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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온 생명체] ‘간・담・췌’ 장기의 상호작용을 보다 '어셈블로이드'

여러분들은 나중에 어떤 업종에서 일하고 싶나요? 우리 사회는 생존의 기본을 담당하는 농업, 어업, 축산업 종사자들부터 의료, 에너지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로 구성돼있습니다. 이 모든 직업군의 존재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로 사회 구성원들이 불편함 없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세포들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포는 생명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기능적 기본 단위이면서도, 여러 세포들이 함께 모여 보다 조직화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때, 세포들이 긴밀한 협력을 통해 특정 기능을 하는 단위를 조직(tissue)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여러 조직들이 다시 모여 더 복합적인 기능을 하는 단위를 기관(organ・장기)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신경세포 하나하나는 우리 몸에서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기본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수십 억 개의 다양한 신경세포가 모이면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뇌’라는 아주 복잡한 기관이 됩니다.

다양한 재료로 짓는 집, 어셈블로이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여러 종류의 세포를 모아 몸 속 기관과 유사한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지난 호에서 오가노이드(organoid)를 소개했지만, 대부분의 오가노이드 기술은 아직 하나의 조직, 그것도 주로 상피조직만을 배양하는 기술이라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분이 건축가라고 가정해봅시다. 누군가가 작은 주택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동일한 건물을 지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건물을 건설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딱 한 가지, 나무뿐이라고 하네요. 나무만으로도 건물의 겉모습이나 구조는 어느 정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부 구조, 견고함, 기능적인 부분들이 완전히 같은 집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돌, 흙, 시멘트, 철근, 유리 등 다양한 재료가 있어야 사진 속의 건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사용되는 오가노이드의 대부분은 한 종류의 세포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보통은 그 하나의 세포가 줄기세포이기 때문에 몇몇 종류의 오가노이드는 실제 인체에 버금가는 다양한 세포를 갖기도 하죠. 하지만 오가노이드 제작에 사용되는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가 아니라 이미 운명이 결정된 성체줄기세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직에 따라 다르지만, 운명이 하나의 길로 확정된 대부분의 성체줄기세포는 인체 조직이 가진 세포의 다양성을 완전히 모방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세포를 혼합해 오가노이드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셈블로이드(assembl-oid)’의 첫 등장입니다. 어셈블로이드라는 이름은 ‘조립(Asse-mbly)’과 ‘닮았다(-oid)’는 두 단어를 합쳐 지어졌습니다.

 

미국 신시내티 아동병원 제임스 웰스 교수팀은 주로 상피세포만 배양하던 오가노이드 기술을 혁신하는 데 힘을 쏟아 왔습니다. 웰스 교수는 장과 연결된 장 신경망을 재현하기 위해, 신경능선세포들과 장 오가노이드를 결합시켰습니다. 놀랍게도 이 신경능선세포들은 장 오가노이드와 만나 신경망을 구성했고, 마치 실제 우리 몸속 신경세포들처럼 장 조직의 운동을 유도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신근유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팀이 방광 오가노이드를 기존보다 발전시켜, 실제 방광과 더욱 유사한 형태의 어셈블로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방광 섬유아세포와 근육세포들을 방광 오가노이드와 결합해 만든 이 어셈블로이드는, 실제 방광 구조와 유사하게 상피 조직을 기질조직과 근육조직이 감싼 형태로 구성돼있습니다. 또한 호르몬을 가하면 마치 실제 방광처럼 근수축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연구팀은 방광 어셈블로이드를 이용해서 방광암세포와 기질조직 간의 상호작용도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오가노이드 기술로는 관찰할 수 없었던 방광의 기능적 측면들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겁니다. 이처럼 오가노이드를 한 단계 발전시킨 어셈블로이드를 이용하면 인체 기관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을 더욱 정교하게 모방할 수 있습니다.

간-담낭-췌장,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다시 우리가 건축가라고 생각해봅시다. 나무, 돌, 흙여러가지 재료로 다행히 우리는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집에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집 주변에 식료품 가게와 식당, 학교, 도로 등 다양한 시설도 필요합니다. 땅과 물, 공기 등 생존에 필수적인 환경 요소들도 빼놓을 수 없고요. 잘 지어진 모델 하우스가 그곳에서 실제로 살 사람들의 생활까지는 보여주지 못하듯 집, 주변시설, 공기 등을 각각 따로 보면 그곳에서의 일상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가노이드 기술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오가노이드는 하나의 조직을 재현하고 연구하는 데에는 특화돼있지만, 다양한 조직과 장기가 함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인체의 기능은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9년 미국 신시내티 아동병원의 타케베 타카노리 교수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바로 역분화 줄기세포를 분화시키는 과정에서, 전방 위장관 전구세포와 후방 위장관 전구세포를 함께 붙여서 오가노이드 형태로 만든 겁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두 전구세포가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간-담낭-췌장 전구세포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이 세포들은 분화과정을 거쳐 간, 담낭, 췌장 세 종류의 장기가 연결된 형태의 어셈블로이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몸속 장기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거죠.

 

한편 미국 스탠퍼드대 세르지우 파스카 교수팀은 뇌 오가노이드와 척수 오가노이드, 그리고 근육 오가노이드를 서로 연결해 어셈블로이드를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각각의 서로 다른 오가노이드 부분들이 가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신경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뇌 오가노이드 부분에만 신호를 줘도 그 신호가 척수 오가노이드를 거쳐 근육 오가노이드의 수축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어셈블로이드가 오가노이드 여러 개를 물리적으로 연결시킨 단순한 덩어리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해 인체 조직과 유사한 기능을 보이도록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어셈블로이드를 넘는 새로운 도약

 

어셈블로이드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몸속 장기를 완전히 모방하는 체외배양기술을 확보해 기초과학 연구와 의학에 직접 적용하는 겁니다.

 

목표 달성은 오가노이드, 어셈블로이드 기술 외 다른 기술들의 혁신으로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어셈블로이드 제작의 복잡성을 줄이고 좀 더 효율적으로 인체를 모방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죠.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한 여러분들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배아줄기세포가 갖고 있는, 모든 세포로 변모할 수 있는 설계도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가령 실제 사람의 장기와 유사한 형태이지만 세포들은 하나도 없는 구조물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배아줄기세포와 다른 세포들을 함께 키워보는 것이죠. 과연 배아줄기세포들이 스스로 건축가가 돼 장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다음 6월호에서 자세히 알려 드립니다.

 

 *성진우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포유류 임신 시 유선줄기세포 발달과 유방암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포유류 배아의 인공 제작 및 합성을 연구하고 있다. jinwoo.seong@imba.oeaw.ac.at / sjw11071@gmail.com

 

*염민규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성체줄기세포와 대장암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줄기세포연구소에서 유전학적 생쥐 모델과 수학적 모델링을 접목해 줄기세포 간의 경쟁 과정을 연구했다. 현재는 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 줄기세포 조절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minkyu.yum@kaist.ac.kr

202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성진우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 박사후연구원, 염민규 KAIST 의과학대학원 조교수
  • 에디터

    이영혜
  • 디자인

    박주현
  • 일러스트

    남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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