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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다시 본 화왕산 억새태우기 참사

‘큰 불의 뫼’라는 뜻을 가진 화왕산에서 벌어진 어른들의 ‘위험한 불장난’이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2006년과 올해 행사에 모두 참여한 기자의 경험과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없었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해 봤다.

지난 2월 9일 경남 창녕 화왕산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5명이 불에 타 숨지고 72명(중상 6명 포함)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월대보름인 이날 화왕산 정상(757m)에서 열린 억새태우기 축제 행사에서다.

화왕산 억새태우기 축제는 둘레 2.7km의 화왕산성 안에 50m 높이의 불기둥이 솟구치며 18만m²의 억새밭을 약 20분 만에 모두 태우는 행사로 1995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6번째를 맞았다. 1996년 2회 행사를 마쳤지만 환경파괴와 산불위험 논란으로 2000년부터 3년에 한 번씩 행사가 열렸다.

2006년에는 약 5만 명이 행사장을 찾아 화왕산 정상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볐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 행사에 절반도 못 미치는 2만 명이 찾은 올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그 이유는 무얼까.

사고 현장 배바위는 위험한 ‘불머리’

이날 사고는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행사 진행요원들이 억새에 불을 붙이고 10분 정도가 지난 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불길이 화왕산 정상의 맞은편에 있는 배바위 앞 방화선을 넘어와 순간적으로 번진 것. 배바위 앞은 행사장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고, 그 뒤로 10m의 절벽이 있어 불길을 피하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컸다.

창녕군은 사고가 난 뒤 “3~5m 높이로 둘러싸여 있는 화왕산성 안쪽으로 길이 2km, 폭 20m로 억새를 베어내 방화선을 설치했지만, 동쪽으로 불던 바람이 갑자기 남쪽 배바위 쪽으로 불어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이병두 박사는 “뜨거운 공기가 상승하며 난류를 일으키는 산불의 특성상 바람의 방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면서도 “산불은 보통 정상을 향해 번지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불머리(화두, 火頭)에 해당하는 봉우리 부근은 특히 안전에 신경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박사가 사고 직후 전산유체역학 프로그램에 화왕산의 지형과 당시 기상 상황을 입력해 가상실험을 한 결과 불머리에 해당하는 배바위 쪽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화왕산 정상의 분지 하부에서는 약하게 불던 바람이 배바위 부근에서 2배 정도 더 강하게 불었던 것.

그럼에도 배바위 앞 방화선 주변은 베어 놓은 억새가 그대로 방치돼 있어 불이 옮겨 붙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당시 관광객들을 대피시킬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 2006년과 올해는 기상 조건도 완전히 달랐다. 2006년 당시는 행사 5일 전 이틀에 걸쳐 눈이 온 뒤,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이어져 화왕산 억새밭에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크게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반면 올해는 행사 당일 전 2달 동안 비가 2번밖에 오지 않아 매우 건조했다. 실제로 사고 당일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먼지가 심하게 날려 온몸이 먼지로 뽀얗게 뒤덮일 정도였다. 이런 건조한 날씨에 당시 화왕산 정상에는 초속 4m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일어난 불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2006년 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구교상 박사팀은 화왕산 억새태우기 현장에 자동기상관측기와 온도계 같은 장비를 미리 준비해 뒀다가 억새에 붙은 불의 온도와 번지는 속도, 상승기류 변화 등을 측정했다.

구 박사는 “2006년 억새태우기 축제 당시 온도가 높은 곳은 1000℃ 가까이 올라갔고, 불이 옮겨 붙는 속도는 최고 시속 4.5km로 어른의 빠른 걸음수준이었다”면서 “올해는 불의 규모와 풍속을 고려할 때 2006년보다 온도는 물론 불의 전파 속도도 훨씬 빨라 피해자들이 불길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보름 즈음에 화왕산에 불기운이 들면 풍년이 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열렸던 화왕산 억새태우기 축제가 결국 재앙을 가져왔다. 하지만 산불의 특성을 잘 알고 당시 기상 상황을 고려해 행사를 준비했다면 적어도 이런 끔찍한 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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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화왕산=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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