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혜성인지, 소행성인지 모를 거대한 암석이 지구로 떨어졌다. 지각의 암석들이 잘게 쪼개져 하늘로 솟아오르고, 지구는 두꺼운 먼지구름으로 뒤덮였다. 햇빛이 가로막히면서 식물이 말라죽었다. 긴 겨울은 1억6000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을 멸종시켰다.
흔히 알려진 공룡 멸종의 원인, ‘소행성 충돌’에 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공룡의 마지막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화산이 폭발하고 기후가 급변하는 등 대격변은 100만 년에 걸쳐 일어났다. 무엇이 정말로 공룡을 멸종시켰을까.
보통 대멸종(大滅種)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중생대 백악기의 끝, 신생대 고제3기(古第三紀)가 시작되는 시기에 발생한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Cretaceous-Paleogene mass extinction 또는 K-Pg mass extinction)’을 떠올린다.
약 6600만 년 전 일어난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은 지질시대에 있었던 다섯 번의 대멸종 중 가장 마지막에 일어났다. 당시 살았던 전체 생물 종의 약 75%가 이 때 절멸했다고 추정된다. 1억6000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이 멸종한 시기도 (사실 공룡은 완전히 멸종하지 않았지만) 바로 이 때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백악기-고제3기에 대멸종이 발생했을까. 그 원인을 두고 한 때는 수십 가지 가설이 있었다. 그러다 세계 곳곳의 백악기-고제3기 지층의 경계(K-Pg boundary)에서 운석에 상대적으로 많은 이리듐 성분이 검출되고, 그와 함께 중앙아메리카의 유카탄 반도에서 지름이 150km에 이르는 칙술루브 충돌구(Chicxulub crater)가 발견되면서 지구에 대형 혜성 또는 소행성이 떨어져 생물이 멸종했다는 ‘소행성 충돌설’이 큰 지지를 얻게 됐다.
충돌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 소행성 충돌만이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의 원인일까. 이 질문에 안타깝게도 아직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 인도 남부 데칸 고원(Deccan Plateau)에 위치한 데칸 트랩(Deccan Traps)의 존재 때문이다.
데칸 트랩은 대규모 화산폭발의 증거다. 백악기 말과 고제3기 초에 걸쳐 인도 아대륙(亞大陸)에서 대규모 화산폭발이 일어났고, 현무암질 용암이 넓은 지역을 뒤덮으면서 범람현무암이 층층이 쌓인 데칸 트랩이 생겨났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트랩, 미국의 컬럼비아 고원이 데칸 트랩과 함께 대표적인 범람현무암 지대로 꼽힌다.
데칸 트랩의 두께는 2000m 이상이며, 면적은 약 50만km2
로 한반도의 두 배가 넘는다. 이렇게 넓고 두껍게 발달한 지대가 생성 이후 침식과 판구조 운동의 영향으로 약 3분의 1로 줄어든 상태일 것이라고 하니, 당시 얼마나 많은 용암이 땅을 뒤덮었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데칸 트랩은 지질시대의 마지막 대멸종인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이 화산활동과 관계됐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실제로 화산폭발은 2018년 개봉한 영화 ‘쥬라기 월드:폴른 킹덤’에서 묘사된 것처럼 인근 생물들에게 치명적이다. 화산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마그마는 녹은 암석뿐만 아니라 메탄과 이산화탄소, 이산화황 같은 화산가스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 가스가 짧은 기간에 대량으로 대기에 유출되면 생태계를 파괴할 만큼 급격한 기후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화산활동은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을 포함한 다섯 번의 대멸종의 원인 중 하나로 꾸준히 지목돼 왔다. 특히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Permian-Triassic mass extinction)과 트라이아스기-쥐라기 대멸종(Triassic-Jurassic mass extinction)은 각각 시베리아 트랩과 중앙대서양 마그마지대(Central Atlantic Magmatic Province)와 관련된 굉장히 큰 규모의 화산활동이 주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백악기에서 고제3기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급격한 기후변화가 진행됐다는 지질학적 증거도 남아있다.
소행성 충돌이 화산활동을 촉진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데칸 트랩을 만든 화산폭발이 마지막 대멸종을 일으킨 것일까. 유카탄 반도에 소행성 충돌의 증거가 명확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 역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때문에 최근 과학계에서는 소행성 충돌과 데칸 화산활동이 모두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월 22일자에는 화산폭발이 공룡 멸종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하는 데 단서가 될 수 있는 논문 두 편이 동시에 실렸다. 두 논문은 각기 다른 연구팀이 작성했지만, 흥미롭게도 모두 데칸 화산활동의 시기와 양상을 연구한 결과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데칸 화산활동과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의 가장 큰 한계는 화산폭발 시기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점이다. 데칸 트랩의 대략적인 형성 시기는 알려져 있었지만, 이를 대멸종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화산활동이 언제, 어떤 규모로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아야만 했다. ‘사이언스’에 실린 두 논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다.
코트니 스프레인 영국 리버풀대 지구해양및생태학부 연구원팀은 초정밀 아르곤 동위원소비 자료로 데칸 트랩 현무암의 생성 시기를 계산하고 데칸 트랩 내에 백악기-고제3기의 경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비교적 자세하게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데칸 트랩이 몇 차례의 대규모 폭발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약 100만 년 동안(논문에 따르면 99만1000년) 지속적으로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대부분의(전체 부피 추정치의 약 93%) 용암이 분출돼 형성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연구팀은 또한 백악기에서 고제3기로 넘어가는 시기 이후에 전체 부피 추정치의 절반이 넘는 용암이 분출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소행성 충돌이 데칸 화산활동을 더 촉진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당시의 기온 자료와 비교해 데칸 화산폭발 이전에 대기 중으로 화산가스가 대규모로 유출돼 기후변화에 영향을 줬거나, 또는 백악기 말의 급격한 기후변화는 데칸 화산활동과 관련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추가로 내렸다. doi:10.1126/science.aav1446
화산폭발이 야기한 기후변화가 결정타?
반면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팀은 데칸 화산폭발의 시기와 속도를 계산한 결과, 화산활동으로 야기된 기후변화가 대멸종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블레어 쇼엔 프린스턴대 지구과학과 교수팀은 9개의 주요 데칸 트랩 층에서 암석 표본을 수집한 뒤, 여기에 포함된 지르콘을 분석했다. 지르콘은 마그마가 식으면서 형성되는 광물로, 지르콘에 들어있는 우라늄-납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하면 암석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데칸 화산활동은 백악기에서 고제3기로 넘어가는 경계 전후로 총 네 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일어났고, 각각의 대폭발은 10만 년 이내의 기간 동안 지속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네 번의 대폭발 사이에 상대적으로 화산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휴지기(休止期)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대폭발이 백악기와 고제3기 사이의 대멸종이 일어난 시기보다 약 10만년 정도 일찍,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거대한 소행성 충돌구가 형성된 시기보다도 수만 년 전이다. 연구팀은 데칸 화산활동의 결과로 대기에 다량의 화산가스가 유입되고 현무암이 화학적으로 풍화돼 기후변화에 영향을 줬고, 이것이 대멸종을 초래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doi:10.1126/science.aau2422
이는 영국 리버풀대 연구팀이 분석한 화산폭발 양상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두 연구 모두 데칸 트랩의 정확한 연령 자료 확보에는 성공했다. 다만, 화산폭발의 양상이 왜 다르게 분석됐는지, 화산활동에 의해 대기로 유출된 화산가스의 정확한 성분과 이것이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는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공룡의 멸종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데칸 트랩은 단순히 먼 옛날에 일어난 화산활동의 잔존물이 아니라, 이런 대규모 화산폭발이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폼페이를 비롯한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화산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데칸 트랩에 대한 연구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이유다.
이성진
수각류 공룡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다. 서울대에서 척추고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몽골과 미국 등에서 화석 발굴에 참여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