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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이 사람을 두 번 만났을 때]유리 한 장에 갈린 생과 사, 솔부엉이

 

‘야생동물이 사람을 두 번 만났을 때’ 기사에는 유난히 조류가 많이 등장한다. 구조센터에서 생과 사를 달리하는 동물 중 조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조센터에서 구조한 1만 1269마리 중 조류는 7079마리로 전체의 약 63%다. 


조류는 국내에 서식하는 척추동물 중 어류 다음으로 많다. 구조센터에 어류가 구조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조류가 가장 많은 것은 언뜻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여긴 위험에 빠진 동물을 구하는 구조센터다. 조류를 구조할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조류를 위협하는 요인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조류에게 가장 치명적인 위협 요인은 유리창이다. 건물, 방음벽, 버스정류장 등 유리 구조물은 어디에나 있지만 조류는 건너편 풍경을 그대로 비춰주는 투명한 유리를 장애물로 인지하지 못한다. 구조센터가 있는 충남 지역에서는 도심이 발달한 아산과 천안에서 유리창 충돌로 인한 구조 신고가 가장 많이 접수된다.

 

 

  유리창에 안구를 정면으로 부딪히다  


지난해 5월 어느 날에도 도심지의 커다란 유리창 아래에서 솔부엉이 두 마리가 각각 구조됐다. 5월이면 여름 철새인 솔부엉이가 막 한국에 도착한 시기다. 두 개체는 공통적으로 안구가 부어 있고 출혈이 나타날 정도로 손상된 상태였다. 조류는 두개골에서 안구 부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특히 올빼밋과인 솔부엉이는 전방 집중적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안구가 안면부에 위치해 있다. 유리창 충돌 시 안구 부상이 클 수밖에 없다.


구조센터로 데려와 형광 염색으로 안구를 자세하게 검사했다. 각막은 투명하기 때문에 상처 부위를 놓치기 쉽다. 형광 염색을 하면 각막에 상처가 생긴 부분이 더 진하게 나타난다. 한 개체는 양쪽 안구의 각막이 손상된 상태여서 항생제 성분이 있는 연고로 치료를 했다. 다른 개체는 수정체와 홍채 사이(전안방)에 출혈이 계속돼 스테로이드 성분이 있는 연고를 사용했다. 하지만 두 개체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달리했다. 


이들은 구조 당시 안구 손상뿐만 아니라 뇌진탕이 심해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구강 내 출혈도 있었는데, 이는 내부 장기 손상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다. 게다가 치료 내내 기력이 없어 스스로 먹이를 먹지 못해 강제로 먹이를 급여했다. 그래도 곧 기력을 되찾으리라 기대했지만, 두 개체 모두 충돌 시 입은 장기 손상과 뇌진탕, 극심한 스트레스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속이 빈 가벼운 뼈는 충돌에 치명적  


올해 여름에도 유리 구조물에 충돌한 솔부엉이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지난해의 솔부엉이와 마찬가지로 양쪽 안구 출혈과 뇌진탕 증상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우측 오훼골까지 골절돼 있었다. 오훼골은 양서·파충류와 조류에서 흉부를 형성하는 뼈로, 포유류에서는 퇴화돼 어깨뼈의 오훼돌기로 남아 있다. 


조류의 뼈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이 비어 있다. 비행에는 유리하지만 충돌에 쉽게 부서진다는 약점이 있다. 천지에 충돌할 것이 넘치는 도심지에서는 더욱 치명적이다.


골절 치료를 위해 우선 솔부엉이 날개 전체를 붕대로 8자 모양으로 두른 다음(바디랩) 몸통과 싸매 날개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뇌진탕의 영향인지, 솔부엉이는 포대 처치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솔부엉이는 골절된 부위가 완벽히 붙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비행을 해낸 덕분에 치료가 2주만에 끝났다. 치료가 늦어졌다면 여름 철새인 솔부엉이가 이동 시기를 놓쳐 일 년을 꼬박 구조센터에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10년 동안 쌓인 구조센터의 구조 이력을 종합해 보면 솔부엉이는 유리 구조물 충돌로 인한 피해가 특히 빈번한 종이다. 텃새가 아닌 철새이기에 익숙하지 못한 지형을 매번 이동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조류 중에서도 맹금류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비행해 피해가 더 크다.

 

  버드세이버 대신 5×10 규칙을 적용해야  


한국에서는 연간 800만 마리 이상의 야생 조류가 유리 구조물 충돌로 피해를 입고 있다. 번식기에는 유리 구조물 충돌로 어미가 죽으면 새끼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의미한 죽음을 막기 위해선 비행하는 새가 유리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도록 조치 해야 한다.


과거에는 포식자인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버드세이버)를 붙였다. 버드세이버를 포식자의 그림자로 착각해 유리창 근처로 오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틀렸다. 피식자인 조류들은 버드세이버를 포식자로 오인하지 않고 단순히 장애물이라 생각했으며 버드세이버가 붙지 않은 빈 유리창을 향해 곧장 비행해 충돌하고 말았다. 버드세이버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던 때엔 구조센터 역시 버드세이버를 붙였고 유리창에 조류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현재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5×10 규칙이다. 유리 구조물에 세로 5cm, 가로 10cm 미만의 간격으로 원 모양을 그려 넣는 방법이다. 원 하나의 지름은 최소 6mm 이상이어야 한다. 구조센터의 유리창에도 5×10 규칙을 적용한 다음 충돌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5×10 규칙을 점점 확대해 나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적용되지 않은 곳이 훨씬 많다. 사고도 줄지 않고 있다. 만약 유리 구조물에 충돌한 조류를 발견하면 직접 가까운 구조센터로 데려가는 것이 그나마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발톱과 부리에 손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 박스에 옮겨 입구를 닫은 채로 데려오면 된다. 충돌 조류가 외관상 심한 손상이 없어 보여도, 실제 상태는 훨씬 심각한 경우가 많다. 부디 외면 말고 행동해주시길 부탁드린다. 

※필자소개

김리현. 공주대 특수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재활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다. 세상을 돌며 다양한 동물들을 마주하고 싶어 약 10개월의 여행을 떠났다.
세계의 다양한 동물원과 국립공원을 방문하고, 뉴질랜드 북섬의 야생동물 센터 ‘푸카하 마운트 브루스’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앞으로 더 많은 배움을 통해 야생동물, 나아가 지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krh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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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리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 에디터

    박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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