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파란 전 우주 시공간에 일렁이는 물결이다.
우주에 분포해 있는 수많은 천체들은 중력장의 물결, 즉 중력파를 만들어내고, 중력파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중첩돼 중력파 배경을 이룬다. 중력파 배경은 잡음과 통계적 특성이 동일하다. 무작위적이라는 뜻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은 규칙적인 신호를 보내는 전파 천체인 ‘펄사’를 통해 우주 잡음과 중력파를 구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2023년 6월 29일, 천문학자들이 20여 년을 쌓아온 중력파 배경의 결정적 증거들을 세상에 공개했다.
중력파 배경의 결정적 증거, 쏟아진 발표
2023년 6월 29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엔 이날을 ‘약속’한 논문들이 무려 18편이나 쏟아졌다. 논문을 작성한 이들은 전세계 총 5곳의 펄사 타이밍 어레이(PTA텾ulsar Timing Array)그룹이었다. 5개 PTA 그룹은 PTA라는 중력파 검출기를 사용해 나노헤르츠(10-9Hz) 진동수 영역의 중력파 배경(GWB텴ravitational wave background)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
PTA 그룹들의 공식 발표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위해선 두 개의 중요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중력파 배경이 무엇인지와 PTA가 어떻게 중력파를 검출했는지이다.
우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다. 그 중 밀도가 높고 강한 중력을 가진 천체를 ‘밀집성’이라 부른다. 블랙홀과 중성자별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강한 중력으로 항상 서로의 짝을 찾는다. 두 개의 천체가 만나면 ‘쌍성’을 이룬다. 쌍성은 오랜 시간 서로를 돌다 점점 가까워 지고 결국엔 나선을 그리며 합쳐진다. 이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중력파의 형태로 시공간에 퍼져 나간다.
우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밀집쌍성들이 있다. 이들은 빗방울이 수면에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물결들처럼 우주에 무수히 많은 중력파를 만들어낸다.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는 이러한 무작위의 중력파를 중력파 배경이라 부른다.
중력파 배경의 특성을 이야기할 땐 보통 정규분포, 정상과정, 등방성을 가정한다. 정규분포란 평균을 중심으로 대칭인 종 모양의 연속 확률분포다. 대부분의 자연 현상들이 정규분포로 수렴하기 때문에 중력파 배경도 정규분포를 따를 거라 가정한다. 정상과정은 어떤 통계적 특성이 시간에 따른 변화없이 일정한 과정을 말한다. 약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역사 속에 우리가 관측하는 시간 동안은, 중력파 배경이 일정하다는 가정이다. 또 우주의 어느 한 지점을 생각할 때, 이 지점으로 다가오는 중력파의 물결이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성질이라고 가정한다. 이것이 등방성이다. 여기에 더해 ‘선호 편광 없음’이라는 특징을 추가한다. 중력파가 시공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2가지 방식이 있는데 자연이 둘 중 특별히 더 편애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노헤르츠 대역의 파장은 대략 10년을 주기로 한번 진동한다. 이러한 진동수의 중력파가 발생하기 위해선 태양 질량의 1억 배가 되는 밀집쌍성이 필요하다. 이것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은하 중심부에 위치한 초대질량 블랙홀이다. 각 은하 중심부의 초대질량 블랙홀이 나선을 그리다 합쳐지는 단계가 되면 나노헤르츠 중력파를 발생시키고 이렇게 만들어지는 무수히 많은 중력파들이 우주를 가득 채우게 된다. 전세계 5곳의 PTA들은 이런 중력파 배경의 증거를 찾아냈다.
주기적인 별의 신호에 섞여 있던 잡음
펄사는 회전하는 중성자별이다. 일정한 주기의 전자기 펄스를 방출한다. 그 모습이 마치 항구의 등대가 돌아가며 빛을 비추는 것과 비슷하다. 지상 전파망원경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펄사를 관측한다. 펄사 관측 신호를 보면 일정한 주기로 피크가 발생하는데, 펄사가 회전을 하다 지구를 비추는 시점에서 신호가 일시적으로 강해지기 때문이다.
펄사는 매우 정밀한 시계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빠른 펄사는 1초에 무려 700번을 회전한다. 이렇게 빠르게 회전하는 펄사들은 따로 구분해 ‘밀리초 펄사’라고 부른다. 밀리초 펄사는 회전 주기가 극히 일정하다. 심지어 현존하는 시계 중 가장 정확한 원자시계의 ‘똑딱’ 주기보다도 안정적이다. 따라서 밀리초 펄사를 관측하는 것은 정밀한 우주 시계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단, 펄사 관측을 둘러싼 다양한 잡음들만 해결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제거하기 힘든 대표적인 잡음이 성간물질이다. 별들 사이의 공간은 사실 완벽한 진공은 아니고 물질들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성간물질이다. 전자기 펄스가 지구를 향하다 성간물질을 만나면 분산, 산란, 굴절, 회절 등의 온갖 고난을 겪으며 펄스 정보가 오염된다.
다루기 어려운 두번째 잡음은 바로 중력파 배경이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에 의하면 중력파도 전자기 펄스에 영향을 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주는 중력파 배경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전자기 펄스는 중력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펄사를 시계로 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것도 잡음인 것이다.
중력파 배경과 잡음을 구분하는 안테나 각도
원리를 이해 할 수 없는 잡음은 단순 소음에 불과하지만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귀중한 정보가 된다. 1979년 스티븐 데트와일러 미국 예일대 연구원은 우리 은하의 펄사를 중력파 검출기로 사용하는 과감한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doi: 10.1086/15759 한마디로 은하 크기의 중력파 검출기를 생각한 것이다. 데트와일러는 펄사와 지구 사이에 놓인 중력파가 전자기 펄스 주기를 정확히 어떻게 얼마만큼 변화시킬지에 대한 공식을 이론적으로 계산했다. 이 공식을 쓰면 잡음으로 여겨졌던 펄스 주기 변화의 관측 값을 반대로 중력파에 대한 정보를 추출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름다운 방법이었지만 데트와일러의 아이디어에는 ‘한 끝’이 부족했다. 성간물질로부터 발생한 잡음이 펄스 주기의 변화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중력파가 주는 효과는 아주 약해서 이러한 방식으로는 중력파 정보를 추출해내기가 어렵다.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제트추진연구소(JPL)의 로널드 헬링스와 죠지 다운스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doi: 10.1086/183954 이들은 두 개의 펄사를 동시에 관측해 배경 중력파의 신호를 증폭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과거 TV를 보기 위해 안테나를 설치하고, TV가 잘 나오게 안테나를 움직였던 것과 비슷하다. 헬링스와 다운스는 두 펄사의 사이각에 따라 중력파 배경 신호의 세기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공식을 이론적으로 유도했다.
두 펄스의 주기 변화 관측값에 상관분석 기법을 적용하면 중력파 배경의 신호는 증폭이 되고 성간물질의 잡음은 저감되며 이 대비 효과는 관측 시간이 늘어날수록 도드라진다. ‘헬링스-다운스 곡선’이라 불리는 이러한 수신 강도 패턴은 중력파 배경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패턴으로서 중력파 배경을 기타 잡음으로부터 구분해내는 지표가 됐다.
25년간 집념으로 증거를 모아온 이유
우리 은하에는 전파망원경으로 관측이 가능한 밀리초 펄사들이 굉장히 많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펄사가 늘어날 수록 펄사 관측시간은 n(n-1)/2배만큼 늘어난다. 그만큼 중력파 배경 신호는 증폭되고 잡음은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개의 펄사를 이용해 구성된 은하 규모의 중력파 배경 검출기가 바로 펄사 타이밍 어레이, 줄여서 PTA다.
펄사 관측 그룹 중 가장 오래된 EPTA는 무려 25년 전 처음 시작됐다. 유럽 5개국의 전파 망원경을 사용한다. 호주 PPTA와 북미 NANOGrav도 각각 18년, 15년 동안 펄사를 관측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관측을 한 이유는 PTA가 관측할 수 있는 중력파 배경의 진동수 범위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관측을 수행하는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대략 10년간 펄사를 관측했을 때 나노헤르츠에서 마이크로헤르츠(10-6Hz)의 진동수 범위를 관측할 수 있다. PTA가 찾고자 하는 중력파 배경은 초대질량 블랙홀들이 만들어 내는 나노헤르츠 영역에 있기 때문에 PTA들은 이번 발표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제 6월 29일 아카이브에서 일어났던 ‘PTA 도배 사건’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자. 이들은 정말 중력파 배경을 발견한 것인가? 중력파 배경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헬링스-다운스 패턴이 나타나는지를 보는 것이다.
각 PTA들의 발표 결과들을 살펴보면 중력파 배경의 존재에 대해 낮게는 2σ(시그마)에서 높게는 4σ까지 보고하고 있다. 2σ의 경우 만약 중력파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관측될 확률이 4.6%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4σ는 심지어 0.0006%의 확률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정도면 그냥 그 존재를 믿고 다른 할 일을 하겠지만 천체물리학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5σ(확률 0.00006%)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중력파 배경의 발견을 믿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논문들에도 다들 발견이라는 단어를 피해 굳이 증거라고 표현했다.
PTA가 내놓은 강력한 중력파 배경 증거 앞에 과학동아 독자라면 “이 중력파 배경이 정말 초대질량 블랙홀로부터 발생한 중력파인가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은하의 분포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초대질량 블랙홀로부터 만들어질 중력파 배경의 세기와 스펙트럼을 일정 부분 예측하고 있다. 이번 PTA 논문들이 발표한 결과도 이 예측치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비슷한 세기와 스펙트럼을 주는 또 다른 과학적 이론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우주의 나지막한 숨소리, 한국도 들어야
나노헤르츠 영역의 중력파 배경과 관련한 이론적 모형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PTA 관측이 가져다줄 귀중한 단서들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전세계 PTA들은 벌써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IPTA(Int-ernational PTA)를 통해 내년 초 5σ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IPTA란 전세계 5개 PTA를 모은 국제 그룹이다. 관측하는 펄사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유효 관측 시간이 그 개수의 제곱에 비례해 증가하기 때문에 PTA는 모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또한 같은 펄사를 관측하더라도 여러 전파망원경이 서로 다른 진동수 영역대를 조사하면 성간물질 잡음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다보니 PTA 관련한 연구가 많이 늦었다. 대부분의 중력파 연구자들이 라이고(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와 같은 간섭계형 중력파 검출기 연구에 집중하고 있고, 국내 전파망원경도 고주파 관측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SKA(Square Kilometre Array)’라고 하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차세대 전파망원경 국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SKA 프로젝트로 총 200개의 접시형 망원경과, 총 13만 여 개의 안테나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호주에 설치된다. 이 SKA가 가동을 시작하면 우리가 한 번에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밀리초 펄사의 개수가 무려 1000개에 육박한다. (현재는 약 50개다.) 이렇게 되면 중력파 배경에 대한 천문학은 정밀 과학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땐 현재 천체물리학자들이 중력파 배경에 대해 가정하고 있는 정규분포, 정상과정, 등방성, 선호 편광 없음이 실제로는 조금씩 맞지 않는다는 사실도 관측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중력파 배경이 기본 가정에서 벗어나는 이유를 살피다 보면 우리 우주의 역사와 기원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쏟아질 것이다. 만약 한국이 SKA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이 미래를 우리가 주도할 수도 있다. 우주가 뱉어내는 나지막한 숨소리를 듣는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심장이 뛴다.
박찬
KAIST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센터, 서울대 이론물리센터,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 중력응용연구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현재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순수물리이론연구센터(CTPU)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중력파 연구 협력단(KGWG)과 인도 펄사 타이밍 어레이(InPTA)의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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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설명
중력파 배경의 원인
중력파 배경은 우주론적 원인과 천체물리학적인 원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PTA가 관측한 것은 천체물리학적 배경이다. 우주론적인 원인은 약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할 때 만들어진 중력파 배경이다.
라이고(LIGO)
라이고는 지구에 도착한 중력파를 레이저를 통해 두 개의 빛으로 나누고 이 빛이 서로 만나 일으킨 간섭을 검출해 중력파를 관측한다. 2015년 9월 두 개의 블랙홀이 병합하며 발생한 중력파를 최초로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