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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달성, 눈속임 넘어 실질 감축 이뤄야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6차 보고서 일부를 공개했다. 심각해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달성의 중요성이 커졌다. 탄소중립은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하는 탄소의 양이 일치하는 상태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탄소중립이 실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각국과 기업에게 책임만 면제시켜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국가별,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을 통해 추정하는 현재의 산정 방법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널리 채택됐던 구호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2℃ 이하로 상승하도록 제한하자’였다. 사람들이 이 구호에 무뎌지던 2018년,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다. 바로 탄소중립이다. 2018년 10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1.5℃ 특별보고서’를 통해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낮춰야 하고, 이를 위해 2050년까지 전 세계가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즉 탄소 순배출량이 0인 상태(Carbon Neutral,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탄소중립은 1.5℃ 상승 제한이란 말보다 더 명확히 와닿았다. 자신들이 배출하는 양을 계산하고, 거기에 흡수에 이바지하는 양을 빼서 0을 만들면 될 문제기 때문이다. 전 세계 각국, 각 기업 역시 연이어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탄소 순배출량 추정치에 근거해 탄소중립 이행 방안도 속속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에서 돌연 탈퇴하며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미국과 중국, 유럽 등이 적극적으로 탄소중립 실현에 합심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계산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목표로 2030년에는 2017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24.4% 줄이면 된다는 대략적인 결과를 내놨다. 올해 하반기에는 감축 목표를 더 상향할 예정이다.

 

 

탄소중립, 배출 책임 회피 수단 돼선 안 돼


하지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환경활동가들은 이행 방안에 ‘꼼수’가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국의 기후행동 관련 비영리 단체인 ‘에너지기후정보분석원(ECIU)’은 탄소중립을 선언한 전 세계 정부와 지방정부, 기업이 내놓은 4000여 개의 이행 방안을 검토한 결과를 올해 3월에 발표했다. 검토 결과, 대부분(60%)은 중간 목표를 적절히 설정했고, 또 다수(62%)가 탄소 순배출량 정보공개 시스템을 견고하게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과 정부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탄소배출권을 활용할 계획을 내비쳤다는 점이었다. 탄소배출권을 활용할 계획이 없는 보고서는 23%에 그쳤다. 


8월 5일 한국의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도 마찬가지였다. 초안에 마련된 세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는 탄소중립을 달성하지만 두 시나리오는 2050년에도 여전히 탄소 배출량이 흡수량보다 더 많다는 전망이었는데, 탄소중립위원회는 이를 탄소배출권과 해외조림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탄소배출권은 일정 기간당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예를 들어 UN에서 각국이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을 할당할 수 있으며, 또 각국은 자국의 기업마다 배출량을 할당할 수 있다.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는 활동을 통해 탄소배출근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게 받은 탄소배출권은 거래도 가능하다. 만약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업체가 할당받은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것 같으면, 다른 회사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사들여 할당량을 늘릴 수 있다. 여기서 맹점이 발생한다. 철강업체는 생산량을 줄이거나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고도 돈으로 탄소배출 기준을 지킨 것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탄소배출권 거래는 활발하지 않았다. 탄소배출권 거래가 비교적 활발히 일어난다는 유럽에서도 기업들이 당장 탄소배출권을 사야 할 정도로 급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유럽 국가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보다 더 높게 설정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더이상 팔지 않으려 했고, 사고 싶은 기업만 가득하니 가격이 폭등했다. 그동안 1t(톤)당 20유로(약 2만 7000원) 중반대에서 소폭 오르내리던 탄소배출권 가격이 불과 1년 만에 50유로(약 6만 7500원)를 넘기며 2배 이상 치솟았다. 2030년에 이르면 100유로(약 13만 5000원)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은 아직 탄소배출권 거래가 활발하지 않다. 2021년 할당배출권(KAU21)가격은 8월 13일 기준 1t당 2만 6000원 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6월에는 1만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전의찬 세종대 기후환경융합센터장은 “가격이 너무 낮아 탄소배출권을 팔려는 기업이 없다 보니 거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가격이 더 한참은 더 올라야 거래도 활발히 되고, 배출권 가격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탄소 감축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배출권 외에 꼼수는 또 있다. 탄소 흡수량을 늘리는 것이다. 가령 탄소 배출량은 기존처럼 유지하고 나무를 심는다거나, 탄소를 포집해 흡수량을 늘리는 식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 궁극적목표인 탄소 배출량 감축은 등한시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때문에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4월 트위터를 통해 “탄소중립이 실제 행동을 위한 것이 아닌 감축하는 척 연기하는 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밥 왓슨 IPCC 전 의장을 포함한 세 명의 기후학자도 ‘탄소중립은 위험한 함정’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탄소중립은 정교한 판타지일 뿐”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실제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며 “조금만 개선해도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느니, 정부가 감축 목표를 대폭 높여 급격한 전환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탄소 순배출량 계산의 토대 ‘온실가스 인벤토리’


탄소중립의 근거가 되는 배출량 측정을 보다 정교화할 필요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 교수는 “현재의 배출량 산정 방법이 매우 정교하고 합리적이긴 하지만, 일부 오차가 있는 만큼 직접 측정을 통해 이를 보완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을 위해서는 현재의 배출량 측정 방식부터 이해해야 한다.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을 알아내는 방법은 직접 측정과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근거해 추정하는 방법으로 크게 나뉜다. 전 센터장은 “이 가운데 현재 한국정부는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이용한 추정치에 근거해 탄소중립 정책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실가스는 6종류의 기체를 일컫는다.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이 포함되며, 이산화탄소 외 5종류 기체를 비이산화탄소(Non-CO2)라 묶어 부르기도 한다. 이런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물질, 또는 행위도 있다. 휘발유나 등유 같은 연료를 태울 때는 물론이고, 폐기물을 소각할 때 메탄과 아산화질소가 발생한다. 토양에서도 미생물 호흡 등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렇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요인을 모두 모은 뒤 각각의 항목이 어느 종류의 온실가스를 얼마나 많이 배출하는지 수치를 분석해 기록한다. 이 수치를 배출계수라 한다. 이를테면 휘발유는 태웠을 때 1TJ(테라줄·1TJ는 1조J) 당 배출하는 탄소량이 1만 9548kg인데, 이것이 휘발유의 배출계수가 된다. 이렇게 온실가스 배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각 요인의 배출계수를 담아 완성한 목록을 온실가스 인벤토리라고 한다.


각국은 IPCC가 만든 가이드라인에 따라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구축한다. IPCC는 1996년에 처음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든 뒤 네 차례의 개정판을 발표했다. 현재는 2019년 개정된 가이드라인을 각국이 참고하고 있다. IPCC의 2019년 가이드라인 작성에 참여한 전 센터장은 “가이드라인은 일반지침, 에너지, 산업공정, 농업·임업 및 기타 토지이용, 폐기물 등 5개 카테고리로 나눠 작성한다”며 “가이드라인에 따라 철강 1t(톤)을 생산할 때, 운동화 한 켤레를 만들 때, 자동차로 1km를 이동할 때 각각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IPCC의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 센터장은 “한국 발전소와 중국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유연탄의 종류가 다르고, 또 같은 한국의 발전소라고 해도 유연탄 종류나 저감 시설 여부 등에 따라 배출하는 탄소량이 다를 수 있다”며 “그래서 IPCC는 각 나라 및 사업장이 저마다의 환경을 반영한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구축하길 권장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IPCC에서 제시한 배출계수를 티어1(Tier1)이라고 하며, 각국의 사정을 반영해 만든 배출계수를 티어2, 그리고 각 사업장 상황에 맞게 만든 배출계수를 티어3라고 한다. 티어1보다는 티어2가, 티어2보다는 티어3가 신뢰도와 정확도가 높지만 배출계수를 개별적으로 산정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전 센터장은 “이 때문에 한국은 티어2를 근간으로 탄소 배출량을 추정하며, 티어1을 보완적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9년 개정된 IPCC 가이드라인에 맞춰 2024년까지 티어2를 개선할 예정이다.

 

 

추정치 보완할 실측정 기술 필요해


측정을 통해 탄소 순배출량을 직접 알아내는 방법도 있다. 굴뚝자동측정기기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전 센터장은 “모든 온실가스 배출원에 굴뚝자동측정기기를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완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근거한 산정 방법을 계속 개선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수치와 큰 오차는 없다”고 말했다. 정확도를 더 높이기 위해 한국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높은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자체 보고한 탄소 배출량을 민간 업체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전 센터장은 “지난해  각 사업장이 제출한 탄소 배출량은 올해 1월에 취합돼 3월까지 재검토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계산에 의한 추정을 한층 정확하게 보완하기 위해 실제 관측을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 교수는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의한 추정이 실제 온실가스 농도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올해 2월 미국 노던애리조나대 연구팀이 미국 48개 도시가 자체 구축한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검증한 결과, 실제 배출량보다 평균적으로 18.3% 낮게 책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doi: 10.1038/s41467-020-20871-0 


정 교수는 “현재 한국의 탄소 순배출량은 한국 전체 또는 주요 탄소 배출지역 단위로 추정하고 있는데, 서울 안에서도 지역구마다 탄소 순배출량 차이가 크다”며 “어느 지역에서 어떤 요인을 조정해야 효과적으로 탄소 순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위성과 이산화탄소 측정기를 이용한 관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팀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탄소 관측 인공위성(OCO-2) 데이터를 토대로 수도권의 탄소 배출량을 분석했다. OCO-2는 2014년 발사된 최초의 이산화탄소 관측 전용 인공위성이다. 지구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이산화탄소에 흡수되는 정도를 측정해 이산화탄소 농도를 계산한다.


그 결과, 강남구 일대가 탄소 배출량이 높게 나타났다. 강서구는 온실가스 인벤토리 기반 추정치보다 실제 관측치가 더 높았고, 반대로 영등포구와 강남구는 관측치가 추정치보다 낮게 나타났다. 놀라운 점은 서울의 간접 배출량보다 직접 배출량이 더 높다는 사실이었다. 직접 배출은 발전소, 보일러, 운송 수단과 같이 사용 시 직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을 뜻하며, 간접 배출은 전력처럼 사용할 때는 직접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지만 생산할 땐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일컫는다. 정 교수는 “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직접 배출량이, 대도시는 간접 배출량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도권은 직접 배출량도 많았다”며 “오래된 난방 시설이 원인일 것이라 추정되며 이를 교체하면 직접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실가스를 직접 측정하는 방법의 단점은 큰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관측하고 있는 인공위성을 운용하고 있는데, 미국의 OCO-2는 설계부터 운용이 종료될 때까지 약 4억 6770만 달러(약 5223억 원)의 비용이 들것으로 추정된다. 지상에서 설치하는 이산화탄소 측정기도 값이 만만치 않다. 이산화탄소 측정기 한 대당 1500만~1억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국제적인 대응을 위해서라도 정확한 측정 기술을 확보하는 게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2018년 노르웨이 과학기술대 연구팀이 전 세계에서 탄소 배출량 1위 도시가 서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를 반박할 수 있는 데이터와 기술이 없었다”며 “다음 해에 우리 연구팀에서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이산화탄소 측정치를 비교해 서울이 상위권이긴해도 1위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논문을 내긴 했지만, 언제든 다시 기후 악당으로 내몰릴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측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 디자인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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