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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9:화성 일 년 살기] 화성에서도 한국인은 김치를 담근다

“전방에 사고 다발 구간입니다.”


로버를 타고 삭막한 화성의 모래사막 위를 한창 달리던 때였다. 로버에 탑재된 인공지능(AI) ‘장금’이 어처구니없는 경고를 보냈다. 목적지는 화성 정조 과학기지에서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언덕에 설치한 유리 온실인데, 화성에 사고 다발 구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운전대를 꽉 움켜쥐었다. 무와 배추를 기르는 온실에서 빛이 부족하다는 경고가 들어온 참이었다.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2022년 12월, AI 챗봇 챗(chat)GPT가 출시되며 전 세계에 AI 열풍이 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벌써 1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기능이 보잘것없었던 AI는 발달을 거듭해 이제는 인간을 돕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중요한 조언자로 자리매김했다. 정조 과학기지에도 그런 조언자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금’. 조선시대 유명한 의녀로서, 2000년대 초 사극 드라마로도 제작됐던 인물의 이름을 따왔다. 극중 왕의 병을 치료하고, 궁중 음식을 척척 만드는 장금의 모습이 정조 과학기지의 AI에 딱 어울린다는 게 개발자의 의견이다.


하지만 AI는 어느 순간부터 인간에게 조언을 넘어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정조 과학기지의 모든 대원은 장금의 자율 주행 기능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기지 밖을 나설 일도 드문데 화성에서 드라이빙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다들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운전 솜씨는 장금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대원들은 항상 샛길로 빠지거나 에너지를 펑펑 써대며 과속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AI는 착실하게 학습 데이터를 쌓았고, 인간의 비효율적인 운전을 막기 위해 ‘사고 다발 구간’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출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장금이가 경고한 ‘사고’라는 것은 인간이 로버의 에너지를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소진했다는 뜻에 가깝다. 즉, 운전 좀 똑바로 하라는 뜻이다.


“지속적인 에너지 과다 사용 시, 자율 주행 모드로 강제 전환됩니다.”


장금이가 재차 경고했다. 물론 온실로 가는 길에 사고 다발 구간을 만든 것은 과속한 내 잘못이 크다. 변명하자면, 모래 폭풍이 불고 중력이 익숙하지 않은 화성에서 똑바로 운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온실 근처에 로버를 세우고 먼지를 털며 에어록 안으로 들어가서야 장금의 잔소리를 겨우 피할 수 있었다.
 


화성 온실에선 AI의 가호 아래 무가 자란다


도착한 유리 온실은 현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만든 자율 운영 온실이다. 금속공학을 전공한 열혈 엔지니어 D가 화성 토양에서 추출하고 가공한 경량 철재를 골조로 쓰고, 화성의 암석에서 추출한 규소로 유리를 만들어 창을 붙였다. 우주에서 생활하기 위한 모든 물자를 지구에서 보급받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현지에 있는 자원을 활용해 비용을 낮춰야 한다. 이렇게 우주에서 현지의 자원을 활용하는 기술을 우주현지자원활용(ISRU·In Situ Resource Utilization) 기술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2022년 달 탐사를 위한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며 우주현지자원활용 기술을 강화했다. 그 덕에 우주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다. 우주현지자원활용 기술로 만든 화성의 유리 온실은 수경재배 장치 대신 화성의 토양을 그대로 이용하는 토경재배 방식을 택했다. 흙에서 식물을 키우는 건 기후 위기가 심각해진 2039년 현재 지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방식이다. 대부분 기후변화의 영향을 덜 받도록 건물 안에서 수경재배로 식물을 키우니까. 그래도 물보단 흙을 얻기가 더 쉬운 화성에서는 오히려 수준에 맞는 좋은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온실의 자율 운영 기능은 지구의 스마트팜에서 쓰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했다. 로버만 자율 주행하는 것이 아니라 온실도 자동으로 운영된다. 2019년 중국의 게임업체 텐센트(Tencent)는 네덜란드 와게닝겐대와 함께 ‘자율 운영 온실 해커톤(Autonomous Greenhouse Challenge)’을 열었다. 참가팀들은 AI를 학습시켜 작물을 재배하는 온실이 자동으로 운영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본선에 진출한 팀들은 네덜란드에 준비된 실제 온실에 AI를 탑재해 작물을 재배했다.


2020년 두 번째로 개최된 자율 운영 온실 해커톤에는 나와 친분이 있는 연구자들도 여럿 참가했었다. 당시 한국 팀이 본선에 진출한 다섯 개 팀 중 3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이 대회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AI가 운영한 온실들이 모두 숙련된 농민들이 운영할 경우보다 생산량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AI가 식물조차도 효율적으로 잘 키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구의 많은 온실들은 점차 AI가 도맡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변모했다.  


화성에 설치된 유리 온실도 환경 제어는 모두 AI가 맡는다. 화성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유리 온실을 AI가 운영하는 미래지향적인 광경을 볼 때마다 내심 감탄하곤 한다. 아, 물론 화성의 유리 온실을 완전 자율 운영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족하다. 온실에서 실제로 ‘노동’을 할 로봇은 화성에서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로봇의 빈자리는 다른 것(그러니까 나란 인간)으로 대체했다.


“나비보벳따우~”


바이오 로봇(그러니까 나란 인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유리 온실 안에서 무를 재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깍두기를 만들어 대원들에게 먹일 생각에 흥이 났다. 동치미와 단무지도 만들어 볼 생각이었고, 말려서 무말랭이도 만들 계획이었다. 줄기와 잎인 무청으로는 시래기 해장국을 만들어야지, 대원들에게 무로 만든 음식을 돈을 받고 팔아볼까 생각도 해봤다. 이처럼 상상 속 무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지만 무는 높아진 내 기대치에 비해 잘 자라지 않고 있었다.


 
속이 꽉 찬 배추김치를 위해 모래 폭풍을 기다리세요


화성에서는 1년 중 약 절반은 모래 폭풍이 분다. 화성은 지구보다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빛이 항상 부족하다.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광은 제곱미터당 1000W 정도의 에너지를 전달하지만, 화성에서는 300W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300W라도 온전히 받아보고자 화성의 기상 관측 자료를 분석해 모래 폭풍이 없는 날이 오래 지속되는 기간을 골라 무를 심는다. 그럼에도 일단 모래 폭풍이 불면 빛이 부족해진다. 


장금이가 훈수를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장금은 무 재배에 모자란 빛은 LED 조명을 이용해 보충할 것을 권했다. 조명은 그간 정조 과학기지의 재배실에서 다른 작물을 재배할 때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이용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빛을 보충해 준 무는 자라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장금이를 칭찬했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장금이는 AI 중에서도 다소 무뚝뚝한 편이었다. 


나는 이제 무 옆에서 기르던 배추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조 과학기지의 재배실에서 재배하는 배추는 속이 들어차지 않아 봄동과 비슷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겉절이 정도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 제작한 유리 온실에서는 배추의 결구(배추의 속이 들어차는 현상)를 성공시켜 속이 꽉 찬 배추김치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배추는 결구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장금에게 조언을 구했다.


“양분을 더 투입하고, 조명의 광도를 올리고, 모래 폭풍을 기다리세요.”


모래 폭풍을 기다리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모래 폭풍 때문에 무 농사를 망칠 뻔했던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신기하게도 장금의 말을 듣고 기다린 배추는 모래 폭풍이 몇 주간 이어지자 서서히 속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배추를 수확하던 나는 장금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장금의 대답을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배추는 재배 초기에는 양분을 줘 많은 잎을 확보하고 20℃ 전후의 온도를 맞춰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반대로 재배 후기에는 15℃ 정도로 서늘한 온도를 맞춰줘야 결구에 도움이 된다. 화성의 모래 폭풍은 태양 광선을 가려 화성의 기온과 온실 내부의 온도를 배추가 자라기 알맞게 낮춰줬던 것이다. 정조 과학기지의 재배실은 항상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니 배추의 결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었다.


나는 AI의 도움을 받아 무와 배추를 성공적으로 길러냈고, 기지의 대원들과 신나게 김장을 담글 수 있었다. 대원들은 다들 지구에서 가져온 동결 건조 고춧가루가 사방에 날려 재채기를 하면서도 장금을 칭찬하기 바빴다. 우리가 화성에서 만든 김치는 고향에서 먹던 그 맛이었다. 지구의 계절과는 조금 다르지만 정조 과학기지의 가을은 깊어 가고 있었다. 나는 무와 배추를 수확하고 난 빈 유리 온실에서 마지막 임무를 위해 새로운 식물을 심기 시작했다. 이제는 온실 밖으로 나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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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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