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셨다면 노벨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반도체 학계의 원로인 김석기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명예교수는 강대원 박사의 업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 박사가 발명한 ‘금속산화물반도체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 모스펫)’가 현재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의 전자회로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펫을 기반으로 한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2016년 기준으로 약 387조5794억 원에 이른다.
1931년 5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난 강대원 박사는 1955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59년 벨 연구소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마틴 아탈라 박사와 함께 모스펫을 발명했다.
모스펫은 실리콘 반도체 위에 산화물 박막(절연체)을 올리고, 그 위에 금속(게이트)을 올려 만든 트랜지스터의 한 종류다. 게이트는 트랜지스터에서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핵심 구조다.
모스펫에 앞서 1947년 발명된 ‘원조’ 트랜지스터인 양극성접합트랜지스터(BJT)는 만들기가 까다롭고 전력 소모가 컸다.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오늘날의 컴퓨터 한 대를 작동시킨다고 가정하면 1GW급 핵발전소 1기가 필요할 정도다. 게다가 BJT는 크기도 커서 수십억 개를 작은 회로에 집적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면 모스펫은 전류가 아닌 전압으로 작동시켜 전력 소비가 적고, 소자를 작게 만들 수 있어서 고도로 집적시킬 수 있다.
실력과 신소재, 협업이 만든 발명
모스펫의 원리는 1950년대 당시 이론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실제로 구현하지 못했는데, 강 박사와 아탈라 박사가 해낸 것이다. 김충기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명예교수는 강 박사가 모스펫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실력에 새로운 재료와 동료의 도움까지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강 박사가 연구를 시작할 당시 실리콘 산화물 박막(SiO2 필름)이라는 좋은 재료가 개발돼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모스펫이 작동하려면 반도체 표면과 산화물 박막의 경계에 불순물이 없어야 하는데, 실리콘에서만 고순도의 경계면을 만들 수 있었다. 실리콘을 고온으로 가열하면서, 산소를 흘려보내주는 산화물 박막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 없는 깨끗한 경계면이 만들어졌다. 강대원 박사가 속한 연구팀의 리더인 아탈라 박사는 모스펫 자체보다는 이 실리콘산화물 박막의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모스펫 연구를 시작했다.
강 박사는 아탈라 박사의 아이디어에 벨 연구소의 다른 동료들로부터 배운 기술을 접목해 제대로 작동하는 모스펫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반도체위의 원하는 위치에 정교하게 금속 게이트를 씌우는 기술이 부족했는데,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가진 벨 연구소의 동료들이 도움을 줬다. 다이아몬드 칼로 유리판에 흠집을 낸 뒤에 약품처리를 해서 원형 구멍을 만들 수 있었고, 그 유리판을 반도체 위에 씌운 뒤 증착기로 원하는 위치와 모양으로 알루미늄을 씌울 수 있었다. 김충기 교수는 “벨 연구소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 곳에 모아서 연구하는 융합연구를 이미 1940년대부터 시작해 최초로 트랜지스터(BJT)를 개발한 곳”이라면서 “강 박사도 그런 연구소 분위기에 도움을 받아 모스펫을 발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아탈라 박사의 아이디어에 벨 연구소의 다른 동료들로부터 배운 기술을 접목해 제대로 작동하는 모스펫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반도체위의 원하는 위치에 정교하게 금속 게이트를 씌우는 기술이 부족했는데,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가진 벨 연구소의 동료들이 도움을 줬다. 다이아몬드 칼로 유리판에 흠집을 낸 뒤에 약품처리를 해서 원형 구멍을 만들 수 있었고, 그 유리판을 반도체 위에 씌운 뒤 증착기로 원하는 위치와 모양으로 알루미늄을 씌울 수 있었다. 김충기 교수는 “벨 연구소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 곳에 모아서 연구하는 융합연구를 이미 1940년대부터 시작해 최초로 트랜지스터(BJT)를 개발한 곳”이라면서 “강 박사도 그런 연구소 분위기에 도움을 받아 모스펫을 발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대원 박사의 사망 소식을 그의 업적과 함께 알린 뉴욕타임즈 기사(1992년 5월 28일자).
1988년 미국에 설립된 NEC 연구소 소장 재직 당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강 박사의 두 번째 주요 발명품인 ‘플로팅 게이트’도 비슷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동료와 치즈케이크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여러 층을 쌓아 게이트가 마치 절연체 사이에 떠 있는 듯한 구조를 떠올린 것이다. 플로팅 게이트는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력상품 중 하나인 ‘낸드플래시 메모리’에 쓰이는 핵심 기술인데, 모스펫 위에 산화물 박막과 게이트를 교차해서 쌓아 놓은 형태다. 플로팅 게이트에 전자를 채우고 비우는 방식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로, 다양한 휴대용 저장매체에 쓰인다.
“새로운 도전 즐겼던 열정적인 연구자”
강 박사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었던 국내 반도체 학계 원로들은 그를 ‘천상 연구자’였다고 기억했다. 모스펫을 발명해 주목받는 연구자가 됐음에도 1988년 벨 연구소에서 은퇴하기까지 플로팅 게이트를 비롯해 다양한 발명품을 선보였다. 벨 연구소에서 4년 동안 함께 근무했던 김석기 명예교수는 “연구소 경영 등 원한다면 충분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계속 현장에서 연구했던 고지식한 과학자”였다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내가 벨 연구소에서 강 박사와 어울릴 당시에는 그렇게 대단한 발명을 한 사람인지 몰랐다”고도 말했다. 아직 모스펫이나 플로팅 게이트가 상용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강대원 박사는 종종 한국인 연구자들을 모아 저녁식사를 하거나 탁구 치는 것을 즐겼는데, 승부욕과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연구소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강대원 박사를 만나 인연을 이어온 김충기 명예교수는 “강 박사가 돈 욕심이 있었다면 자기 회사를 차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백조 원 규모의 시장을 개척한 발명을 했지만 모스펫이 상용화됐을 때는 이미 그가 가진 특허의 시효가 지난 상황이었다.
1988년 벨 연구소에서 퇴임한 강대원 박사는 일본전자통신기업인 NEC가 미국에 세운 연구소의 소장으로 부임해 새로운 연구를 향한 열정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1992년 5월 학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동맥류 파열로 공항에서 쓰러져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집적회로를 개발한 공로로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잭 킬비 박사의 공적을 다룬 노벨위원회의 해설서에는 집적회로와 함께 강대원 박사의 모스펫을 중요한 발명으로 꼽았다. 이런 공로로 강 박사는 토머스 에디슨과 라이트 형제 등이 헌액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반도체학술대회(SK하이닉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국반도체연구조합 주관)에서도 강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올해 처음 ‘강대원 상’을 제정해 2월 15일 첫 수상자를 발표했다.
“새로운 도전 즐겼던 열정적인 연구자”
강 박사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었던 국내 반도체 학계 원로들은 그를 ‘천상 연구자’였다고 기억했다. 모스펫을 발명해 주목받는 연구자가 됐음에도 1988년 벨 연구소에서 은퇴하기까지 플로팅 게이트를 비롯해 다양한 발명품을 선보였다. 벨 연구소에서 4년 동안 함께 근무했던 김석기 명예교수는 “연구소 경영 등 원한다면 충분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계속 현장에서 연구했던 고지식한 과학자”였다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내가 벨 연구소에서 강 박사와 어울릴 당시에는 그렇게 대단한 발명을 한 사람인지 몰랐다”고도 말했다. 아직 모스펫이나 플로팅 게이트가 상용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강대원 박사는 종종 한국인 연구자들을 모아 저녁식사를 하거나 탁구 치는 것을 즐겼는데, 승부욕과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연구소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강대원 박사를 만나 인연을 이어온 김충기 명예교수는 “강 박사가 돈 욕심이 있었다면 자기 회사를 차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백조 원 규모의 시장을 개척한 발명을 했지만 모스펫이 상용화됐을 때는 이미 그가 가진 특허의 시효가 지난 상황이었다.
1988년 벨 연구소에서 퇴임한 강대원 박사는 일본전자통신기업인 NEC가 미국에 세운 연구소의 소장으로 부임해 새로운 연구를 향한 열정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1992년 5월 학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동맥류 파열로 공항에서 쓰러져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집적회로를 개발한 공로로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잭 킬비 박사의 공적을 다룬 노벨위원회의 해설서에는 집적회로와 함께 강대원 박사의 모스펫을 중요한 발명으로 꼽았다. 이런 공로로 강 박사는 토머스 에디슨과 라이트 형제 등이 헌액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반도체학술대회(SK하이닉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국반도체연구조합 주관)에서도 강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올해 처음 ‘강대원 상’을 제정해 2월 15일 첫 수상자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