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농장 옆엔 윌리엄 배스 법의인류학 빌딩이 있다. 이곳에는 시체농장에서 수습한 뼈를 씻는 세척실이 있는데 가끔 이곳이 지독한 냄새로 가득 차곤 한다. 부패가 진행 중인 ‘실제’ 범죄 피해자의 시체가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사건 의뢰가 들어오면 뼈를 닦는 대학원생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진다. 실제 사건에 적용되는 법의인류학적 감식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관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법의인류학자는 뼈를 보고,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다. 뼈를 감식하는 중요한 목적은 뼈에 드러난 여러 흔적을 통해 생전의 생물학적 특성을 최대한 정확히 추정하고, 피해자의 신원 파악을 돕는 것이다. 신원 확인에 도움이 되는 생물학적 특징은 성별, 연령, 그리고 키가 있다. 이외에도 외상, 질병, 혹은 치료의 흔적 등 뼈에 남은 특이한 점은 모두 신원 확인을 위한 단서가 된다. 이번 화에서는 법의인류학적 감식의 첫 단계, 뼈 목록을 작성하고 인종과 성별, 연령을 추정하는 작업을 살펴본다.
등을 대고 누운 뼈
감식은 널따란 직사각형 테이블에 뼈를 꺼내 놓으면서 시작한다. 등을 대고 누운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팔다리를 편 자세로 뼈를 펼쳐 놓는데, 이 자세를 해부학적 자세라 한다. 본즈(Bones)와 같은 범죄수사 드라마 팬이라면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이렇게 뼈를 늘어 놓는 이유는 어떤 뼈가 남아 있는지 한눈에 파악하고 뼈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서다.
뼈 목록에는 뼈의 종류와 수를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만약 뼈가 심하게 파손됐거나 같은 뼈가 여러 개 있는 경우라면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여러 명의 시체가 섞인 경우 각 개체를 구분하지 않고 다음 단계의 분석을 진행한다면 신뢰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의인류학자가 우리 몸에 있는 206개의 뼈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뼈의 목록을 정확하게 작성했다면, 이제 인종(ancestry, 생물학적 인종이라는 뜻이 아니라 출현지·조상에 따른 계열이라는 뜻이 강하다)을 알아낼 차례다. 거리를 걷다 만난 사람이 아프리카계인지 유럽계인지 혹은 아시아계인지 판단하는 데에는 보통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피부색을 떠나 생김새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학적 차이가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얼굴과 머리다. 예컨대 아시아인에 비해 서양인은 눈이 움푹 들어가 있다든가, 머리의 앞뒤 길이가 길다든가 하는 특징들이 있다.
법의인류학자들도 주로 머리뼈를 본다. 머리뼈가 앞뒤로 긴지 좌우로 긴지, 머리 높이가 높은지 낮은지, 얼굴 크기는 얼마나 크고 광대뼈와 입은 얼마나 튀어 나왔는지, 눈 구멍과 코 구멍은 어떻게 생겼는지 등 머리뼈의 특징으로 인종을 추정한다.
치아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예를 들어 앞니의 혀 쪽 면이 움푹 들어가 삽 머리 같은 모양을 한 치아는 주로 아시아인에서 나타난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이런 특징들을 수량화시켜 좀 더 객관적으로 추정하려는 연구들이 진행됐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포디스크(FORDISC)’라는 소프트웨어다. 머리뼈의 여러 부분을 계측해 입력하면 포디스크가 판별함수를 이용해 이 머리뼈가 어떤 계열의 사람인지 가능성을 계산해준다.

남과 여, 이마 모양도 달라
성별에 따라 뼈의 크기와 생김새가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의 몸이 아이를 낳기 적합한 형태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산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골반 뼈에서 남녀의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난다. 여성의 골반 뼈는 산도(産道)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엉치뼈는 남성보다 앞뒤로 덜 휘어져 있고 대좌골절흔(greater sciatic notch)이나 치골하각(subpubic angle)은 남성보다 넓다. 경험이 많은 법의인류학자들은 골반 뼈만 가지고도 95% 이상 정확하게 성별을 알 수 있다.

일상적인 활동에 영향 받지 않는 치골 뼈로 연령 추정
모든 사람의 뼈는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자란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영구치가 나고,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성장판에서는 새로운 뼈 세포를 계속 만들어낸다. 따라서 아직 성장기에 있는 사람이라면 치아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혹은 성장판이 어느 정도 닫혔는지 등 ‘뼈의 성장 정도’를 이용해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성장이 멈추고 나면 상황이 180° 달라진다. 이젠 뼈가 얼마나 닳고 고생을 했는지, 즉 ‘뼈의 퇴행 정도’를 보고 나이를 짐작해야 한다.
문제는 몸이 늙어가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특히 자주 사용하는 부위는 퇴행의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투수나 테니스 선수의 팔뼈는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인보다 퇴행이 심하다. 성인의 나이를 추정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법의인류학자는 좌우 치골이 맞닿는 치골 결합면(pubic symphysis)처럼 일상적인 활동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부위를 이용해 나이를 추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오차는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 오차 범위를 줄이기 위한 연구가 현재 많이 이뤄지고 있다.

법의인류학자가 감식 결과를 내놓으면 수사 기관은 실종자 정보와 비교해 피해자의 범위를 줄여나간다. 만약 감식 결과가 잘못되면 실제 피해자가 처음부터 수사 기관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수사에 큰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법의인류학적 판단은 최대한 깐깐하게 내리는 게 원칙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법의인류학자가 법정에 나가 본인이 사용한 방법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지 소명해야 하기 때문에 큰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체농장에서 백골화된 뼈들은 포디스크를 비롯한 인종, 성별, 연령 추정 방법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돼 왔다. 과학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써달라는 기증자들의 숭고한 의지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연구에 매진하는 법의인류학자들의 열의가 경이로울 정도로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시체농장이다.
최근 우리나라 전문가들과 법의인류학센터의 교류가 늘고 시체농장에 대한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갖는 걸 보며,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이 발전적인 조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