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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스트라디바리우스 280년만의 굴욕 명품 바이올린은 없다?

화려한 기교로 감성을 울려 청중들의 정신을 빼놓았던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여성 팬들을 몰고 다닐 정도로 인기 있었던 덕분에, 그가 항상 지녔던 스트라디바리우스도 함께 유명세를 탔다. 그는 또 다른 명품 바이올린인 과르네리도 갖고 있었는데, 날마다 기분에 따라 악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버드나무에 바람이 지나가는 듯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낸다면, 과르네리는 흙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이 투박하면서도 깊은 음색을 내기 때문이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중 지금까지 보존이 잘 돼 연주가 가능한 것은 수십 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억~수십억 원대에 이를 만큼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명품 바이올린이 어떻게 좋은 소리를 내는지 과학적으로 밝히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오히려 현대에 만들어진 바이올린이 훨씬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등 명성에 금이 갈 만한 굴욕을 당하기까지 했다! 과연 명품 바이올린에 과학적인 비결이 있을까.


판의 두께와 도료에 비결 있다?
바이올린 제작자이자 음향연구가인 제프리 로엔 박사와 테리 보르만 박사, 앨빈 킹 박사는 명품 바이올린의 뛰어난 음색의 비결이 울림통 재료인 나무 자체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점의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를 컴퓨터 단층촬영(CT)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악기마다 판의 두께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파가니니가 사용했던 ‘캐논’의 앞판은 다른 바이올린에 비해 약 1mm, 뒤판은 약 2mm 정도 더 두꺼웠다. 그만큼 다른 악기에 비해 무겁고 풍부한 음색을 냈다는 얘기다. 하지만 크라이슬러가 사용했던 ‘크라이슬러’는 오히려 다른 것에 비해 두께가 2mm 가량 얇았다. 다른 악기에 비해 소리가 경쾌했다는 뜻이다. 결국 바이올린마다 음색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판두께만으로는 명품이다, 아니다 나누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Path through, The Strad, Sep 2005).

바이올린의 음향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명품 바이올린 과르네리 시리즈의 뒤판을 CT 촬영했다. 파가니니의 악기 ‘캐논’은 다른 것보다 약 2mm 두껍고, 크라이슬러의 ‘크라이슬러’는 오히려 약 2mm 얇았다. 바이올린마다 음색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어도 이것만으로 명품 여부를 논하기 어렵다.

미국 텍사스 A&M대 생화학및생물물리학과 조셉 내지배리 교수팀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현대 바이올린의 내부를 긁어낸 톱밥을 관찰해 비교했다. 그 결과 두 명품 바이올린은 일반 바이올린에 비해 구성 원소가 다양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무에서 나오기 어려운 무기물인 황산바륨(BaSO4)과 붕산염, 플루오르화 칼슘(CaF2), 규산지르코늄(ZrSiO4) 등이 발견됐다. 연구팀은 당시 악기(나무)가 삭는 것을 막기 위해 무기물 도료(바니시)를 바른 층이 잡음을 흡수해 좋은 소리를 낸다고 주장했다(doi:10.1371/journal.pone.0004245).

1715년에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 ‘리핀스키’의 앞면(위)과 뒷면.

하지만 전문가들은 내지배리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의문을 품었다. 특히 바이올린 제작자들은 도료 한 가지만으로 명품 바이올린을 설명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가 삭기 때문에 소리가 변질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심지어 내지배리 교수가 자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스트라디바리우스 급’의 현대 악기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는 점(www.nagyvaryviolins.com)도 이 연구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명품 바이올린의 과학적인 비결은 수수께끼로 남았다.
 

명품 바이올린에 과학적 근거 없다
최근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가 오히려 특별한 명품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피에르에마리퀴리대 현악기음향악연구팀은 지난 2012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21명에게 눈을 가리게 한 다음 현대에 만든 바이올린 3대와 스트라디바리우스 2대(각각 1700년, 1715년 제작), 과르네리 델 제수(1740년 제작)를 직접 연주하게 했다. 그리고 소리가 가장 좋은 악기를 고르게 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촉감만으로 오래된 바이올린을 구별해내지 못하도록, 최근에 만든 바이올린의 표면도 인위적으로 거칠게 만들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참가자 중 13명이 현대 바이올린을 최고로 꼽았다.
 
2015년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음향물리학자인 니콜라스 맥크리스 교수팀은 바이올린의 울림구멍을 다양한 모양으로 뚫어 소리가 공명되는 정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구멍이 좁을수록 공기가 적당한 속도로 흘러나와 소리 강도가 커지고 길쭉할수록 다양한 음색이 또렷하게 나는데, ‘f’자 모양일 때 이런 조건에 가장 적합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콘서트홀처럼 소리가 잘 울리는 장소대신 작은 방에서 실험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래서 연구팀은 2014년, 파리 근교와 미국 뉴욕에 있는 콘서트홀에서 같은 실험을 재현했다. 연주자 10명의 눈을 가리고 스트라디바리우스 3대와 현대의 바이올린 3대를 직접 연주하게 했다. 그리고 악기상과 악기수집상, 바이올린 제작자 등 137명에게 소리만 듣고 가장 훌륭한 바이올린을 고르게 했다. 결과는 과거와 마찬가지였다. 연주자와 청중은 현대 바이올린에 훨씬 높은 점수를 줬다.

연구를 이끈 클라우디아 프리츠 교수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수백 년 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꽤 훌륭한 상태로 보존됐다는 점으로는 충분히 명품”이라면서도 “하지만 이 때문에 현대 바이올린보다 훨씬 뛰어난 소리를 낸다고 볼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 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5월 23일자에 실렸다(doi:10.1013/pnas.1619443114).


높고 추운 산에서 자란 나무가 부활한 ‘숨 쉬는 악기’
어떻게 수십 년간 최정상에 있던 명품 바이올린의 명성을 현대 바이올린이 무너뜨린 것일까. 연구팀이 실험에 사용한 현대 바이올린이 최근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장제가 아닌, 장인이 만든 수제 바이올린이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목재”라면서 “엄밀히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현대 바이올린의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당시 좋은 소리를 내던 악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바이올린은 나무를 깎아 만든 판을 조립해 울림통을 만든다. 여기서 공명이 일어나 소리가 풍부하게 울려 퍼지기 때문에 특히 섬세하게 만들어야 한다. 앞판은 주로 무게가 가벼워 소리 전달율이 높은 가문비나무를 쓰고, 나머지 부분은 무겁고 튼튼한 단풍나무를 이용한다. 그 이유는 현이 달려 있어 소리가 생기는 부분인 앞판에서 울림통으로 소리가 빠르게 전달돼, 뒤판까지 진동을 일으키면서 증폭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데서나 자라는 가문비나무나 단풍나무로는 좋은 악기를 만들기가 어렵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수제 바이올린은 알프스 산맥처럼 높은 지역에서 자란 나무를 이용해 만든다.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기후에서 자란 나무가 조직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둘 다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마을인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졌다. 이곳은 알프스 산맥과 거리가 가까워 목재를 구하기 쉽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의 바이올린 제작자들도 악기 재료를 알프스 산맥이나 로키 산맥, 슬로베니아의 산지 등에서 구한다는 점이다. 이 지역들은 고도가 해발 3000m 이상으로 높은데, 거의 1년 내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며 강풍이 분다. 이렇게 추운 기후에서 자란 나무는 나이테가 짙고, 나이테 사이의 거리가 촘촘하다. 나무가 스스로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어 추위를 이겨내며 살았기 때문이다.

김 마이스터는 “조직이 단단할수록 소리가 빨리 전달돼 공명이 잘 일어난다”면서 “나이테가 좁은 부분에 브리지를 붙인다”고 설명했다. 브리지로부터 양 방향으로 소리가 일정하게 퍼지려면 조직이 서로 대칭이 돼야한다. 그래서 한 나무를 반으로 쪼갠 다음, 이어 붙여 판 하나를 만든다. 그는 “나이가 많을수록 나이테와 결이 예쁘고 조직이 잘 발달돼 있다”며 “10년 이상 자란 나무가 좋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목재로 만든 바이올린이라도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소리가 나빠질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가 머금고 있는 습기가 점차 빠지면서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습도가 다른 것도 소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김 마이스터는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계절에 따라 울림통의 몸집이 조금씩 달라져 현을 여러 개 갖고 다니는 연주자도 있다”고 귀띔했다.
 
김병철 마이스터가 바이올린의 판을 직접 깎고 있다.
옆판은 바이올린 모양 샘플에 맞게 깎는다.
완성된 수제 바이올린들.

그는 “나무는 벌목하는 순간 생명을 잃지만, 바이올린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새 생명을 얻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바이올린으로 “연주자가 직접 연주했을 때 본인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꼽았다. 연주자가 악기와 서로 교감하면서 음악을 완성시킨다는 말이, 어쩌면 바이올린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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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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