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부검으로 사인 밝히는 ‘동물 국과수’를 찾다

엣지 사이언스

경북 김천에는 조금 특별한 실험실이 있다. 실험대 위에는 마치 방송국에서나 볼법한 커다란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이 카메라를 통해 빠짐없이 기록되고, 때로는 생중계되기도 한다. 모두 동물들의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다.

 

“잠시만요. 지금 막 사체가 도착해서요.”


5월 6일 경북 김천에 위치한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본부) 질병진단과 연구실에 들어서자 바삐 부검 채비를 갖추고 있는 연구원들이 보였다. 동물 학대가 의심돼 경기 하남경찰서에서 의뢰한 사건의 샘플이 지금 막 도착한 참이었다. 목에 끈이 묶여 죽은 채 발견된 고양이의 사인을 밝혀달라는 요청이었다.

 

목 매달린 고양이 사망 원인은?


김아영 검역본부 질병진단과 수의연구사의 주도로 부검이 시작됐다. 목이 졸린 채로 발견됐기 때문에 질식사를 먼저 의심해야 했다. 김 수의연구사는 목 주변의 털을 밀고, 상처를 살폈다. 별다른 외상이 보이지 않자 몸 내부를 살피기 위해 배를 갈랐다. 가스가 차 크게 부풀어 오른 위가 먼저 눈에 띄었다. 폐와 위, 간, 소장, 대장을 차례로 떼어내 병변을 살폈다.


“죽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장내에 가스가 차기도 하는데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에요. 췌장에 큰 출혈이 있는 걸 보니 췌장염이 의심되고요. 간에도 반점이 있는 걸 보니 문제가 있어 보여요.”


장기의 병변(비정상적인 세포나 조직)을 살피던 김 수의연구사는 조직을 각각 조금씩 떼어냈다. 추후 조직검사를 통해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부풀어 올랐던 위는 가스를 제거한 뒤 약·동물검사를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보냈다. 김 수의연구사는 “조직검사를 거쳐 사인을 확정하게 되겠지만 일단은 동물 학대보다는 질병사에 무게가 쏠리네요”라고 말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사람에 의한 학대는 아닌 것 같았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데는 평균 14일이 걸린다. 부검을 해서 병변 부위를 확인하고, 모르는 분야는 사례조사나 문건조사를 통해 확인한다. 보통 수의사 한 명에 2~3명의 연구원이 한 팀을 이뤄 진행한다. 부검 과정은 사진으로 꼼꼼히 남기고, 필요한 경우 생중계하며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나중에 증거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학대 의심 부검 의뢰, 3년만에 2배 증가


검역본부 질병진단과는 포유류의 질병을 연구하고 진단하는 곳이다. 주로 부검을 통해 동물의 사인을 밝히고, 조직학적 검사로 병이 생긴 원인(병리)을 연구한다. 동물이 병에 걸리면 특이한 병변을 나타낸다.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관상동맥이 막히고,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장의 색깔이 빨갛게 변하는 식이다. 이런 증상에서 단서를 얻어 질병을 추적한다. 사실상 국내에서 동물의 부검을 진행하는 가장 큰 기관이다.


급사한 경우, 집단폐사한 경우, 적절한 치료를 했는데도 죽은 경우 등 주로 임상 수의사가 판단하지 못한 사례가 질병진단과로 모인다. 폐렴, 설사 등 흔한 증상이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을 때 수의사가 개별적으로 의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경찰서에서 동물보호법 위반 의심 사례로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동물 학대가 의심돼 부검을 의뢰하는 경우는 2019년 102건이었던 데 반해 지난해에는 228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도 3월까지 92건이 접수돼 지난해 수치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현 검역본부 질병진단과 수의연구관은 “동물 학대에 대한 인식이 매년 달라지는 것을 체감한다”며 “실제 동물 학대가 늘어난 것도 있겠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지며 부검을 의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길에 고양이가 죽어 있어도 그냥 넘어갔다면, 최근에는 동물 학대를 의심해 신고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동물 학대는 결국 인간을 대상으로 한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간 많은 통계로 증명됐다. 미국 노스이스턴대와 동물구조단체 MSPC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1975년부터 1996년까지 고발된 동물학대범 268명 중 45%는 살인, 36%는 가정폭력, 30%는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다. 동물학대범이 사람을 폭행할 확률은 일반인보다 5배 더 높았다. 국내에서도 강호순, 유영철 등 연쇄살인범들에게서 흔히 동물 학대 전력이 발견된 바 있다.

 

 

동물 학대, 인간 향한 범죄로 이어진다


실제 이경현 수의연구관도 비슷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올해 3월, 경북 포항 폐양어장에 고양이를 스무 마리 이상 가둬놓고 9마리 이상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부검을 담당했던 이 수의연구관은 “고양이를 집어던지거나 해부하는 등 각기 다른 방법으로 죽인 것을 보고 ‘연습을 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동물보호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한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다양한 연구에서 동물 학대를 약자혐오 범죄로 본다”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전조증상이라고 경고한다”고 말했다.
동물 복지 수준을 높이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서 최근에는 31년 만에 동물보호법이 전면 개정됐다. 4월 26일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보호법 전부개정법률’을 공포하며 2023년 4월 27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 공간이나 먹이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학대로 간주하는 등 동물 학대의 범위가 늘어났고, 처벌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됐다.


하지만 동물 학대 사례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동물보호법 위반 범죄 발생 건수는 1071건으로 2011년 98건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 중 실제로 처벌되는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2019년까지 통틀어 단 10건에 불과하다.


이경현 수의연구관은 “동물보호법을 위반해도 증명하지 못해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동물이 살아있을 때 죽이거나 가해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률 강화와 더불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질 필요성이 제기된다. 수의법의학센터, 일명 ‘동물전용 국과수’가 필요한 이유다.

 

‘동물 국과수’ 기능 한곳으로 모아야


검역본부는 수의법의학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구복경 검역본부 질병진단과장은 “동물 학대 관련성 진단을 신속 정확하게 원스톱 진단할 수 있는 수의법의학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동물 국과수’의 역할을 검역본부와 수의대, 지자체 동물위생시험소가 경찰청, 국과수와 공조하며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있다. 독성검사는 사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검역본부에는 분석기기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 국과수에 의뢰하고 있다. 이경현 수의연구관은 “국과수에서도 초콜릿처럼 사람에게는 무해하지만 동물에게 치명적인 약물은 검사할 수 없다”며 “동물에 특화된 분석기기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의법의학센터가 생겨도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수의법의학자가 되려면 병리학을 기본으로 해부학, 독성학 등 다방면의 지식이 필요한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전문기관도 없다. 구복경 과장은 “교수가 되는 것 외에는 높은 퀄리티의 시장이 없어 국내 수의병리학 전공자가 크게 줄었다”며 “검역본부가 스스로 교육에 나서고,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천=이영애 기자
  • 사진

    장춘구
  • 디자인

    이명희

🎓️ 진로 추천

  • 수의학
  • 법학
  • 경찰행정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