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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vs. 봉준호의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것은 경사 그 자체다. 반도체를 비롯해 우리나라가 경제 분야에서 정상을 차지한 일은 여러 번 있었지만, 문화 분야에서까지 이런 성과를 낼 줄은 미처 몰랐다. 


제목이 ‘기생충’이다 보니 필자까지 몇 군데서 축하를 받았는데, 실제 영화에 이바지한 게 하나도 없는지라 좀 쑥스러워하다가,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의 제목을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었던 데는 지난 몇 년간 기생충이 그리 나쁜 애들이 아니라고 떠들었던 필자의 공로도 조금은 있다고 말이다. 

 

기생충은 열심히 산다? 


흔히 기생충을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하는 일 없이 놀면서 양식만 축내는 이들을 기생충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통념에서 연유한다. 하지만 실제 기생충은 열심히 산다. 
온통 어두운 데다 미끈미끈한 점액이 흐르는 소화기관, 그 안에서 사는 게 과연 쉬울까?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음식물을 아래로 이동시키는 연동운동이 일어나는데, 기생충 입장에서 이건 지진과 같다. 일 년에 한두 번 지진이 나는 곳을 위험지역으로 분류하는데, 이 기준이면 기생충은 가장 위험한 곳에 살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가끔 하는 설사는 기생충에게는 쓰나미다.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설사가 2~3일 계속된다면 소화기관에 사는 기생충은 모조리 정리된다. 실제로 필자의 지인은 음식을 잘못 먹은 탓에 일주일간 격렬한 설사를 했는데, 설사 때문에 몸 안에 있던 6m짜리 광절열두조충(Diphyllobothrium latum)이 밖으로 쫓겨나 그대로 객사하고 말았다. 


기생충들이 이빨이나 강력한 흡반 등 부착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먹을 것을 스스로 구하지 않으니 그게 어디냐고 하겠지만, 그런 비난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지금처럼 문명이 발달하기 전의 인간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자연에 존재하는 과일을 따 먹고, 동물을 잡아먹었다. 인간의 몸속은 기생충에겐 우주 그 자체, 그 안에 있는 음식을 먹는 게 그리 나쁜 일일까? 


기생충에 관한 또 다른 오해는 기생충이 사람에게 여러 가지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기생충은 숙주인 인간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세균, 바이러스와 달리 덩치가 있다 보니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증상을 일으켰다간 보복을 당할 염려가 있다. 


구충제가 없던 시대에도 몸에 기생충이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독한 풀이나 약초를 먹어서 기생충을 빼내려고 했다. 나이 지긋한 분께 들은 얘기가 있는데, 변에서 꿈틀거리는 기생충의 조각이 나왔을 때 치료를 위해 석유를 먹었고, 그래서 수m 길이 기생충(아마도 갈고리촌충으로 추정된다)이 나왔다고. 석유 보복이라니. 그래서 기생충 대부분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살아간다. 가끔은 몸을 쭉 펴고 싶겠지만, 그러다 존재를 들킬까 봐 허리가 아파도 참고 산다. 이게 바로 기생충이다.

 

 
기생충 생존법과 닮은 기택네 가족 


영화 속 반지하의 인물들, 기택(송강호) 가족도 기생충과 비슷한 면이 있다. 혹자는 이들이 게을러서 가난하다고 하지만, 기택 가족도 먹고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피자 박스를 접는 게 고작이지만, 기택 가족은 이 일이라도 매달린다. 


기껏 접은 박스를 피자가게에 가져다줬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피자집 사장은 잘못 접힌 게 몇 개 있다며 지적을 하더니 제값을 쳐주지도 않는다. 아들 기우(최우식)는 자신을 아르바이트생으로 뽑아달라고 사정해보지만, 사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그래도 피자 박스를 접어 받은 적은 돈으로 맥주를 마시는 것이 기택 가족에게는 소소한 기쁨이다. 기택 가족은 돈이 없는 탓에 계속 반지하에 살아야 하는데, 기생충이 사는 인체의 환경이 열악한 것처럼 반지하 역시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다. 창문과 맞닿은 길바닥에서는 누군가가 구토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거기다 소변을 본다. 


반지하에 산다고 해서 다른 이들처럼 잘살고픈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 욕망을 충족해 주지 못할 때, 남을 속여서라도 꿈을 이루려는 이가 생길 수 있다. 영화 속 기택 가족이 그랬다. 


아들 기우(최우식)는 명문대생 친구로부터 박 사장(이선균) 딸의 과외를 대신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고교생인 그 딸이 원하는 것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 하지만 기우는 네 차례나 대학입시에 낙방한 처지다. 


기우는 과외를 하기 위해 여동생인 기정(박소담)의 도움을 받아 재학 증명서를 위조한다. 감쪽같은 증명서를 본 기택은 감탄한다.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거 없나? 기정이 얘, 수석 입학하겠다.”  


이후 기우는 곧 기정을 데려온다.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이라고 사기 칠 정보를 단단히 외우고는, 박 사장의 아내인 연교(조여정)에게 “일리노이주립대 응용미술과 다니다가 한국에 왔는데, 독특한 수업으로 애들을 꽉 잡는다고 소문이 쫙 났답니다”라며 기정을 소개한다.


‘심플’하다고 표현되는 사모님 연교는 기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곧 기택도 박 사장의 기사 자리를 노린다. 그러려면 그 전에 있던 기사를 내보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기정의 다소 지저분한 전략이 작용했다. 가족 모두가 사기를 쳐서 박 사장 집에 취직하는 것. 이는 기택의 부인 충숙(장혜진)이 원래 있던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을 내보냄으로써 완결되는데, 이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기생충은 왜 사기를 칠까


앞서 말했듯이 기생충은 인간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영화에서 기우와 기정도 아이들을 문제없이 가르치고, 기택은 운전을 잘 하고, 충숙도 가사도우미 일을 곧잘 했으니, 실제 박 사장네 집이 입은 피해는 거의 없는 셈이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는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명백히 사기극의 피해자가 아닌가?

 
기생충이 인간의 몸속에서 얌전히 있는 이유는 인간이 짝짓기와 알 낳기를 하는 숙주, 즉 종숙주(final host)이기 때문이지, 기생충이 중간 숙주에게까지 관대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류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Leucochloridium paradoxum)은 달팽이에 사는 기생충이다. 그런데 달팽이는 숫자를 늘리기 위한 중간숙주일 뿐, 류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 최후의 목표는 종숙주인 새의 몸속에 가서 짝짓기 후 알을 낳는 것이다. 


그런데 새는 달팽이를 먹지 않는다.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게 먹으면 목에 걸릴 것 같으니까.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기생충은 사기를 친다. 달팽이의 더듬이 속으로 들어가 더듬이를 새가 좋아하는 먹이인 애벌레 모양으로 바꾼다. 꿈틀꿈틀 움직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애벌레다. 이 정도면 지능이 ‘심플’한 새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재학 증명서를 위조해 과외선생이 된 기우나, 일리노이주립대를 팔며 미술선생이 된 기정이 연상되는 순간이다. 


리베이로이아 온다트래(Ribeiroia ondatrae)라는 기생충은 개구리에 산다. 이것 역시 새한테 가야 알을 낳을 수 있다. 그런데 개구리가 기동력이 좋으면 새가 잡아먹기 힘드니, 리베이로이아 온다트래는 개구리 뒷다리에 기형을 만들어 잘 뛰지 못하게 만든다. 여기서는 운전기사를 변태로 만들고 그 자리를 차지한 기정과 기태의 합작이 떠오른다. 


충숙이 생각나는 기생충도 있다. 개미의 배 안에 사는 개미선충(Myrmeconema neotropicum)이다. 이 기생충은 밖으로 알을 내보내야 하지만, 개미의 배 안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개미선충은 새한테 먹히는 길을 택한다. 그 경우 자신은 죽겠지만, 알은 새의 대변을 통해 외계로 나가 여기저기에 뿌려진다. 


문제는 새가 개미를 안 먹는다는 점이다. 하기야, 아무리 새라도 개미를 무슨 맛으로 먹겠는가? 개미선충은 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낸다. 파나마에 사는 이 새들은 나무에서 자라는 작은 딸기를 즐겨 먹는다. 


‘그래, 바로 이거야.’ 개미 배 안에 있는 개미선충은 배의 껍질을 갈아내기 시작한다. 두꺼웠던 껍질은 점점 얇아지며, 그에 따라 색깔도 점점 붉어진다. 완성된 모습을 보면 ‘이 정도면 사람도 속을 만 하구나!’라는 감탄이 나온다. 영화에서 기택네 식구들이 기존 가사도우미 문광을 쫓아내는 장면도 비슷하다. 


그들은 문광을 결핵 환자로 몬다. 기택은 쓰레기통에 있는 휴지에 토마토케첩을 뿌리고, 연교 앞에서 그 휴지를 들어 보인다. 충격을 받고 어질어질하는 연교가 문광을 내쫓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휴지에 묻은 빨간 케첩은 개미선충이 만든 딸기와 비슷해 보인다. 


따뜻한 물 좋아하게 만들고, 개미 뇌 조종하고 


이것 말고도 기생충들은 기발한 일을 많이 한다. 새조충(Schistocephalus solidus)이 물 깊은 곳에 사는 가시고기에 들어가면 원래 찬물을 좋아하던 가시고기가 따뜻한 물을 좋아하게 돼 햇빛이 드는 수면으로 올라오는데, 그 결과는 수면 위를 날던 새한테 먹히는 일이다.


연가시(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는 물가에서만 짝짓기를 하는데, 이를 위해 자신이 몸담던 곤충을 목이 마르게 하고, 그 결과 곤충이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개미 몸에 사는 창형흡충(Dicrocoelium dentriticum)은 소의 몸속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소는 초식동물이라 개미를 먹지 않는다. 결국 창형흡충은 개미의 뇌를 조종해 개미로 하여금 소가 먹는 풀에 붙어 있게 만든다.

 


기생충이 인간에서는 거의 사라졌을지언정, 야생동물 대부분에서는 아직도 굳건히 삶을 유지하는 이유가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다른 동물들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기는 돈 없는 사람들이 친다. 기생충으로 인해 동물이 피해를 보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인간이 저지르는 사기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기생충에게 하는 것처럼 ‘그놈 참 신통하네’라고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들이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정부가 없는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소위 복지정책을 펴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나은 주거환경을 갖게 되고, 번듯한 학위가 없는 이들도 일해서 먹고살 수 있게 된다면, 사기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돈이 있는데도 사기를 치는 이들에게 더 엄한 벌이 내려져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실제로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참 잘 지은 제목이다. 일단 호기심을 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반지하의 추억’ 등 가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흥행을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제목을 잘 지었다는 이유는 또 있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이 실제 기생충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다.

 

202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 에디터

    조혜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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