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8일 오후 8시 16분 39초. 이소연 씨가 승선한 러시아 소유스 TMA-12호가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발사센터에서 힘차게 날아올랐다. 588초 뒤 소유스 호는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이 씨는 지상에서 약 3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11일간 생활하며 초파리 생장, 신체 생리적 변화 계측 등 18가지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했다. 정부는 이 씨에게 ‘한국 우주인’이라는 공식 타이틀을 부여했다.
하지만 정부의 우주인 사업은 이 단계에서 사실상 중단됐다. 그에게 강연 요청은 끊이지 않았지만 우주인 고유 임무와 관련한 후속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형 유인우주프로그램 개발’ ‘미세중력 활용 우주실험 지상연구’ 등 관련 프로젝트들도 2012년 대부분 종료됐다.
이 씨는 2012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휴직하고 돌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경영학석사(MBA)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014년에는 연구원을 아예 퇴사하고 미국 시애틀에 자리를 잡았다. 일각에서는 사업비 250억 원을 ‘먹튀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그가 한국 우주인 배출 1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4월 3일 오전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열린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 초청강연과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미국에서의 근황과 우주인 탄생 10주년을 맞는 소회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 한국 매체와 인터뷰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2년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물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살 때는 ‘우주인’으로 초청받아 늘 수재라고 불리는 학생들만 만났는데, 지금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덧셈 뺄셈도 제대로 못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렇게 다양한 학생들에게 어떻게 우주를 전하고 어떻게 과학을 흥미롭게 느끼게 해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로프트 오비털(loft orbital)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시간제로 국제협력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로프트 오비털은 인공위성을 만들고 발사할 능력이 없는 국가에 인공위성을 빌려주는 회사인데요. 큰 시장에서 경험도 얻을 겸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뭘 하든 우주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실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미국에서는 (국적상) 소수자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밖에 한 은퇴 연구자가 고등학생들을 위해 본인의 집 지하실에 만든 소형 원자로 실험실에서 학생들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걸 도와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Q. 바쁘게 지내시네요. 타지 생활이 힘들지는 않은가요.
말도 안 통하고 불편한 것도 많죠. 2003년 KAIST 학부생 시절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는데, 그 때는 6개월 지내고 바로 짐 싸서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미국에 있는 이유는 거기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있고, 지금 자리에 안주하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주요 사업이 우주인을 우주로 보내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바깥에서 도울 일이 더 많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나 캘리포니아공대 같은 해외 기관에서 2~3개월에 한 번씩 연락이 와요.
한국 전문가의 연락처나 담당자를 물어오면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우주에 다녀온 게 벌써 10년 전이네요. 한국은 현재로써는 제2의 우주인을 양성할 계획이 없는데요. 후속 연구를 통해 이어나가고 싶었던 연구가 있었나요.
우주에서 세포를 키우는 실험이나 초파리의 중력 반응을 보는 실험처럼 변화를 보는 실험은 조건을 바꿔서 좀 더 심도 있는 결과를 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런 연구들이 완전히 맥이 끊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제가 온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에서도 계속 연구를 하고 있고요.
우주인 사업은 당장 우주인을 ISS에 보내지 않더라도 국제 협력을 통해 우주과학 실험을 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우주인들을 통해서 위탁 실험을 맡기는 거죠. 한국 우주인이 직접 올라가서 결과를 가지고 올 때가 됐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면 그때 제2 우주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 명의 우주인을 배출한 나라들도 두 번째 우주인이 나오기까지 10년 이상 걸리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각자의 나라가 그들만의 특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특기를 찾아야 한다고 봐요. 가령 미국이 화성에 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뭘까. 미국이 화성에 갈 때 아주 결정적인 기술 하나가 한국에서 나온다면, 우리는 이미 유인 우주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겁니다.
Q. 최근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우주인 배출 사업의 ‘도구’였다고 발언해 온라인 ‘악플’도 많이 겪으셨다고요.
인터뷰 전문을 읽으셨다면 그런 비판이 아니었다는 걸 아실텐데…. 정부가 잘못됐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그냥 그런 비효율적인 일에 엄청난 노력과 돈이 쓰인다는 게 참 슬펐어요. 처음에 우주인 사업을 기획하고 러시아와 계약한 정부와, 우주인을 우주로 올려 보낸 정부, 그리고 우주인이 그 뒤에 활동을 하게 될 때의 정부. 똑같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면 처음 의도와 달라질 수 있고, 계획한 매뉴얼 그대로 하려고 해도 인수인계 받은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모두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정부가 바뀌고 책임자가 바뀌면서 최선을 다한 방향이 틀어져 버린 거죠. 공학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처음에 각도가 5도만 틀어져도 나중에 굉장히 많은 거리 차이가 나잖아요. 누구 한 사람의 잘못보다는 피할 수 없는 타이밍 때문에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실정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Q. 이소연 씨를 보고 꿈을 키워온 ‘이소연 키즈’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제가 우주에 갈 때 초등학생이었던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우주 관련 벤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저학년 학생들은 제가 우주에 갈 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저를 우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겨주더라고요. 그런 학생들에게 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우주인이 되는 데 29년이 걸렸습니다. 그 전까지는 박사과정 졸업을 못하면 어쩌나, 취직을 못하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죠. 이처럼 뭔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못 기다리고, 자신이 멈춰 있다고 생각하며 조급해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누군가 정해준 꿈에 끌려 다니지 말고, 믿음을 갖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Q. 민간 우주개발 경쟁이 뜨겁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스페이스X 같은 민간 상업우주회사가 생겨나고, 조종사 출신이 아닌 우주인을 뽑겠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여유가 생겼다고 봐야죠.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우주비행사를 육성해 우주에 ‘가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스카이랩(Sky Lab)’이 생기면서 우주에서 실험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나왔고, 우주에서 의미 있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온 겁니다. 그러자면 민간을 배제할 수 없죠. 민간이 함께 했을 때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니까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우주개발 사업보다 민간 주도 사업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내고 있으니, 러시아나 중국도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려주세요.
궁극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연구하는 한국의 우주공학자, 과학자의 노고와 성과를 알리는 소통 창구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경험하고 배우는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겼을 때 제가 준비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또 한국이 언젠가 우주인 사업을 다시 시작하고 저에게 임무가 주어진다면, 한국에 돌아와 두 번째 한국 우주인 배출을 돕고 싶습니다. 두 번째 우주인 사업은 첫 번째 우주인 사업과 목적이나 동기 등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처음 우주인을 배출하며 실수했던 부분들을 제가 막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