손가락은 걸으면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엄지가 제멋대로 움직일 테니 말입니다.
사용법이 조금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2022년 영국 연례 왕립 학회 여름 과학 전시회에 참여한 596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참가자의 98%가 1분 만에 세 번째 엄지 작용법을 쉽게 익혔습니다.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다양한 나이대, 성별, 그리고 손재주를 가진 참여자들에게 세 번째 엄지를 착용시켰는데요. 11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사용이 다소 미숙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그 이상의 성인은 나이와 관계없이 비슷한 수준으로 세 번째 엄지를 사용했습니다. 이에 대해 마킨 교수는 “아이들의 경우 장치를 올바르게 장착하거나 발로 장치를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남과 여, 평소에 손을 많이 사용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연구팀은 이런 내용을 정리해 5월 2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습니다. doi: 10.1126/scirobotics.adk5183

세 번째 엄지로 할 수 있는 일
다니엘 클로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왼쪽)이 개발한 세 번째 엄지는 엄지
발가락의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의 블루투스 신호를 받아 움직인다.
운동 증강 기술의 ‘끝판왕’은 꼬리?
웃음을 자아내는 색다른 운동 증강 기술은 또 있습니다. 2019년 미국에서 열린 시그라프 컨퍼런스에서 일본 게이오대 연구팀이 선보인 로봇 꼬리입니다. ‘아크(Arque)’라는 이름의 로봇 꼬리는 길이가 무려 1m나 됩니다. 인공 근육과 압축 공기를 사용해 8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허리에 꼬리를 고정하고 상반신에 신체 추적기를 착용하면, 상반신의 움직임에 따라 꼬리가 꿈틀거립니다. 상반신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꼬리가 왼쪽으로 이동하고, 허리를 숙이면 꼬리가 위로 뻗칩니다. doi: 10.1145/3306214.3338573
아크는 그래도 세 번째 엄지손가락보다는 활용도가 명확합니다. 연구팀은 노년층을 위해 아크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시력, 감각 신경, 관절, 인대의 노화로 균형 감각과 유연성이 감소합니다. 때문에 노인들은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일이 많습니다. 아크는 이들이 몸의 균형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앞서 인간에게 꼬리가 없는 이유로, 꼬리가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이렇게 오래 살게 된 것은 정말 최근의 일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 평균 기대 수명은 73살(2022년 기준)입니다. 반면 100년 전인 1920년대 초반의 인간 평균 수명은 약 40~50세 정도였죠. 20세기 후반, 의료 기술과 공공 보건의 발전으로 수명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몇몇 해외 언론에서 아크를 ‘일상에서 착용하기 힘든 코스프레 용품’으로 평가절하했지만, 앞으로의 인간에게는 정말 꼬리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1m는 너무 길어 보이지만요.

없던 신체로 뇌 가소성 연구
돌아와서,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으면 유용한 세 번째 엄지손가락은 생각보다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뇌는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이를 뇌 가소성이라고 부릅니다.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기능자기공명영상법(fMRI)으로 세 번째 엄지를 착용했을 때 달라지는 뇌의 활동 지도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엄지를 착용한 뒤 5일이 지나면,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일 때 활성화되는 1차 감각 피질 부위에 변화가 감지됩니다. 재밌는 것은 세 번째 엄지 착용을 멈춰도 뇌는 한 동안 변화된 상태로 활성화돼 있단 것입니다. 7일이 지난 후에야 뇌 활성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죠. doi: 10.1126/scirobotics.abd7935
연구팀은 세 번째 손가락으로 뇌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운동 증강 기술이 보편화될 때, 사람들의 신체 능력을 안전하게 확장하는 데 활용될 거구요. “우리는 세 번째 엄지로 뇌의 인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생리학과 운동 증강 기술이 매끄럽게 통합되는 직관적인 제어 메커니즘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연구팀의 ‘빅 픽쳐’를 들으니 어떤가요. 이제 오렌지를 하나 더 쥐는 것이 의미 있게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