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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어서와, 경제는 처음이지?

 

아이폰X의 원가는 얼마일까?
‘아이폰X(텐)’의 인기가 뜨겁다. 한국 시장 출시 이틀 만에 10만 대가 개통됐다.


물론 애플 제품에는 언제나 따라 붙는 논란이 이번에도 불거졌다. 이른바 ‘원가 논쟁’이다.

 

애플이 제조 원가에 비해 지나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IHS마켓이다. IHS마켓은 애플 아이폰X의 부품 원가를 산출해 64기가바이트(GB) 모델의 제조 원가가 370.25달러(약 40만2000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아이폰X의 글로벌 출고 가격인 999달러(약 108만7000원)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제품의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37%에 불과한 셈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애플은 어마어마한 폭리를 취하는 악덕기업이 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경영학자로서의 경험과 지식에 비춰볼 때, 애플은 아이폰X 초도생산물량(initial production)에서는 엄청난 적자를 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IHS마켓은 부품의 시장가격을 근거로 아이폰X의 원가를 계산했는데, 이는 부품만 사와서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데스크탑 PC 같은 범용 제품의 원가를 계산할 때에는 들어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폰X처럼 개발 기간이 길며 또 수천 만~수 억 대를 생산해야 하는 제조업체의 원가를 계산할 때에는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아이폰X처럼 많은 부품이 투입되는 정교한 제품을 생산할 때에는 제품의 원가가 생산량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경영학에서는 ‘학습곡선(Learning Curve)’이라고 한다.

 

 

록히드 스캔들과 트라이스타
학습곡선이란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생산성이 향상돼 생산 단가가 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공장이나 조립라인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TV, 항공기, 스마트폰의 제품 생산 비용은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낮아진다. 수학적으로는 생산량이 두 배가 됐을 때 그 이전의 수준에 비해 평균적인 생산비용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나타낸 그래프다. 산업마다 학습곡선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비행기나 반도체처럼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산업일수록 생산성의 향상 속도가 가파른 편이다.

 

 

학습곡선의 위력을 보여준 가장 극적인 예가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 일명 ‘트라이스타’ 여객기다. 1968년 첫 비행 당시 트라이스타는 당대의 최신기였다. 기존보다 진보된 자동조종 시스템을 채택했고, 보잉 747처럼 관성항법장치를 탑재해 항로 이탈을 방지하는 등 최첨단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1971년 우베 라인하르트(Uwe Reinhardt)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 신형 여객기 트라이스타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주장했다. 물론 트라이스타를 개발한 미국의 록히드는 그의 지적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후에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결국 마틴과 합병되고 말았다.

 

참고로 합병을 통해 탄생한 회사가 세계 항공기 제조업 3위인 록히드마틴이며, 일본의 제40대 총리였던 다나카 가쿠에이를 사임시킨 이른바 ‘록히드 스캔들’도 트라이스타 항공기를 일본 항공사 ANA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라인하르트 교수는 학습곡선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항공기의 미래를 예측했다. 그는 1971년 이후 생산될 트라이스타 비행기 한 대당 생산비용이 150대를 생산한 이후에는 1550만 달러(약 168억 원), 300대를 생산한 이후에는 1200만 달러(약 131억 원)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트라이스타의 생산량이 150대에서 300대로 두 배가 됐을 때 대당 생산비용은 1550만 달러에서 1200만 달러로 22% 가량 절감된다(아래 그래프).

 

록히드마틴의 F-35 합동전폭기(JSF) 조립 라인. 록히드마틴은 생산 비용을 현재 4세대 전투기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수억 달러를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비행기, 자동차, IT 산업은 다른 산업들에 비해 초기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다.

 

 

 

생산량을 늘릴수록 원가가 떨어지는 이유
트라이스타의 비용 추산 결과가 나타내는 바는 명확하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기업들의 원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트라이스타를 1024대 만든 뒤의 평균 생산비용은 맨 처음 생산비용의 14 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부품 제공업자, 관리자, 그리고 제작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의 생산성이 평균 14배 정도 향상됐음을 의미한다. 10여 년 동안 거의 비슷한 일을 하면서 숙련도가 향상되고 또 능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대량생산을 하는 기업들이 모두 학습곡선을 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열심히 일하고 관리자와 근로자가 협력하며, 매번 조립 라인에서 상품이 만들어질 때마다 자기 일을 좀 더 잘하기 위해 애쓰는 기업만이 달성 가능한 일이다.

 

록히드가 매우 뛰어난 생산성을 자랑하는 기업이지만, 학습곡선을 타는 초기에는 트라이스타 생산에 엄청난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어마어마한 적자가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트라이스타의 생산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 ‘록히드 스캔들’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언제 구매해야 가장 이득일까
이제 다시 아이폰X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이폰X 개발은 거의 5년 전에 시작됐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채택되고 또 기각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개발 비용이 투입됐다. 따라서 첫 번째 아이폰X의 생산원가는 아마 수십 억 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아이폰X 생산 과정에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생산비용이 절감되기에, 아마 수백만 대가 생산될 때에는 제조원가가 출시가격에 근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애플이나 삼성전자 같은 정보통신기업들은 다른 산업에 비해 대단히 빠른 속도로 학습곡선을 타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아이폰X의 생산비용은 지금쯤 판매가격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초기에 생산된 물량을 구입한 고객들은 남들보다 훨씬 싼 값에 제품을 구입했다고 오히려 기뻐해야 마땅할 것이다.

 

 

홍춘욱_hong8706@naver.com
1993년 12월부터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환율의 미래’ ‘인구와 투자의 미래’등 다양한 책을 통해 경제 지식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이며, 블로그(blog.naver.com/hong8706)를 통해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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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 에디터

    이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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