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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들의 리더, 시저가 돌아왔다.’


영화 ‘혹성탈출’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종의 전쟁’이 8월 15일 개봉했다. 1968년 이후 이어진 혹성탈출 시리즈로는 일곱 번째로,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다. 2011년 처음 개봉한 이번 시리즈는 특히 고도의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총동원해 유인원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 것으로 호평이 자자하다.

 

영화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웨타디지털 사의 앤더스 랭글랜즈 감독과 한국인 임창의 조명기술 감독에게 ‘아카데미상급’ 유인원 연기를 탄생시킨 비결을 들어 봤다.

 

 

눈 내릴 때 주변은 밝아지나, 어두워지나


“이 영화에 실제 유인원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혹성탈출 시리즈 세 편에 모두 참여한 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 영화의 주인공인 시저(침팬지)와 조연인 모리스(오랑우탄), 루카(고릴라) 등 유인원들은 모두 배우가 연기하고 CG로 재탄생시킨 컴퓨터 속 캐릭터들이다.

 

임 감독은 CG를 실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핵심 과정인 조명 효과를 총괄했다. 음영이나 밝기 차이가 없는 그래픽에 실제 자연에서 물체에 빛이 반사됐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입혀 사실감을 더하는 작업이다.

 

가령 눈발이 날리는 골짜기에서 유인원들이 움직이는 장면을 만든다고 하면, 눈이 내리는 날씨와 골짜기에서 빛이 어떻게 반사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실제 눈이 내리는 골짜기에 유인원이 있을 때처럼 부위별로 피부와 털의 밝기를 세세하게 조절해 준다.

 

이 작업이 끝나면 ‘라이팅 아티스트(lighting artist)’로 불리는 빛 효과 전문가들이 세밀한 부분을 보정하는 과정을 거쳐 유인원 배우들의 연기를 완성시킨다.

 

임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폭설이 쏟아지는 산 골짜기에서 시저와 루카가 인간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꼽았다. 이 장면은 실제로 캐나다에서 폭설이 내릴 때 찍었는데, 배우들이 모션캡처 수트를 입고 난투극을 벌였다.

 

임 감독은 “보통 이런 장면은 맑은 날 촬영하고 눈 내리는 장면을 CG로 처리하는데, 실제로 눈이 올 때 촬영하면서 눈이 내리면 빛의 양이 어떻게 변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눈이 내릴 때와 내리지 않을 때 둘 중 어느 쪽이 더 밝을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눈이 햇빛을 가려 더 어두울 거라고 주장한 엔지니어들이 있는가 하면, 눈이 햇빛을 반사시키고 산란 현상을 일으켜 주변을 더 밝게 만들 거라는 예상도 나왔다. 임 감독은 “실제로 눈이 내릴 때 촬영하면서 눈이 오기 시작하면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모션캡처 야외 촬영 시대 열어

 

랭글랜즈 감독은 CG 작업 전체를 총괄했다. 그는 “전편에서는 약 85%에 이르는 모션캡처 촬영을 야외에서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야외 촬영 비중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빛을 내도록 특수 제작한 마커와 카메라 셔터의

타이밍에 맞춰 빛의 파장을 조절해 주는 무선 싱크 기술로

문제 없이 야외촬영을 할 수 있었다”

 

 

야외 모션캡처 촬영은 혹성탈출 시리즈에서 처음 시도한 기술로, 영화의 사실감을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개 가상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의 경우 모든 장비가 갖춰진 실내 스튜디오에서 모션캡처 수트를 입은 배우의 연기를 촬영한 뒤 배경과 캐릭터를 CG로 합성한다. 이 방식은 CG를 아무리 정교하게 작업하더라도 실제 자연에서 촬영한 것과 비교하면 사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웨타디지털 시각효과 팀은 실제 숲과 황무지, 바다, 산악 지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모션캡처해 현실감을 더했다. 전작에서는 작품의 배경인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숲을 묘사할 때 정도만 이런 촬영 기법이 적용됐지만 이번에는 캐나다 밴쿠버의 설원과 채석장, 해변, 숲 등으로 야외촬영 현장을 늘려 더욱 실감나는 영상을 만들었다.

 

 

웨타디지털은 야외용 모션캡처 수트를 새로 만들어서 실내에서만 촬영해야 했던 모션캡쳐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 결과 CG의 사실감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었다.

 

사실 모션캡처 촬영이 실내에서 유효했던 이유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다. 모션캡처 수트에는 적외선을 반사하는 작은 공 모양의 마커가 곳곳에 붙어 있는데, 적외선 카메라로 수트를 입은 배우를 촬영하면 마커에 반사돼 돌아온 적외선 신호를 받아 배우의 동선이 컴퓨터에 저장된다. 여기에 살을 입혀 유인원 연기를 완성하면 된다.

 

그렇다보니 야외에서 모션캡처 촬영을 진행할 경우 햇빛과 날씨, 주변 지형지물 등 환경의 영향을 받아 적외선 카메라가 마커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랭글랜즈 감독은 “야외 촬영을 위해 모션캡처 수트의 마커가 빛을 내도록 특수 제작했다”며 “특히 카메라 셔터의 타이밍에 맞춰 빛의 파장을 조절해 주는 무선 싱크 기술을 더해서 문제 없이 야외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침팬지 털 멜라닌 색소 농도까지 계산


이번 작품은 얼굴의 ‘디테일’ 묘사에도 공을 들였다. 특히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분노, 복수심, 고뇌가 담긴 시저의 표정은 압권이다. 웨타디지털의 전작인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나 ‘아바타’의 나비족보다 감정 표현에서는 CG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우선 배우가 얼굴에 특수 페인트를 점처럼 찍고 얼굴만 촬영하는 전용 카메라를 머리에 단다. 페인트가 마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우가 표정 연기를 하면 얼굴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마커의 움직임이 생기고 이 움직임은 고스란히 컴퓨터에 데이터로 저장된다. 데이터는 3차원 공간 좌표로 생성된다.

 

문제는 배우의 표정 정보를 유인원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과 유인원의 얼굴은 골격과 근육이 움직이는 범위가 다르다.

 

가령 유인원의 구강은 사람보다 앞으로 튀어 나와 있어 턱과 입술을 크게 움직인다. 반면 눈썹은 사람보다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좁다. 배우의 얼굴에서 얻은 3차원 공간 좌표를 일일이 유인원의 3차원 공간 좌표로 변환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랭글랜즈 감독은 “시저의 얼굴에 담긴 고뇌는 배우의 연기와 디지털 엔지니어 998명의 합작으로 탄생했다”고 말했다.

 

유인원의 털 표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침팬지와 오랑우탄, 고릴라 등 종마다 제각기 다른 멜라닌 색소의 농도를 파악해서 털색을 묘사했다. 눈발이 날리는 골짜기를 지날 때는 털에 눈이 쌓이는 속도도 계산했다.

 

랭글랜즈 감독은 “눈이 모든 털에 고르게 쌓이는 것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눈이 뭉쳐 있는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까지 고려했다”며 “유인원이 눈 위에서 구를 때는 눈에 닿는 신체 부위를 계산한 뒤 여러 번 구를수록 점차 털에 붙는 눈의 양이 늘어나게 했다”고 밝혔다.

 

털이 햇빛을 받을 때 나타나는 변화를 작업한 임 감독은 “이전에는 털을 표현할 때 솜털처럼 가늘고 색이 옅은 털은 일반 털 묘사 기술과 다른 방법을 썼다”면서 “이번 작품에서는 멜라닌 색소의 농도 등 과학적인 원리를 적용해 하나의 기술로 모든 털을 묘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길고 색깔이 짙은 털에서 짧고 색깔이 옅은 솜털까지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영화에 수많은 유인원이 등장하는 장면(위 사진)은 AI 기술을 이용해서 작업했다. 수백 명 이상의 엑스트라를 동원하기보다 일부 배우의 동작을 모션캡처한 뒤 AI로 변형하는 것이다. 조명 효과에서도 물체의 색과 밝기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 경로의 빛을 AI로 계산해서 작업한다.

 

수백 만 엑스트라의 비결은 AI


영화 ‘반지의 제왕’ 이후로 인공지능(AI)은 CG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웨타디지털은 반지의 제왕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전투 장면을 묘사할 때 ‘매시브’라는 AI 기술을 처음 활용했는데, 이번 혹성탈출에도 썼다.

 

이 기술은 현실적으로 동원하기 어려운 엄청난 수의 엑스트라가 등장하는 장면을 만들 때 유용하다. 예컨대 수천 마리의 유인원이 이동하거나, 수만 명의 군인이 전투하는 장면을 표현할 때, 수십 마리 혹은 100명 정도만 모션캡처 촬영을 한 뒤 매시브 소프트웨어에 적용한다.

 

매시브 소프트웨어는 모션캡처 동작을 조금씩 변형시켜 가상의 배우들의 동작을 생성해낸다. 이를 이용하면 최대 수백 만 명까지 가상의 엑스트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임 감독은 조명기술에서도 인공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카메라에는 수없이 다양한 경로의 빛이 한꺼번에 들어온다”며 “인공지능을 이용해 그 중 어떤 경로의 빛이 물체의 색과 밝기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지 계산하면 빛 효과를 작업할 때 컴퓨터 계산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IN TERVIEW 

 

“CG 하려고 ‘수학의 정석’ 다시 공부”

 

Q. 랭글랜즈 감독은 대학에서 컴퓨터시각화를 공부했지만 임 감독의 경우 미술과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컴퓨터 과학과 수학이 필수적인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임창의 감독(이하 임):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는 영상학과가 없었다. 3차원(3D) 그래픽도 배울 수가 없었다. 영상에 가장 근접한 것이 시각디자인이어서 그쪽으로 진학했다.

 

하지만 예체능 계열이었기 때문에 수학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졸업한 뒤 실제로 일을 하면서부터는 한계가 많았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수학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을 고등학교 때 가장 싫어했는데, 그 책을 다시 구해서 수학을 공부했다.

 

Q. 현재 CG의 수준은 가상의 배우를 구현하기에 충분한 기술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배우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게 될까.

 

앤더스 랭글랜즈 감독: 그런 이야기가 지난 몇 년간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디지털 캐릭터가 배우들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CG의 기술적인 부분들이 깜짝 놀랄 만큼 발전한 것은 사실지만 시저와 모리스, 루카 등 유인원 캐릭터들은 모두 일차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토대로 한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캐릭터가 개발되지 않으면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임: 관객의 입장에서 배우는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일 뿐 실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캐릭터와 실제 배우의 차이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 이미 기술적으로 그 경계가 많이 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시저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면 한다.

 

Q. 최근 가상현실(VR)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CG의 응용 분야도 더욱 폭넓어질 것 같은데.

 

임: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제작 계약을 할 때 시각효과에서 VR 작업을 따로 해 달라는 항목을 넣고 있다. 웨타디지털에서 VR 전담팀이 따로 있고, 내가 담당했던 ‘정글북’ 같은 영화는 VR 작업을 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영화와 관련해서 VR은 테스트 단계에 있다. VR을 섣불리 썼다가 영화에서 주는 감동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혹성탈출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 VR로 만든 혹성탈출을 보면 현기증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영화에 대한 이미지를 망치는 결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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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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