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빵 없습니다.”
큼지막한 종이가 편의점마다 붙어있는 것을 보며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TV보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길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다. 내가 한창 빠져있던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은 지금도 방영 중인 교양 프로그램 ‘6시 내고향’과 같은 시간에 방영했다. 집에 한 대 뿐이던 T V는 아버지의 취향에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보여줬지만, 대부분 문만 열고 나가면 볼 수 있는 시골 풍경들이었기에 도무지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노랗고 귀여운 전기 쥐를 볼 수 없게 된 나는 차라리 밖에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좋았다.
개구쟁이 소년, 과학고에 진학하다
나는 어릴 때 농촌에서 자랐다. 중학생 때까지도 논두렁에서 하는 물총싸움과 술래잡기, 곤충채집이 제일 재밌었다. 학교 끝나고 동생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길가에 익어가는 오디를 따 먹느라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부모님은 축산업을 하셨는데, 저녁마다 우유를 짜고 난 젖소에게 건초를 먹이는 건 내 일과였다. 젖소들에게 밥을 다 주고 나서 하늘을 보면 항상 오밤중이었다. 밤하늘 별자리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 목동이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내 처지에 딱 맞는 말이라고 느꼈다.
농촌을 벗어나고 싶던 나는 운 좋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 과학 중에 자신 있는 전공 분야를 선택했다. 나는 수학을 잘 몰랐고, 물리나 화학도 너무 어려웠다. 생물이나 지구과학을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천문학 공부를 더 해볼 수 있는 지구과학이 재미있어 보였다. 별자리만 겨우 구분하던 내게 지구과학 책들은 더 넓은 우주를 보여줬다. 우주는 한없이 방대하고 놀라웠고, 계속해서 우주를 알아갈 수 있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한국 최초 우주인을 꿈꿨지만
우주에 관한 호기심이 폭발하던 나는 여러 책들을 닥치는 대로 사 모았다. 그때 처음 접한 것이 매달 흥미로운 과학 기사를 실어주는 과학동아였다. 물론 천문학과 관련된 기사만 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읽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천체 관측 동아리에서 후배들과 이야기할 때도 과학동아의 기사를 많이 써먹었다. 2005년 4월호에 실린 우주정원에 대한 기사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2006년 과학동아에는 놀라운 기사가 실렸다. 한 국에서도 최초의 우주인을 배출하기 위해 온라인 공모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최초 우주인을 배출해 유인 우주기술을 습득하고, 우주 개발에 대한 국민, 특히 청소년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이중 두 번째 목표는 확실하게 달성한 듯했다. 짧은 기간 동안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우주인이 되고자 모였고, 나 역시 지원을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하지만 끔찍하게 좌절해야만 했다. 지원 자격은 만 19세 이상의 국민이었다. 신청 자격 미달이었다.
1년 쯤 지난 후 한국 우주인 후보 2명이 뽑혔다. 나는 그들이 우주로 가는 준비 과정을 계속해서 쫓으며 한편으론 후속 우주인 선발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소식은 없었고 우주로 가고 싶다는 내 안의 불타는 열망도 천천히 꺼져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천문학에도 흥미를 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인에 대한 소식도 찾아보지 않게 됐다. 대신 대학 진학을 위해 생물 공부를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1학년 때부터 생물 공부를 해왔는데, 3학년이 돼서야 시작한 내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성적과 장학금을 고려해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내게 축산 분야를 공부할 것을 추천하셨지만 소는 키우기 싫었던 나는 원예전공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동물보다는 식물을 키우는 편이 더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예 분야에서는 채소와 과수, 화훼(꽃이 피는 풀 등 관상용 식물)를 재배하고 육종하 는 기술을 다룬다. 대학생이 갓 됐을 땐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 꽃이나 키우며 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계획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선배 한 명이 자신이 다니는 연구실에 나를 초청했다.
‘우주농업’에 빠지다
‘시설 원예 및 환경조절공학 연구실'. 첫인상은 원예과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연구실이었다. 하지만 직접 들어가 보니 그 안에서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추가 발광다이오드(LED) 전등 밑에서 흙도 없이 양분이 든 액체만으로 자라고 있었고, 식물 재배실 안에는 다양한 기계와 장비들이 작동 중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식물을 기를 수 있는 ‘수직농장’이었다. 연구실을 운영하는 교수님은 이것으로 우주에서도 식물을 기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주라는 단어는 내 기억 저 편에 묻어뒀던 열정을 다시 꺼내 폭발시켰다.
수직농장은 햇빛 없이 전등을 이용해 수경재배로 식물을 기른다. 내부의 온도나 습도, 기체 농도는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으로 조절한다. 밀폐가 잘 된 수직농장에서는 재배 과정 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물질을 다시 쓸 수 있다. 나는 밀폐된 수직농장에서 버섯이 뿜어낸 이산화탄소를 상추의 광합성에 이용하는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수직농장에 쓰이는 다 양한 기술을 배우면서 우주에서 식물을 길러 식량으로 이용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점차 생겼다.
우주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잊기 쉽지만 극한의 환경을 자 랑한다. 우주는 진공 상태이고 기온이 영하 수백℃까지 떨어 진다. 물론 다른 행성 표면에 간다면 조금 상황이 나아지겠지 만, 그나마 가 능성이 가장 높은 화성도 현재는 인간이 살 수 없다. 인간을 우주에서 살려두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기술을 생명지원시스템(LSS・life suppor t s ys tem)이라고 부른다.
생명지원시스템에는 우주복, 우주정거장, 행성 기지 등 다양한 구조와 형태를 가진 장비나 건물들이 포함된다.
식량을 만들어내는 장비도 중요한 생명지원시스템이다. 짧게 우주를 다녀오는 사람은 식량을 지구에서 들고 나가면 되지만, 몇 달 이상 우주에 있을 생각이라면 도시락을 챙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때부터는 폐기물을 이용해 식량을 만들어 내야 한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화성에서 자신의 대변으로 감자를 키운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일이 아니다. 나는 요즘 달의 토양과 유사하게 만든 흙으로 식물을 기르는 기술에 관심이 많다.
우주에 사람을 보낼 수 있는 기술은 지구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팜이다. 스마트팜은 온실이나 수직농장 내부 환경을 자동으로 조절해 자라는 식물에게 적합한 환경을 조성한다. 스마트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격으로 물을 줄 수 있다. 나는 이런 기술들을 공부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농업 전문대인 연암대에서 일을 시작했다.
꿈은 먼 미래에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은 혼자 힘으로 발사체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달에도 탐사선을 보낼 예정이다. 그때가 되면 오랜 기간 쉬었던 우주인 선발도 재개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