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에서 역사, 인문학, 철학을 배우는 학과는 건축학과뿐일 겁니다.”
폭염이 절정에 이른 7월 말,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생 5명을 만났다. 그들은 미래 건축학과 후배들을 위해 건축학과 합격 비결을 공개했다.
풀이과정 깨끗하게 쓰는 습관 18학번 안정호
일반고인 서울 상문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안정호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을 보며 건축학도의 꿈을 키웠다. 그는 “건축을 전공한 이모부가 직접 할머니의 집을 지어 드렸는데, 그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고 말했다.
안 씨가 입시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면접이다. 그는 “서울대에 입학한 고등학교 선배들이 면접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 조언해줬다”며 “서울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기출문제를 수차례 훑어 보며 준비했다”고 말했다.
면접을 철저히 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 현장에서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서울대 공대 수시 일반전형의 경우 면접은 수학 문제를 45분 동안 푼 뒤, 15분 동안 교수들 앞에서 설명하게 한다. 안 씨는 문제를 푼 뒤 교수들 앞에서 설명하던 중 자신의 풀이에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면접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안 씨는 바로 자신의 풀이를 되짚었고, 이내 실수한 부분을 발견해 제대로 된 설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안 씨는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긴장되는 순간에 그런 기지를 발휘할 수 있을 만한 습관이 하나 있었다. 바로 풀이과정을 깔끔하게 쓰는 것이다. 안씨는 “평소에도 풀이과정을 깔끔하게 쓰려고 노력했다”며 “덕분에 그 짧은 순간에도 다행히 실수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 씨가 면접에 더 집중했던 이유는 내신이 최상위권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국어와 영어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교내 여러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안 씨는 “독후감 대회나 영어 논술 대회, 그리고 어휘력 대회 등에 참가해 수상하면서 부족한 성적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면접관과 소통이 중요 18학번 박신우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박신우 씨는 서울고 재학 당시 2학년 겨울방학이 돼서야 건축학과로 진로를 정했다. 스스로 고등학교 생활을 돌아보고 자신의 관심사를 살핀 결과였다.
박 씨는 “관심사가 복합적인 편”이라며 “수학과 과학도 좋아했지만, 인문학과 철학 등 인문사회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고등학생 시절 교내 토론 대회에 참가하며 인문학과 철학에 빠졌다. 사생대회에도 참여할 만큼 미술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도 흥미가 있었다. 박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공대에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할 수 있는 전공이 건축학이라고 추천해주셨다”고 말했다.
이미 건축학과로 진로를 정한 다른 친구들은 건축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박 씨는 진로를 늦게 정하다보니 자신의 활동이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여러 활동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건축에 대한 부족한 지식은 관련 책을 읽으며 채우는 등 자신의 관심사와 건축 사이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만들었다. 그는 “건축에 대한 지식을 보여주기보다는 다방면에 걸친 관심이 건축과 충분히 연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자신이 암기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수능 대신 일찍부터 수시 전형에 대비했다. 그는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에 만전을 기했던 만큼 후배들을 위해 수시 면접의 팁도 공개했다. 그는 “풀이과정을 설명할 때 면접관과 소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면접 당시 문제를 다 풀지 못한 채 면접관 앞에 섰다. 문제를 다 풀지 못했다는 생각에 초조하긴 했지만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오히려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떤가?”라며 힌트를 줬다고. 박 씨는 “긴장하지 않고 면접관과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나간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면접 중 문제 풀이 설명이 일찍 끝나서 예정에 없던 자기소개서 관련 질문을 받아 당황하기도 했다”며 “자기소개서를 스스로 생각해 진솔하게 쓴 만큼 침착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모든 과목을 건축과 연결지어 18학번 김성진
“깜깜한 밤에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멋진 야경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중에서 비정형의 현대 건축물들이 눈에 확 들어왔죠. 공학에서도 가장 스케일이 크고, 눈으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학문이 건축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북 김천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합격한 김성진 씨는 어릴 때부터 건축학도를 꿈꿨다. 건축은 수많은 분야가 협력해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한 김 씨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마다 건축과 연결지었다. 가령, 역사에서는 전통 가옥을 통해 과거의 건축 기술을 들여다봤고, 물리를 배울 때는 건물 구조의 역학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를 자기소개서에 그대로 녹여냈다.
그렇게 합격한 서울대 건축학과에 대해 김 씨는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특히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학전공과 건물을 짓는 공법을 배우는 건축공학전공을 1학년 때 함께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김 씨는 “건축학과 건축공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하나의 건물을 지을 때 둘 모두를 생각하는 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축학과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두 전공 중에서도 멋진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학전공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 씨는 설계도를 토대로 건물의 재료를 고르고, 튼튼하게 짓는 공법을 공부하기 위해 건축공학전공을 선택할 계획이다. 김 씨는 “설계도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설계도에 있는 것을 현실성 있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더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후배들을 위해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건축학과는 수학, 과학 외에 다양한 학문을 두루 익힐 수 있는 곳”이라며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면 이곳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가치관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공대 프런티어캠프에서 진로 확신 18학번 길영환
길영환 씨는 과학영재학교인 대전과학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했다. 길 씨는 “건축학이 인간을 다른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인본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길 씨는 과학고 재학 중 내신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건축을 진로로 정한 뒤 그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일본 고등학교와의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해 한국의 전통가옥에 사용된 재료를 비교 실험해보고 온돌과 한옥의 단열성 등 특징을 조사했다.
길 씨는 서울대 공대에서 매년 진행하는 ‘공학프런티어 캠프’에도 참가했다. 3박4일 일정으로 다양한 전공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특강도 듣고 공대 선배들을 만나 얘기도 들었다. 참가자들끼리 조를 이뤄 희망하는 학과와 관련된 조별 활동도 진행했다.
길 씨는 캠프 참가 이후 건축학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는 “캠프에서 했던 조별 과제가 실제 대학 수업에서도 진행되는 내용이라는 걸 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알게 됐다”며 “캠프는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자기소개서는 통일성이 중요 17학번 장유진
장유진 씨는 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검정고시를 보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장 씨는 수시를 두 번 본 재수생이다. 첫 수시에서는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다행히 문제는 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정작 장 씨는 “합격과 불합격을 가른 것은 마음가짐”이라며 “첫 수시에서는 너무 긴장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두 번째 도전에서는 충분히 준비했다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갖고 면접장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두 번째 면접에서도 문제를 다 풀지 못했지만, 긴장하지 않고 면접관과 대화하며 무사히 면접을 마쳤다.
장 씨는 어렸을 때부터 건축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창 시절 분야에 상관없이 다양한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모의 유엔, 오케스트라, 건축 등 관심 가는 동아리에는 모두 가입했다. 의욕이 넘쳐 일단 동아리에 가입은 했지만, 모든 활동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가장 좋아하는 건축 동아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탈퇴했다. 장 씨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장 씨의 다양한 관심사는 자기소개서에도 걸림돌이었다.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자기소개서의 글자 수는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소개서는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건축에 집중해 건축에 대한 열정이 잘 드러나도록 정리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대학 입학 이후 건축 이외의 관심사에 다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가 포함된 건축학과의 교육과정이 이와 잘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장 씨는 “수학, 과학 이외에 인문학 등 다른 분야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학과에서도 공학 이외의 전공 수강을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