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난이도
“자연을 관찰하고, 동물의 형태나 움직임을 분석하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생물의 작동 원리를 로봇에 적용해 로봇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자연모사 로봇 기술의 핵심입니다.”
3월 30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바이오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실에서 만난 윤동원 DGIST 로봇공학전공 교수는 직접 제작한 자연모사 로봇을 선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곤충과 동물을 본따서 만든 로봇은 아담하고 귀여운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윤 교수가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하고 기괴한 모양의 로봇들이 일렬로 놓여있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더욱 반전이었다. 새의 날갯짓을 따라 하는 로봇부터 토끼처럼 점프하는 로봇까지, 실제 동물의 움직임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외골격 구조 활용한 바퀴벌레 로봇
자연모사 기술은 자연의 원리나 생물의 특징을 찾아 제품 개발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최초의 자연모사 제품은 흔히 ‘찍찍이’라고 부르는 벨크로 테이프다. 스위스 공학자 조지 드 메스트랄이 옷에 붙은 갈고리 모양의 엉겅퀴 가시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 벨크로 테이프는 한 번 붙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최근엔 로봇을 개발하는 데에도 자연모사 기술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의 로봇개발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2019년 9월 출시한 로봇개 ‘스팟(SPOT)’이 대표적이다. 스팟은 개나 말처럼 네 개의 발을 번갈아 사용해 울퉁불퉁한 지형을 안정적으로 오르내린다.
윤 교수는 한국기계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2005년부터 자연모사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현존하는 생물들은 35억 년간 진화를 거치며 점차 효율적으로 변한 결과물”이라며 “바퀴벌레부터 인간까지 모든 생물을 관찰하고 분석해 자연모사 로봇에 적용가능한 모델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상에 사는 생물들은 중력, 마찰력 등 지구의 물리계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완성형 로봇’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퀴벌레 로봇이다. 윤 교수팀은 6개의 다리를 사용하는 바퀴벌레의 움직임과 골격계를 모사한 로봇을 제작해 2019년 8월 국제학술지 ‘메커니즘 및 로보틱스 저널’에 발표했다. 바퀴벌레는 연약한 내부 기관을 딱딱한 표피층이 감싸고 있는 외골격 구조다. 사람과 비교하면 살과 뼈의 위치가 반대인 셈이다.
연구팀은 이를 모사해 말랑한 비닐 소재로 로봇의 내부를, 딱딱한 마분지와 나무를 이용해 로봇의 외부 골격을 제작했다. 그 결과 기존의 로봇보다 부드럽게 움직이며 장애물을 넘고, 몸체보다 무거운 물건을 올려도 골격이 튼튼해 형태가 변하지 않는 로봇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doi: 10.1115/1.4042626
일상에서 떠올린 ‘땀 흘리는 로봇’
윤 교수는 동물을 관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로봇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소 손에 땀이 많은 그는 땀이 난 손으로 물건을 집으면 물건이 덜 미끄러진다는 사실에서 로봇손(그리퍼·Gripper)의 아이디어를 었얻다.
윤 교수가 제작한 그리퍼는 사람이 손에서 땀을 흘리는 것처럼 물을 분사해 손과 물체 사이의 마찰력을 높인다. 하지만 물이 많다고 무조건 마찰력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처음 손에 땀이 날 땐 표면장력이 발생해 마찰력이 커지지만, 수분이 일정량 이상이 되면 오히려 유체 점성력(viscous force)이 약해지며 마찰력이 다시 줄어든다.
윤 교수는 “로봇손에서 분사하는 최적의 수분량을 계산해야 물건을 더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팀은 수분량에 따른 마찰력의 변화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최대 마찰력(3.6N)을 낼 수 있는 수분량의 최적 높이(0.2mm)를 찾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98-019-51694-9 현재는 그리퍼의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자연모사 로봇은 지진 현장처럼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재난, 재해 현장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윤 교수팀은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과 공동으로 재난구조 환경에서 복잡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뱀 로봇을 개발 중이다.
윤 교수는 “건물이 무너진 상황에서 좁은 공간을 뱀처럼 부드럽게 이동하는 로봇을 투입하면 인명 구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뱀의 움직임을 분석해 다양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