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모셋과 타마린 원숭이는 남미 열대우림에 사는 신세계원숭이다. 대부분 성체 몸무게가 500g을 넘지 않는 소형원숭이다. 얼핏 보면 작은 너구리나 다람쥐 같다. 바로 앞에서 눈을 바라보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관찰해야만 비로소 우리와 같은 영장류라는 확신이 생긴다.
그런데 이들 원숭이에겐 작은 크기 말고도 독특한 특성이 있다. 영장류 중 유일하게 일처다부제라는 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항상 이란성 쌍둥이를 낳는다.
“날름날름, 나랑 데이트 할래?” 독특한 구애 행동
인간이나 보노보, 침팬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장류는 암컷이 가임기가 되면 생식기가 붉게 부푼다. 그렇지 않으면 생식기를 보여주는 행동을 해서 가임기라는 사실을 수컷에게 적극적으로 알린다. 그러나 야생 마모셋과 타마린에서는 이런 신호나 구애행동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시각 신호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수컷이 암컷의 가임기를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 시기가 되면 수컷이 암컷 생식기나 암컷의 소변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데, 이 때 암컷이 가임기인 경우가 많았다. 정밀 분석 결과, 피그미 마모셋과 커튼탑 타마린은 페로몬 같은 신호를 통해 수컷이 암컷의 가임기를 감지했다.
비단원숭이에서만은 독특한 구애행동이 발견됐다. 바로 긴 혀를 날름거리는 행동이다. 수컷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비밀 시각 신호다. 암컷이 혀를 날름거린다는 건, 수컷에게 교미를 허락한다는 뜻이다. 특정 시기가 되면 이 행동을 점점 자주 하는데, 그 빈도가 절정을 이뤘을 때 암컷의 혈중 프로게스테론의 농도가 급증한다. 프로게스테론은 자궁 내벽을 자라게 해 임신에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이 같은 구애와 번식을 아무 암컷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야생 마모셋과 타마린은 10마리 미만의 작은 가족을 이루고 사는데, 서열 1위인 암컷 한 마리가 번식을 담당한다. 그 암컷과 짝짓기하는 수컷은 종별, 무리별, 환경 별로 한 마리(일처일부제)에서 두 마리 이상(일처다부제)까지 다양하다. 일처일부제 무리는 모든 마모셋과 타모린 종에서 관찰되며, 일처다부제 무리는 일부 타마린과 마모셋, 그리고 가장 작은 원숭이인 피그미 마모셋에서만 관찰된다.
신세계 소형원숭이에 대한 초기연구는 대부분 일처다부제에 초점을 맞췄다. 분명 무리 내에 다른 성체 암컷이 있음에도 서열 1위인 암컷만 임신을 하는 현상을 두고, 많은 연구자가 임신한 암컷 개체의 페로몬이 다른 암컷의 생식주기를 조절해 서열이 낮은 암컷의 번식을 억제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야생과 실험실 연구를 반복한 결과, 서열이 낮은 암컷도 어떤 경우엔 임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 여성 호르몬 주기도 정상적으로 반복됐다. ‘페로몬 임신 억제 가설’은 서서히 잊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열이 낮은 암컷이 임신하는 빈도는 매우 낮다. 새끼를 낳더라도 양육은 대부분 실패한다. 심지어 비단원숭이 무리에서는 서열이 낮은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서열 1위인 암컷이 그 새끼를 살해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 암컷들은 여자 형제인 경우가 많았다. 이 모든 과정의 정확한 원인과 기작은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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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임신과 공동육아로 쌍둥이도 거뜬하게
뭐니뭐니해도 가장 독특한 습성은 이란성 쌍둥이만 낳는 것이다(마모셋, 타마린 7속 가운데 가장 원시적인 속(Callimico)에 속하는 괼디원숭이는 다른 신세계원숭이처럼 새끼를 한 마리만 낳는다). 소형원숭이는 맹금류나 파충류 같은 포식자 때문에 유아사망률이 높다. 한 번에 두 마리씩 낳도록 진화한 것이 종족의 번식을 위해 유리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지만, 의문은 남는다. 쌍둥이를 낳는 행위가 야생에서 생존하는 데 그리 유리하지 않아서다. 태어날 때 새끼 두 마리의 몸무게를 합치면 엄마 몸무게의 2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곤란을 해결한 비책이 있다. 바로 공동육아와 계획임신이다. 이들 원숭이 무리에는 보통 새끼를 낳는 암컷과 새끼를 낳지 않는 암컷, 그리고 2~3마리의 수컷과 새끼들이 있다. 어린 새끼를 제외한 모두가 육아에 참여한다. 쌍둥이에게 젖을 먹이는 암컷은 3인분의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먹이를 먹는 데에만 집중한다. 그 외 새끼를 나르고 돌보는 역할은 수컷과 다른 암컷이 적극적으로 한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번식에 참여하지 않지만 육아를 돕는 개체를 헬퍼(Helper)라고 부른다.
주목할 점은 헬퍼의 존재가 번식을 성공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야생에서 관찰한 결과, 헬퍼가 없는 외로운 가족에서는 어린 개체의 33~50%가 포식자에게 잡아 먹혔지만, 헬퍼가 있는 가족에서는 영아 사망률이 훨씬 낮았다. 또, 헬퍼의 참여율을 정량적으로 측정한 연구에서 헬퍼가 전체 육아의 25%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헬퍼가 감시자의 역할을 해 포식자를 더 쉽게 발견하며, 쌍둥이를 키우는 육아 부담을 서로 나눠 번식 성공률도 더 높인다고 추측했다.
또 다른 전략인 계획임신은 사실 생물 대부분의 공통 전략이다. 새끼를 키우기 가장 좋은 환경, 즉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비하고도 쌍둥이를 키울 수 있는 타이밍에 새끼를 낳는다. 마모셋과 타마린 원숭이는 1년에 두 번까지 번식이 가능하지만, 야생에서는 열매가 가장 많이 열리는 계절에 쌍둥이를 낳는다. 좁은 영역에서 덜 움직여도 영양분이 많은 곤충과 열매를 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헬퍼의 비밀은 유전자?
도대체 헬퍼들은 왜 이런 봉사를 하는 걸까. 유전자를 어느 정도 공유한 가족이니, 가족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개인이 희생해도 괜찮다는 걸까.
2007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 한 편을 보자(DOI:10.1073/pnas.0607426104). 논문의 결론은 간단하다. 마모셋의 이란성 쌍둥이의 조혈계 조직(간)과 각종 체세포, 그리고 정자에서 키메리즘(기원이 다른 세포나 유전자가 한 개체에 공존하는 현상)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들 쌍둥이는 엄마 뱃속에서 처음에는 태반이 따로 있지만, 중간에 태반이 합쳐진다. 이 때문에 이전에도 조혈계 조직에 키메리즘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논문에서는 조혈계 조직뿐만 아니라 체세포와 생식세포에도 키메리즘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토대로 연구자들은 태반이 합쳐지는 시기가 생식세포가 발달하기 이전, 즉 임신 1개월 무렵일 거라고 추정한다.
생식세포의 키메리즘은 생각보다 골칫덩이다. 몇 대만 내려가도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아빠를 통해 아빠의 쌍둥이 남자형제, 즉 번식에 참여하지 않은 삼촌의 Y염색체 속 유전자가 나(수컷)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 유전자가 다시 내 자식에게까지 전달될 수도 있다. 인간을 비롯한 다른 영장류에서는 이런 현상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라고 따져 물어도 어쩔 수 없다. 야생에서 실재하는 현상이다. 워낙 독특한데다 연구는 쉽지 않아, 아직 더 많은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핵심은 정자에서 발견되는 키메리즘이다. 자손에게 전해지지 않는 체세포의 키메리즘 유전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자는 자손에게 전해지는 수컷의 유전자 설계도다. 파급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모든 개체는 자신만의 고유의 유전자 설계도를 자식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사명을 띠는데, 내 쌍둥이 형제의 유전자 설계도까지 내가 전해주는 셈이다. 이제 헬퍼들의 존재 가치가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한다. 물론, 지극히 유전자 수준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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