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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선택받은 정자, 기다리는 난자?
‘둥둥둥’ 배경음악이 빨라지며 정자가 물고기 떼처럼 헤엄칩니다.
순간 ‘펑’ 하는 연기와 함께 난소에서 난자가 빠져나옵니다.
길고 힘들었던 레이스에서 가장 먼저 골인한 정자와 그를 기다린 난자의 만남….
경음악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모든 배아의 시작은 정자와 난자의 만남, 즉 수정입니다. 이런 순간을 어느 정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몇몇 애니메이션은 좀 황당할 만큼의 과학적 오류를 담고 있더군요. 그중 하나는 난자의 선택 과정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정 시 나오는 정자의 양이 워낙 많은 데다 그 중에 딱 하나가 난자와 융합되기 때문에, 난자보다는 ‘선택 받은’ 정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수정되는 난자 역시도 여러 개의 다른 후보들 가운데 선택 받은 존재입니다.
여성은 태어날 때 약 200만 개의 미성숙한 난자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이 난자들이 성숙하게 되고, 한 달에 한번, 하나의 난자가 배란됩니다. 그런데 이 때 딱 하나의 미성숙 난자가 성숙 기간을 거치는 건 아닙니다. 배란이 되기 약 10일 전, 출발선에 서는 건 12개가 넘는 미성숙 난자들입니다. 그리고는 “준비, 땅!” 성숙과정이 시작되는데요. 성숙에 필요한 난포호르몬이 아주 적은 양으로 분비되기 때문에, 12개가 넘는 난자 중에 결국 단 하나만이 성숙과정을 마치고 배란됩니다. 난자 역시 수정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거죠.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경우 수정 확률을 높이기 위해 보통 많은 양의 난포호르몬을 여성에게 주입하고, 한번에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하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과정이 폐경을 앞당길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어차피 성숙과정에서 퇴화되는 미성숙 난자들을, 난포호르몬의 양을 높여서 성숙시켜 채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갖고 태어난 난자의 수를 빨리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죠.
‘1등 정자의 승리’도 잘못된 통설
정자가 선택되는 과정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릅니다. 난자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정자가 항상 난자와 융합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정자도 난자처럼 성숙과정이 필요합니다. 성숙과정은 사정이 되고 난 뒤 난자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뤄지는데, 이것을 통해 정자는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막을 뚫을 능력(capacitation)을 갖게 됩니다. 무작정 빨리 헤엄쳐서 난자에게 가장 빨리 온 정자는 성숙될 시간이 오히려 적었기 때문에 수정될 확률이 적습니다.
난자를 향해 움직이는 정자들을 보고 있으면, 저렇게 작은 꼬리에서 어쩜 이런 힘이 나올까 싶습니다. 사실 이것도 오류인데요, 정자가 난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자궁의 근육 운동 덕분입니다. 정자의 꼬리는 난자 주변에 가서야 비로소 힘차게 움직여 난자 주변을 둘러싼 끈적이는 막을 뚫고 들어갑니다. 이 시점에서 정자의 꼬리 운동에 대한 재미있는 논문을 짧게 소개할게요. 최근 독일 연구팀이 정자의 꼬리를 대신할 나선모양의 작은 모터를 만들었습니다(doi:10.1021/acs.nanolett.5b04221). 이 모터(위 사진 화살표)가 운동성이 없는 정자에 쏙 끼워지면 정자가 난자로 운반되고, 목적을 달성한 모터는 스스로 정자에서 빠져 나옵니다. 신기하죠?
첫 번째 질문
선택받은 정자, 기다리는 난자?
‘둥둥둥’ 배경음악이 빨라지며 정자가 물고기 떼처럼 헤엄칩니다.
순간 ‘펑’ 하는 연기와 함께 난소에서 난자가 빠져나옵니다.
길고 힘들었던 레이스에서 가장 먼저 골인한 정자와 그를 기다린 난자의 만남….
경음악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모든 배아의 시작은 정자와 난자의 만남, 즉 수정입니다. 이런 순간을 어느 정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몇몇 애니메이션은 좀 황당할 만큼의 과학적 오류를 담고 있더군요. 그중 하나는 난자의 선택 과정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정 시 나오는 정자의 양이 워낙 많은 데다 그 중에 딱 하나가 난자와 융합되기 때문에, 난자보다는 ‘선택 받은’ 정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수정되는 난자 역시도 여러 개의 다른 후보들 가운데 선택 받은 존재입니다.
여성은 태어날 때 약 200만 개의 미성숙한 난자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이 난자들이 성숙하게 되고, 한 달에 한번, 하나의 난자가 배란됩니다. 그런데 이 때 딱 하나의 미성숙 난자가 성숙 기간을 거치는 건 아닙니다. 배란이 되기 약 10일 전, 출발선에 서는 건 12개가 넘는 미성숙 난자들입니다. 그리고는 “준비, 땅!” 성숙과정이 시작되는데요. 성숙에 필요한 난포호르몬이 아주 적은 양으로 분비되기 때문에, 12개가 넘는 난자 중에 결국 단 하나만이 성숙과정을 마치고 배란됩니다. 난자 역시 수정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거죠.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경우 수정 확률을 높이기 위해 보통 많은 양의 난포호르몬을 여성에게 주입하고, 한번에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하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과정이 폐경을 앞당길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어차피 성숙과정에서 퇴화되는 미성숙 난자들을, 난포호르몬의 양을 높여서 성숙시켜 채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갖고 태어난 난자의 수를 빨리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죠.
‘1등 정자의 승리’도 잘못된 통설
정자가 선택되는 과정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릅니다. 난자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정자가 항상 난자와 융합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정자도 난자처럼 성숙과정이 필요합니다. 성숙과정은 사정이 되고 난 뒤 난자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뤄지는데, 이것을 통해 정자는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막을 뚫을 능력(capacitation)을 갖게 됩니다. 무작정 빨리 헤엄쳐서 난자에게 가장 빨리 온 정자는 성숙될 시간이 오히려 적었기 때문에 수정될 확률이 적습니다.
난자를 향해 움직이는 정자들을 보고 있으면, 저렇게 작은 꼬리에서 어쩜 이런 힘이 나올까 싶습니다. 사실 이것도 오류인데요, 정자가 난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자궁의 근육 운동 덕분입니다. 정자의 꼬리는 난자 주변에 가서야 비로소 힘차게 움직여 난자 주변을 둘러싼 끈적이는 막을 뚫고 들어갑니다. 이 시점에서 정자의 꼬리 운동에 대한 재미있는 논문을 짧게 소개할게요. 최근 독일 연구팀이 정자의 꼬리를 대신할 나선모양의 작은 모터를 만들었습니다(doi:10.1021/acs.nanolett.5b04221). 이 모터(위 사진 화살표)가 운동성이 없는 정자에 쏙 끼워지면 정자가 난자로 운반되고, 목적을 달성한 모터는 스스로 정자에서 빠져 나옵니다. 신기하죠?
두 번째 질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의 질문에 아기는 옹알옹알 답합니다. “엄마!” 실망한 아빠가 ‘아빠’라는 단어를 여러 번 연습시켜보지만 아기는 초지일관 ‘엄마바라기’입니다.
약이 오른 아빠가 이번엔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엄마 아빠 중 누가 싫어?” 아기의 대답은 “아빠!”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무한재생하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더 좋아할까요? 정자와 난자, 적혈구와 몇몇 면역세포, 근육세포 등을 제외한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22쌍의 보통 염색체, 그리고 여자는 XX, 남자는 XY 성염색체를 갖고 있죠. 각각의 염색체는 하나는 엄마, 하나는 아빠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각의 유전자마다 엄마 버전과 아빠 버전 두 가지 종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대립유전자(allele)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엄마로부터 받은 유전자와 아빠로부터 받은 유전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두 개 모두를 발현시킵니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는데요. 각인 유전자(imprinted genes)라고 해서, 정자 또는 난자 안에서 발현이 되지 않게끔 꽁꽁 묶인 채 수정란에 들어오는 유전자들입니다. 이런 유전자는 수정란이 자라 개체로 태어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 엄마 혹은 아빠 버전 하나만 발현됩니다. 인간의 경우 수백 개의 각인 유전자가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doi:10.1016/j.mam.2012.06.009).
유전자가 엄마, 아빠를 구별하는 것과 관련된 대표적인 질병이 ‘엔젤만 증후군’ 입니다. 주된 증세는 지적 장애, 발달 장애지만 까닭 없이 웃고 얼굴이 어려 보이게 바뀌는 독특한 증상도 보여 ‘행복한 꼭두각시’ 증후군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병의 근원은 15번째 염색체에 위치한 ‘UBE3A’ 유전자의 결실 때문입니다. 유비퀴틴 연결효소(E3)로써 신경계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유전자죠. 그런데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각각 염색체 하나에 UBE3A 결실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A는 질병을 갖고 태어나고 B는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UBE3A가 앞서 말한 각인 유전자라서 오직 엄마에게서 받은 UBE3A만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즉, 아빠로부터 비정상 UBE3A를 받았더라도 어차피 발현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 없이 정상으로 발달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엄마의 UBE3A 유전자가 비정상일 때, 아빠에게서 받은 정상 UBE3A를 발현시켜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5년에 미국 연구팀이 이런 기술을 사용해 엔젤만 증후군 증상을 나타내는 쥐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기도 했고요(doi:10.1038/nature13975). 인간에게 사용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우리 희망을 걸어볼까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의 질문에 아기는 옹알옹알 답합니다. “엄마!” 실망한 아빠가 ‘아빠’라는 단어를 여러 번 연습시켜보지만 아기는 초지일관 ‘엄마바라기’입니다.
약이 오른 아빠가 이번엔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엄마 아빠 중 누가 싫어?” 아기의 대답은 “아빠!”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무한재생하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더 좋아할까요? 정자와 난자, 적혈구와 몇몇 면역세포, 근육세포 등을 제외한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22쌍의 보통 염색체, 그리고 여자는 XX, 남자는 XY 성염색체를 갖고 있죠. 각각의 염색체는 하나는 엄마, 하나는 아빠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각의 유전자마다 엄마 버전과 아빠 버전 두 가지 종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대립유전자(allele)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엄마로부터 받은 유전자와 아빠로부터 받은 유전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두 개 모두를 발현시킵니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는데요. 각인 유전자(imprinted genes)라고 해서, 정자 또는 난자 안에서 발현이 되지 않게끔 꽁꽁 묶인 채 수정란에 들어오는 유전자들입니다. 이런 유전자는 수정란이 자라 개체로 태어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 엄마 혹은 아빠 버전 하나만 발현됩니다. 인간의 경우 수백 개의 각인 유전자가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doi:10.1016/j.mam.2012.06.009).
유전자가 엄마, 아빠를 구별하는 것과 관련된 대표적인 질병이 ‘엔젤만 증후군’ 입니다. 주된 증세는 지적 장애, 발달 장애지만 까닭 없이 웃고 얼굴이 어려 보이게 바뀌는 독특한 증상도 보여 ‘행복한 꼭두각시’ 증후군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병의 근원은 15번째 염색체에 위치한 ‘UBE3A’ 유전자의 결실 때문입니다. 유비퀴틴 연결효소(E3)로써 신경계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유전자죠. 그런데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각각 염색체 하나에 UBE3A 결실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A는 질병을 갖고 태어나고 B는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UBE3A가 앞서 말한 각인 유전자라서 오직 엄마에게서 받은 UBE3A만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즉, 아빠로부터 비정상 UBE3A를 받았더라도 어차피 발현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 없이 정상으로 발달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엄마의 UBE3A 유전자가 비정상일 때, 아빠에게서 받은 정상 UBE3A를 발현시켜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5년에 미국 연구팀이 이런 기술을 사용해 엔젤만 증후군 증상을 나타내는 쥐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기도 했고요(doi:10.1038/nature13975). 인간에게 사용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우리 희망을 걸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