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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카멜레온 같은 감성금속으로 말할 것 같으면

메탈 바디’에 샴페인 골드 색상이 접목된 아이폰이 앞으로 더 다양해질 디자인 수요에 대비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감성 소재용 금속을 개발하고 있다. 큰 인기를 끌었다. 이른바 ‘풀 메탈 바디’ 시대,

 

서서히 색과 무늬가 변하는 ‘풀 메탈 바디’ 휴대전화, 필터 교체 시기를 알려주는 정수기, 스스로 흠집을 치유하는 자동차, 펌프와 냉매 없이 스스로 냉동하는 냉장고. 무슨 소설 같은 얘기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개발되고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공통점은 바로 금속. 소비자가 꿈꾸는 제품의 감성을 소재에서부터 구현하는, 이른바 ‘감성금속’이다.

 

 

“방짜유기가 왜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줄 아세요?”

 

이효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감성소재부품연구센터장이 물었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을 달궈 망치로 두들겨 만드는 한국 전통 그릇이다. 반상기 한 세트가 수십~수백 만 원을 호가한다.

 

이 센터장은 “구리에 아연과 니켈을 넣은 양은은 보통 적나라한 구리 빛을 띠는 반면, 방짜유기는 내부에 회색을 띠는 석출 입자가 생겨 오묘한 은빛을 띤다”며 “이 같은 오묘한 색상이나 광택은 모양을 바꾸는 디자인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이폰 이후 감성금속에 꽂히다


기술과 감성의 결합이 제조업의 대세가 된 지는 10년이 넘었다. 애플의 아이폰이 간결한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으면서, 제품의 품질과 기능을 넘어 소비자가 좋아하는 감성을 제품에 구현하려는 시도가 급물살을 탔다. 기업들은 인간의 감성에 영향을 주는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양을 바꾸는 디자인만으로는 한계가 왔다. 최근 휴대전화나 가전제품 업계에 소위 ‘풀 메탈 바디’ 바람이 불면서 다양한 색상과 오묘한 광택을 내는 금속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소비자들은 표면 도색이나 도금에 익숙해져 이를 더이상 고급스럽다고 느끼지 않는다”며 “흠이 생겼을 때 원재료의 색이 드러난다는 단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재료공학자들은 소비자 감성을 만족시킬 만한 소재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5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연구에 뛰어든 권혁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감성 소재용 금속을 개발하면 휴대전화와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금속 소재를 꼭 써야 하는 자동차 같은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다양한 색상을 띠는 ‘컬러합금’을 개발하고 있다. 동합금에 주석이나 아연을 섞는 비율뿐만 아니라, 합금 액체를 얼마나 빠른 속도로 식히느냐에 따라 최종 색상이 달라진다. 내부에 생기는 석출 입자의 크기와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조합별로 실험한 결과를 ‘팬톤색’에 따라 표준화했다. 팬톤색은 미국의 색채 전문 회사인 팬톤에서 개발한 차트로, 산업 전반에서 표준 색채로 사용되고 있다.

 

재료공학자들은 현재 다양한 감성금속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6월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컬러합금을 포함한 감성금속 관련 국내 특허 출원 건수는 2016년 13건으로, 2007년 2건에서 시작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합금이 스스로 냉동하고 소음 흡수까지


색상이나 광택처럼 시각을 자극하는 소재 외에 촉각을 만족시키는 합금 연구도 활발하다. 예를 들어, 스스로 냉동 효과를 내는 ‘자기냉동합금’이 개발되고 있다. 냉장고나 에어컨의 부품 가운데 소음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고 전기를 많이 먹는 부품이 펌프다. 자기냉동합금을 활용하면 펌프와 냉매가 필요 없기 때문에 소음과 진동이 없는 냉장고를 개발할 수 있다.

 

 

원리는 이렇다. 자기장 속에서 자기화되는 자성체 중 특정한 원자 구조를 갖는 일부 금속은 자기장을 걸어주면 가열되고 자기장을 제거하면 냉각되는 ‘자기열량효과’를 낸다. 비소(As)와 가돌리늄(Gd)이 대표적이다.

 

이미 우주선 등에 비소나 가돌리늄으로 만든 자기냉동합금이 쓰이고 있다. 문제는 비소합금은 인체에 독성이 있고, 가돌리늄합금은 희토류라서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점이다. 이민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들 금속 대신 대신 망간(Mn)을 이용해 안전하고 가격이 저렴한 자기냉동합금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망간처럼 단일 원소의 특성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 원소들을 어떻게 조합해야 자기열량효과가 극대화될지 컴퓨터로 예측할 수 있다”며 “이론적인 예측에 따라 실제로 만들어보고 성능이 유지되는지 실험한다”고 말했다.

 

난제는 성능 유지다. 합금 내부의 다양한 원소가 특정한 결정 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야 자기열량효과가 나타나는데, 온도가 변하는 과정에서 결정이 흐트러져 냉각 성능이 떨어진다. 물리적 강도도 유리보다 낮아 잘 깨진다.

 

이 수석연구원은 “자기냉동합금을 처음부터 분말로 만든 뒤 고분자 수지와 결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내구성은 높였지만 아직 성능이 낮아 개선할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냉장고를 비롯해 수많은 기계 장치의 문제점이 소음인 만큼, 스스로 소음을 흡수하는 금속재료도 개발되고 있다. 이효수 센터장은 헬름홀츠 공진기의 원리를 이용해 ‘소음저감합금’을 개발하는 중이다.

 

헬름홀츠 공진기는 공 모양의 병에 긴 목이 달린 장치다. 소리에너지가 들어오면 병 내부를 맴돌다가 마찰에 의해 열에너지로 바뀌면서 소멸된다. 실제로 이 원리를 이용해 공연장 내부의 소음과 진동을 흡수하는 무대 음향장치가 있다.

 

이 센터장은 “헬름홀츠 공진기처럼, 알루미늄 박막에 소리에너지가 맴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소음을 흡수하는 코팅재를 만들 계획”이라며 “이를 활용하면 큰 기계에 무거운 장치를 추가하지 않고도 소음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에 자가치유용 캡슐 넣었더니


오래 사용해도 매끄러운 표면 질감을 유지하는 감성금속도 개발되고 있다. 바로 흠집을 스스로 치유하는 ‘자가치유’ 합금이다. 자가치유 기능은 플라스틱이나 콘크리트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금속에 구현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형상기억합금을 활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흠집이 생겼을 때 열을 가하면 형상기억합금이 마치 뼈대처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면서 주변 금속 결정이 틈새를 메운다.

 

김도향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타이타늄(Ti)계 비결정성 금속에 형상기억합금을 분산시켜 넣어 자가치유합금을 개발하고 있다. 비결정성 금속은 마치 유리처럼 내부 원자가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금속으로, 결정성 금속보다 강도가 월등히 크다.

 

콘크리트에 하듯 치유제 캡슐을 넣는 방안도 있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 합금에 치유제(Sn6Pb4)가 든 튜브를 심어놓고, 균열이 생겼을 때 가열하면 액상 치유제가 튜브 밖으로 나와 균열을 채우고 굳는다.

 

연구 초기인 만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금속이라는 소재 자체의 장점과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게 관건이다. 예컨대 컬러합금은 첨가하는 원소에 따라 색상뿐만 아니라 강도 같은 기계적 특성이 함께 바뀐다.

 

이영국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금속 소재로 제품을 만드는 건 대부분 높은 강도가 필요한 경우”라며 “자가치유 기능을 목적으로 치유제 캡슐을 넣으면 금속 소재의 내구성이 약해지거나 더 쉽게 녹이 슬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천 수석연구원은 “금속은 플라스틱 등 다른 소재에 비해 가공하기 어렵고 무거운 데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감성기술을 구현하기에 이상적인 소재는 아니다”라며 “제약이 많은 만큼, 이를 극복한 감성금속은 오히려 부가가치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맞춤형 ‘오감설계’하는 시대 올 것”


이 센터장은 앞으로 ‘오감설계’라는 개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3D 프린팅 같은 기술로 소비자 개인이 원하는 모양의 제품을 맞춤으로 제작하듯, 앞으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감성을 선택해 소재와 부품, 제품을 주문 제작하게 될 거라는 뜻이다.

 

그러려면 소비자 감성에 대한 데이터를 먼저 쌓아야 한다. 같은 색상과 질감의 소재라도 소비자의 연령이나 지역, 성별에 따라 받는 느낌은 다를 수 있기 때문. 실제로 감성금속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소재에 대한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오감 특성을 수치로 정량화하는 작업을 먼저 진행한다.

 

예를 들어 색상별로 따뜻하게 느끼는 정도나 사람의 손 힘으로 만졌을 때 소재가 휘어지거나 늘어나는 정도를 0~100%로 측정하는 식이다. 일정한 높이에서 떨어뜨렸을 때 사람의 청각으로 소리가 얼마나 맑게 느껴지는지 조사하기도 한다.

 

이 센터장은 “미국에서는 체험형 전시장을 만들어 놓고 제품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현장에서 설문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앞으로는 이런 정량화된 감성 데이터를 먼저 쌓는 기업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일러스트

    우나연,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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