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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장내 아나운서의 짧고 굵은 신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앞을 보고 일렬로 서 있던 5명의 건장한 남성은 동시에 (막대기가 없는) 핫도그에 손을 뻗었다. 왼손으로는 소시지 두 개를 분리해 입으로 넣고, 오른손으로는 소시지 없는 빵 두 개를 물에 적신 뒤 뒤따라 삼켰다. ‘에이스’로 보이는 남성은 그렇게 10분 만에 핫도그 75개를 흡입했다. 인간의 섭취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푸드파이터 대회, 우승 비결은?

 

7월 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네이선 핫도그 먹기 대회(Nathan’s Hot Dog Eating Contest)’는 미국 스포츠 방송 채널인 ESP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36세 조이 체스트넛은 2018년 자신이 세운 기록(74개)을 또 한 번 뛰어넘었다. 그에겐 복싱 챔피언 벨트처럼 생긴 머스터드 벨트와 2만5000달러(약 30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체스트넛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초반부터 나의 먹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신기록 경신을 위해 올해 더 많은 훈련을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대회 참가자들의 기록은 근래 급상승하고 있다. 제임스 스몰리가 미국 하이포인트대 물리치료학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 7월 15일자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네이선 핫도그 먹기 대회의 기록은 다른 스포츠 종목 기록보다 급격히 상승했다. doi: 10.1098/rsbl.2020.0096


스몰리가 교수는 1972년부터 이어져 온 네이선 핫도그 먹기 대회의 기록을 분석했다. 그 가운데 분석 가능한 데이터는 1980년과 1982~2019년에 해당하는 총 39년이었다. 연구팀은 연도별 기록을 정확히 비교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섭취한 핫도그 개수 기록을 분당 섭취한 음식의 질량을 뜻하는 유효섭취속도(ACR)로 환산했다.

 
분석 결과, 최고 기록은 2000년을 전후해 급격하게 상승했으며 현재 정상급 선수들은 분당 734g, 10분에 2만1000kcal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년 전 선수들의 최고 기록보다 ACR이 5배 이상 높았다. 다른 스포츠 종목들에서 현재의 세계 기록이 최초의 세계 기록보다 평균 40% 향상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스몰리가 교수는 “마라톤의 경우 프로 선수와 일반인의 속도 차이가 2배 정도인데, 네이선 핫도그 먹기 대회의 경우 선수와 일반인의 속도 차이가 5배 이상 난다”며 “대회 참가자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전문적인 훈련 방식을 도입하고 섭취 전략을 세우면서 기록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체스트넛은 대회에 출전하기 전 3개월간 4~6일에 한 번씩 폭식 연습을 하면서 달리기와 요가를 병행하고, 폭식 연습을 마친 뒤에는 며칠 동안 오이, 상추 등 채식으로 몸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식 훈련’ 가능하다지만… 

 

스포츠 종목처럼 폭식도 훈련이 가능한 걸까. 국내에도 음식을 이처럼 빨리, 많이 먹는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위 ‘먹방’ 유튜버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화면 가득한 음식을 먹어 삼키는데, 이를 위해 매일 장시간 고강도 운동을 하거나 규칙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몰리가 교수는 폭식을 반복하면 장 가소성(gut plasticity) 이 향상된다고 봤다. 가소성은 어떤 물질이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성질을 말한다. 열에 의해 모양이 잘 변하는 플라스틱, 주변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수시로 변화하는 뇌세포를 두고 흔히 가소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훈련을 통해 장의 소화 능력이 변화했다는 뜻이다.  


이는 물리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생리적인 변화에서 기인했다. 장기의 용량이 늘어났다기보다는, 호르몬 등 생리적 소화 기능에서 변화가 포착된 것이다. 


흔히 먹는 양이 갑작스레 늘면 ‘위가 늘어난 것 같다’라는 말을 종종 하지만, 사실 위의 크기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성장이 끝난 뒤에는 위의 크기에는 거의 변화가 없고, 정상 체중인 사람과 비만인 사람의 위의 크기도 개인차 이상으로 크게 나지 않는다. 


하지만 호르몬은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식을 반복하면 뇌에 공복임을 알려 식욕을 돋우는 그렐린의 분비량이 증가할 수 있다. 반대로 식욕을 억제하는 펩타이드YY(PYY) 3-36 같은 호르몬 분비량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또 호르몬이 변화하면서 포만감을 덜 느끼거나, 위의 팽창과 수축이 더 자유자재로 일어나기도 한다.


스몰리가 교수는 이런 생리적 변화를 연구해 푸드파이터가 먹어치울 수 있는 핫도그의 최대 개수를 계산해냈다. 결과는 10분에 84개. 분당 832g을 섭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회색곰(1분당 798g)보다 빠른 속도다.


다만 스몰리가 교수는 푸드파이터의 생리적 변화가 실제로는 기능 장애(dysfunction)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우려를 나타냈다. 대회에는 유리할지라도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2007년 네이선 핫도그 먹기 대회 선수들의 위 크기 변화를 형광 투시 기법으로 관찰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연구팀 역시 “폭식이 반복될 경우 포만감을 느끼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폭식을 반복하면) 체중 조절의 의지가 약해지는 중년기에 비만이 되거나, 메스꺼움과 구토 등 소화불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심할 경우 위 절제가 필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doi: 10.2214/AJR.07.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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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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