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 슈퍼마켓은 대형 소매점을 지칭하는 단어로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슈퍼’는 ‘대단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그렇다면 슈퍼커패시터는 무엇일까요? 커패시터는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전기를 신속하게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빠르게 방출하는 에너지 저장장치입니다. 슈퍼커패시터는 바로 이런 커패시터의 에너지 저장 용량을 비약적으로 확장한 초고용량 커패시터입니다. 슈퍼커패시터 관련 연구는 2006~2020년 전 세계 논문을 수집한 네덜란드 라이덴대 데이터에서도 최근 7년간 지속적인 성장 추세를 보여줬습니다.
현대인이라면 잠들기 전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 있습니다. 휴대폰 배터리를 확인하고 충전하는 것입니다. 전기차를 탄다면 다음날을 위해 자동차 충전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배터리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다양한 전자기기는 충전 시간이 긴 탓에, 사용하지 않는 동안에는 충전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만약 수초 또는 수십 초 만에 완전 충전되는 에너지 저장장치가 개발된다면 그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시로 남은 베터리 용량을 확인하고 충전해야하는 강박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모든 기기의 사용이 훨씬 편리해지겠죠. 사회의 변화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이런 급속 충전 기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겁니다.
휴대폰이 1분 만에 완충된다면?
콘덴서 혹은 축전기라고 불리는 기존의 커패시터는 수 ms(밀리초·1000분의 1초) 안에 완전 충전된다는 독보적인 강점이 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다양한 전자기기에 활용돼왔죠. 하지만 에너지 저장용량이 너무 적다는 큰 단점도 있어서, 일시적인 전기(전하) 저장 수단으로만 사용됐습니다.
슈퍼커패시터는 기존의 이런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슈퍼커패시터는 전하를 지닌 물질 표면에 그 반대 극성의 이온들을 물리적으로 흡·탈착시키는 반응으로 에너지를 저장합니다. 즉 전기 저장용량(축전량)을 늘리려면 더 많은 이온이 흡착될 수 있도록 전극 물질의 표면적을 넓혀야하죠. 구멍이 무수히 많은 특성(다공성)의 활성화 탄소는 표면적이 1g당 약 1000~3000m2여서, 슈퍼커패시터용 전극으로 널리 쓰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배터리는 커패시터와 달리 음극과 양극의 산화, 환원이란 화학 반응으로 에너지를 저장합니다. 이 화학 반응이 일어나려면 일정한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며, 고속 충전은 화학 반응에 따른 발열, 부피 변화 탓에 내부 물질을 열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장 용량을 감소시키는 등의 문제도 발생해, 배터리의 충전 속도를 높이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슈퍼커패시터의 전하저장 반응인 이온흡착은 매우 빨리 일어납니다. 즉 단시간에 충전이나 방전이 가능하죠. 편리한 메모 기능으로 큰 인기를 얻은 삼성의 갤럭시 노트는 전자펜을 기기에 수납해 충전합니다. 슈퍼커패시터가 급속 충전되는 덕분에 전자펜을 수 초만 충전해도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출력・반영구적 특성, 신재생에너지 저장장치로 유망
빠른 충전과 방전(고출력) 성능의 슈퍼커패시터는 대량의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시간 동안 대량의 에너지가 필요한 버스, 기차, 크레인 같은 대형 장치들에도 쓰입니다. 예를 들어 버스를 구동하려면 순간적으로 큰 에너지가 필요한데, 슈퍼커패시터에 저장된 에너지로 시동을 걸죠. 또한 브레이크를 밟거나 혹은 바퀴가 회전할 때의 운동에너지를 다시 슈퍼커패시터에 전기에너지로 저장해 연비를 개선하는 ‘회생제동’ 기술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슈퍼커패시터는 단순한 물리적 흡착 반응으로 에너지를 저장하므로 이 반응 외의 다른 부반응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충·방전 효율이 95% 이상으로 매우 높고, 수명도 반영구적이어서 앞으로의 환경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존 배터리는 화학 반응으로 에너지를 저장해서 500~1000회 정도 충·방전을 거치면 축전량이 초기의 80% 이하로 저하됩니다. 짧은 수명을 마친 폐배터리들은 결국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되죠.
또한 출력이 높고 수명이 긴 슈퍼커패시터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에너지 저장장치로 특히 유용합니다. 신재생에너지는 전력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한계입니다. 낮에만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태양광에너지가 한 예죠.
슈퍼커패시터를 활용하면 낮에 태양광으로 과잉 생산된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밤에 전력을 생산할 수 없을 때나 수요가 증가할 때 저장했던 전력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부하 평준화(load leveling)’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슈퍼커패시터는 이와 마찬가지로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서 에너지를 유연하게 공급하는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낮은 저장용량 등 풀어야할 과제
현재 슈퍼커패시터는 1kg당 0.1Wh(1Wh는 1W의 전력으로 1시간에 하는 일의 양) 미만에 불과했던 기존 세라믹 기반 커패시터의 에너지 밀도를 1kg당 1~10Wh로 크게 개선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가장 성공적인 에너지 저장장치로 평가받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1kg당 20~150Wh)에 비하면 약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전자기기가 슈퍼커패시터를 단독 에너지 저장장치로 사용하기보다는, 에너지 출력 성능이 낮은 배터리의 보완 장치로 병용하는 실정이죠.
슈퍼커패시터의 상대적으로 낮은 저장용량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엔 배터리와 같은 화학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저장하는 신소재 전극 연구가 적극적으로 수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이금속 산화물이나 전도성 고분자 물질은 이온흡착뿐만 아니라 산화·환원 반응으로 에너지를 추가 저장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배터리와 슈퍼커패시터의 전극 소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슈퍼커패시터처럼, 새로운 구조의 개발도 활발합니다. 표면적이 넓고(1g당 2630m2) 가벼우며 전도성이 높은 그래핀을 적용한 슈퍼커패시터에 대한 연구도 큰 관심을 받고 있죠.
그동안 많은 연구자는 슈퍼커패시터의 용량을 확대하기 위해 에너지 저장의 주체인 전극을 신소재로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해질 성능 개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해질은 전하를 띤 이온들의 이동 통로입니다. 전해질의 이온을 산화·환원이 가능한 이온으로 교체하면, 전해질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슈퍼커패시터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시제품에서 전극의 흡착 반응에 더해 전해질의 화학 반응으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식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 새로운 슈퍼커패시터의 에너지 밀도는 기존 슈퍼커패시터의 5배에 달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슈퍼커패시터 소재는 대부분 수입하고 있습니다. 전극 물질 중 핵심 소재인 활성화 탄소는 주로 일본에서 수입해, 가격 경쟁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산 활성화 탄소는 불순물 농도가 낮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분리막, 도전재, 바인더 등의 소재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죠.
하지만 외국산 소재를 대체할 국산 소재 개발은 요원합니다. 일본은 수십 년간 탄소 소재에 대한 근본적, 전략적 연구를 진행해 활성화 탄소 제조의 원천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탄소 소재에 대한 근본적 이해보다 응용 측면에 치우쳤습니다. 정부나 대기업 차원의 소재 연구에 대한 투자도 크지 않고요.
슈퍼커패시터의 핵심인 탄소 소재의 근본적 성질을 이해하고 직접 제조하는 연구는 이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소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지 못한 채 응용에 치중한 연구는 장기적으로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자 독자, 청소년 독자 여러분이 신기술의 근본 원리에 대한 기초 연구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독자 기술로 슈퍼커패시터를 만들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필자소개.
전상은. 경북대 신소재공학부 금속신소재전공 교수.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2011년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같은 대학교와 미국 오리건대의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2016년부터 경북대에서 재직 중이다. 전기화학 기반의 다양한 에너지 저장장치용 소재를 주로 연구했으며, 특히 활성화 탄소와 배터리 양극재 개발에 특화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