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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에도 기나긴 밤을 힘들어하는 이가 있었다. 이 시조를 쓴 황진이는 님을 만나면 그 고민이 사라졌겠지만, 잠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는 매일 동짓날이고 매일 괴로움의 연속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불면증으로 한 번이라도 진료받은 사람은 51만 명에 달했다.
평소 숙면이 숙명인 것처럼 잘 자는 기자도 최근 더워진 날씨 때문인지 새벽에 한두 번씩 꼭 깨곤 한다. 불면증이라고 하면 잠에 잘 들지 못하는 증상만을 떠올리지만, 잠이 들었다가 자주 깨거나, 새벽에 깨고 난 뒤 다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잠을 잤지만 푹 잔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는 것도 불면증의 증상에 해당한다. “혹시 나도 불면증…?”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 잠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1단계 ┃ 수면효율을 측정하라!
숙면은 ‘양보단 질’이 중요하다. 많이 자는 것보다 얼마나 잘 자느냐가 핵심이다. 그래서 불면증을 진단할 때 수면효율을 측정한다. 수면효율은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과 실제 잠을 잔 시간의 비율이다.
수면효율을 측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수면다원검사’를 받아야 한다. 수면다원검사는 뇌파 검사, 눈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안전도 검사, 근육 상태를 보는 근전도 검사, 심전도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한다. 때문에 병원 수면실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 검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적게는 80만 원부터 많게는 100만 원까지. 단순히 수면의 질을 측정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요소들이다.
고민하는 기자의 눈에 한 연구 결과가 들어왔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수면의 효율을 측정할 수 있는 간단한 도구를 개발했다는 내용이었다. 도구를 개발한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를 찾았다. 왠지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숨죽이며 들어간 수면의학센터는 각종 기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공대 연구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 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정다운 서울대 공대 협동과정 바이오엔지니어링 전공 연구원이 한쪽에 위치한 간이 수면실로 안내했다. 일반 병실처럼 생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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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수면효율 예측 값은 91.6%. 정상적인 수면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90% 이상이다. 아슬아슬하게 정상 수치를 넘겼다. 어떤 원리로 수면 효율을 계산하는 걸까. 박광석 서울대 의대 의공학과 교수와 정다운 연구원은 잠들기 전 관찰한 자율 신경계 활동이 수면효율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자라는 것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국제시간생물학’ 2016년 10월 28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심전도 및 호흡에 따른 흉부의 부피 변화 신호 240개를 기록해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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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퍼스 같이 생긴 기계로 척추를 쓸고 가면① 척추의 형태가 3D로 나타난다②. 기자의 척추는 일자에 가까웠다. ③ 은 하중의 분포를 색으로 나타낸 사진이다.
잠이 들기 시작하면 교감신경의 작용이 떨어지는데, 이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호흡과 심박수다. 압전 센서를 이용한 수면효율 측정 도구는 ‘간단한 측정’이 주된 목표기 때문에 가장 영향력이 큰 두 요소를 이용한다.
허경 연세대 의대 신경과학교실 교수는 “수면효율을 통해 질병의 가능성을 가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당뇨, 알츠하이머, 뇌전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의 질환이 있으면 수면 효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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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 가장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하라!
숙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허리의 편안함’이다. 박형진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 과장은 “특히 하루 종일 앉아있는 현대인은 허리에 많은 하중이 실리기 때문에, 잠을 잘 때 만이라도 그 피로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앉아있을 때 허리에 가해지는 하중은 바른 자세로 누웠을 때의 2.5배나 된다).
5월 16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이동수면공학연구소를 찾았다. 작은 캠핑카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쪽에는 침대가, 또 다른 쪽에는 컴퓨터 화면이 있었다. 여기서 체형에 맞는 매트리스의 종류(단단함에 따른)를 추천해준다. 매트리스의 단단하고 무른 정도는 숙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박 과장은 일단 체압(몸이 누르는 압력)을 측정하자며 침대로 안내했다. 평범한 침대처럼 보였으나, 눕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모니터에 사람 형태의 등고선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기자의 체중과 관련 있는 듯 보였다. 등고선은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빨간색일수록 하중이 큰 부위고, 파란색일수록 하중이 작은 부위다. 대부분의 사람이 몸통과 엉덩이에 하중이 집중돼 있지만,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등고선의 형태도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엉덩이의 하중이 큰 사람은 전체 몸무게의 최대 40%에 해당하는 무게가 집중돼 있다(육안으로 확인했을 때 기자는 약 38% 정도 집중돼 있는 것 같았다).
적나라한 몸의 하중을 확인하고 상심에 빠진 기자를 일으켜 세우며 박 과장은 “정확한 척추 형태를 확인하려면 가장 편안한 자세로 서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곧 컴퍼스처럼 생긴 기계가 등 뒤로 다가왔다. 기계의 끝이 척추 뼈를 쓸고 지나가자 모니터에는 바로 3D 형태의 척추가 나타났다.
“침대 쓰신 지 얼마 안되셨죠?” “초등학생 때부터 침대에서 잤는데요.” “…….”
박 과장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S자로 꺾여 있어야 할 척추가 일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런 척추는 침대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 많다. 척추의 형태를 측정하는 이유는 허리의 깊이를 보기 위해서다.
두 실험을 마치고 나니 모니터에는 무르기를 0에서 10까지 표시한 그래프가 떴다(숫자가 클 수록 단단하다). 기자에게 맞는 매트리스는 점수로 따지면 7정도 되는 단단한 매트리스였다. 하중의 분포와 허리의 깊이, 그리고 체압에 의해 가라앉는 매트리스의 깊이 등 세 가지 변수를 이용해 계산한다.
기자를 예를 들어보자. 기자의 경우 몸통과 엉덩이에 하중이 집중돼 있고 허리 쪽은 깊이가 얕다. 만약 무른 매트리스를 쓴다면 몸통과 엉덩이가 매트리스를 많이 누르게 되고, 매트리스가 허리를 제대로 받쳐줄 수 없다. 박 과장은 “미국인은 한국인에 비해 척추의 굴곡이 심한 편이라(위 그림의 3 번에 해당), 미국의 매트리스는 한국에 비해 매우 무른 편”이라며 “체형에 따라 적합한 침구를 고르는 것도 잠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3단계 ┃ 낮에는 푸른 빛, 밤에는 녹색 빛
이제 숙면 환경을 조성할 차례다. 2007년 ‘수면의학 리뷰’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깊은 수면에 적합한 빛의 밝기는 10~100럭스(lux)다. 100럭스는 어두운 낮의 밝기다.
빛의 색도 영향을 미친다. 빛의 색을 수치화한 것을 색 온도(K)라고 하는데, 이 값이 작으면 붉은 빛(0~3000K), 높으면 하얀 빛(5500~6000K), 더 높아지면 푸른 빛(7000K 이상)을 띤다. 영국 서레이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 낮에 푸른 빛을 띠는 조명(1만7000K)으로 생활한 결과, 백열등(4000K) 아래서 일했을 때보다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반면 잠을 자는 저녁에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수면의학 리뷰에 실린 논문에서는 각각 푸른 빛과 초록색 빛, 그리고 암흑에서 잠이 들었을 때 분비하는 멜라토닌의 양을 조사했다. 멜라토닌은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으로, 깊은 잠을 자는 데 분비량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암흑일 때 멜라토닌이 가장 많이 분비됐고, 이어서 녹색 빛, 푸른 빛 순서였다. 암흑과 녹색 빛은 분비량이 비슷한 반면, 푸른 빛의 경우 그 값이 현저히 떨어졌다. 허경 교수는 “빛의 밝기와 색감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수면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 더 읽을거리
doi:10.1080/07420528.2016.1241802
doi:10.1016/j.yebeh.2003.07.005
doi:10.1016/j.smrv.2007.07.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