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Tech & Fun] 고요한 시대

Science Fiction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순간부터 인터넷은 충격에 빠졌다.

출구조사 결과가 틀렸던 지난 서울시장 선거가 재분석되고 방송3사 통합 출구조사와 다른 예측을 내놓은 방송국에 무한한 신뢰가 쏟아졌다. 하지만 출구조사는 언제나처럼 오차 없이 정확했다. 결말부터 알려주고 시작하는 소설처럼 밤은 우울하고 슬펐다. 축제를 준비하며 술집에 모인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게 일어났다. 선거가 끝난 날부터 부정선거를 확신하며 재검표를 요구하는 청원이 줄을 이었다.

유세 기간 내내 인터넷은 그 후보에 대한 조롱으로 넘쳐났다. 그 사람이 토론회에 나와서 했던 비현실적인 공약이며, 어수룩한 말씨와 멍청한 말실수 같은 것이 인터넷에서는 연일 화제였다. 물론, 아무리 인터넷을 쓰는 평균 연령대가 50·60대라고 해도 말이다.

10·20·30대의 경이로운 투표율과 지지율로 2052년 대한민국 제 26대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은, 후보 나이제한만 없어지지 않았어도 등록도 못 했을 친구였다.


신영희는 책상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벽을 바라보았다. 교수실은 후줄근했고 옆에는 피자상자며 치킨상자, 박카스 빈 병이 전리품처럼 쌓여 있다.

벽은 전지로 발라져 있고 신문이나 시사 잡지에서 오려낸 문구와 헤드라인, 사진으로 가득했다. 붉은 매직으로 그은 선이 그들 사이를 거미줄처럼 오간다.

문을 열고 조교가 들어와 말했다.

“졌네요.”



 


“야마를 부탁합니다.”

신영희에게 한 시의원 보좌관으로부터 자문 의뢰가 들어온 것은 저번 총선 시즌이었다. 전국에서 무소속 의원이 정당출신 의원보다 우세하거나 오차범위 이내로 경합을 벌이던 무렵이었다. 평생 국회밥을 먹어온 위원들도 상황을 분석하지 못했다.

“정당정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가위기 상황입니다.”

영희는 정당정치가 흔들린다고 국가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야마를 무정부주의자의 반란이라고 잡고 있습니다.”

보좌관은 ‘야마’라는 말을 상황도 맞지 않게 썼다. 기자들이 쓰는 말. 의미가 좁으면서도 광범위하다. 주제, 중심, 포인트, 생각의 틀, 프레임.

무정부주의자. 무소속 후보를 지지한다고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지. 하지만 적당히 논란을 사는 편이 좋다. 논란이 일면 논란 자체가 단어를 각인하게 도와준다. 논박은 남지 않는다. 단어만 남는다.

반란. 10대의 반란, 주부의 반란, 신세대의 유쾌한 반란.

“반란은 진취적이에요. 좀 더 불안한 말을 쓰세요.”

“폭격.”

“동떨어지진 말아야죠.”

“테러.”

“좋아요.”

“그럼 일단 ‘무정부주의자의 테러’로 가겠습니다. 이대로는 정당정치가 몰락…….”

“그 말은 더 이상 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정당과 몰락을 연결시켜버릴 겁니다. 앞으로 정당과 관계된 그 어떤 문구에도 부정적인말을 넣지 마세요.”

영희의 조언이 역할을 했는지 시의원은 자리를 보전했고 총선도 정당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당적도 없는 무소속 의원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한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정치 지형이 변하고 있었고 정치인들은 초조해했다.

신영희에게 ‘어떤 놈을 떨어뜨릴 문구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것은, 시골 출신의 한 새파란 시민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0%의 지지율을 가져갔을 즈음이었다. 영희가 올해 개설한 인지언어학 강의가 학생 수 부족으로 폐강된 무렵이기도 했다.


영희는 책상과 책장을 빼내고 벽 하나를 비웠다. 학자금 대출 빚이 밀린 조교를 조수로 기용했다. 전지 한 가운데에는 신문에서 오려낸 ‘무정부주의자’라는 헤드라인을 붙이고, 옆에는 시사 잡지에서 붉은 글씨로 강조한 ‘테러’라는 단어를 붙였다.

“이해가 안 가네요. 문구 하나가 뭐가 그리 중요해요?”

조교가 딱풀로 벽에 글자를 붙이며 말했다.

“마음은 물이고 언어는 그릇이야. 물은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하지.”

“인지언어학자 생각이죠. 인지언어학은 언어학에서 주류도 아닌데.”

조교는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광고만 잘 하면 제품은 어떻게 만들든 상관없단 말 같거든요.”

“전 국민을 상대로 나라 최고의 권력자들이 일간지 신문을 도배하고 거리와 가판대를 다 차지해서 매일 같이 하는 광고에다 제품은 미리 써 볼 수도 없고, 먼저 써 본 사람도 없고, 전 국민이 동시에 딱 한 번 사고 끝나는 제품이지. 광고가 이렇게 먹히는 제품이 세상에 어디 있나?”

영희는 반대쪽 벽에 놓인 소파에 앉아 손을 까닥거리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위치를 이동시켰다. 소파에서 자다가 눈만 뜨면 바로 ‘테러’가 보이도록.

“방향은 어느 쪽이에요?”

“과하지 않도록 막는 것. 내치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띄워줄 수 있거든.”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말을 정확히 듣지 않는다. 좀 더 정교하게 말하면, 서술어는 사라지고 명사만이 남는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명사에 대한 좋고 싫고의 인상만 남는다. 사람들이 맥락을 이해할 때는 주의 깊게 볼 때뿐이고, 대개의 사람들은 대개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조롱하기 시작하면 진다. 아무리 바보스러워 보이는 후보라도. 조롱을 입에 담게 되면 주어와 서술어는 사라지고 조롱만 남는다. 때로 믿을 수 없이 바보스러운 사람이 선거에서 이기곤 하는 것은 그래서다.

부정문은 실패한다. 초등학교 복도에 ‘뛰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지만 아이들은 듣지 않는다. 그건 아이들이 본질적으로 청개구리 기질이 있거나 말썽꾸러기라서가 아니라, ‘뛰지 않고 뭘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명령어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짠다고 생각해보라. 어떤 천재적인 프로그래머라도 ‘뛰지 말라’는 명령을 수행하게 할 수는 없다. 보통의 컴퓨터라면 이 명령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실제로는 다음과 같이 새로 입력해야 한다.
 

 
만 어른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만 생각한다. 실상, ‘뛰지 말라’는 말이 상기시키는 생각은 단지 뛰는 것뿐이다.

“진보당이 늘 지는 이유지. ‘OO하지 말며’, ‘OO에 반대한다’고 하다가 OO만을 기억하게 하거든.”

“그러면 어떻게 싸우는데요?”

“내 언어로.”

신영희는 간단히 답했다.

“내 언어가 장을 지배하게 해야 해.”

“흐음, 이론이야 그렇지만, 정말로 이런 일 해 본 적은 없으신거잖아요.”

조교가 핀잔을 주었다.


이 시민후보는 어디로 보나 신기했다. 당적도 없고 정치활동도 한 적이 없다. 농민으로 살았고 아버지 없는 유복자에, 가계에 필리핀 이주민 피도 섞여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지역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 겨울에 터진 수도관이나 보일러를 고쳐준다든가, 망가진 농기구며 트랙터를 고쳐주곤 했다. 그런 부탁을 싫은 내색 없이 도맡아하던 그 친구는 언제부터인가 그게 다 제 일인양 정기적으로 마을을 돌기 시작한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상담을 도맡아 하고, 지역의 작은 분쟁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된다. 다른 마을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는 친구였는지, 집이 매일 손님으로 넘치자 마을에서 돈을 모아 마당이 넓은 집 한 채를 지어주었다.

그래, 그런 사람도 있을 수는 있지. 세상이 좀 더 작고 간단했을 시절에는 그런 사람이 족장으로 선출되었을지도 모르지.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우물가에서 같이 세수하며 빨래를 하고, 같이 밭을 갈고 집을 짓던 시절에는.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이런 사람은 어디 지역신문에 사진하나 박혀 기사 한 줄 나가든가, TV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눈물 좀 뽑아내는 게 느낌이 맞지. 대선후보라니.

“알죠, 그럼요.”

영희의 손녀는 밥을 먹다가 놀랍다는 얼굴로 영희를 보았다.

영희가 그 사람을 모른다는 것이 놀라운 것인지, 아니면 알게 된것이 놀라운 건지 모를 일이었다.

“저도 지지하는 후보인데요.”

하긴 손녀도 10대니 지지할 확률은 높다. 이해는 가지 않지만.

“어째서?”

“그야.”

손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바라보았다. 손녀의 눈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할머니, 할머니, 우린 서로 다른 세계에 있어요. 보는 것이 서로 달라요.’

“대통령감이니까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딸이 핀잔을 주었다.

“알아요.”

손녀가 저항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나 몰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가 대선후보라니. 이래서 십대한테 투표권을 주는 게 아니었어. 어디서 그런 불법 이주노동자 같은 애를…….”

그 친구는 불법 이주민이 아니다. 필리핀에서 온 외할머니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문제없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언론은 교묘하게 이미지를 연결시켰다. 실제 쓴 문장은 대충 이런 느낌일 것이다. ‘불법 이주민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손녀는 입을 다물었다. 손녀는 별로 말이 없다. 사실 요새 10대들이 대개 그러하다. 묘한 고요함이 있다.

손녀는 말없이 입술을 내밀어 숟가락 끝에 대었다가 호록 하고 한 번에 들이켰다. 영희는 그 방식이 아이들이 마인드넷에 맛을 ‘올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녀의 블로그에 접속한 사람은 지금 손녀가 전송한 미역국 맛을 그대로 체험할 것이다.


“홍보를 마인드넷에서 한다?”

신영희는 조교가 모아 온 자료를 보며 질문했다.

“예. 마인드넷 쓰는 후보가 그 사람밖에 없어요. 마인드넷 쓰는 인구는 백만이 넘는데요. 물론 대개는 애들이나 청소년들이지만.”

“다른 후보는 왜 안 들어가는데?”

“안 들어오죠.”

조교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음이 읽히니까요.”

조교는 어깨를 들썩였다.

“들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맛집 광고나 하다 나가요. 애초에 웬만한 당원들한테는 전부 접속금지령이 내려져 있다고요.”

영희는 마인드넷이 한창 개발되던 초창기에 접한 적이 있다. 광고문구 검토의뢰를 받아 IT박람회를 돌던 중이었다.

그때 시연자가 보여준 마인드넷 접속기는 지금처럼 귀 위에 붙이는 마이크로칩 같은 형태가 아니라 무거운 헬멧을 쓰고 손가락 끝에 전선을 다는 형태였다.

헬멧을 쓰자 어둡고 잠잠해졌다. 주위가 고요해지고 감각도 둔해졌다.

기다리고 있자니 입맛이 돌았다. 영희는 입안에 뭔가 들어온 줄 알고 저도 모르게 혀를 움직였다. 달콤했다. 바삭바삭. 과자, 새우깡. 새우깡?

영희가 헬멧을 들고 보니 시연자가 새우깡을 씹어보이고 있다. 영희는 두 사람의 헬멧을 이은 전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재미있네요.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거죠?”

“원리는 간단해요. 이를테면, 텍스트 기반 인터넷은 정보를 요하죠. IP, 주소, 주민등록번호. 그건 간단히 빼낼 수 있고요. VR넷에서 아바타를 움직이려면 뇌파 신호 전체를 제공해야 해요. 그 신호를 다른 사람에게 쏴 주는 거예요.”

영희는 다시 접속해보았다. 이번에는 상대방의 기분을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듯 들여다보았다. 가벼운 불안, 피로, 자부심. 새우깡은 물렸음. 저런.

“곧 시청각 이미지도 공유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제품 광고의 혁명이 될 겁니다.”

“흥미롭군요.”

남편과 말이 안 통할 때 이 헬멧을 쓰고 대화하면 되겠군. 애가 울면 기저귀 더듬어보고 이마를 짚어보는 대신 헬멧만 씌우면 되겠군. 애가 마음으로 말해주겠지. ‘어머니, 저는 이번에 새로 나온 신제품 분유가 먹고 싶군요. 40℃ 정도로 살짝 데워서 반 컵 정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영희는 고개를 저었다. 맙소사, 인터넷에 공개된 내 개인정보만 해도 감당이 안 되는데.

“이거 안 팔리겠네요.”

“그래요?”

“자기 마음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요?”

아마 인터넷이 처음 생겼을 무렵에도 누군가는 말했을 것이다. 남들 다 보는 블로그에 제 사생활 기록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영희는 기계과 대학원생 하나를 물색했다. 초전사의 검을 주니 순순히 대화에 응한다. 영희가 VR게임에서 한 달을 노가다해서 만든 검이다.

“온라인 게임과 세상은 비슷한 점이 많아요.”

녀석은 확대경을 눈에 대고 납땜기로 마인드넷 송수신기를 지직지직 태우면서 말했다.

“새 기획자들은 항상 게임을 뒤집어엎으려 하죠. 좀 더 공평하게 밸런스를 맞추면 유저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요. 현실은 말이죠.”

대학원생은 송수신기를 형광등 빛에 비춰보면서 말했다.

“빗발치는 항의로 유저들이 대거 떨어져나가서 결국 되돌리곤 하죠.”

안다는 생각이 들면 주의해야지. 영희는 얌전히 들으며 생각했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움이 멎는다. 배움이 멎은 사이에 세상은 변한다. 가르칠 것이 없다.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서 배워야 한다. 불안, 두려움, 공허함.

“하지만 그렇다고 내버려둬서도 안 돼요. 언제나 인플레이션이 치솟아서, 신규유저는 감당도 못할 게임이 되어버리니까요.……자요, 송신기와 수신기를 분리했어요. 송신기에서는 가짜 뇌파가 나갈 거예요. 조심하세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라고요.”

“가짜 뇌파는 어떤 식으로 나가지?”

대학원생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했다.

“누가 그 뇌파를 접하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글쎄요……. 패턴을 많이 넣지 않았어요. 생각이 없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이 기계를 대량생산해서 마인드넷에 상주시키면?”

대학원생은 영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영희의 말이 지나가는 말이 아닌 줄을 아는 것 같다. 어떤 경로로든 영희의 인맥을 따라, 그 생각이 나라 정책에 반영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얼굴이다.

“사람들이…….”

대학원생은 납땜기로 책상을 톡톡 치며 말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겠죠.”

“신뢰라.”

“인터넷 초창기만 해도 해도 소통의 혁명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어요. 집단지성의 노래를 합창했죠. 그 생각이 사라진 게 언제부터인 줄 아세요?”

“언제부터였는데?”

“나라와 기업이 개입하면서부터요. 공무원과 직장인들이 돈을 받고 댓글과 게시물을 올리면서부터요. 이제 인터넷에는 텅빈 말만 가득해요. 늙은이들이나 남아있죠.”

그랬지.


마음을 닫고 마인드넷에 들어가는 건 투명인간으로 강남역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공허한 잡담뿐인 트위터처럼 아무도 영희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개인 사이트에 들어가면 심상을 얻는다. 지금 먹는 음식의 맛일 때도 있고, 듣고 있는 음악일 때도 있다. 대개는 반복적인 언어의 패턴이다.

‘공부하기 싫어.’ ‘계약을 이딴 식으로 해?’ ‘육아는 반반씩 하자더니 어떻게 된 거야?’ ‘A형 혈액이 긴급히 필요합니다.’ ‘XX회사가 석 달 째 월급을 안 주고 있습니다.’ ‘단식투쟁하던 XX동지의 생명이 위급합니다.’ ‘오늘 광화문에서는 시위가…….’

도떼기시장 같군. 도대체 마인드넷에서 노는 애들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시끄러운 생각들이 통제도 안 되고 흘러들어오는데. 영희는 시민후보의 개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차가운 눈이 머리에 내려앉았다. 손가락 위로 눈이 내려앉았다가 녹아든다. 바람은 차고 시원했다. 영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공기가 신선했다. 눈앞에 흰 산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어느 시골 기차역인 듯 싶었다.

영희는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 친구가 기찻길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10%의 지지를 얻는 시골 출신 대통령후보.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추위에 볼이 발갛게 된 채로 산허리를 바라본다.


“마음을 전부 열어놓는 거예요.”

조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영희에게 설명해주었다.

“자기가 겪은 일일 거예요. 아마 회상 중이었겠죠.”

“그렇게 생생하게?”

“내가 직접 체험하는 것 같죠. 저도 보고 놀랐어요. 이미지화가 강한 사람인 것도 같고.”

“다른 사람도 이러니?”

“웬만한 용기로는 그렇게 못할 걸요. 누가 그렇게까지 자기를 드러내요.”

“거리끼는 것도 없나? 대선후보잖아. 작은 흠집 하나라도 있으면 물고 뜯을 놈 천지일 텐데.”

“친구가 어렸을 때 지우개 하나 훔쳤다고 해서 그 사람과 다신 안 만나겠다는 생각을 하나요?”

“친구가 아니잖아.”

“거의 친구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라면 신문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죠. 어디서 선물 하나 받았다고 매일 신문지상에 수백 차례 오르내리게 만들면, 다른 건 다 사라지고 사기꾼 인상만 남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사람은 그렇게 안 돼요. 그 사람 인생 전체를 모두가 아는데요.”


동네에서 장사를 하던 한 부인이 역전 근처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3개월 치 밀린 집세였고 찾지 못하면 당장 길거리로 내몰릴 판이었다. 어쩔 줄 모르던 부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청년을 찾아갔다.

하소연하던 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청년은 그날부터 매일 역전에 나갔다. 한 달이 지나자 역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역을 중심으로 도는 소매치기단의 움직임을 파악한 친구는 자연스럽게 소매치기한 사람을 찾아내고 정중히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부인의 돈을 돌려주었고 그 뒤에도 가끔 소매치기를 찾아가 술을 샀다.

이상한 일화였다. 너무 이상해서 어느 부분에서인가 왜곡되었거나 잘못 전해진 것만 같다.

청년은 자주 그 역전을 회상했다. 아마도 그곳이 어떤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단계를 뛰어넘은 사건이다. 청년의 마음에서 무엇인가가 변한 것이다.

“이봐, 젊은이, 자네가 괜찮은 사람일지는 모르겠는데.”

영희는 청년을 응시하며 말했다.

“사람 하나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언어는 언제나 이중적이다.

나라의 대표자도 마음의 문이고 그릇이다. 대표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속성이 국민의 향방을 정한다. 선거일을 중심으로 나라의 지형도는 바쁘게 움직인다. 누가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가, 누가 기가 죽는가, 누구에게 힘이 모이는가.

청년이 영희를 돌아보았다. 영희는 흠칫 숨을 멈췄다. 영화 스크린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본 것 같았다. 이런, 내 생각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았나봐. 들키면 안 돼. 교수실을 생각하지 마. 벽을 생각해선 안 돼. 내가 이 녀석을 이길 문구를 찾고 있다는 것도. 내가 감시하고 있다는…… 망했군.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들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전 세상이 바뀌기를 바란 적이 없어요.


영희는 헉 하고 숨을 쉬며 마인드넷에서 빠져나왔다. 말은 짧았지만 생각은 계속 흘러들어왔다.

기성세대가 원하는 건 현상유지가 아니에요. 자신에게 익숙한 시절로 세상이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거죠.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 두면 변해요. 흘러가고 변화하죠. 난 세상을 그대로 두기를 원해요.

모든 것이 이대로 흘러가기를. 사람들이 다니던 직장을 계속다니기를, 가던 학교를 계속 다니기를, 오늘 살던 집을 잃지 않기를, 내가 보던 그 강이 그대로 흐르고, 그 산야가 계속 푸르기를.

영희는 땀이 흐르는 이마를 훔쳤다. 조금 전의 심상은 거의 자신의 생각처럼 느껴졌다. 흘러들어온 생각을 내보내기 위해 한참을 방안을 돌아다녔다.

영희는 벽을 바라보았다. ‘테러’, ‘무정부주의자’. 언어는 생각을 담고 세상을 지배하고 마음을 지배한다. 그 생각 전체가 이처럼 초라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날 그 후보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엔 주홍색 컨테이너가눈앞에 있었다.

컨테이너 뒤로 근엄한 이순신 동상이 머리를 드러내고 있다. 컴컴한 밤에 여섯 개의 화물용 대형 컨테이너가 대로를 막고 있다. 컨테이너는 어느 그로테스크한 시대의 설치미술처럼 보였다. 베를린 장벽처럼 사람들이 붙여놓은 것들로 다시 새로운설치미술이 되어가고 있었다. 꽃이며 편지, 근조리본.

단발머리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지나갔다. 손에는 팻말을 들고 있다. ‘0교시 반대’ ‘일제고사 반대’ ‘야자를 없애주세요.’ 의사가운을 입은 사람이 ‘의료민영화 반대’ 팻말을 들고 앉아 있다. ‘대운하 반대’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예비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자경단처럼 돌아다니고 의대생들이 자리를 펴고 혹시나 있을 부상에 대비한다.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고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몸에 두른 채 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다. 컨테이너 앞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토론한다. 컨테이너를 넘어가 싸울지, 아니면 이대로 오늘을 보낼지 일곱 시간째 회의 중이다.

청년은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다.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처럼, 다른 시대를 지켜보는 사람처럼 생각에 잠겨 있다.

여러 사람의 시청각 기억을 조합해 만든 풍경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여러 방향에서 찍은 사진을 조합한 풍경처럼, 보는 곳마다 미묘하게 각도가 다르다. 청년이 질문을 던졌고 노인들이 모여 자신의 기억을 전해준다. 청년은 이를 전송받아 조합해 보여준다. 믿기 힘든 시각 구현력이다.

왜 이곳을 구현했을까.

다른 어느 시위도 아니고 이곳을.

영희는 그때 열일곱이었다. 교복을 입고 직접 만든 문구가 적힌 종이를 손에 꼭 쥐고 그곳에 나갔다. 계절이 바뀌고 한파가 오고, 기자도 전경도 관심을 끊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시청한 구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줄어들 때까지도 거기에 있었다.

영희는 언제부터인가 그걸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 바보스럽고 무의미한 짓이었노라 회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100만 명이 모였고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쓰레기도 기물파손도 없었다. 주도자도 지도자도 없는 100만 명의 군중이 모였는데 그들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싸우지 않을 것을 선택하고돌아갔다. 세계사에 다시없는 풍경이었다.

나라에서는 단어를 골랐다. ‘괴담’, ‘허위선동’, ‘근거 없는’. 수많은 문제를 광우병이 진실인가 거짓인가의 문제로 축소시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간단히 한두 단어로 후려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희는 언어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언어가 그날을 모독하고 현상을 바꾸었기에.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언어고, 사람의 마음은 언어에 담기고, 경험은 사라지고 언어만이 남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영희는 마인드넷에서 빠져나왔다. 길거리였고 시청광장이다. 한 구석에서 작은 공연을 하는 듯 음악소리가 아련하고 아이들이 눈을 굴리며 지나간다.

영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시절에 사람들은 계속 죽었다. 자살률이 치솟는다는 표현으로는 도저히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 전쟁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위로도 치료도 수명을 다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결혼하지 않고 여자들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 아이들은 황야에 버려진 작은 짐승들처럼 슬픔도 없이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늙었다고 느낀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목숨을 끊었다.

아이들은 죽음에 익숙했다. 폭격이 주기적으로 쏟아지는 피난처에 사는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하늘에서 눈이 쏟아졌다. 손가락에 내려앉아 녹아든다. 소맷자락에 내려앉아 덮는다. 위로하듯 쌓아든다.

시베리아의 이누이트는 눈을 수많은 이름으로 부른다. 아푸트, 땅에 내려앉은 눈, 아키틀라, 물에 내려앉는 눈, 브리클라, 단단하게 뭉쳐진 눈, 카피틀라, 얼어서 유리처럼 반들반들한 눈, 크리플리아나, 새벽녘에 푸르게 빛나는 눈, 소틀라,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 틀라잉, 진흙에 섞여 지저분한 눈. 틀라파트, 소리없이 내리는 눈. 콰나, 펑펑 쏟아지는 눈. 그 언어를 모르는 사람은 며칠째 계속 눈이 왔다고 말한다. 이누이트는 어제와 오늘은 달랐고, 그제와 그끄제는 또 달랐다고 말한다.

언어에 생각이 담긴다.

하지만 만약 다음 세대가 언어를 생각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은 앞으로 어디에 담길까?

인지언어학은?

인지언어학? 한가한 소리.

내가 일생 해왔던 일은? 앞으로 주부교실에서 강의 한 자리라도 해먹을 수 있을까? 언어가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뭘 해먹고 산단 말인가?

신문은, 잡지는, 책은, 출판사는, 작가는, 시인은, 시는, 소설은? 학문은 어디로 가고 강의계획표는 앞으로 어떻게 짜나? 글밥을 먹고 살던 우리들,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에 마음을 담았던 우리가,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날 만한 용기가 있을까? 우리는 지나가니, 세상은 이제 너희 것이라고? 되도 않는 소리.

마인드넷은 곧 탄압받는다. 곧 위정자들에게 위험천만하고, 불안하고, 세상을 위협할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아직은 저들이 이곳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한 순간 이 세계는 곧 정신병적이며, 통제해야 할 어떤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가치는 사라지고 짓밟힐 것이다.

영희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예요.”

정치인들이 무지 싫어하는 말이다.

“대선이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 거기 당원 누구도 마인드넷에 접속해 본 적이 없잖아요. 사태파악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정치인이 인터넷의 생리에 무지했던 16대 대선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길고 지루한 답변이 이어졌다. 영희는 이마를 붙들었다. “보수니 진보니 한가한 소리 하지 마세요. 지금 얘네들 놔두면 사회 근간이 흔들릴 거예요.”

영희는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사람이 보수주의자가 되려면, 내게 익숙한 세상이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고, 뒤집고, 둑방을 쌓고, 뒤흔들어야 하는 걸까.


영희는 틈이 날 때마다 그 친구에게 접속했다.

눈이 내리는 겨울날 친구들에게 썰매를 만들어 주는 것을 보았다. 나무를 자르고 식칼을 붙여 밧줄을 매는 것을 지켜보았다. 덫에 걸린 사슴을 풀어주는 것도, 다리가 불편한 동네 어른을 위해 가볍고 접을 수 있는 휠체어를 만들어내고는, 기뻐서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는 것도 보았다. 월급을 받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단칸방에 앉아 밤이 새도록 법전을 읽는 것을 보았다.


“의혹 제기는 통하지 않아요.”

조교가 영희 옆에서 신문과 잡지표지를 오려내고 딱풀을 바르는 동안 영희는 계속 전화를 했다. 조교는 신문에 난 ‘부패’, ‘썩는다’, ‘곪는다’를 잘라내어 ‘언어’라는 타이틀이 붙은 색종이 안에 붙였다.

“누구든지 접속만 해 보면 거짓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세금을 안 냈다거나 논문을 표절했다고 한들…….”

논문을 낸 적이 없는 사람이지.

“직접 가서 보기만 하면 돼요. 변명이 아니라 정황 전체를 알게 됩니다. 게다가 이쪽은 친구한테 듣는 것처럼 자세히 들을 수 있는데 의혹제기한 사람 마음은 알 수가 없어요. 완전히 역효과예요.”

조교가 ‘언어’ 옆에 하트를 붙이는 동안 영희는 소리를 질렀다.

“글쎄 안 된다니까요. 접속할 생각도 하지 말아요. 비리 다드러나요. ……의원님께서 비리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애초에 의원이 저 정도로 마음을 공개하면 국가 기밀 다 새어나가요. 예, 압니다. 저 친구는 공직에 들어와 본 일이 없으니 저럴 수 있죠.”

영희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말했다.

“사이비교주 같은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뭔가 사람을 호도하는, 세뇌시키는, 불안감을 조성할 만한…… 교주, 마법사. 아뇨. 샤먼. 샤먼으로 갑시다.”

영희는 언어를 양산했다. 마인드넷을 쓰는 사람들을 칭하는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에 벌레와 파시스트와 전쟁전범자들을 포함한 모든 괴악한 이미지를 이어놓았다. 마인드넷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치전범에 가까운 인상을 주게 만들었다.

이 선거가 지성의 세기를 지키는가, ‘정신 강간범’의 반지성주의에 점령당하는가의 전쟁이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 고작 10%의 지지율을 얻는 후보 한 명이 이토록 화제가 되는지 궁금해 했다.

대선을 한 달 남기고부터 영희는 방을 떠나지 않았다. 책상한 귀퉁이는 온통 치킨박스며 피자박스, 햄버거와 감자튀김 종이로 산을 이뤘다.


조교가 쾅하고 옆에 자료더미를 내려놓자 영희는 멍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자료 제일 위에는 ‘샤먼’을 헤드라인으로 삼은 신문이 놓여 있었다. 신문 아래에는 ‘샤먼이란 무엇인가’를 특집으로 삼은 시사잡지가 있었다.

“자기가 뭐라고 생각해요?”

영희는 말없이 여성잡지 에세이, 담화문, 시사 칼럼, 의원 인터뷰 같은 것을 뒤적였다. 시킨 대로 ‘샤먼’마다 꼼꼼하게 동그라미가 쳐 있다. 이제 이 단어는 적과 아군이 동시에 인용한다. ‘샤먼이라고 중상모략을 하는 사람들’. 이제 그들도 프레임에 속한다. 세상이 내 언어를 쓴다.

“사람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조교는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설마.”

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위험해지지.

“선거에 변수가 한둘인가. 이건 총력전이고 각자 제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거지. 나는 구상을 할 뿐이고, 쓰는 건 그네들이고.”

조교는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꽉 쥔 채 방을 나갔다.

영희는 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니면 이제 그 흐름과 관계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가운데에 자리 잡은 색 바랜 ‘무정부주의자’, ‘테러’를 중심으로 사방을 ‘샤먼’이 차지했다. 인해전술로공격하는 군병처럼 어느 칸에든 어느 자리에든 붙어 있었다.

전쟁이라니. 설마. 저들이 적군도 아니고. 이건 그저 고객유치지.

영희는 눈이 오는 역전에 앉아 있던 그 친구를 떠올렸다. 그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자 어수선했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머리에 눈이 쌓였고 어깨에도 내려앉았다. 희뿌연 하늘에서 눈송이가 음악처럼 흘러내렸다.
 



 
“졌네요.”

조교의 말을 듣자 긴장이 풀렸다. 벽을 채운 ‘마음의 지도’도 같이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할 일을 다했다는 것처럼 쭈글쭈글해 보인다.

“그러네.”

영희는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으로 답했다.

“시대는 변했어요. 사람들은 이제 언어에 홀리지 않아요. 말 갖고 사람을 지배하려드는 교수님 같은 늙은이들은 이제 구시대로 밀려날 거라고요.”

영희는 답하지 않았다. 조교가 제 짐을 다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는데도 돌아보지 않았다.


마인드넷은 축제 중이었다. 10%의 지지율에서 당선까지 올라간 당선자의 주위에 수십 수백의 생각이 은하처럼 맴을 돌았다.

영희가 은하의 중심에 다가서자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당선자는 벌써 일을 한다. 언어는 선형적이고 독립적이다. 하지만 마음의 대화는 서로 섞였다. 호수에 물이 흘러드는 것처럼.

다양하고 다채로우면서도 질서 있었다. 먼 옛날의 종로 거리에서처럼. 자신이 지금 지키는 것이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라 믿는 사람들만이, 삶을 축제로 여기리라 다짐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력으로 넘쳐났다.

그릇이 없으면 물은 어디에 담길까. 담길 자리가 없으면 마음은 어디로 갈까.

물, 계곡, 실개울, 도랑, 낙수, 빗방울,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 생각의 강이 사람의 계곡을 따라 흘렀다. 바위를 휘감고 자갈을 타넘고, 물거품을 일으키며 떨어지고 미끈한 경사면을 내려가며, 모래사장에 머물고 흙을 퇴적하며 강으로 모여들고 바다로 흘러간다.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영희는 씁쓸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얘네들 입장에서야 자신들에게 익숙한 세상이 이어지는 것이겠지만, 내게도 익숙한 수준에서 돌아갔으면.


영희는 책상에서 내려섰다.

벽에 다가가 ‘무정부주의자’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생각은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매직으로 그은 붉고 미끈한 선을 따라, 거미줄처럼 이어진 노선을 따라 심상이 기차처럼 달렸다.

‘샤먼’의 폭격 속에 숨겨진 잠재심상, 선지자, 예지자, 구원자, 구도자, 새 시대, 희망, 빛, 변화, 진실, 거짓 없는 시대, 하나 된 마음. 좋은 심상은 저쪽에 두고 부정적인 심상은 이쪽에 둔다. 몰락, 위기, 부패, 무너진다. 사라진다. 악기를 배치한다. 화음을 듣는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연주한다.

언급하고, 반대하고 반박하며 주목하게 한다. 말은 남지 않는다. 심상만 남는다.

자신 때문에 이겼다고 할 것도 없다. 누가 모자라서 졌다고 할것도 없다. 변수는 많았고 나도 그 한 변수였을 뿐이다. 모두가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고 나도 그랬을 뿐이니까. 신영희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쑥스럽게 웃었다.

이처럼 멋들어진 패배로 마무리 지은 승리라니.

내 말로써 말의 시대를 저물게 해 버리다니.

영희는 전장을 함께 헤쳐 나온 동료에게 기사가 ‘그동안 함께해서 영광이었소’ 하고 예를 갖추듯이 벽을 향해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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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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