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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뇌 주름의 물리학

지구 주름 잡은 지능의 비밀



머리 큰 사람과 짱구처럼 뒷머리만 큰 사람 중 누가 더 똑똑할까. 이건 우문이다. 지능은 머리 크기나 모양보다는 뇌 주름과 관련 있다. 그렇다면 뇌 주름이 많을수록 똑똑할까? 놀랍게도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현병 환자가 정상인보다 뇌 주름이 훨씬 많다. 지나치게 많은 주름은 병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뇌 주름은 오래 전부터 매력적인 연구대상이었다. 과학자들은 뇌 주름이 마구 구겨버린 종이뭉치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모양이 됐는지는 최근에서야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사람의 뇌 주름을 모두 편평하게 펴 놓는다고 가정해 보자. 표면의 총 넓이는 신문지 한 장과 비슷해진
다. 그러니까 단단하고 작은 두개골 안에 신문지처럼 넓은 뇌가 들어 있는 셈이다. 뇌가 이렇게 구겨져 있는 이유는 두개골 안의 공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 보면, 사람의 대뇌는 그 자체가 거대한 주름 모양으로 접혀 있다. 도마뱀 같은 동물은 호흡이나 심장박동, 수면처럼 본능에만 충실하도록 뇌간만 발달했다. 흔히 ‘파충류의 뇌’라고 부르는 곳
이다. 쥐나 고양이 같은 포유류는 천적을 피하거나 먹잇감을 사냥하는 등 생존과 관련이 있는 중뇌도 발달했다. 사람이나 유인원, 돌고래는 피질이 발달했다. 뇌세포도 많으며, 주름도 많다. 특히 사람은 피질 전체의 3분의 2가 주름에 감춰져 있을 정도다.

뇌에 주름이 많을 때의 장점은 또 있다.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혈류량을 늘릴 수 있다. 사람의 뇌는 1.2~1.4kg으로 전체 몸무게의 2% 정도다. 그런데 뇌로 가는 혈류량은 온몸을 순환하는 양의 20%다. 몸 전
체가 사용하는 산소의 20%를 쓴다는 뜻이다. 또 뇌는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내는 탄수화물(포도
당)만 사용하는데, 뇌 주름에 혈관이 오밀조밀 뻗어 있는 덕분에 효율적으로 포도당을 공급받을 수 있다.

뇌 주름은 정보를 교환하는 효율도 높인다. 뇌세포는 서로 정보를 전달할 때 전기신호를 보낸다. 뇌를 커
다란 신문지 한 장이라고 가정하고,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에 있는 세포로 전기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해보자. 신문지가 펼쳐져 있다면 긴 거리를 거쳐야 하지만, 만약 신문지가 U자 모양으로 말려 있다면 훨씬 빨리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뇌에 주름이 발달하면서 뇌세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고, 전기신호를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뇌 주름 생성과정 ‘실리콘 뇌’로 밝혀

과학자들은 진화 과정 중에서 대뇌 피질이 폭발적으로 커졌는데, 이에 비해 단단한 두개골은 거의 커지지 않아 뇌가 앞으로 쏠린 모양으로 거대 주름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뇌에는 거대 주름만 있는 게 아니다. 사이에 미세한 잔주름이 가득하다. 이 잔주름도 두개골이 단
단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까. 과학자들은 두개골이 없는 상태에서 뇌를 키우는 실험을 해봤는데, 뇌 주
름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두개골이 뇌에 주름을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부 학자들은 뇌 주름에서 산봉우리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이랑과 산골짜기처럼 깊숙이 들어간 고
랑이 발달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학설도 세웠다. 이랑이 고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자라면서 공간이 부족한 탓에 바깥으로 볼록 튀어나와 주름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맞으려면 피질에서 주름이 생기기 전에 어느 부분이 빨리 자라고, 어느 부분이 늦게 자랄지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증거를 찾지 못했다.

최근에는 피질이 백질보다 비교적 빨리 자라 주름이 생긴다는 주장도 나왔다. 핀란드 이위베스퀼레대 물리나노과학센터 투오마스 탈리넨 박사와 정준영 미국 하버드대 비스연구소 박사, 프랑스 티몬대학병
원 나딘 지라르 신경방사선학과장 연구팀은 뇌와 특성이 비슷한 뇌 모형을 만들어 주름이 생기는 과정을 재현했다(DOI: 10.1038/NPHYS3632).

우선 주름이 생기지 않은 태아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다음, 3D 프린터로 모형을 만들었
다. 이것을 바탕으로 주형을 만든 뒤 폴리다이메틸실록산(PDMS)이라는 실리콘 기반 탄성고분자 물질을 주형 안에 부어서 실제 뇌처럼 말랑말랑한 젤 형태의 뇌 모형을 얻었다. 연구팀은 뇌를 둘러싸고 있는 피질을 재현하기 위해 뇌 모형 표면에 탄성고분자를 얇게 발라 막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뇌 모형을 핵산용액에 담갔다. 10분 정도 지나자 뇌 모형을 둘러싼 얇은 막(피질에 해당)이 핵산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 안으로는 침투하지 못했다. 핵산을 흡수한 얇은 막은 부풀어 올라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안쪽(백질에 해당)은 아무 변화가 없는 반면, 겉껍질은 부피가 커지면서 압력이 생겨 주름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재미있게도 뇌 모형에 생긴 주름은 실제와 거의 흡사했다. 모양이나 크기뿐만 아니라 주름이 향한 방향까지도 비슷했다. 지금까지 뇌 주름이 생기는 데 GPR56, 라미닌감마3 같은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뇌가 물리적인 힘을 받아 직접적으로 주름이 생긴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밝혀졌다.



주름을 알면 주름 잡을 수 있다!

뇌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을 때에도 뇌 주름 연구가 도움이 된다. 최근 미국과 영국 공동 연구팀은 대
뇌 피질을 180개 영역으로 나눈 다음, 각각의 기능을 정리한 뇌 지도를 완성했다(과학동아 9월호 참조). 이지도는 기존에 만들어진 뇌 지도보다 주름 하나하나의 특성이 훨씬 정밀하게 분석돼 있다.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뇌 주름과 관련 있는 질환, 특히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생기는 부분이 어디이고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치료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뇌 주름을 모방하는 과학자도 있다. 뇌 주름의 물리학을 응용하면 커다란 물체를 작게 압축하거나, 반
대로 납작한 것을 크게 부풀릴 수 있다. 또는 표면적을 넓혀 기존보다 효율적으로 물질이나 전기신호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약물을 전달하는 시스템이나 반도체 소자, 태양전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데 활용될 전망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주름 속에 감춰진 뇌세포가 더 많듯이, 뇌 주름에는 아직까지 인류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잠재력이 담겨 있다.
 

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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