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의 변화는 도시의 변화를 가져왔다. 옛 도시들은 배로 이동이 가능한 강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이후 기차는 산업혁명을 이끌며 산업 도시의 발전을 이룩했다. 그리고 100여 년 전 나타난 자동차는 현대 도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새로운 형태의 도시가 설계됐고, 도시 내에 구축된 도로망으로 사람의 이동과 사물의 운송이 가능해졌다.
모빌리티의 변화와 동반된 도시 변화는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약 100년 동안 성장을 거듭했고 2010년대를 지나면서 생산량이 포화에 이르렀다. 대신, 충분히 보급된 자동차를 기반으로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과 전기차·자율주행차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자동차 시장이 성장해 가고 있다.
2010년과 2012년 미국의 승차 공유 플랫폼 기업 우버와 리프트가 등장했다. 2011년 한국에서는 차량 공유 플랫폼 기업 쏘카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는 자동차 시대에서 서비스 시대로 패러다임이 변화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도시화, 개인화, 고령화라는 사회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도시 인구 집중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2018년 유엔 경제사회국(DESA)은 전 세계 도시 인구 비율이 당시 55%에서 2050년에는 68%로 높아질 것이며, 한국 역시 2018년 81.5%에서 2050년 86.4%로 도시 인구 집중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빠른 도시화는 다양한 도시 문제를 동반했다. 특히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는 도시 승용차 수를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총 통행량에서 1인 탑승 차량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0년 61.3%에서 2016년 82.5%로 크게 증가했다. 이런 이유로 전국 총 통행량도 같은 기간 10.4% 늘어났다. 자동차의 증가는 이내 배기가스에 따른 환경 오염, 교통 체증, 소음 등의 여러 도시 문제로 이어졌다.
이런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2010년경 부터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제시해 왔다. 독일의 아우디, 폭스바겐, 벤츠, 미국의 포드, 한국의 현대자동차 등은 각자의 전략 발표회를 통해 ‘소형차’ ‘전기차’ ‘차량공유’ ‘자율주행’ ‘무선충전’ 등의 해법을 내놨다. 소형차는 도로 위 정체 구간과 주차장 면적을 줄일 수 있고, 에너지 효율도 크게 개선한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전기차 정책, 차량 대수를 줄이기 위한 차량 공유 정책도 도시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은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향후 공유차와 결합해 도시 내 차량의 효율적 운영을 도울 것이다. 가령 공유 차량이 주차장에서 이용자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승객을 태우러 알아서 이동함으로써 이용률을 높이고 전체 차량수를 크게 줄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선충전은 전기차의 사용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교통 약자를 위한 모빌리티
도시 문제 해결을 넘어, 더 좋은 도시를 만들어 가기 위한 모빌리티 서비스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장애인이나 노인 등 운전 약자의 편리한 이동을 위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배달 라이더의 배송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거의 모든 지역을 휠체어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 배달 라이더의 배송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한국의 통신 기업 SK텔레콤은 청각장애인의 새로운 직업 진출을 돕는 고요한택시를 운행 중이다.
2015년 시작해 최근 종료된 미국의 스마트시티 챌린지에서도 운전 약자를 위한 해법이 제시됐다. 미국 교통부가 주관하는 스마트시티 챌린지에는 모빌리티 혁신을 통해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는 흑인 영아 사망률이 백인 영아 사망률보다 2.5배 높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의 임산부가 편리하게 병원을 이동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Rides4Baby’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임산부 전용 차량을 즉시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으며, 진료에 맞춰 정기적으로 이용도 할 수도 있다. 취약지구와 도심지구를 잇는 자율주행 셔틀도 도입됐다.
펜실베니아주의 피츠버그시는 ‘출퇴근 시간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라는 2015년 미국 하버드대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도시 내 취약지구 거주민들이 일자리 센터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신호등을 개발했다. 탑재된 레이더 센서와 카메라로 교통량을 감지하고 정교한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교차로 주변의 모든 자동차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교차로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간 계획을 짜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피츠버그시는 AI 신호등을 도입한 이후 출퇴근 시간은 25% 줄고, 신호등 대기 시간은 최대 40% 줄었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을 위한 새로운 도시 등장
자율주행을 통한 변화는 사람의 이동과 사물의 배송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사람의 이동 측면에서는 ‘주문형 교통 시스템’으로의 변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우버는 승차 공유 서비스에 자율주행 기술을 더한 주문형 교통 시스템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율주행차를 공유하는 개념으로 이전 승객이 하차한 후 다른 승객을 태우러 스스로 이동하게 된다. 국토교통부의 2013년 자동차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차량의 1일 평균 운행 시간은 56분 정도다. 나머지 23시간 4분을 주차장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자율주행이 되면, 자율주행 차량을 공유해 도시 내의 차량 대수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된다. 당시 우버는 이를 통해 차량 대수를 최대 10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물의 이동 측면에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 트럭, 배송 거점에서 빌딩이나 아파트까지 배송하는 도심 자율주행 배송 트럭, 아파트 단지나 건물 내를 이동하는 자율주행 배송 로봇이 배송 서비스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21년 5월 미국의 자율주행 트럭 업체 투심플은 기존에 24시간 걸리던 배송을 자율주행으로 10시간 절약해 14시간 만에 배송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같이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자율주행 트럭은 투심플, 플러스, 오로라, 임바크 등 4개 업체가 빠르게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도심 자율주행 배송 트럭과 자율주행 배송 로봇도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건물이 대형화되면서 실내 자율주행도 크게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율주행에 따라 도시의 모습도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 차량의 공유는 차량 대수와 함께 주차장의 총면적을 크게 줄일 것이다. 최근에는 도시 외곽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춘 충전소와 주차장을 결합해 도시 내의 주차장을 크게 줄이는 도시 설계도 제시되고 있다.
단순히 기존 도시에 자율주행차를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율주행 전용 도시의 설계도 논의되고 있다. 기존의 자연 친화적인 도로 설계가 아니라 자율주행차에 친화적으로 도로와 인프라를 새로 설계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서 도시 내의 모든 차량을 자율주행차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기존 도시는 구도심화되고, 새로운 자율주행 전용 도시가 미래 도시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꽉 막힌 도로 위를 빠르게 이동하는 플라잉카도 미래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미국, 중국, 독일을 각각 대표하는 플라잉카 기업 조비 에비에이션, 이항, 릴리움이 현재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빠르면 2024년 정도에 상용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21년 6월 조비 에비에이션은 미국의 주차장, 항공 관련 부동산 업체들과 협약을 체결했다. 미국 주요 도시의 건물 옥상을 플라잉카 주차장으로 사용해 도시 간 및 도시 내 이동을 편리하게 할 수 있게 된다.
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통신기술(ICT) 쇼인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현대자동차도 자율주행 셔틀과 플라잉카를 연동해 편리하게 이동하는 미래 스마트시티의 모습을 제시했다. 플라잉카는 자율주행차와 연결되면서 사용자의 이동을 편리하게 해 줄 것으로 전망된다.
모빌리티의 발전에 따라 ‘도시 문제의 해결에 모빌리티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모빌리티의 변화에 따라서 기존 도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리고 ‘모빌리티 진화에 맞춰 새로운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세 가지 이슈를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으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자율주행차와 플라잉카는 도시의 모습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에는 사용자의 새로운 아이디어도 중요하게 된다. 미래 모빌리티와 스마트시티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정구민. 소프트웨어 기업 네오엠텔의 창업 멤버로, SK텔레콤을 거쳐 현재 국민대 전자공학부장을 맡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하며 LG전자와 현대자동차 자문교수, 모바일 및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인 유비벨록스와 휴맥스의 사외이사를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