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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생명의 숲 속에서 세포라는 나무를 보다, 초고해상도 추적 이미징

 

사람 세포의 DNA는 약 30억 염기쌍의 어마어마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세포 한 개의 DNA를 일자로 펼치면 1m가 넘죠. 하지만 정작 DNA가 담긴 세포핵의 지름은 1탆(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밖에 되지 않는데요. 이렇게 긴 DNA를 작은 세포핵 안에 어떻게 집어넣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DNA가 계층적 염색질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세포핵 속에 ‘꾹꾹’ 접혀 들어간 DNA

 

DNA는 히스톤 단백질을 감싸며 뉴클레오솜 구조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 뉴클레오솜들이 다시 한 번 더 응축돼 염색질 구조를 만들죠. 그 다음 이 염색질이 순차적으로 접히고 또 접혀서 아주 강하게 응축된 덕분에 DNA가 작은 세포핵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염색질의 응축 과정은 주머니에 넣은 이어폰 줄처럼 마구잡이로 접히는 것이 아닙니다. 규칙적으로 염색질을 접는 특수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이 규칙적인 접힘에 따라, 한 가닥의 염색질도 그 안에서 특히 상호작용이 더 강한 여러 개의 영역들로 나뉩니다. 이 각각의 영역을 ‘TAD(Topologically Associating Domain)’라고 합니다. 

 

같은 TAD 내의 유전자들은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발현을 조절합니다. 그러므로 이 염색질의 접힘 구조가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지난 10여 년간 이 염색질의 접힘 구조를 어떻게 분석할지, 이 구조가 유전자 발현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연구해왔습니다.

 

 

DNA 접힘 구조가 중요한 이유

 

TAD는 CTCF(DNA의 CCCTC 서열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단백질)와 코헤신(Cohesin・DNA에 결합하는 고리 모양의 단백질) 두 종류의 단백질에 의해 일어나는 루프 추출(Loop extrusion)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말이 어려운데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보겠습니다. 코헤신은 둥근 링 모양의 단백질입니다. 세포 핵 속 DNA의 어느 한 지점을 링의 안쪽을 통해 쭉 잡아당겨 고리를 형성합니다. DNA를 쭉 잡아당기는 과정은 코헤신이 DNA에 붙은 CTCF에 걸려 멈출 때까지 진행됩니다. 이 과정을 루프 추출이라고 합니다.

 

즉 DNA의 고리 구조는 두 지점으로 결정됩니다. 코헤신이 잡아당기는 DNA의 지점, 이 잡아당기는 과정이 DNA에 붙은 CTCF에 걸려서 멈추는 지점이 그것이죠. 이 루프 추출 과정이 여러 계층으로 반복되면 DNA의 접힘구조에 패턴이 만들어지며, 이것이 곧 TAD의 구조를 결정합니다. TAD는 DNA가 서로 뭉쳐서 상호작용하는 구조 단위이기 때문에, 그 구조는 TAD 안의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과학자들은 염색질의 접힘 구조를 파악해 TAD의 패턴을 관찰하기 위해서 ‘Hi-C’라는 실험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우선 제한효소라는 유전자 가위로 세포핵 안의 DNA를 작은 조각들로 무작위적으로 자릅니다. 그 다음에 라이게이스라는 유전자 풀로 이 잘린 DNA 조각들을 다시 붙입니다. 대부분의 DNA 조각들은 원래 이어졌던 이웃 조각과 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부 조각들도 있습니다. 이런 조각들은 1차원 DNA상에선 멀리 떨어졌지만, DNA의 접힘 덕분에 3차원 공간상에서 가까워진 조각과 붙습니다. 이렇게 1차원상의 이웃 조각과 붙지 않고 3차원상의 가까운 조각과 붙은 DNA 부위들을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법(Next-generation sequencing)으로 분석하면, DNA의 어느 지점과 어느 지점이 3차원상에서 접촉됐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실타래를 일자로 펼칠 때 멀리 떨어지는 두 지점이 실이 엉키는 바람에 서로 접촉하고, 이런 접촉이 발생한 지점들을 모두 파악해낸다면 실이 엉킨 전체 구조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이런 Hi-C 기법에도 여러 한계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Hi-C 기법은 실험 기법의 특성상 수백만 개의 세포를 가져다가 DNA상의 어느 두 지점이 접촉했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수백만 개 세포의 ‘경향성’만 파악할 수 있을 뿐, 단일 세포 각각에서 DNA가 어떤 구조로 접혀있는지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개별 세포의 구조를 보는 새로운 방법

 

이번에 다루는 논문을 집필한 샤오웨이 장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은 이런 Hi-C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단일 세포 각각에서 염색질의 구조를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법은 DNA나 RNA를 형광으로 표지할 수 있는 형광 동소 교잡법(Fluorescence In situ Hybridization・FISH)을 응용했습니다. FISH는 탐침에 형광물질을 달아 DNA에 결합시켜서, 이 DNA의 위치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기법입니다. 워드 프로그램에서 Ctrl+F 단축키로 우리가 원하는 단어를 찾는 것과 유사하죠.

 

장 교수팀은 형광 탐침을 수천 개 제작해 전체 염색질 서열을 뒤덮게끔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형광 탐침을 순서대로 하나씩 염색질에 부착해 각각의 부착 위치를 초고해상도 이미징으로 관찰했습니다. 따라서 이 초고해상도 염색질 구조 추적 이미징 기법은 개별 세포 하나의 세포핵 안에 있는 염색질의 접힘 구조를 직접 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단일 세포를 볼 수 없었던 Hi-C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기법이 등장한 겁니다.

 

장 교수팀은 이 기법으로 수천 개 세포의 염색질 구조를 모두 개별적으로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바로 같은 종류의 세포도 염색질의 구조는 제각각 다르다는 겁니다. 그동안에는 Hi-C 기법으로 구조가 저마다 다른 수많은 세포들을 전체적인 경향성으로만 파악해왔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젠 초고해상도 추적 이미징 기법으로 비로소 세포 하나하나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경향성에서 멀리 벗어난 구조의 세포들이 있다는 사실까지도요.

 

생명과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CTCF와 코헤신 단백질을 세포에서 제거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였습니다. 기존 연구에선 CTCF와 코헤신 단백질을 제거하고 Hi-C로 염색질 구조를 관찰하면 모든 접힘 구조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루프 추출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단백질들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CTCF와 코헤신 단백질을 없앤 후, 염색질을 초고해상도 추적 이미징 기법으로 관찰한 결과는 이와 달랐습니다. 전체적인 통일성에서 벗어난 세포들이 늘어 불규칙해졌을 뿐, 세포 각각은 저마다의 접힘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CTCF와 코헤신이 사라지면 세포들의 접힘 구조가 중구난방이 되기 때문에 통계적 경향성만을 관찰하는 Hi-C로 들여다봤을 때는 마치 접힘 구조가 무너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초고해상도 추적 이미징으로 세포 하나하나를 직접 들여다보면, 세포 각각의 접힘 구조가 서로 달라져 불규칙해졌을 뿐이지 구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초고해상도 염색질 추적 이미징 기술은 염색질 구조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발생 과정에서 배아가 만들어지는 동안 각 세포들의 염색질 구조를 분석하거나, 줄기세포가 분화하는 동안에 염색질 구조가 변화하는 양상을 분석한 후속 연구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염색질 구조를 조절하는 메커니즘까지 더욱 정밀히 알아내고 있습니다.

 

생명은 창발적인 특징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이 창발성을 들여다보기 전엔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을 하나씩 각각 관찰하는 환원주의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숲만 보면 놓치기 쉬운 나무 하나하나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생태계 연구에 필수적이듯, 조직의 경향성에 대한 연구는 단일 세포들의 특징을 분석하는 연구와 반드시 병행돼야합니다.

 

새로운 실험 기법으로 연구 대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새로운 연구 분야가 열리고, 이 분야에서 다른 실험 기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그로 인해 다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과학이 발전하는 동력 중 하나입니다. 

 

 

 

박건희

KAIST 생명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다. 세포 핵 안의 염색질의 움직임과 단백질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유전자 발현 조절 메커니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toonivas@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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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건희 KAIST 생명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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