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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이슈] 있었는데, 없습니다 ... 희귀동위원소 산소-28

 

가을 하늘이 청명했던 10월 4일,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 본원에서 황종원 희귀핵연구단 연구원을 만났습니다. 황 연구원은 산소-28 검출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한 국내 연구진 중 하납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산소-28 실험을 위한 선행 연구부터 2015년 11~12월에 걸쳐 진행된 본 실험까지 중성자 검출기 파트를 도맡은 장본인이죠.

 

곤도 요스케 일본 도쿄공대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중이온가속기 ‘RIBF’를 이용해 산소-28을 인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공동연구팀은 칼슘-48을 베릴륨 표적에 충돌시켜 불소-29를 만든 다음, 이 불소-29를 두꺼운 액체 수소 벽에 충돌시켰습니다. 불소-29는 산소-28과 중성자 수는 같지만 양성자가 하나 더 많기에, 수소 벽에 충돌한 불소-29에서 양성자가 하나 떨어져 나오며 산소-28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산소-28을 검출해 낸 최초의 실험이었습니다. 공동연구팀은 연구성과를 지난 8월 3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d41586-023-02713-3

 

동위원소는 이름은 같지만, 무게가 다른 원소입니다.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자의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양성자 개수는 원자의 번호이기도 합니다. 산소의 원자번호는 8, 양성자의 수가 8개죠. 그리고 이 숫자는 주기율표에서 산소가 배열되는 위치를 결정합니다. 같을 동(同)에 자리 위(位), 즉 동위원소는 양성자 개수가 같아서 주기율표상에서 같은 위치에 놓이는 원소들입니다.

 

산소의 동위원소 중 안정적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건 산소-16, 산소-17, 산소-18입니다. 이들을 안정 원소라고 부릅니다. 이 외에 동위원소는 방사성 동위원소입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핵이 불안정해 에너지와 입자를 방출하며 안정한 상태로 바뀌는 특징이 있습니다. 산소-15, 산소-20 등이 산소의 방사성 동위원소입니다.

 

희귀동위원소는 지구상에 거의 남아있지 않아 ‘희귀’란 단어가 붙었습니다. 희귀동위원소는 드물게 존재할 뿐더러 수명이 매우 짧습니다. 이 때문에 만나고 싶다면, 인공적으로 생성해야 하죠. 산소-28 실험이 진행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희귀동위원소는 약 7000개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118개의 원소와, 3000여 개의 동위원소를 발견해냈지만, 그보다 2배가 훌쩍 넘는 희귀동위원소가 더 있다고 예상합니다.

한계선을 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왜 산소-28이었나요?” 황 연구원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실험의 이유였습니다. 양성자는 8개, 중성자는 20개인 산소-28을 찾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핵물리에서 중요한 것은 핵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핵을 구성하는 입자의 상호작용을 아는 거죠.” 황 연구원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양성자와 양성자, 또 중성자와 중성자의 상호작용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핵물리의 기본 목표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상호작용을 파악하려면 양성자와 중성자가 모여서 어떤 핵을 만드는지와 함께, 어떤 상태까지 핵이 핵의 모양으로 존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요.

 

‘핵이 핵의 모양이 아닐 수 있다니?’ 기자의 아리송한 표정에 황 연구원은 웃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습니다. “양성자와 중성자 조합이 늘 안정적이지 않다는 게 중요합니다.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는 강한 핵력(강력)에 의해 결합해 있습니다. 어떤 핵은 강력과 전자기력 사이의 경합을 버티지 못하고 중성자나 양성자를 방출해 버리고 맙니다. 그 순간 핵은 다른 핵이 되어버리죠.” 그의 말에 따르면 핵물리 과학자들은 강력의 한계를 통해 존재하는 핵과 그렇지 않은 핵을 구분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소-28에 대한 설명은 언제 나오는 걸까요.

 

“핵 도표에서 지금까지 실험으로 검증된 핵의 존재 한계선을 살펴보면 대체로 완만한 기울기를 그립니다. 산소에서 한 번 쑥 들어가는 때만 빼고요.” 존재 한계선은 영어로 ‘드립 라인(Drip line)’이라고 부릅니다. 핵력이 한계에 달해 양성자나 중성자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명명된 이름입니다. 핵물리 과학자들은 이 존재 한계선을 실험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산소의 존재 한계선은 산소-24에 그어져 있습니다. 약 20년 전의 일이죠. 반면 양성자를 6개 갖고 있는 탄소는 존재 한계선이 탄소-22까지 포함합니다. 질소(양성자 7개)의 존재 한계선은 질소-23, 불소(양성자 9개)의 존재 한계선은 불소-31, 네온(양성자 10개)의 존재 한계선은 네온-34까지 그어지죠.

 

이번 연구는 산소-28이 새로운 존재 한계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탄소부터 네온까지의 존재 한계선이 연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니까요.

 

산소-28에 희망을 품은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바로 ‘마법 수’입니다. 마법 수란 안정적인 상태를 이룰 수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를 말합니다. 대표적인 마법 수는 2, 8, 20, 28, 50, 126입니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동시에 이 마법 수에 해당한다면 ‘이중 마법’이란 훨씬 안정적인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산소-28은 이론상으로 이중 마법에 해당하는 동위원소였습니다. 양성자 8개, 중성자 20개이기 때문입니다.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핵인 이유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이론적으로 산소-28이 가속기 안에서 만들어져 존재했을 시간은 10-21초로, 실험으로 직접 관측하는 건 불가능한 찰나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연구에서 데이터 분석을 담당한 도쿄공대 연구팀은 산소-28이 붕괴한 뒤 남은 산소-24와 중성자 4개로 산소-28가 생성되긴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산소-28은 10-21초 동안 있었지만, 양성자와 중성자를 붙들만큼 충분히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핵물리에서 산소-28은 ‘존재하지 않는 핵’인거죠.

 

존재하는 핵과 존재하지 않는 핵은 어떻게 결정하는 걸까요? 그 기준은 바로 질량, 곧 에너지입니다. 양성자 8개, 중성자 8개로 뭉쳐져 있는 산소-16은 양성자 8개와 중성자 8개 각각의 질량보다 더 적습니다. 뭉쳤을 때 더 가벼워질 수 있는 이유는 결합 에너지로 질량을 쓰기 때문입니다. ‘더 가볍다’ ‘에너지가 적다’ ‘안정적이다’ 다 같은 뜻입니다.

산소-28처럼 존재 한계선 바깥의, 존재하지 않는 핵들은 어떨까요? 황 연구원은 “산소-28은 산소-24와 중성자 4개를 더한 값보다 무거웠다”고 말했습니다. 산소-28이 산소-24와 중성자 4개로 순식간에 붕괴된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계선 밖의 핵들은 굳이 더 큰 에너지로, 불안정하게 뭉쳐있을 필요도 없고 또 물리적으로 그럴 수도 없는 존재들인 겁니다.

앞서 방사성 동위원소도 핵이 불안정해 에너지 입자를 방출하며 안정된 상태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산소-28 역시, 중성자를 방출해 산소-24로 바뀌었습니다. 핵물리에서는 두 현상 모두 ‘붕괴했다’고 표현합니다. 그렇다고 방사성 동위원소라고 모두 존재하지 않는 핵은 아니며, 산소-28 역시 방사성 동위원소라고 부르진 않죠. 붕괴라고 다 같은 붕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황 연구원은 “불안정성의 관점과 붕괴 메커니즘이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와, 존재하지 않는 핵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줄인다는 겁니다.

 

존재하지 않는 핵은 질량(에너지)의 관점에서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결합이 불안정한 이들이 붕괴할 때는 중성자나 양성자만 빠져나갑니다. 반면 방사성 동위원소는 힘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입자의 재배열이 이뤄져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이 때문에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할 때는 광자와 질량을 가진 고속 입자의 방출이 함께 이뤄집니다. 이런 이유로 황 연구원은 “방사성 동위원소는 존재 한계선 안에 있을 수도, 밖에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존재 한계선 바깥에 있는 것들은 연구 가치가 없나요?” 취재를 오기 전까지 산소-28을 호부호형 할 수 없던 홍길동처럼 안타깝게 생각했던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존재 한계선 안쪽에 위치한 동위원소들은 안정적이고, 반감기도 상대적으로 긴 편이라, 우주에서 많이 생성됐을 겁니다.” 그러니까 핵물리 과학자들이 존재 한계선을 그으며 핵의 성질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련의 연구는, 물질의 특성과 자연계,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산소-28에 미련 가질 이유 없이, ‘앎’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존재 한계선 안쪽 원소들에 집중한다는 뜻이죠.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202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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