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대전 유성구 한국기계연구원(KIMM) 대기압플라스마연구실. 연구실에 들어서자 반도체 생산설비 규모에 입이 벌어졌다. 약 66m2에 이르는 연구실의 3분의 2를 반도체 생산설비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대훈 UST-한국기계연구원 캠퍼스 환경에너지기계공학전공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기증받았다”며 “산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간 축적된 소재·부품·장비산업, 소위 ‘소부장’ 기술을 산업에 접목하기 위해서다. 그 현장인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를 찾았다.
이대훈 교수는 한국기계연구원 플라스마연구실 책임연구원이자 UST 교수로 석·박사과정 연구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 교수팀의 목표는 플라스마를 이용해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불순물을 제거해 제조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반도체 생산 공정은 대부분 진공상태에서 이뤄진다. 한 톨의 먼지도 허용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 전후 공정에서 불순물이 들어갈 수 있다. 이 교수는 “플라스마 장비로 반도체의 불순물 상태를 진단하고 이를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마는 전하를 띤 양이온과 전자의 집합체를 말한다. 플라스마는 온도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글로 방전으로 만드는 수십~수백 도의 저온 플라스마와 직류나 교류의 아크 방전을 이용해 만드는 수만 도의 열(아크) 플라스마가 있다. 저온 플라스마는 압력이 수백 Torr(토르·1Torr는 표준대기압의 760분의 1)로 낮은 상태에서 생성돼 반도체나 형광등 제조에 쓰인다. 반면 열 플라스마는 대기압에서 발생시킬 수 있어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물질 소각, 입자 제조 등에 쓰인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테트라플루오린화탄소(CF4)나 헥사플루오린화황(SF6) 같은 불소화합물이 주로 생긴다. CF4는 약 2700도, SF6은 약 1700도의 고온에서 분해된다. 이 교수는 “불소화합물은 굉장히 안정적인 화합물이어서 대기 중에 노출되면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는다”며 “SK하이닉스는 열 플라스마 기술을 이용해 처리하고, 삼성전자는 높은 온도에서 태워 없앤다”고 설명했다.
열 플라스마를 이용하면 반도체 공정에서 생기는 불소화합물과 질소산화물(NOX)을 분해할 수 있다. 화합물에 플라스마를 가하면 플라스마의 에너지가 화합물 속 원자들의 내부 결합을 끊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를 감지하는 데도 플라스마를 쓸 수 있다. 반도체 공정은 워낙 미세하고 정교한 조건에서 일련의 과정을 따라 자동으로 이뤄지는 만큼 오류를 감지하기가 어렵다. 이 교수는 “플라스마를 사용하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며 “불순물 때문에 생기는 플라스마의 색 감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해 오류 발생 여부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개발에 유용한 플라스마 기술은 환경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쓰레기를 태우면 질소산화물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메탄가스, 이산화탄소 등이 발생한다. 이 교수는 “열 플라스마를 활용하면 소규모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메탄과 이산화탄소를 태울 수 있다”며 “이들을 플라스마로 태운 뒤 유용한 기체로 합성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매립지에서 쓰레기를 처리할 때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포집한 뒤 열로 연소시켜 다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이 교수는 “이산화탄소는 메탄의 연소를 방해한다”며 “플라스마로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메탄의 에너지 전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와 지호일 교수는 연료전지에 쓸 세라믹 에너지 소재를, 손지원 교수는 반도체나 전지용 박막 소재를, 박상백 교수는 전고체전지용 소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11월 13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난 연구진은 ‘소재 드림팀’이었다. 이종호 에너지소재연구단 책임연구원은 UST가 설립된 2004년부터 교수로 활동하면서 지금은 U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스쿨 나노-정보융합전공 주임교수를 맡아 KIST의 ‘소재 군단’을 이끌고 있다.
소재 군단에는 2012년부터 UST 교수가 된 손 교수와 올해 처음 UST 교수로 선임된 지 교수, 그리고 박 교수까지 교수진만 4명이다. 여기에 UST 석·박사과정 연구원과 인턴 연구원 등 연구원도 4명이나 된다.
이 주임교수는 20여 년간 세라믹 에너지 소재를 연구했다. 2018년 8월에는 값비싼 촉매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세라믹 연료전지(PCEC)를 개발해 대면적(5×5cm²)으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연료전지의 출력과 크기도 10배 이상 높였다. 이 기술은 바로 상용화할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임승혁 석사과정 연구원은 “현재 PCEC의 성능을 더 높일 수 있는 양극성 물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doi: 10.1038/s41560-018-0230-0
손 교수는 박막 전문가다. 반도체나 연료전지용 기판에는 박막이 들어가는데, 박막을 구성하는 물질과 두께가 반도체나 연료전지의 전기 전도도를 좌우한다.
현재 손 교수팀은 PCEC용 박막을 1~2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 두께로 기판에 덮어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는 반도체 칩 하나에 더 많은 기능을 담아야 하고 이를 위해 성능을 업그레이드해야할 것”이라며 “이를 위한 차세대 반도체 산화물의 박막 두께는 1μm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반도체용 박막은 수십μm 수준이다. 손 교수는 “연료전지는 박막 두께를 1μm까지 얇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이 경험을 토대로 반도체의 산화물 박막 두께를 줄이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소부장’ 기술의 발달은 모든 산업에 사용되는 전자 기기의 성능 향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미래 인공지능(AI)을 통한 초 연결시대를 구성하는 근간 기술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11월 14일 대전에서 만난 윤호섭 UST-한국전자통신연구원 스쿨 ICT전공 교수(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인간로봇상호작용연구실 책임연구원)는 인공지능 중에서도 시각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2002년부터 조도와 각도에 따라 카메라가 얼굴 이미지만으로 감정을 인식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왔다. 이 기술을 지능형 로봇에 적용하면 감정을 인식하는 로봇이 탄생하는 셈이다.
2014년 윤 교수팀은 얼굴 표정이 담긴 이미지만으로 이미지의 실제 주인을 찾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뇌 신경망을 모사한 딥러닝 방식으로 인공지능에게 1인당 50장의 이미지를 총 50만 장 학습시켰고, 인공지능이 약 97%의 정확도로 이미지의 주인을 인식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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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술은 2017년 한국인터넷진흥원으로부터 기술 인증을 받았고, 기업에 15건 이상 기술 이전을 성사시켜 총 3억 원 상당의 기술료를 벌어들였다.
윤 교수는 “현재는 인공지능에게 약 5000만 장의 이미지를 학습시켰고, 사람을 구별해내는 인식 정확도가 99.8%로 향상됐다”며 “기쁨, 슬픔, 놀람, 공포, 분노 등 거의 사람과 유사한 수준으로 이미지에 담긴 감정을 읽어낸다”고 말했다.
윤 교수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성우 연구원은 사람의 머리 모양과 크기, 색상 등의 이미지를 판별하는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곽찬웅 석사과정 연구원은 얼굴에 있는 특징점 68개를 중심으로 개별 얼굴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장재윤 박사는 “사람이 눈을 통해 주변을 인식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로봇도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을 내리는 게 지능형 로봇 개발에는 중요하다”며 “사람의 얼굴을 정확하게 인식할 뿐만 아니라 상황이 바뀌어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2013년 UST에 입학해 윤 교수의 지도로 올해 2월 석·박사통합과정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윤 교수는 “얼굴에서는 홍채를 이용한 생체인증 기술이 발달했는데, 미세혈관에 의한 피부 변화로 심박수를 알 수도 있다”며 “얼굴의 이런 특성을 활용하면 향후 더욱 안전한 생체인증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