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마 바다에서 오늘날의 지구가 되기까지, 우리 행성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화산 폭발은 지구가 현재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죠. 이런 지구의 진화를 이해하고 기원을 파헤치려는 노력은 인류의 근본적인 궁금증에 기인합니다.
지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적으로 관찰하면 좋겠지만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신 인류는 지진파 관측이라는 멋진 대안을 찾았습니다. 지진파로 관측해보니 지구의 맨틀에는 지구의 표면보다 훨씬 변화 무쌍한 내부 구조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왜 생긴 걸까요.
지진파 불연속면이 생기는 이유, 광물 상전이
지진파를 관측해보면 같은 맨틀이라도 지진파의 속력이 갑자기 달라지는 불연속면이 존재합니다. 지진파 불연속면이 생기는 이유는 맨틀을 이루는 광물들이 고온, 고압인 지구 내부 환경에서 상전이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상전이는 물질이 온도나 압력에 의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뀌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진파 불연속면은 전 지구적으로 지하 660km부근에서 나타나는데, 이 현상은 일반적으로 맨틀을 구성하는 광물인 링우다이트((Mg,Fe)2SiO4))가 브리지머나이트((Mg,Fe)SiO3)와 페로페리클레이즈((Mg,Fe)O)로 상전이한 결과입니다. 이런 상전이를 ‘RBP 상전이’라고 부릅니다.
지진파 불연속면은 맨틀을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지하 660km 지진파 불연속면은 맨틀의 전이대와 하부 맨틀을 나누고 있죠. 재밌는 건 이런 지진파 불연속면이 매끈하지 않다는 겁니다. 어떤 부분은 좀 더 솟아 올라있고 어떤 부분은 푹 꺼져 있습니다. 마치 지구 표면의 산맥이나 계곡처럼요. 예를 들어 통가 섭입대(지구의 지각을 이루는 판이 서로 충돌해 한쪽이 다른 쪽의 밑으로 들어가는 영역)와 같이 오래되고 온도가 낮은, 해양판이 맨틀로 들어가는 섭입대 지역에서는 지진파 불연속면이 지하 660km 지점이 아닌, 지하 750km 지점에서 관찰됩니다.
이런 현상은 RBP 상전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진파 불연속면이 왜 가라앉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이번 논문의 연구자들은 온도에 따라 상전이가 일어나는 압력의 범위가 급격히 바뀌는, 아키모토이트((Mg,Fe)SiO3) 광물의 상전이(아키모토이트에서 브리지머나이트로의 상전이, 이하 ‘AB 상전이’)를 분석했습니다.
고온고압 지구 속 재현해보니
지구 내부를 구성하는 광물들은 지표보다 훨씬 더 높은 압력과 온도에서 상전이를 일으킵니다. 지구물질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고온, 고압 환경을 구현하는 장치와 광물의 구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로 상전이를 연구합니다. 이번 논문에서는 멀티앤빌프레스라는 장비로 지구 내부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고, 광물에 X선을 쪼인 뒤 회절되는 빛을 이용해 RBP 상전이와 AB 상전이를 분석했습니다.
1260K 이하의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는 AB 상전이가 RBP 상전이보다 더 깊은 지하(높은 압력)에서 일어납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저온인 영역에서는 압력이 증가할 때 링우다이트가 먼저 아키모토이트와 페로페리글레이즈로 상전이하는 것이, 링우다이트가 브리지머나이트로 곧바로 상전이하는 것보다 쉽다는 의미입니다(이하 ‘RAP 상전이’). 링우다이트가 상전이한 결과물인 아키모토이트가 브리지머나이트로 다시 상전이하려면 압력이 더 높아야 합니다. 저온에서는 AB 상전이가 매우 높은 압력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저온에서는 링우다이트가 먼저 아키모토이트로 상전이한 다음, 더 높은 압력에서 이 아키모토이트가 브리지머나이트로 상전이하게 됩니다. 연구팀은 저온 영역에서의 이 AB 상전이가 약 900K, 지하 740km에 해당하는 압력일 때 일어날 수 있다고 유추했습니다. 고온 영역에서는 660km에서 발생하는 지진파 불연속면이 80km 가까이 내려간 겁니다.
45억 년 지구 진화 비밀을 밝히다
이번 논문은 지진파 불연속면이 특정 구간에서 더 깊은 이유를 규명했습니다. RBP 상전이에 의해 지진파 불연속면이 나타나는 고온의 섭입대와는 달리, 저온의 섭입대에서는 RAP 상전이와 AB 상전이가 일어나므로 압력이 더 높은 영역, 즉 더 깊은 지점에서 AB 상전이가 일어나고, 그 결과로 지진파 불연속면이 더 깊은 지하에서 관측될 수 있다는 거죠.
이번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팀은 지구 내부 환경과 유사한 고온, 고압 환경을 구현하고 동일한 온도 조건에서 압력을 세밀하게 조절해 실험했습니다. 이로써 특정 온도에서 상전이가 발생하는 깊이와 압력의 범위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냈습니다.
깊은 지하 속 역동적인 맨틀의 형상은 지진파 불연속면의 위치가 달라진 결과입니다. 이번 논문은 지구 내부의 구조가 진화해 온 역학을 유추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AB 상전이 영역과 같이 온도에 따라 압력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는 상전이 영역은 주위 맨틀에 비해 부력을 지닙니다. 이런 영역은 하부 맨틀까지 더 깊이 내려가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상전이가 서서히 일어나는, 온도가 높은 섭입대의 경우 하부 맨틀까지 섭입될 수 있습니다.
지구 속 맨틀의 경계면이 울퉁불퉁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지난 45억 년 동안 지구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구 핵이 가진 열이 어떻게 맨틀까지 전달되는지, 열을 받은 맨틀이 어떻게 흐르는지, 맨틀 아래로 내려간 지각판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등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보다 여러분이 앞으로 알아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필자소개
이아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5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2017년에 석사, 2022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2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우수박사학위논문상을 수상했다. lac0312@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