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애플이 ‘아이폰7’을 발표했을 때 평소 애플에 우호적인 미국 언론들조차 우려를 표시했다. 무선 이어폰 ‘에어팟(AirPod)’ 때문이다. 당시 애플은 “스마트폰에 더 다양하고 중요한 기술을 탑재하려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어폰 단자를 없앴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이어폰처럼 귀에 꽂는 에어팟은 블루투스보다 전력 소모가 적은 ‘W1’ 무선칩과 기술을 적용했다. 한 번 충전하면 최대 사용 시간이 5시간이어서 첫 발표 당시만 해도 대중화되기에 이르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에어팟은 선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있는 그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감쌌다. 무선 이어폰의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까.
무선 이어폰의 장애물은 머리
무선 이어폰의 안정성은 사람이라는 ‘장애물’을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에 달려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기본적으로 전파를 이용해 음성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전파는 물을 통과하지 못하고 흡수된다.
송명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전파·위성연구본부 기술총괄은 “사람의 몸은 약 70%가 물로 이뤄져 있어 전파가 통과하지 못하고 흡수되기 때문에 신호가 차단되고 끊김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특히 무선 이어폰은 선이 없어 유닛(이어폰에서 귀에 꽂는 부분) 사이의 신호를 무선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좌우로 이어폰을 착용하면 두 유닛 사이에 머리가 위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뇌는 약 80%가 물로 이뤄진, 인체에서도 수분이 많은 부위다. 수분이 많고 두꺼운 머리라는 장벽이 전파를 가로막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선 이어폰 사용자들은 소리가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현상을 종종 경험한다.
에어팟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닛 아래 부분에 길게 안테나를 삽입해 유닛 사이의 연결성을 높였다. 또 안테나 끝에 마이크를 장착해 입과 마이크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효과도 함께 얻었다. 다만 길게 늘어진 안테나 덕분에(?) 에어팟은 ‘면봉’이라는 다소 민망한 별명을 얻었다.
자체 개발 코덱으로 와이파이 간섭 이겨내
무선 이어폰을 포함해 모든 블루투스 이어폰은 표준 주파수 대역인 2.4GHz(기가헤르츠·1GHz는 109Hz)를 이용한다. 2.4GHz 대역의 전파는 비면허 대역으로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재승 ETRI 미래이동통신연구본부 전문위원은 “국제적으로 비면허 대역으로 900MHz(메가헤르츠), 2.4GHz, 24GHz, 60GHz 등 4개 대역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들 중 2.4GHz가 10~100m 사이의 근거리 통신에 적합해 블루투스나 와이파이 등 근거리 무선 통신에서 널리 쓰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2.4GHz가 비면허 대역이다 보니 너도나도 사용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스마트폰과 와이파이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번화가에서는 와이파이 신호 수십 개가 겹친다. 이 전문위원은 “주파수가 서로 겹치면 충돌을 막기 위해 신호 전달이 지연된다”며 “겹치는 전파가 많아져 간섭이 계속되면 지연이 길어져 신호가 끊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무선 이어폰 사용 시 간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SC’라는 자체 개발 코덱(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저장·재생하기 위한 규칙)을 개발했다. 김성엽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품기획담당연구원은 “SSC 코덱을 통해 연결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고 배터리 소모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SSC 코덱을 이용하려면 무선 이어폰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스마트폰에도 같은 코덱이 내장돼 있어야 한다.
전자기 유도로 동기화 문제 해결
무선 이어폰이 ‘연결’이라는 벽을 넘어서면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동기화’다. 유선 이어폰과 달리 무선 이어폰은 데이터를 무선 신호로 변조하고 다시 해석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신호 지연이 발생한다.
음악을 듣거나 통화를 할 때는 소리 데이터만 있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할 때는 화면과 소리가 정확히 맞지 않아 불편할 수 있다. 특히 무선 이어폰은 스마트폰과 이어폰 사이의 동기화뿐만 아니라 양쪽 유닛 사이의 동기화도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신호 지연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신호 지연을 줄이기 위해 브라기의 ‘더 헤드폰’ 등 일부 제품은 양쪽 유닛을 블루투스 대신 근거리 전자기 유도 방식으로 연결한다. 조인귀 ETRI 전파환경감시연구그룹 책임연구원은 “근거리 전자기 유도 방식은 무선 충전이나 근거리 무선 통신(NFC) 등에서도 쓰이는 기술”이라며 “배터리 소모가 적고 연결 과정이 따로 필요 없으며, 주변 전파에 의한 간섭에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