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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우사인 볼트는 왜 영원할 수 없나, 근육 노화로 풀어 본 스프린터의 숙명

(확대)

‘지구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 8월 트랙을 떠났다. 올림픽 금메달 8개, 세계선수권대회 11차례 우승 등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 우사인 볼트가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17년 국제육상경기연맹 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이번 대회에서 볼트는 남자 100m 결선에서 3위에 그치면서 허탈한 고별 무대를 보여줬다. 영원할 것 같던 볼트의 ‘백만 불짜리’ 다리도 노화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스프린터의 숙명, 속근섬유의 초고속 노화


“나이 때문에 더 빨리 달리지 못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100m경기를 마치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볼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 하나였다. 일반인에게는 아직 ‘청춘’인 나이지만, 남자 단거리 육상 선수로서는 ‘중년’이다. 남자 단거리 육상 선수의 전성기를 27세 전후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 몸무게의 40~60%가량을 차지하는 골격근과 관련이 있다. 골격근은 25세부터 느리지만 꾸준히 질량이 줄어들고, 25~50세에 총 10%가량 감소한다.

 

골격근은 우사인 볼트와 같은 단거리 육상 선수(스프린터)들이 장거리를 뛰는 마라토너에 비해 노화의 타격을 더 크게 입는다. 실제 올림픽에서 마라톤과 단거리 육상의 수상자 나이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발달한 근육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골격근을 이루는 근섬유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느리지만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는 지근섬유(MHCⅠ)와, 오래 지속할 수는 없지만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속근섬유(MHCⅡ)가 있다.

 

다리 근육도 이렇게 두 종류의 근섬유로 이뤄져 있다. 1994년 ‘생리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마라토너의 경우 골격근의 70~80%가 지근섬유, 20~30%가 속근섬유인 데 비해, 스프린터는 지근섬유가 25~30%, 속근섬유가 70~75%를 차지한다.

 

문제는 노화가 일어나는 속도다. 해리 수오미넨 핀란드 이위베스퀼레대 교수팀이 ‘응용생리학저널’ 2006년 5월 11일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화가 일어날 때 지근섬유보다 속근섬유의 양이 더 빨리 감소했으며, 단면적 역시 속근섬유가 더 빠른 속도로 작아졌다.

 

또, 젊은 참가자 138명, 나이든 참가자 127명, 총 265명에 대해 근섬유의 단면적을 조사한 결과, 나이든 참가자는 젊은 참가자에 비해 지근섬유 단면적은 21%, 속근섬유 단면적은 37% 작았다.

 

사람의 허벅지 측면근육인 외측광근의 근섬유. 파란색 형광으로 빛나는 부분이 위성세포다(위). 아래에서 왼쪽은 휴지기 상태의 위성세포고, 오른쪽은 상처 등의 자극을 받아 활성화된 위성세포의 모습이다. 위성세포가 분열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노 화가 진행되면서 골격근에서 지근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하고, 속근섬유의 비중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doi:10.1152/japplphysiol.00299.2006). 결국 노화가 미치는 영향은 지근섬유가 많은 마라토너보다는 속근섬유가 많은 스프린터에게 더 치명적인 셈이다.

 

 

산화 스트레스가 근육 위축의 원인


볼트는 최근 수년간 부상에 시달려 왔다. 선천적으로 척추측만증이 있는 데다, 2015년에는 발 부상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 다이아몬드리그 출전을 포기했다. 2016년에는 허벅지 통증으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출전을 철회하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부상은 일상적인 일이라지만,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몇 달 동안 운동을 못하는 상황은 매우 치명적이다.

 

다른 조직에 비해 근육은 가소성이 매우 크다. 단 이틀만 사용하지 않아도 근육량이 줄어들고 기능이 떨어지는 근 위축이 나타난다. 근육의 단백질 합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질이 합성되는 것을 동화작용, 반대로 분해되는 것을 이화작용이라고 한다.

 

최정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제어연구센터 연구원은 “일반인은 동화와 이화작용이 균형을 맞추며 일어나지만 운동선수는 동화작용이 압도적으로 많이 일어난다”며 “운동을 쉬게 되면 동화작용만 줄어들기 때문에 근육량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근육이 위축되는 또 다른 이유는 골격근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다. 활성산소에 의한 산화스트레스가
대표적이다. 스콧 파워스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팀은 2012년 산화스트레스가 세포의 신호전달에 영향을 줘 근육의 단백질을 분해하고, 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동안 단백질 합성을 막는다고 밝혔다(doi:10.1097/MCO.0b013e328352b4c2).

 

활성산소가 생기는 주된 원인은 근육 내 미토콘드리아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호흡을 담당하는 세포 소기관으로, 생체 에너지(ATP)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근육에서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 하지만 세포 호흡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세포를 손상시키는 활성산소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우리 몸은 세포를 보호할 목적으로 활성산소를 분해하는 항산화 효소를 여럿 갖고 있다.

 

근육의 성장과 노화
근육의 질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근육을 이루는 근섬유의 수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골격근은 기다란 근섬유가 모인 다발 형태다. 근섬유는 하나의 세포로, 길다란 실 형태다. 근섬유는 다시 길다란 근원섬유로 구성돼 있다. 근섬유 표면에는 위성세포라는 근육 줄기세포가 붙어 있는데, 근육이 상처를 입으면 위성세포가 분열하면서 근섬유의 수가 늘어나고, 근육 다발이 굵어져 근육이 커진다. 하지만 노화가 진행되면 이렇게 분열하고 물질을 합성하는 동화작용보다 분해되는 이화작용이 더 많아지면서 근육이 다시 얇아지게 된다.

 

 

문제는 속근섬유가 지근섬유보다 산화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연구진은 쥐 실험으로 이를 밝혀 2015년 6월 ‘생체분자저널’에 게재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항산화 효소는 활성산소를 막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런 항산화 효소가 골격근에서는 속근섬유보다 지근섬유에서 활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속근섬유 비중이 큰 스프린터의 경우 마라토너보다 산화스트레스에 약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doi:10.3390 /biom5020356).

 

 

성호르몬이 근육회복 속도 결정


성호르몬도 근육 발달에 영향을 준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 따르면 남성호르몬 안드로젠은 17~18세에 정점을 찍고 이후 매년 1%씩 분비량이 줄어든다. 현재 32세인 볼트의 경우, 20대 초반 때보다 성호르몬의 양이 매우 줄어있는 상태다. 그런데 성호르몬의 양이 많으면 근육의 회복이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영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쥐 실험으로 혈중 성호르몬이 골격근의 성체 근육 줄기세포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 2016년 8월 23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골격근의 성체 근육 줄기세포가 형성되는 데에는 ‘위성세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56쪽 사진). 위성세포는 분화능을 가진 근육 줄기세포로 골격근을 이루는 근원섬유의 표면에 붙어 있다. 위성세포가 활성화되면 세포분열이 일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휴지기에 들어간다. 성체 근육 줄기세포는 완전히 분화하지 않고 휴지기에 들어간 위성세포를 말한다.

 

그간 위성세포는 호르몬이나 혈액의 영향을 받아 분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구체적인 기작은 밝혀지지 않았다. 공 교수팀은 사춘기에 근육이 집중적으로 발달한다는 점에 주목해, 성호르몬이 근육 분화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쥐 실험을 통해 남성호르몬인 안드로젠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이 근섬유의 신호 전달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성호르몬의 양이 근육의 회복 속도를 결정한다. 같은 부상이라도 20대와 30대의 회복 속도가 현저히 차이 난다. 공 교수는 “운동 선수들의 전성기가 20대 중반인 것도 성호르몬의 분비량이 줄어드는 것과 일정 부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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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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