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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보다 100배 빠른 라이파이

‘응사 21편’ 내려 받는데 1.5초






동생과 함께 여의도에서 불꽃축제를 보고 집으로 가는 길, 주말에도 일하는 불쌍한 여자친구에게 2시간 동안 찍은 불꽃 영상을 보내주려는데 동생이 가로막는다. 한강변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휴대전화에 뜬 안테나 하나를 번갈아 가리키면서…. 흠, 가만 있자, 여기 어딘가 LED 가로등이 있었는데…, 아! 찾았다. 가로등 아래서 전송을 클릭하자마자 답장이 온다.

“고마워, 자기야♥”

LED 불빛 아래 서면 영화 한 편을 카톡 한 글자처럼 빠르게 보낼 수 있는 세상이 다가왔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의 합작벤처인 ‘초병렬 가시광통신 프로젝트팀’은 최근 새로운 무선통신기술 ‘라이파이(Li-Fi)’의 놀라운 속도를 선보였다. LED에서 나오는 가시광선을 이용해 무려 1초에 10기가바이트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 받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재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무선랜인 와이파이(초속 100Mb)의 100배, 무선통신 중 가장 빠르다는 LTE-A(초속 150Mb)보다 66배나 빠른 속도다.

빛의 고속도로로 정보가 쌩쌩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으로 통신을 한다? 바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자. 조선시대에는 한밤중에 적이 쳐들어 오면 횃불로 봉화를 올렸다. 인디언들은 햇빛을 거울에 반사시켜 원거리 통신을 했다. 바다에서는 등대가 불을 깜빡거리며 위치를 알렸고, 해군함정들은 전략신호를 빛으로 주고받았다. 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로는 신호등이 있다. 녹색 불이 깜빡거리면 다음에 건너라는 신호다.

LED도 빛을 깜빡거려서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신호등과 같다. 다만 신호등보다 훨씬 빨리 깜빡거릴 수 있어 정보를 대량으로 전달할 수 있다. LED는 초당 200번 이상 깜빡거린다. 사람눈은 1초에 100번 이상 깜빡거리면 인식할 수 없지만 컴퓨터는 인식할 수 있다. 불이 들어오면 1, 들어오지 않으면 0으로 해석한다. 반대로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신호를 LED의 깜빡거림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LED를 이용한 가시광 통신을 연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차피 조명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에너지의 대부분을 열로 낭비하는 백열등과 형광등이 점점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로 교체되고 있다. 비싼 돈 들여서 LED 조명으로 교체하는데, 통신기술까지 더하면 1석 2조라는 게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라이파이가 대량의 정보를 빠르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은 LTE-A에도 사용된 직교주파수 분할다중 발신기법(OFDM) 덕분이다. 하나의 주파수를 여러 개 대역으로 나눠 각각 정보를 쪼개 보낸 다음, 수신지에서 다시 하나로 합치는 방법이다. 차가 마구 뒤섞여 달리던 넓은 도로에 차선을 그어 줄을 맞춰 달리게 하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같은 기술을 사용했는데 왜 LTE-A보다 66배나 빠른걸까. 주파수 대역, 즉 정보가 다니는 도로의 넓이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동통신과 무선 랜은 대략 300MHz~30GHz 사이 영역의 주파수를 사용한다. 이 안에서도 국가별, 용도별로 잘게 쪼개진다. LTE-A를 개통하기 위해 한 통신사가 20MHz 대역의 주파수 이용권을 사는 데 낸 비용은 무려 1조 원. 하지만 여전히 주파수는 좁고 너무 많은 사용자가 몰리면서 서로 간섭이 일어나 통신품질이 떨어진다. 2.4GHz 주파수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와이파이는 사용자가 조금만 몰려도 통신품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지하철 와이파이를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할때를 생각해 보자.

라이파이는 정보고속도로를 거의 무한대로 넓힐 수 있다. 라이파이가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의 넓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시광선의 주파수 영역은 380THz~750THz(테라헤르츠. 1THz는 1000GHz). 무선통신 전체 주파수보다도 무려 1만 배이상 넓은 것이다. LED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 광활한 대역에서 자유롭게 통신을 할 수 있다.
 


캄캄한 곳에서는 쓰지 못한다

그런데 가시광통신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빛이 닿는 곳만 통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시광선이 벽을 통과할 수도 없고, 심지어 손바닥으로 수신기만 가려도 통신이 되지 않는다. 원거리 통신용으로는 당연히 탈락이다. 태양에서 오는 가시광선이 간섭을 일으켜 낮에는 야외에서 사용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늘 조명이 켜져 있는 곳에서만 쓸 수 있다. 도대체 이런 불편한 통신수단을 어디다 쓰냐고? 다 쓸 데가 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코엑스몰을 떠올려보자(복잡한 지하상가나 대형백화점을 상상해도 된다). 자주 와서 익숙해진 사람이 아니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초행은 길 잃기 딱 좋다. GPS도 실내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라이파이다. 곳곳에 켜져 있는 조명으로부터 디지털 정보를 내려받아 위치를 찾거나 필요한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다. 강태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LED통신연구실장은 “자동차나 항공기의 안전운행을 돕고 시각장애인을 돕는 등 가시광통신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각장애인이 위치를 인식하려면 손으로 더듬거나 바닥에 있는 점자판을 밟아야 한다. 하지만 라이파이가 활성화되면 조명 밑을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 LED조명이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정보는 손에 든 점자판으로 들어와 글자로 변환되거나 스피커에서 소리로 바뀐다.

이밖에도 대형마트에서 원하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어떤 특별세일을 하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전운전에도 도움이 된다. 밤길에 운전을 하는데 앞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이럴 때 LED통신기술이 차에 달려있다면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강 실장은 “앞차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브레이크 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동시에 디지털 정보를 뒷차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살짝 방심하고 있었다 해도 자동으로 울리는 경보를 들으면 뒷차에 탄 사람이 사고를 피할 확률은 훨씬 높아진다.

“이런 융합기술이 생활화 되면 얼마나 편리하겠어요. 우리 연구실은 조명이 사용되는 생활 구석구석에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근거리 생활통신기술을 연구하고 있어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지요. 조명을 통신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조명밝기를 조절하면서도 정보가 끊이지 않게 하는 기술(VPPM)이 필요한데,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얼마 전 국제표준으로 선정됐어요. 이를 이용하면 LED의 밝기를 조절하면서도 버퍼링 없이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죠.”
 


“10년 안에 가시광통신 모르는 사람 없을 것”

빛만 가리면 통신이 두절되는 라이파이의 단점은 곧 장점이기도 하다. 쓰고 싶은 범위에서만 통신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을 막고 싶다면 LED만 끄면 된다. 병원이나 비행기, 원자력발전소처럼 전자기파 사용이 예민한 장소에서도 라이파이는 걱정 없이 쓸 수 있다. 빛이 전자기기 근처로 새들어가지 않게 문만 잘 닫아놓으면 된다.

보안에도 강하다. 와이파이는 마음만 먹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도·감청을 할 수 있지만, 라이파이는 눈에 보이는 곳까지만 통신이 가능하다. 강태규 실장은 이런 기대를 던졌다.
“10년 안에 가시광통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겁니다. 생활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조명들이 전부 통신장비로 바뀐다고 상상해보세요. 가시광통신이 상용화되면 전화와 인터넷이 처음 발견됐을 때와 맞먹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201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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